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년생의 01에 대하여

중고 신입의 출판 편집자 도전기

by 찰란

종이비행기는 멀리 날아갔다. 가늘고 긴 동체는 바닥에 추락했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승을 자축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일을 하려고 모인 건데 놀고 있다는 게.


영과 일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일이란 뭘까 일을 하고 싶은 걸까 고민하며 지나온 시간들. 동시에 영처럼 도넛처럼 가운데가 뚫린 채 자라난 나무들.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고 노는 일이 더 즐거운데.


퇴사하면 다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여행을 떠나거나 그동안 밀린 잠을 몰아 자기 바쁘다던데, 대신 나는 한동안 출판이라는 세계를 공부하는 데 매진했다. 매일같이 도서관에 출석 도장을 찍었고 업무로 인한 피로를 핑계로 미뤄 둔 책을 몰아 읽기 바빴다.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직군으로 떠나는 여정이니만큼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만들고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렇다고 부지런히 일찍 일어났다는 얘기는 아니다.)


편집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운 좋게도 마음 맞는 지망생들과 스터디를 구할 수 있었고 여러 명이 모이면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세간의 법칙도 피해 갔다. (혹시 난가?) 친구와 비즈니스 관계 사이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각자의 모래성을 쌓아나갔다.


첫 모임에서 나이를 밝혔을 때는 조금 놀랐다. 직장 생활을 다년간 했기에 취업 시장에서 나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다른 지망생들의 나이, 특히 출생연도를 들으니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실감했다. 2000년대에도 사람이 태어나는구나. 학창 시절 선생님이 했던 말을 이제 내가 숫자만 바꿔 읊고 있었다.


스터디에서 만난 01년생들은 정직했다. 하고 싶은 영과 해야 하는 일이 동일했다. 그들에게 0과 1은 동의어였다. 막막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징검다리를 건너는 이의 불안함이었다. 거기에 다른 일을 고민할 여지는 없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동그란 점을 기다란 선으로 잇다 보면 어느덧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과 함께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에는 신경 쓸 일이랄 게 별로 없었다. 한글 맞춤법과의 지독한 사투가 이어지기는 했다. 이를테면 셋방은 '셋'방이지만 전세방은 전'세'방이라는 사실, '아는 체'와 '알은체'가 다르다는 사실 같은, 지독하게도 사소한 지식들을 머리에 욱여넣는(우겨넣는 X) 일은 골머리를 앓게 했다. 이유를 물어봐도 '관습이 그러하다'라는 만능 치트키 같은 해설도 성질을 돋우는(돋구는 X) 데 한몫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간편했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한눈팔지 않고 점을 잇는 게 전부였다.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는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면죄부 같은 드로잉북을 매일 붙잡고 있었다. 게으른 자의 성실한 노력이란 대개 이런 양상이었다. 문제는 노력의 지향점을 나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고민을 거듭했지만 끝내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쥐어짜내야만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을 욕망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터이다. 로봇을 좋아하는 어린이에게 갖고 싶은 곰인형을 물어보는 꼴이다. 곰으로 만든 인형도 있어요? 게으른 자의 성실한 욕망이란 대체로 이러하다. 스스로의 욕망을, 텅 빈 영을 다른 곳에서 찾아 흉내를 내봤자 오래 가지 못한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허점을 어떻게 꿰뚫어 봤는지 출판 학교는 탈락의 고배를 선물했다.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서류 전형의 문턱도 넘지 못할 것이라고는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죽더라도 면접까지 가서 장렬하게 전사하리라는 나의 계획은 대문을 나서자마자 제발에 걸려 고꾸라지며 끝이 나 버렸다. 이제 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차라리 일찍 고민할 시간을 벌어 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불합격 소식을 확인했을 당시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건 뭐 '졌잘싸' 도 아니고 '졌안싸'가 아닌가.


돌이켜 생각하면 어느 시점부터는 무엇을 위해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른 채 점을 잇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은 마음보다 출판 학교의 학생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쾌감이 그리웠다. 학교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주는 자료를 성실히 공부하면 6개월 뒤에는 어찌저찌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도 사실이다. 그중 최악은,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달콤한 가능성에 젖어 있었다는 내 모습을 직시하는 일이었다. 꿀 향기를 따라다니다 벌레잡이통풀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꿀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출판 학교를 준비하고 지원한 사실에 후회는 조금도 없다. 오래전부터 마음먹었기에 3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둘 때도 아쉽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천천히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오히려 복에 겨운 시간이었다. 다만 이제 다시 앞길을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하게 다가왔다. 번복하기에는 민망했고 밀어붙이기에는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4일간 진행하는 CAP@(캐파)라는 국민 취업지원 제도 프로그램을 신청한 이후였다.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길을 고르다니 역시 나답다고 생각했다. 좋은 뜻은 아니다.


구직자를 위한 프로그램답게 유독 01년생이 많았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는 스물과 서른의 한중간이니만큼 고민도 걱정도 많을 터이다. 태연한 척 앉아 있었지만 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내 모습이 괜히 멋쩍었다. 대학교 취업지원센터도 한 번 간 적 없던 내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그것도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겠다고 온 처지가 개운치는 않았다. 어영부영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이제 그만 보여줄 때가 되었는데.


딱딱하게 굳어 있던 분위기는 강사의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으로 다행히 금세 풀렸다. 앉은 채로 동영상 강의 두어 편을 시청하면 끝나겠지 생각하며 흐린 눈으로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일을 고민하는 사람이 모인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아무런 걱정이 없는 듯했다.


본업만큼이나 먹는 일에 진심인 강사의 선구안 덕분에 나흘 내내 점심 식사는 실패한 적이 없었다. 양질의 음식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더욱 가까워지게 해 주는 법이다. 우리는 밥과 빵과 면과 떡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먹지 못하는 음식을 명함처럼 교환하고 돈까스와 돈카츠의 미묘한 차이를 심도 있게 토론했다. 대화 내용만 두고 보면 구직 캠프가 아니라 대학교 엠티에 온 것 같았다. 근데 이제 복학생 선배를 곁들인.


S와 H는 나흘 중 사흘을 같은 조로 지내며 가까워졌다. S는 책과, H는 숫자와 가까운 01년생이었다. 마치 나의 양면성을 정확히 반으로 쪼개놓은 듯했다. (이 표현이 그들에게 실례가 아니기를.) 종이비행기 멀리 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날 아침, 상품으로 탄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어색함도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 비즈니스는 없기 때문이었는지 적당한 친밀감을 유지한 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영과 일 사이를 고민했다. 스터디원들과 달리 그들에게 0은 0이고 1은 1이었다. S와 H가 바라보는 일의 세계는 이를테면 혼탁한 강물. 몸을 한번 담그면 비누로 몸을 씻은들 냄새가 영에까지 배어 이전의 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는 않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정작 나조차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종이의 재질과 목차의 구성 같은 형식만 떠오를 뿐 정작 책에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할지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렇게까지 영이 경직된 데는 이전까지 몸을 담그던 일이 준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흘 중 하루는 B와 함께 조를 이루었다. 그도 역시나 01년생이었지만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는 '안빈낙도'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 가정을 꾸려 정착하는 삶의 최종적인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힘주어 강조했다. 대학에서는 글을 전공했지만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은 그것과 정반대에 있는 종류의 직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자연 속에서 지내보고 싶은 마음 역시 가득해 보였다. 그는 세상을 0과 1로 구분 지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의 면접에 임하는 B의 태도는 비장했다. 한 번도 면접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말은 분명했고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듯 눈빛은 또렷했다. 방금 전까지 호주의 블루베리 농장을 얘기하던 자아는 어디로 가 버리고 평생 이 일만을 위해 영을 단련해 온 사람이 앉아 있었다. 면접을 마친 B는 긴장이 풀렸는지 수줍게 웃었지만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여유를 보았다.


0과 1 말고는 존재하지 않다고 배웠지만 세상은 둘로만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만에 마주했다. 이를테면 0과 가깝지만 0이 아닌 일도, 1과 가깝지만 1이 아닌 영도 있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한들 실천에 옮기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선을 죽 그어도 괜찮을 텐데. 경로를 이탈한 선이 돌고 돌아 다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더라도 넓은 면을 그릴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닌가.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일차원을 이차원으로 넓히는 것은 제3의 선택이다.


공원에는 봄을 맞아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강아지들이, 떨어지는 꽃잎을 맞으며 웃고 있었다. 벌써 캠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커피를 한 손에 든 채 걸으며 B는 다시 스물다섯의 나이로 돌아가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일본에서 지내던 나날이 떠올랐다. 스물다섯의 나는 일이라고는 고민하지 않고 그저 내키는 대로 살았다. 거울도 체중계도 없이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고구마와 사과를 주식으로 삼다 가끔 해 먹는 요리가 만족스러웠고, 한국에서 놀러 오는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눈앞의 점을 잇는 데만 집중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당시의 나는 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해석일 뿐이고, 당시에는 영이고 일이고 구분하지 않았다. 좋으면 좋아서 했고 싫으면 싫어서 안 했다. 그게 전부였다. 당시에는 그저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하루하루가 사실 하나하나가 거대한 섬이었다. 지나온 섬마다 꽃이 피어 있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나는 B에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영이 이끄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했다. 일에 집중해서 살아도 좋다고 했다. 꼰대의 뻔한 충고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흘간 지켜본 B는 결국 자기가 걷고 싶은 길을 걸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은 채 커피만 쪽 빨아 마셨던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무얼 할 것이냐 하면,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조급해하지는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본래 계획했던 출판 학교에는 낙방했지만 다른 출판 학교를 다녀보기로 마음먹었고, 수료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이왕 잘못 그은 선이라면 끝까지 그어야 그럴싸해 보이기라도 하는 법이니 말이다. 때로는 영의 목소리에 집중해 보고 때로는 다가오는 일에 열중해 보고, 하면서.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무언가가 피어나지 않을까.


B는 아마 호주로 떠날 것이다. 안빈낙도를 좇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여름 속에 파묻혀 안정적인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조급함에 못 이겨 블루베리와 딸기를 동시에 따거나 급히 귀국 편 비행기를 알아볼지도 모른다. 텅 빈 영을 좇고 일에 파묻혀 살다가 문득 스물다섯의 자신과 마주할 것이다. 0이고 1이고 모른 채 즐겁게 섬을 여행하던 01년생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