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Jul 24. 2019

61. 티티카카-아만타니 섬의
희한한 짝짓기

페루-티티카카 호수 아만타니 섬

아만타니 섬의  희한한 짝짓기


우로스 섬을 출발한 지 3시간 30분. 통통배는 아만타니(Amantani) 섬에 도착했다. 아만타니 섬은 티티카카 호에서 가장 큰 섬이다. 통통배에서 내려 선착장에 오르니 호수를 등지고 섬 여인들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어떤 여인들이 저렇게 나란히 앉아 있을까? 맨손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면 장사를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여인들일까?  


여인들은 머리에 히잡과 비슷하게 생긴 까만 두건을 두르고, 흰색 저고리에 붉은 통치마나 푸른색의 주름 통치마를 입고 있었다. 검은 천으로 목을 감지 않는 것이 이슬람 히잡과 달랐다. 여인들의 머리 너머로 티티카카 호수의 수평선이 시간이 정지된 듯 펼쳐져 있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다! 삐끼들이 설치는 페루의 리마와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다. 


선착장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만타니 섬 여인들


이윽고 선장이 여행자들과 앉아 있는 여인들을 호명하면서 여인들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선장은 여행자들과 아만타니 섬 여인들과 이상한 짝짓기를 시작했다. 선장은 여인들 한 명에 여행객을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주었다. 선장이 아만타니 섬 여인들의 이름을 먼저 호명하고, 이어서 여행객들의 이름을 부르면 여인들은 말없이 일어나 승객의 짐을 받아 들고 언덕 위에 있는 집으로 인도했다. 지구 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외딴섬에서 이루어지는 희한한 짝짓기였다. 아만타니 섬은 해발 4,000m가 넘는 이르는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마마니, 미스터 초이 커플!"


선장이 ‘마마니’라는 이름을 먼저 부르고 이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마마니라는 여인이 조용히 일어나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작달막한 키에 갈색의 두건을 머리에 쓰고 예쁜 꽃무늬가 그려진 흰색 저고리에 푸른색의 주름 통치마를 입고 있었다. 흰 이를 드러내고 살짝 웃으면서 그녀는 우리들의 배낭을 두 개나 받아 들고 성큼성큼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우리는 맨몸으로 그녀를 뒤따라가는데 숨이 차서 기절을 할 것만 같았다. 몇몇 여인들은 여행자들이 부족하여 짝짓기를 하지 못하고 그냥 일어섰는데, 선장의 말로는 그녀들은 다음 기회에 우선순위가 주어 진다고 했다. 나름대로 질서가 있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도 자연도 그 어떤 나라보다 오염이 되지 않고 차분하고 질서 정연한 모습이었다. 


아만타니 여인들과 하나 둘 짝을 지어 민박집 숙소로 가는 여행자들


언덕 중턱에 있는 흙 벽돌담 사이에 세워진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니 ‘ㄱ’ 자형의 흙집 안마당이 나왔다. 마마니는 우리를 2층으로 안내했다. 천장이 낮은 2층에는 출입문이 하나 있고, 방안에는 두 개의 작은 침대와 손바닥 크기  만 한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키가 천장을 닿을 정도로 낮았다. 어두운 방에는 바다를 향해 작은 들창문이 하나가 나 있었다. 들창문을 통해 창밖을 바라보니 파란 호수가 눈이 시리도록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었다.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우리가 묵을 민박집 마마니의 집. 골목에 화장실이 보인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마마니는 우리를 다시 1층으로 데리고 내려와 화장실로 안내했다. 사립문을 열고 나와 오른쪽 고샅길로 한 참을 돌아가니 갈대 지붕으로 이은 화장실이 나왔다. 마마니는 여기에서 볼일을 보라고 눈짓을 하고 물러났다. 


"여보, 여기도 갈대 화장실이네요!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하긴, 하는 수 없질 않소?"


아내가 마지못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아 꿀꿀거리는 돼지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아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내가 화장실로 들어가 보니 널빤지 두 개를 얹어놓은 공간 밑에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살고 있었다. 아만타니 섬의 화장실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제주도의 ‘통시(뒷간)’를 연상케 했다. 


마마니 집 들창문을 통해 바라본 티티카카 호수


제주도의 통시는 돌담을 쌓아 만드는데 대소변을 누는 곳, 돼지가 사는 공간, 돼지가 밥을 먹고 거름을 만드는 곳 등 3개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통시에서 함께 자라는 돼지는 인분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똥돼지'란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리를 들었는지 마마니가 웃으며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그 물로 손을 씻고 화장실에 버리라고 했다. 물이 귀하니 이렇게 물을 아껴 쓰고 있는 것이다. 


아만타니 섬에는 물이 부족했다. 그렇게 많은 물이 티티카카 호수에 넘실거리고 있지만 전력이 없기 때문에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섬 주민들은 물을 호수에서 길러 와야 한다. 그래서 세숫물로 발을 씻고 다시 그물로 화장실 세척을 해야 한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돼지우리와 부엌도 우리네 옛 시골 풍경과 비슷했다.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케추아족 원주민들은 틀림없이 우리네 핏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의 엉덩이에는 우리들과 똑같은 시퍼런 ‘몽고반점’이 도장을 찍은 듯 선명하게 나 있다고 한다. 


전기도, 전화도, 텔레비전도 없는 섬은 현대문명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아만타니 섬은 너무 적막하고 고요했다. 마마니는 점심으로 꿩알만 한 검은색 감자와 찐 계란, 그리고 노란 색깔이 감도는 수프를 작은 접시 위에 담아 들고 2층 방으로 올라왔다. 


“에그그, 이게 점심인가 봐요!”

“하하, 차림 한 번 간단해서 좋군요.”


점심으로 가져온 검은 통감자와 무냐 차


쑥처럼 생긴 푸른 잎을 띄어 놓은 따뜻한 차도 나왔는데 짙은 향기가 풍 겨 나왔다. 마마니에게 무슨 차냐고 물어보았더니 “무냐 티”라고 짧게 대답했다. 무냐 차는 코카 차와 함께 고산병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만타니 섬에는 무냐라는 식물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무냐 잎을 손으로 비벼서 냄새를 맡아도 고산증세를 완화해준다고 한다. 감자에 무냐 차를 한잔 하고 나니 숨을 쉬는 데 한결 안전감이 생겼다. 


이들의 주식은 섬의 산비탈에 심은 감자와 옥수수, 호수에서 잡아온 물고기가 전부다. 양을 키워 털을 뽑아 옷을 해 입고 닭을 키워 달걀과 닭고기를 먹는다. 아만타니 섬은 1년에 한 번 선출되는 촌장을 중심으로 독립 자치국을 형성하고, ‘도둑질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게으르지 말 것’이라는 잉카의 세 가지 덕목을 도덕규범으로 삼아 잉카의 전통 문명을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섬의 주요 수입원은 양털로 직물을 짜는 것과 가끔가다 들리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박을 치거나 기념품을 파는 것이 전부다. 섬 주민들은 공동생산, 공동분배 원칙을 바탕으로 의식주를 100% 자급자족하고 있다. 



아만타니 섬 정상에서 바라본 황홀한 일몰


감자로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마마니의 딸 린다를 따라 마을 뒤편에 있는 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린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장을 서서 걸어가는데 우린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바람처럼 걸어가는 린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기어가는 아내와 나. 린다는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하면서 느린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그러면서 린다는 우리들에게 지그재그로 천천히 걸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만타니 섬 정상 신전으로 가는 길(해발 4000m가 넘는 곳이다)


몇 번을 쉬고 또 쉬며 힘겹게 언덕을 올라갔다. 두 소년들이 지친 우리를 격려하듯 샴뽀냐를 연주하고 북을 치며 뒤를 따랐다. 소년들은 ‘엘 콘도 파사’를 길게, 느리게 번갈아 연주했다. 소년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2 솔을 건네주었더니  “그라시아”를 연발하여 환하게 웃었다. 길가에는 원주민 여인이 물과 기념품을 팔며 뜨개질을 하고 앉아있었다. 


"아구아."


스페인어로 ‘아구아’ 물이다. 내가 아는 스페인어는 ‘아구아’, ‘꽌또 께스따?(얼마지요?)’, ‘올라(안녕)’뭐 이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바디랭귀지나 눈치로 통한다. 내가 “아구아”하고 손을 내밀었더니 뜨개질을 하던 여인이 씩 웃으면서 물 한 병을 건네주었다. 물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소년들이 부는 마법의 피리 소리에 힘입어 겨우 산 정상에 가까이에 다가갔다. 돌로 만든 아치가 수수께끼의 문처럼 서 있다. 아치 사이로 석양빛이 황홀하게 호수를 물들이고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바다 같은 호수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바다처럼 수평선만 보였다. 황홀했다!


삼뽀냐를 연주하는 소년과 뜨개질을 하며 물을 파는 여인


아만타니 섬 정상에는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돌로 쌓아 올린 신전이 허물어진 채로 놓여 있었다. 정상에는 두 개의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은 프레 잉카시대부터 있었던 유적지라고 한다. 신전에는 대지의 신인 파차마마(Pachamama-Mather Earth-땅의 어머니)와 신성한 빛을 상징하는 파차타타(Pachatata-Father Earht), 그리고 신성한 물의 신 마마코차(Mamacocha) 등을 모시고 있었다. 아만타니 섬은 이 신전에서 매년 1월 20일 의식을 거행하고, 6월 21일에는 태양의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신전이 매우 신성하게 보였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섬기고 별 탈 없이 살아오고 있었는데,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배척한다는 구실을 삼아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야 말았다. 


파차타타 신전으로 가는 길

     

우리는 파차타타 신전으로 올라갔는데 이곳에서 티티카카 호수에 지는 일몰을 조망하기에는 최고의 위치였다. 어디선가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더니 붉은 천으로 휘장을 두른 듯  분홍색 노을을 구름 위에 곱게 드리웠다. 남미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아름다운 일몰이다! 우리는 신전 앞 아치 계단에 앉아 넋을 잃고 오래도록 티티카카 호수에 지는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았다.   


“여보, 우리들의 황혼도 저 티티카카에 지는 노을처럼 아름답게 보내야겠지요.”

“하하, 지금 그렇게 보내고 있지 않소?”


파차타타 신전 앞에서 바라본 황홀한 일몰
파차타타에서 바라본 일몰


나는 아내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손끝을 통하여 아내의 따뜻한 체온이  나에게 전달되어 왔다. 인생은 끝이 좋아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티티카카 호수의 아만타니 섬까지 온 우리는 행복했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가 죽기 전에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는 소원이 반쯤은 이루어진 셈이다. 정말 지금 같아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사방이 점점 어두워지자 아래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옛날 우리네 시골처럼 집집마다 화덕에 가마솥을 걸고 저녁을 짓고 있는 것이다. 부엌에 있는 화덕도, 가마솥도 꼭 우리네 것을 닮았다. 마마니의 집으로 내려오자 그녀는 성냥불을 그어 들창문 턱에 촛불 하나를 밝혔다. 작은 촛불 하나를 밝히자 방 안이 환해졌다. 전기가 없는 어두운 곳에서 촛불을 밝히니 촛불 하나가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이는 것 같았다. 아니 온 우주를 밝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기가 없으니 촛불 하나만 밝혀도 엄청 밝게 느껴졌다. 문득 어린 시절 등잔불을 밝혀 들고 책을 읽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나는 등잔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등잔불을 켜다가 촛불을 켜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 촛불이 빨리 타지 않도록 촛대에 물을 묻혀 비벼서 촛불이 오래도록 타게 했다. 촛불 하나가 그렇게 소중했던 것이다. 귀할수록 소중하고 소중할수록 행복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그윽하게 비추이는 촛불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저절로 한 곳으로 모아졌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참지 못하게끔 훨훨 타오르는 촛불! 촛불은 밤을 밝히며 사랑을 밝히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마마니가 노란 수프와 삶은 감자,  그리고 무냐 찻종 지를 들고 와 나무 식탁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무냐 차에서 허브향이 짙게 흘러나왔다. 우리가 늘 먹었던 것보다는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간소하고 멋진 저녁 만찬이었다.


저녁식사


검은 감자 껍질을 벗겨서 한 입 넣는데 문득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그림이 떠올랐다. 투박한 질그릇, 검디검은 감자, 그리고 무냐 차 한 잔과 수프 한 잔이 전부였지만 부족한 만큼 음식이 소중하고 맛을 느끼게 하는 저녁 식사였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지 않았던가? 우리는 차려진 음식을 깨끗하게 비웠다. 


성경에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곳임이요”라고 했는데, 여기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마음을 텅 빈 무욕의 경지가 아닐까? 촛불 속에서 감자로 끼니를 때우는 우리는 마음이 저절로 가난해지는 것 같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타오르는 촛불은 마치 가난한 여인 난타가 온 재산을 바쳐 밝힌 빈자일등(貧者一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 머무는 동안 세상의 모든 것이 귀하게 여겨졌다. 사람도 귀하고 물자도 귀하게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무언가 마음을 풍요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 풍요함은 마마니와 린다의 보름달 같은 미소 속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와 눈을 마주치기만 하면 그저 씩 웃었다. 우리는 그런 마마니 가족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냥 행복했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손전등을 들고 가야 했다. 창문을 열고 방을 나서면 칠흑 같은 하늘에 별들이 무수하게 빛나고 있었다. 별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어가야 화장실에 도착했다. 별이 총총 빛나는 하늘엔 초생 달이 아름다운 여인의 눈썹처럼 걸려있었다. 어두운 하늘에 별과 초생 달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화장실에 앉아 별과 초생 달을 번갈아 바라보며 볼일을 마치고 2층 방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왠지 행복했다.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접시에 세워놓은 촛대가 바닥까지 타 버리자 이내 촛불도 꺼져버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적막 속에 검은 휘장을 두르고 바람마저 잠을 자는지 세상은 태초의 고요처럼 적막했다. 나는 아내의 이마에 ‘굿 나이트’하고 키스를 하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티티카카의 아침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하늘 아래 첫 호수, 티티카카의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멀리 안데스의 만년설 너머로 밝은 햇살이 비쳐왔다. 5시가 채 안되었는데도 마마니의 오두막 문창살에는 환한 햇살이 비쳐왔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맞이하는 티티카카 호수의 아침은 이렇게 밝아왔다. 


마마니 가족과도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흙벽돌집을 나서기 전에 마마니 가족과 기념촬영을 했다.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던 마마니의 오두막 집, 사립문, 화장실, 어둡고 작은 방, 작은 침대, 호수로 난 들창문, 검은 감자와 무냐 차… 우린 단 하루 밤 만에 만리장성을 쌓으며 마마니의 집에 있는 것들과 익숙해져 있었다. 


1박 2일 동안 머물렀던 마마니 가족과 함께


마마니와 린다,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아내와 나는 이별의 긴 포옹을 했다. 금세 정이 들었던 사람들. 우리는 한 가족 같은 마마니 식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 했다. 사립문을 열고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사립문 앞에는 마마니와 린다와 린다의 동생이 오랫동안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똑딱선을 타고 멀어져 가는 우리들을 그들은 하염없이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치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평생 동안 마마니 가족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안녕! 안녕! 마마니! 마마니! 린다! 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60. 티티카카 호수 갈대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