프로덕트 디자인을 지원한다면
큰 조직은 아니지만 디자인 업무 전반을 총괄하고 있고, 디자이너의 채용 또한 전담하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많은 양의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접해요. 채용이 열리면 보통 하루에 수십 건의 포트폴리오 파일을 받아서 여닫습니다.
저도 한때는 지원자였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만드는 처지이 아니라 평가해야하는 처지가 되어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요소들이 없거나 엉뚱한 부분들이 부지런히 강조되어 있기도 하고요. 본인은 본인의 포트폴리오만 유심히 살피지만 채용 담당자는 여러 포트폴리오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시각 차이가 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만큼은 결정의 주체가 회사에 있기에 포트폴리오를 평가하는 쪽의 시야를 이해하고 준비해야 합격의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포트폴리오를 평가하는 입장에서 보였던, 그리고 아쉬웠던 지점을 다뤄볼게요. 모든 평가자가 저와 동일한 기준을 갖는 것은 아니겠지만 찬찬히 읽어보고 본인에게 적용해 보시면 더 나은 포트폴리오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 봅시다. 어떤 분야를 지원했죠? 프로덕트 디자이너죠. 이들이 하는 일이 뭐죠?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요. 이 태도는 기본 중에서도 기본입니다. (사실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하물며 프로덕트 디자이너잖아요.) 포트폴리오의 주된 고객은 포트폴리오의 내용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는 채용 담당자가 되겠죠. 하지만 문서들을 받다 보면 읽는 이를 배려하지 않은 결과물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에 놀랍니다.
간혹 포트폴리오를 노션이나 별도 웹페이지로 구성해서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반드시 PDF나 PPT 문서일 필요는 없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평가자는 ‘충분한 적극성을 가질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페이지를 보면 프로젝트들의 리스트나 메뉴들이 제공되고 일일이 하나씩 아이템을 클릭해서 들어가 평가하고 다시 뒤로 돌아와 다른 아이템을 선택하는 과업을 반복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일반적인 문서는 스크롤로 모든 프로젝트를 둘러볼 수 있으니 포트폴리오 전체를 이해하는데 생기는 시간과 피로도가 증가하는 셈이죠. 수단은 아무래도 좋으니 단순하고 피로감이 적은 인터랙션을 반드시 고려하세요.
용량도 중요합니다. PDF를 내려받으려는데 용량이 몇백 메가라면 일단 좋지 못한 인상을 먼저 심고 평가가 시작됩니다. PDF라는 포맷을 사용하는 이유는 압축성이 좋아서입니다. 어떤 도구로 문서를 만들던지 옵션을 잘 만져보면 적은 용량으로도 쾌적하게 여러분의 프로젝트를 담을 수 있어요.
(제가 받은 포트폴리오 중에서는 구글 드라이브 링크도 있었답니다. 링크로 들어가 보니 적지 않은 프로젝트들의 로우파일들이 폴더별로 들어있고, 디자인을 보려면 파일을 일일이 다운로드 해야 했어요. 각각의 용량도 작지 않았고요. 저는 UX 디자이너의 자격에 미달한다고 판단했고 결국 단 하나의 과제도 열어보지 않고 탈락시켰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에 있어 아주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표현 수단입니다. 그 자체로 정보를 담는 것은 물론 정보의 위계, 시각적인 무게감까지도 부여할 수 있어요. 간혹 첨부된 과제의 타이포그래피는 큰 문제가 없는데 그 화면을 설명하는 화면 바깥의 타이포그래피가 엉망인 경우가 있어요. 타이틀과 서브타이틀, 설명글이나 캡션, 위계나 컬러도 정리가 안 되어있고요. 포맷도 일관되지 않아 페이지마다 들쑥날쑥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면 조형의 기본 구성 능력 자체에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꼭 기억하세요. 포트폴리오란 언급된 과제 결과물 뿐 아니라 제출된 문서의 전체입니다.
평가자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문서를 엽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 헤매요. '아, 이분은 참 꼼꼼하구나', '이분은 문제를 입체적으로 볼 줄 아네.'처럼요. 그런데 이 답을 찾기가 어려운 포트폴리오가 있습니다. 문서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봐도 이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뭘 잘하는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어요. 그러면 확신과 결단이 오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어떤 점에 강점이 있는지 그래서 회사에 그 강점을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포트폴리오에 드러나야 합니다. "나는 꼼꼼한 디자이너입니다"라는 문장을 쓰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설령 그런 문장으로 어필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제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검증되어야 합니다. 어렵지만 해내야 해요.
(자기만의 무기를 모른다? 그러면 포트폴리오에서도 반드시 들통납니다. 그런 분들은 포트폴리오 작성에 앞서 조금 더 근원적인 성찰과 판단이 필요한 상태일 수 있어요.)
과제 앞에 당당해지세요. 본인이 작업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엄격히 구분하고 떳떳이 밝히세요. 과제의 볼륨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작은 부분일지라도 얼마나 진지하게 임했으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핵심입니다. 포트폴리오를 평가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입니다. 포트폴리오에 담긴 거짓말은 경험이라는 레이더에 의해 결국 읽힙니다. 운 좋게 넘어갔다고요? 그게 더 문제입니다. 면접에서 들키거나 심지어 입사 이후 드러나면 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해요.
설명하는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거나 쉽게 읽히지 않으면 애써 만든 포트폴리오가 끝까지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디자인이지만 디자인 그 자체보다 말과 글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합니다. 자기 과제를 적확한 글로써 경제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실제 업무 처리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글을 쓰고 나면 몇 번이고 소리 내 다시 읽어보고 퇴고하여 간결한 정수만 남기세요. 프로젝트 전달이 훨씬 산뜻해질 겁니다.
지원자가 어떤 의도를 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온통 영어로만 본문 작성이 되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외국어 소통이 필요한 회사에 지원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작성하는 것은 마이너스입니다. ‘영어를 잘하는구나!’가 아니라 ‘한국어를 못하나?’가 됩니다. 영어 능력에 대한 어필은 충분히 다른 수단으로도 가능함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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