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플랜》과 이준석
*** 이 글에는 《데블스 플랜》 및 《더 지니어스》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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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에서 이어집니다. -
지금의 정치인이 아닌 한 명의 방송인으로서 이준석은 나름의 매력이 있는 캐릭터였다.
과학고-카이스트-하버드 타이틀을 소유한 머리 좋은 이공계 캐릭터는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최적화되어 있다. 《더 지니어스》에서 고학력 지식인으로서 보여준 전략가적인 면모와 승부수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특히 시리즈의 피날레인 《더 지니어스: 그랜드 파이널》에서 보여준 '1000원 전략'에 서바이벌 팬들은 환호했다. 게임의 판을 흔드는 활약은 해당 프로그램의 정신적 후속작인 《소사이어티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단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영리한 정치인으로서의 포지셔닝을 구축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대선 TV 토론에서 이준석은 마치 과거 자신이 출연해 빛을 발했던 《더 지니어스》에 나온 듯 행동했다. 그는 이성과 논리라는 이름의 칼을 날카롭게 벼려 온 듯했다. 토론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해야 하기에 날카로운 칼로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 찌르는 그의 언변은 분명 '사이다' 같은 면모가 존재한다. 구태 정치인들의 빈틈을 파고드는 모습에 2030 청년층의 높은 지지를 산 것으로 보인다. 세 차례의 토론 이후에 상승한 지지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준석 후보는 언더독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권영국 후보와 함께 이번 토론으로 실질적인 수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토론을 모두 시청한 내게 정치인 이준석은 《데블스 플랜: 데스룸》 속 규현과 윤소희, 정현규 캐릭터를 합쳐놓은 인물로 다가왔다.
우선 그는 대선 토론의 목표에 충실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대선 토론은 게임이 아니다. 두뇌 서바이벌이 아니기에 최종 우승자도 없고 토너먼트가 아니기에 상대방을 한 명씩 제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되 잘못한 지점은 비판하고 되물으며 자신의 공약을 모니터 너머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최종 목표일 터이다. (그렇기에 대선 토론 방식이 《100분 토론》처럼 자유 토의 방식으로 변경되기를 희망한다.) 좋은 토론을 위해서 후보들은 무엇보다도 너그럽고 성숙한 태도를 겸비해야 한다. 실제 본인의 성격이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 국가의 원수로서 보여줘야 할 이미지는 기본값으로 가져가야 할 터이다.
물론 2순위 밖 후보가 1순위 후보를 공격하여 중도층의 표를 빼앗아 오는 토론 전략은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다른 국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압도적 1위 후보는 수성(守城)하고 나머지 후보들은 공성(攻城)하는 것이 일반적인 그림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일수록 (잃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으니) 더 많은 공격을 가하는 것도 참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공성 전력에만 온 힘을 기울이는 성주의 성에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서는 데블스 플랜 속 정현규가 겹쳐 보인다. 그 세계관의 근간에는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 약속을 전제한다. 공정한 경쟁.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기만 한다면 그 이후는 자연스레 공정해질 것이고 결승 지점을 먼저 통과하는 사람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합당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이 명제에 논리적인 오류는 없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대체로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더 열심히 노력한 자가 마지막 순간에 메달을 목에 걸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도 분명 이와 닮은 구석이 많다. 무턱대고 청춘을 바치라는 '노오력'은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이왕 바칠 거 합리적으로 바치고 싶다는 청년의 갈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이면에는 모종의 흑백 논리 혹은 제로섬 게임의 사고방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남성 혹은 여성, 청년 혹은 노인, 다수자 혹은 소수자.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나머지 한쪽이 피해를 받으며 그것은 공정하지 않고 불합리한 것이다. 그러니 이준석이 주장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명제에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O와 X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명확한 데다 간편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만사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가 찬미하는 분명함과 효율성이라는 미덕은 빛을 바라기 십상이다. 남성의 억울함이 여성에게서 기인하는 것도, 청년 실업의 원인이 노년층에 있는 것도, 소수 의견이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은 늘 양 극단 사이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그렇기에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더 지니어스나 데블스 플랜으로 비유하자면 셀 수도 없는 히든 룰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임의 필승법은 존재할 수 없고 한 연합이 다른 연합을 배제하고 독식하는 전략은 존재해서도 안 된다.
또 이준석의 발언에서는 자신이 속하지 않은 외부 그룹에 대한 암묵적인 위계 의식마저도 두드러진다. 그의 토론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유튜브 클립이나 쇼츠로 자주 재생산되며다. 대체로 '사이다 발언'이라는 식의 문구가 붙은 영상 속 그는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한다. 상대방의 논리를 과잉 해석하여 코너로 몰아간다거나(*1) 마치 강자가 약자에게 배려를 선사하는 듯한 시혜적인 태도(*2)를 보여 왔다. 그는 "젠틀하게 논리에 맞춰 토론하고 조목조목 얘기하면서 매너까지 갖춰서 하"는 사람을 비판하며 스스로가 "'저 사람 매너 없다'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유권자들이 원하는 말을 하"는 정치인으로 비치길 원한다.(*3) 어째서 유능함과 매너까지 모두 갖출 수 있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둘 중 하나를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때에 따라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되는 수련회 교관도 있는데. (농담이다)
3차 토론에서 '비매너'가 주는 불쾌함은 정점을 찍었다. 문제가 된 발언의 내용 자체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혐오 이슈에 가장 민감할 것으로 보이는 제3자에게 답변을 유도하여 다른 후보를 공격하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폭력적이다. 길고양이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를 보고서 고양이 키우는 아이 집으로 달려가 동물을 괴롭히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묻는 방식이다. 따지더라도 잘못을 한 사람에게 직접 따지는 편이 아무리 생각해도 더 낫다. 둘 사이를 이간질하는 편협한 모습만 만천하에 드러났다. 타인을 공격하려다 자신의 약점만 보여준 꼴이니 이건 심지어 유능하지도 않은 전략이 되어버렸다.
결국 그의 가치관은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했을지 몰라도 완전한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은 발목을 잡을 뿐이다.
이준석 후보에게 인간적인 악감정은 없다. 젊은 보수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는 새롭게 느껴졌고, 마뜩잖은 점이 보이기는 했지만 2030 청년 남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했다. 전직 대통령에게 토사구팽 당하고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는 진심으로 안타까웠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젊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한 만큼 국민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의욕도 컸을 것이고 그만큼 상심도 컸을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일부 기성 정치인보다 진정성 하나만큼은 인정할 만하고, 정치계에서 그만이 꺼낼 수 있는 담론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 자리에 걸맞은 인물은 상대방과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까지 품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준석은 토론에서 열심히 싸웠을지 몰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고, 정치인으로서 지금까지의 행보를 돌이켜 봐도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품는 영역은 늘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논리와 효율도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세상은 그것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믿는 나로서는 아직 그를 호의적으로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이준석 개인을 넘어 지금의 이준석을 만들어 낸, 경쟁과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대해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사상가이자 무도가인 우치다 다쓰루는 "이기는 것은 주저앉는 것"이라고 말한다.(*4) 무도의 세계에서는 "이기는 것에 안주해 움직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며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이겨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모든 일을 무도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게임처럼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승패를 가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우리는 어느새 놓치고 있지는 않은 걸까.
올바른 룰 위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은 마음은 내 안에도 어느 정도 녹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장비를 빼앗아오기보다는 우리 모두 좋은 장비를 맞출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해야 할 것이고, 나아가 진흙탕에서 나와 함께 잘 살 수 있는 미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기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혹은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세상. 어쩌면 《데블스 플랜》의 기획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대선 토론의 방식, 혹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 사회의 근간이 어긋나 있지는 않은 것일까. 정치만큼은 영리함-지니어스-만으로 하는 것도, 악마짓-데블-만으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1) [100분토론LIVE] - (916회) 젠더갈등, 어디로 가나 (https://www.youtube.com/watch?v=QjIVHixc4Ig)
2) [이준석 vs 전장연 박경석 '장애인 이동권' 토론] 5월 12일 (목) 특집 썰전라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3jEKo-8cvWU)
3) [이준석 "토론 매너 없음도 전략…젠틀한 유승민 관심 식어, 홍준표 말 귀에 쏙"] - 뉴스1, 박태훈 기자, 2025.05.23. (https://www.news1.kr/politics/general-politics/5791905)
4) [‘무도 철학’ 우치다 다쓰루 “이기는 것은 주저앉는 것, 천하무적 될 수 없어”] - 한겨레, 구둘래 기자, 2025.06.01.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004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