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일에 지쳐 있을 때 우연찮은 계기로 재즈를 듣게 되었다. 대학 시절 모던 재즈를 듣긴 했지만, 정통 재즈는 처음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뛰어갔다. 어서 빨리 재즈를 듣고 싶어서였다. 열 평 남짓 되는 오피스텔에 육중한 엠프와 재즈를 듣기에 좋은 보스 스피커를 들여놓았다. 오피스텔 사이즈에 맞춰 엠프와 스피커 사이즈도 골랐다.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루 종일 재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양, 겉옷도 벗지 않고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재즈를 들었다. 재즈는 판소리처럼 크게 들어야 제 맛이다. 작게 듣는 재즈는 내 영혼 깊숙이 파고 들어오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고막이 터질 듯, 조금 거친 사운드로 들어야, 그들이 갈망하던 자유를 나도 만끽할 수가 있었다.
엠프가 터지기 직전까지 볼륨을 올려놓고, 오피스텔 안을 가득 메운 재즈에 흠뻑 취해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입안에 들어간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았다. 재즈의 선율 안에서, 내 영혼은 차라리 천상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물론이고, 출근하기 직전까지 내 영혼을 재즈에 걸어두고 보송보송 말리고는 했다. 이토록 아름답고 황홀한 재즈를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나의 과거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재즈만 있으면 평생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것을 안고 있는 재즈는 충분히 내 삶의 동반자가 되어 나의 영혼을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것이다.
재즈는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영혼을 더욱더 깊이 끌어안았다. 재즈와 함께, 아니 재즈 연주가들처럼 나도 성숙해지고, 한없이 깊어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재즈는 내게 심어 주었다.
이제서라도 재즈를 알 게 된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주위 사람에게도 이 좋은 음악을 꼭 전파하리란 마음도 단단히 먹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재즈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시간들이었다.
밤이 무르익으면 나는 채도를 낮추고 스피커 볼륨을 좀 더 키웠다. 재즈는 사위를 누르는 어둠 속에서 더 깊은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잠을 자면서 듣는 재즈는 눈을 뜨고 듣는 것과 또 달랐다. 가수면 상태에서 재즈를 듣고 있으면 재즈 연주자들이 각양각색의 악기를 모두 들고 나와 내 주위에 진을 치고 연주를 하는 것 같았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에 나오는 연주자들처럼. 내 몸은 누워 있던 상태에서 공중부양을 하듯 붕 떠올랐고, 깨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았다. 그대로 영원히, 재즈를 들으며 잠을 자고 싶을 정도였다.
재즈는 내게 차라리 늪 같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한없이 깊게 빠져들어갔다. 재즈는 레드 와인과 잘 어울렸다. 와인에 살짝 취한 후 재즈를 들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음악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였다.
나는 특히 오스카 피터슨의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다. 듣고 있으면 저절로 흥이 났다. 빌 에반스나 에디 히긴스의 트리오 연주도 좋았다.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도 좋았다. 어느 연주 하나 버릴 게 없었다. 지루하지도 않았고 의뭉스럽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내게 와 닿는 그대로 재즈를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현관문에 쪽지가 붙여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옆집 남자입니다. 이번 주는 제가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하는 데, 음악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볼륨을 조금만 낮춰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출근을 하지 못하고 옆집 현관문을 응시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인가. 왜 이제야 시끄럽다고 하는 걸까. 나 혼자 재즈의 황홀경에 빠져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이미 몇 달째 이렇게 재즈를 듣고 있었는데……
재즈를 작게 들을 수도, 안들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잠을 설친다는 옆집 남자를 무시하고 들을 수도 없었다. 층간 소음으로 일어난 흉흉한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뉴스에 보도되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오늘부터 당장 퇴근 후 재즈를 맘 놓고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우울했다.
나는 퇴근길에 스타 벅스에 들러 비아 커피를 한 팩 사고, 레더라 수제 초콜릿 가게에 들러 다양한 초콜릿을 골라 예쁘게 포장해서 집으로 갔다.
심호흡을 하고 옆집 문을 두드렸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와 편지를 써서 커피와 초콜릿을 담은 봉투를 옆집 현관문 고리에 걸어두었다.
죄송합니다. 음악소리가 방해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요즘 재즈에 흠뻑 취해서 제가 너무 크게 들었나 봐요. 수면 시간을 알려주시면 그 시간은 음악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다음날 아침, 현관문에는 노란 메모지가 적혀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재즈를 좋아합니다. 듣고 싶으신 대로 들으세요. 제가 못 참겠으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옆집 남자가 괜찮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출퇴근 시간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옆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음을 졸이며 재즈를 들었다. 처음엔 볼륨을 작게 하고 들었지만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연주도 절정에 달했고, 볼륨 또한 커져있었다.
커피와 초콜릿 조공을 바친 후로, 옆집 남자는 더 이상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마음 놓고 재즈를 듣기 위해서 방음이 잘 되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재즈는 크게 들어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내리는 오늘, 구석진 사무실 자리에서 조용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그 날의 재즈를 다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