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플랜》과 이준석
*** 이 글에는 《데블스 플랜》 및 《더 지니어스》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데블스 플랜》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상황을 압축하여 설명하자면 이렇다.
1. 시리즈의 2번째 작품 《데블스 플랜: 데스룸》은 14명의 참가자가 7일 동안 합숙하며 게임을 거듭하여 최후 1인의 승자를 가려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 게임 결과에 따라 매일 절반(하위권)의 참가자는 열악한 감옥으로 보내지고, 나머지 절반(상위권)은 안락한 생활동에 남는다.
3. 결승전을 비롯한 게임 진행 과정에서 우승자를 위해 다른 참가자들이 스스로 희생하거나 승리를 양보한 듯한 행보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서바이벌의 최종 도착지는 우승이다. 시상식처럼 노력의 몫을 공동으로 나눠 가지는 일도 없고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 기억되는 것은 결국 우승자의 이름이다. 제로섬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기존의 사회적 조건은 벗어던진 채 오로지 개인의 능력만으로 맞붙는다. 진흙탕 싸움에서 고결함 따위는 존재할 수 없기에 누군가의 손에는 반드시 피가 묻는다. 추악한 면모를 정당화하는 것은 이 모든 게 게임이라는 대전제이다. 이에 동의한 사람만이 출연하고 관객은 부담 없이 경기를 관람한다. 그렇기에 피로 물든 최후의 1인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출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참가자 본인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랑 적당히 재밌게 놀면서 친해진 뒤에 집에 가려고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러나 시리즈의 최신작 《데블스 플랜: 데스룸》은 이 약속을 배반한다. 커뮤니티 상에서 프로그램을 망친 원흉은 세 명으로 좁혀졌다. 다른 참가자의 탈락을 막기 위해 자진 탈락의 길을 선택한 규현, 결승전에서 우승 확률 100%를 확신했음에도 상대방에게 우승을 헌납한 윤소희, 이 둘의 도움으로 (비교적 손쉬운) 승리를 쟁취한 우승자 정현규. 사람들은 이들을 '혐트리오'라고까지 명명하며 그간의 발언과 행보를 조롱하고 있다. 저마다 욕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앞선 두 사람-규현, 윤소희-에 대한 평가는 하나로 귀결된다. 이들은 서바이벌의 가장 중요한 목표-우승-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예인, 인플루언서, 대학생 등 직업을 막론하고 게임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는 첫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우승 욕심을 드러낸다. 특히나 약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일반인 참가자에게서는 남다른 투지가 돋보인다. 대다수는 게임에 참가하는 동안 탈락의 위험과 타인으로부터 비난받을 여지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서라도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목표 의식을 분명히 드러낸다. 최현준의 우물 탈출과 감옥동 트리오의 서사도 서바이벌의 목표에 정확히 부합했기 때문에 보는 이들에게 쾌감과 재미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서바이벌, 그것도 두뇌 서바이벌 게임 시리즈의 팬들은 예로부터 '악마' 같은 플레이에 너그러운 편이다. 피카레스크 장르의 관람객처럼 더 멋있는 악마를 응원하는 구경꾼의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심지어 《더 지니어스》에서 괴팍할지라도 성과는 분명히 가져다주었던 장동민의 플레이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극찬을 받고 있다. 바로 직전 시즌 1 준우승자인 궤도의 '착한' 플레이를 비판하며 '엔젤스 플랜'이냐는 오명을 서슴없이 덧씌웠던 시청자들은 영리하고 영악한 악마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희생과 양보를 선택한 악마라니. 천사가 등장하지 못하도록 막았더니 갑자기 악마가 개과천선을 해버렸다.
규현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정현규를 탈락시킬 수 있는 순간에 감정이 개입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웠고, 20년 차 연예인이다 보니 우승 상금에도 크게 미련이 없었을 것이다. 일반인 참가자의 승리라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대인배처럼 자신을 희생한 그의 결단은 놀림거리가 되었다. 윤소희 역시 일주일 내내 정현규와 함께 게임을 하며 마음속에 애틋한 감정이 싹텄을 수도 있다. 여기서 그녀를 비호해 보자면, 결승전 마지막 선택은 사랑 때문에 우승을 양보한 게 아니라 나름의 확률 베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녀는 무한 반복 플레이에 대한 제작진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을 것이다. 긴장감에 배도 아파 컨디션도 나빴을 것이고. 하지만 우승 욕심이 없는 듯 일관적으로 보인 소극적인 태도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았고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난 시청자들의 먹잇감이 되어 버렸다.
규현과 윤소희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자면,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공간에서 합숙 생활을 하는 만큼 짧은 시간에 참가자들 간에 유대감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특히 안락한 생활동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지내왔기에 동료를 넘어 일종의 가족애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어디까지나 모니터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픽션으로 유희하고 있기에 화가 났다. 해리포터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서 갑자기 볼드모트가 더 이상 나쁜 짓은 못 해먹겠다며 무릎을 꿇고 뉘우쳤다면 두고두고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규현과 윤소희는 적어도 픽션 속 등장인물로서는 최악의 기행을 보임으로써 작품 전체의 질을 훼손하고 말았다.
우승자에 대한 축하와 프로그램에 대한 찬사는 온데간데없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팬들로 커뮤니티 여론은 폭발했다. 우승자는 지금까지도 입을 다문 채 웃지 못하고 있고 PD는 해명하기 바쁘다. 나 역시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덴마》나 《왕좌의 게임》 팬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고작 예능 프로그램에 이렇게까지 성낼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정지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홀린 듯이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몰입했던 새벽을 생각하면 아쉬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여태까지 본 게 데블스 플랜이 아니라 환승연애였다니.
하지만 내가 정작 가장 큰 거부감을 느낀 대상은 규현도 윤소희도 아닌, 우승자 정현규다. 그는 가상 세계의 '악마'라기보다는 현실 세계의 '가해자'로서 다가온다.
《데블스 플랜》에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폭력과 절도를 제외한다면 아무리 악마 같은 짓이라도 허용한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사람들을 선동해서 이간질을 하든 게임 도중에 배신을 하든 우승이라는 목적에 다가가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우승자는 결국 한 명으로 정해져 있고, 그 목적지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므로 처음부터 이 점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분명히 못 박아두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서바이벌 게임에 있어 실리를 추구하는 캐릭터는 필수적이다. 인간적인 정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몰라도 우승은 불가능하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의 정수리를 밟고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현규는 어찌 보면 프로그램의 목표에 충실한 인물이라고 평할 수 있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시하고(생활동 히든 보상),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생활동 사람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여기는(9인 연합 거부)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T 100% 인간'이라 자처하는 그는 결국 규현과 윤소희의 정수리를 밟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작품 속 정현규가 받는 비판은 그의 능력이 아닌 태도에서 기인한다. 다른 사람을 깔보거나("너 산수 못해?") '내로남불' 태도를 보이는("나는 감옥 가기 싫어.") 모습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조리돌림 수준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윤소희와 함께 다른 참가자-최현준-를 묘하게 따돌리는 듯한 행보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가장 크게 공분을 사고 있다.
사람들은 사실 약자를 향한 악마짓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데블스 플랜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픽션 속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혹은 동등한 위치의 강자 간에 허용될 뿐이다. 강자가 약자를 위압하는 모습은 불쾌함만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정현규가 보여준 모습은 자신이 속한 생활동과 감옥동의 위계를 더욱 명확히 구분 지으며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강약약강'의 정수였다.
그는 감옥동과 생활동이라는 위계질서 안에서 한 번도 제대로 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었기에 감옥동 사람들의 끈끈함과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게임의 룰대로만 하면 되는데, 악마가 되어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그는 늘 《오징어 게임》의 VIP처럼 생활동 소파에 앉아 모니터 너머로 감옥 데스매치를 관람하기에 한 번도 생존의 위협을 느껴 본 적이 없다. 감옥의 딱딱한 빵 맛도 눅눅한 죽 맛도 모른다.
하지만 생사를 가르는 화살이 자신을 향하는 일은 참을 수 없다. 자신은 늘 이겨야 하고 조금의 불편함도 느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계급 의식이 숨어 있는 듯하다. 안락한 생활을 즐기던 그가 잠깐 방문한 감옥에 치를 떠는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기생충》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불쾌감을 주었다. 더군다나 감옥동에서 생활동으로 올라온, 마치 노력을 통해 사회적 성공을 이룬 하층민을 상징하는 듯한 최현준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인간미라고는 없는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너 이제부터 3등이야.") 잔인하리만치 냉정하지만 영리한 악마로 멋있게 우승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현실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이미지뿐이다.
게임은 게임일 뿐, 나가서 잘하면 되지, 같은 말은 약자가 강자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이자 약자 자신의 긍지를 높이는 발화이다. 하지만 똑같은 말을 강자가 약자에게 전한다면 발화의 성격이 바뀐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낮은 위치에 놓인 자를 너무나도 쉽게 제어할 수 있는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정현규의 말은 차별 내지 멸시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그는 게임의 막이 내려갈 때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 듯 보인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할 목적으로 '7수 서울대생'이라는 사실을 놀림거리로 삼고 있다.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할뿐더러 아직도 고3 수험생의 세계관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입시 전쟁에 시달리던 그에게 경쟁 사회의 축소판인 《데블스 플랜》은 꼭 맞는 판이었으리라. 남들보다 우위에 설 수만 있다면 상대방의 머리를 밟고 가도 되는 것이고, 일단 우위에 서기만 한다면 한없이 남을 깎아내려도 된다는, 우물에서 갓 탈출한 개구리가 할 법한 착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개구리에게 잘못이 있다 한들 우물을 만든 사람의 잘못보다 더 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데블스 플랜은 기획 단계에서 초석부터 잘못 놓인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인성과 인생을 평가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녀)의 인성과 인생이 결정적인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악마 같은 행동을 예찬하지만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행보에 대중은 치를 떨었다.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에서 이두희의 가넷을 훔쳐 사실상 하루 종일 게임에서 제외한 것도 모자라, 다 괜찮으니 데스매치에서 자신을 살려주기만 해 달라는 그의 마지막 부탁마저 저버린 은지원은 그 누구도 멋있는 악마라고 칭찬하지 않는다. 정종연 PD는 애초부터 달성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멋있는 악마'라는 그럴듯한 환상을 제시하고는 구조적 결함이 있는 우물에서 어떻게든 기어오르라고 외쳤던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다소 생뚱맞게도 이준석의 대선 토론을 이야기하려 한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