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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Jun 29. 2019

화장실 바닥에서 마신 커피

글로 남기고 싶은 지난 이야기


때론 어떤 일을 겪으며, 이 일을 알기 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싶은 때가 있습니다. 제게 그중 하나는 학교 화장실 바닥에서 마신 커피입니다. 사회과학관 4층 화장실은 아주 예외적으로 꽃장식이 이뤄진 공간이었습니다. 칸칸마다 문고리에 조화가 꾸며져 있어 아기자기한 맛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시설의 낡음과 상관없이 곳곳이 정갈하였습니다.



어느 날, 청소 아주머니 두 분이 바로 그 화장실 바닥에 앉아 믹스커피를 타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두 분에겐 아주 익숙한 일과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안방에 노크 없이 불쑥 들어서게 된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커피, 화장실, 바닥 그 낯선 조합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기도 했고요. 서둘러 나가려 하다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해 손을 한참 씻으며 그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생각에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왜 하필 이곳인가?



누군가에게 화장실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터겠지요. 일에 마음을 쏟는 만큼 그곳이 통념보다 소중한 나의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문고리마다, 세면대마다 꽃을 놓을 수도 있고, 서슴없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바닥을 정돈해놓을 수도 있을겁니다. 처음엔 노동의 숭고함 정도로 사후 관계를 단순히 연결했습니다. 참 아름다운 감동 스토리라고 생각하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어쩌면 커피 한 잔 마실 공간이 아예 없는 건가? 선택지가 바닥뿐이었던 건 아닐까? 당시 학생기자였던 저는 그분들께 다가가 이렇게 저렇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함께요. 그리곤 휴게공간의 부재가 사실이란 걸 알았죠. 미화된 해석이 걷힌 자리에 마땅함의 부재를 보았습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낯이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셨던 날로부터 아주머니들께 실질적인 변화가 도래하기까지는 퍽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제 글은 큰 힘이 되지 못했지만 훗날 대학 사회 전반에 청소 노동자 휴게공간 이슈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의 저처럼 차마 그 낯선 풍경을 쉽게 스쳐지나지 못한 사람들이 저보다 더 용기있게 목소리를 낸 결과일 겁니다.



저 개인으로 본다면 그 커피를 다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그 순간부터 아마 조금은 달라졌던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아, 이제 나는 화장실 바닥에 휴지 하나 삐딱하게 버릴 수 없는 사람으로 살겠구나 하고요. 시절이 아무리 흘러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남아 있는 제 기억 중 하나입니다.




지금 듣는 음악 브로콜리너마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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