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아그라로 가는 길이었다.
인도 대륙은 광활했고, 여행 날짜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늘 짧은 느낌이었다. 함께 간 회사 언니와 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여행하기 위해 밤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때는 12월 말이었다. 인도는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다카(방글라데시의 수도)보다 낮의 햇살이 더 부드럽고 따사로웠다. 길거리 카페에 가만히 앉아 햇볕을 쬐고 있으면, 내가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습기라고는 일 퍼센트도 없는 모래의 도시에서 오롯이 여행자였던 우리는 면바지에 반팔 티를 입고, 행복해했다. 혹시라도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입을 플리스 재킷은 가방에 구겨 넣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일찌감치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물어 물어 아그라로 가는 표를 끊어 놓고 대합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 정류장에는 명절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정류장 밖에서는 길가의 돌을 주워 솥단지를 걸고 불을 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이불 보따리와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솥단지와 양푼 등을 바리바리 꾸린 사람들이 언제부턴지 모르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웃나라에서 온 우리는 등에 멘 단출 한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인도 사람들이 참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왜 이불 보따리가 필요하며, 저 솥단지들은 다 뭐란 말인가. 언니와 나는 대합실을 오가는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의 얼굴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지하 동굴로 들어온 것처럼 기온이 쑥 내려갔다.
설마, 이곳은 진짜 사막인가?
우리는 의아해하며 플리스 재킷을 꺼내 입었다. 금세 몸이 따뜻해졌다. 그들이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우리는 사람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이러쿵저러쿵 흉을 보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뭐 얼마나 춥길래 이불 보따리를 들고 여행을 하는지, 살다 살다 처음 본다며. 대충 끼니를 때우면 될 것을 어디까지 가길래 밥솥을 모두 들고 다니는지 하면서. 우리가 그들의 이불 보따리를 비웃자, 그들도 그들의 솥단지보다도 작은 우리의 배낭을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곳은 인도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불 보따리는 좀 과한 것 같다며 서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때, 낡은 버스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버스를 기다리던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어서,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우리는 출입문 옆의 맨 앞자리에 앉았다. 너저분한 이불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승객들이 하나 둘 버스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운전수에게도 낡은 이불이 있었고,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소년, 차장에게도 누런 이불이 있었다. 버스 안을 둘러보니 이불이 없는 승객은 나와 언니뿐이었다. 우리는 다시 얼굴을 마주 보고 크하하 웃었다.
인도는 참 재미있는 나라라며.
승객을 가득 실은 버스는 정류장을 빠져나가 델리 외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찬바람이 들어오길래 창문을 닫으려고 보니, 문이 한쪽밖에 없었다. 설마.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속도를 내자 옆에서 뒤에서 앞에서도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차장은 뒤돌아서 난감해하는 우리를 보며 씩 웃었다. 운전수 옆의 창문도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운전수는 어느새 낡은 이불을 누에처럼 몸에 친친 감고 머리와 손만 밖으로 내놓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언제 빨았는지 알 수도 없는 그 이불이 참 포근해 보였다. 운전 수 옆자리에 앉은 차장도 언제 이불을 꺼내 둘러 싸맸는지 머리까지 이불로 푹 뒤집어쓰고 있었다. 옆 좌석에 앉은, 일행인 듯한 남자 둘은 두꺼운 이불을 사이좋게 나눠 덮고 우리를 보며 큭큭 웃었다. 달과 별이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모두 이불을 꺼내 덮고 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와 언니는, 의도치 않게 다그닥 다그닥 이빨 부딪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그라까지 가려면 몇 시간을 더 가야 하는 데, 이렇게 가다간 우리 둘 다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손을 달달 떨면서 배낭을 열어 바지를 꺼내 있는 대로 껴 입었다. 그래도 추위를 면할 길이 없었다. 다시 손을 달달 떨면서 플리스 재킷 위에다 가방에 있는 반팔 티 셔츠를 모두 껴 입었다. 뚱뚱보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양말을 세 켤레나 껴 신고, 수건도 꺼내서 목에 둘렀다. 그래도 몸은 불 판 위에 올려진 마른오징어처럼 점점 더 오그라들고 있었다. 나와 언니는 팔짱을 끼고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인도의 매서운 밤 추위를 견디다 못한 나는, 곤히 자고 있는 차장의 이불이라도 뺏어서 덮고 싶었다. 고약한 냄새가 나거나 벼룩이 드글거려도 상관없었다. 이 추위만 견딜 수 있다면. 우리는 대책 없이 밤바람에 맞섰지만 차가 속도를 더할수록 추위는 가슴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이빨 부딪치는 소리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졌다.
12월의 인도는 밤이 되면 시베리아가 된다는 것을, 그날 밤 뼈저리게 깨달았다. 문짝이 다 떨어져 나간 밤 버스에서 덮을 이불이 없으면 시베리아 허허벌판에 서 있는 자작나무처럼 오롯이 견뎌야 한다는 것을. 정말이지 대책 없이 매섭고, 이렇게 혹독한 추위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버스가 아그라에 도착할 때까지 잠 한 숨 못 자고, 덜덜 떨면서 인도 여행자들의 ‘이불 보따리’를 비웃은 것에 대한 벌을 받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여행하면서 이불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한 번이라도 왜 그들이 이불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지 물어보거나 의아해했다면, 역에서 쌓아 놓고 팔던 휴대용 담요라도 샀을 것이다.
모든 것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특히 처음 여행하는 곳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간과하지 말고, 그들의 삶의 노하우에 귀를 기울여야겠다고 다짐한, 처절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