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모든 관계는 일종의 교환이라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사랑도 하나의 관계라면, 사랑 안에서도 모종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여의 교환’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결여를 갖고 있다. 부끄러워서 대개는 감춘다. 타인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그의 결여를 발견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의 결여가 못나 보여서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여 때문에 그를 달리 보게 되는 일. 그 발견과 더불어, 나의 결여가, 사라졌으면 싶은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결여와 나누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그것이 그들을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만들었으니, 두 사람은 이번 생을 그 구조 안에서 견뎌나갈 수 있으리라.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
소개팅을 결심하면 몇 초 되지 않아 그가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이 압축돼 전달된다. 외고나 과고를 나왔다면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00 고등학교, 00대 00 학과, 회사 000, 거주지 00구 00동, 부모 /형제 특이점 +미리 알아야 할 이슈사항 + 사진. 그에게 내 것 역시 동일한 형태로 전달될 것이다. 이러한 교환 행위를 거쳐 최종 의사결정을 진행한다.
안다. 깔 거 다 까고 만나는 것이 되려 빠르고 효율적이다. 에둘러 가늠하지 않아도 되기에 덜 피곤하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가 살아온 시간이 가늠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범주 속에 들어오면 안전한 느낌을 준다. 그에게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행동반경 50m 안의 인물들이 연인이 되었던 나는 소개팅으로 연인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인지… 여전히 이 교환의 순간이 어색하다. 심하게 멋쩍다. 내 사진을 보내야 할 때 기분이 최절정으로 싫다. 갑자기 비구니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커피 쿠폰 찍듯이 12번 끝에 1번 정도, 또 만나고 싶은 상대가 나타난다고 했다. 커피 쿠폰을 100번 찍고 결혼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이제 4번째 도장을 찍는다. 22살에 했던 두 번의 소개팅을 꼭 제외해야 한다면, 이제 10번 남았다. 아직 안 만났으니까 11번 남았다. 아 이런… 애석하다.
궁극에 나의 사랑은 결여의 교환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며 획득해온 멋진 상징과 기호들 넘어 슬쩍 덮어둔, 비어있는 곳을 발견하고 싶다. 애써 감추고 싶어 하는 걸 짓궂게 들춰내지 않을 것이며 설령 알게 되더라도 모르는 척 다시 덮어두기도 할 거다. 그래도 사랑은 필연적으로 빈 곳을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부디 그 결여의 발견으로 서로를 더 깊이 알고, 지난하게 부딪히고, 결국 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고 바란다.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속 이 구절을 만난 후,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이젠 외울 수도 있다. 내가 믿는, 내가 품고 있는 사랑의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