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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25. 2019

62. 뜨개질을 하며 살아가는
타킬레 섬 남자들

페루-티티카카 호수 타킬레 섬


아만타니 섬을 출발한 통통배는 다시 바다처럼 넓은 호수로 나아갔다. 티티카카의 푸른 물 위에 자꾸만 마마니 가족이 떠올랐다. 린다의 티 없이 맑은 눈, 마마니의 맑은 미소… 내 생애에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구촌의 반대편에 있는 그 순수한 사람들을……. 생각 같아서는 며칠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바다처럼 넓은 티티카카 호수


그런데 통통거리며 물살을 가르고 가던 배가 갑자기 고장이 났는지 멎어버렸다. 통통배도 마마니의 집에 좀 더 머무르고 싶은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지나가던 다른 통통배가 다가와 선장과 함께 고장 난 엔진을 고쳤다. 티티카카 호수를 항해하는 통통배들은 이렇게 서로가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돕고 사는 것 같았다. 지나가던 통통배 선장의 도움으로 엔진을 고친 배는 1시간여를 달려 마침내 타킬레 섬에 도착을 했다. 


타킬레 섬은 푸노에서 45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통통배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 우도 정도 넓이의 작은 섬이다. 섬에 상륙하자마자 급경사를 걸어 올라갔다. 타킬레 섬의 정상은 4,050m로 급경사를 돌계단을 타고 올라가게 되어있어 한걸음 옮길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차올랐다.      


정상까지 500여 개의 돌계단이 놓여있는데 그 돌계단이 너무도 멀고 아득하게만 보였다. 거기에다 강열한 햇볕이 내리쪼여 비지땀으로 온몸을 흠뻑 적시게 했다. 허지만 잠시 멈추어서 뒤를 돌아다보면 쪽 빛 호수가 너무 아름다워 숨이 멈추어 버릴 것만 같았다. 풍경은 힘든 만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모든 것은 상대성이라는 개념이 적용한다. 기쁨과 슬픔, 위험과 안전,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쉬운 것과 힘든 것….   

   

“어디 저게 호수에요. 바다지….”

“정말 그러네! 바다 같은 호수.”    


가다 쉬고, 가다 쉬고…. 그렇게 30여분 정도를 올라가니 반원형의  아치로 된 돌문이 나왔다. 양 떼들이 아치를 통과하고 있어서 우리는 양 떼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아치 속으로 들어갔다. 돌로 쌓아 올린 아치를 통과하니 그림 같은 작은 마을이 나왔다. 마을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또 다른 아치가 세워져 있는데, 아치 중앙에는 하얀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십자가 옆에는 페루 특유의 전통복장을 한 네 개의 동상이 서 있었다. 우리는 마치 마법의 성으로 이끌려 들어가듯 성문을 통과했다.  마을은 섬의 정상에 형성되어 있었다.

 

타킬레 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마을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아치를 통과하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광장 주위에는 흙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빙 둘러져 있었다. 그 담벼락 밑에서는 흰색 수술 꼬리가 달린 원색의 모자를 쓴 남자 원주민들이 뜨개질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담벼락도 아치도 모두 흙벽돌로 쌓아 만들어져 있었다. 어도비(adobe)라는 햇볕에 말린 흙벽돌이다.


타킬레 섬은 마치 현대 문명을 거부한 섬처럼 보였다. 이 섬도 전기나 수도, 자동차, 자전거도 없는 완전 무공해의 섬이다. 섬에 살고 있는 2,200여 명의 케추아족 원주민들은 모자, 직물, 수공예품을 손으로 뜨개질을 하거나 직물로 짜서 팔거나 티티카카 호수 주변에서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모든 물자는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으로 조달한다. 아만타니 섬처럼 1년에 한 번씩 촌장을 선출하고 부족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서로 돌아가며 일을 나누어 맡고 생산물과 수입은 공동으로 분배를 한다. 


타킬레 섬 정상에 위치한 마을 광장


마을 광장에 세워진 이정표


타킬레 섬사람들은 1950년대까지 페루 본토와 격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섬사람들은 지금도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하다. 주민들은 어도비로 지은 흙벽돌집에서 살며, 한 달에 한 번씩 주민 전체가 광장에 모여 회의를 열어 섬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어도비는 섬에서 파낸 진흙에 물을 붓고, 산에서 베어온 풀을 잘라 섞어서 발로 으깨어 만든 흙벽돌이다. 


“저기, 이정표가 특이하군요!”

“도쿄는 있는데 서울은 없군.”


바다가 바라보이는 광장 한 구석에는 타킬레 섬에서 세계 각 도시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노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섬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남자들이 모두 뜨개질을 하고 있어요!”

“쓰고 있는 모자도 참 이색적이네요!”


섬 주민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츄요(Chullo)’라고 하는 귀마개가 달린 뜨개질 모자를 쓰고 광장에는 주로 남자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손놀림이 보통이 아니다. 타킬레 섬의 직물은 모두 손으로 짜며 그 치밀함과 무늬, 색 배합이 세계의 직물 중 최고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붉은 모자를 쓰고 흰 저고리에 화려한 허리띠를 두르고 뜨개질을 하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이 매우 이색적으로 보였다. 이 허리띠에는 제례 및 농사와 관련된 연간 일정을 묘사해 놓은 달력을 묘사해 놓은 허리띠라고 한다. 이 달력 허리띠는 공동체의 구전 문학과 역사에 관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광장에 삼삼오오 앉아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남자들


타킬레 섬에서 직물공예의 전통이 시작된 것은 고대 잉카시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도 스페인 정복 이전의 안데스 문명을 그대로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직물은 주로 뜨개질로 만들거나 잉카시대의 구식 베틀로 짠다. 섬에는 직물공예를 배울 수 있는 전문학교가 있다. 전문학교 교육을 통해 섬의 전통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타킬레 섬 여인들은 전통의상인 통치마 뽀예라스를 입고 허리띠를 두르고 있다. 딱 붙는 조끼를 입고 머리엔 두건을 두르고 있다. 여자들은 알파카 털 뭉치에서 방추로 빙빙 꼬아가면서 실을 뽑아냈다. 아이를 업은 여인도, 가축을 몰고 가는 여인도 손에는 여전히 손 물레를 돌리며 실을 뽑아내고 있었다. 실내에는 여인들이 베틀에 앉아 화려한 색상의 직물을 짠다. 여자들이 실을 뽑아내면 남자들은 그 실로 뜨개질을 한다.  


손으로 물레를 돌려 실을 뽑아내는 여인


타킬레 섬은 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들이 만든 손뜨개 민예품은 섬의 주요 수입원이 되기도 하지만 장가를 들 때 없어서는 안 될 혼수품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빨간색의 모자를 쓴 남자는 기혼자이고 빨간색과 흰색이 섞인 줄무늬가 있는 모자를 쓴 남자는 총각임을 표시한다고 한다.


처녀 총각들의 구애 풍습도 특이하다. 총각은 마음에 드는 처녀가 있으면 작은 거울로 햇빛을 반사시켜 구애의 마음을 전한다. 거울로 구애를 전해 받은 처녀는 총각이 마음에 들면 머리에 달린 큰 수술을 흔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린다고 한다. 


츄요를 쓴 타킬레 섬 총각들


“저 흰색 줄무늬를 쓴 모자를 쓰면 총각처럼 보이겠지요?”

“말하자면 그걸 사고 싶다는 거지요?”

“딱 맞추었어요.”


나는 총각들이 쓰고 있는 흰색 줄무늬가 있는 멋진 모자를 하나 사고 싶었다. 피부 색깔도 그들과 비슷하니 저 모자를 쓰고 타킬레 섬 전통의상을 입으면 영락없이 타킬레 섬 총각으로 보일 것이 아니겠는가? 


광장에서 나와 호수가 바라보이는 어느 언덕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쌀밥에 감자를 으깨어 만든 카레 같은 소스와 계란 프라이가 전부였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인지 맛이 그만이었다. 점심 값으로 1인당 10 솔(약 3달러)을 지불했다. 점심을 먹고 섬으로 상륙을 했던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반대편에도 흙벽돌로 쌓아 만든 아치가 나왔다. 아치 사이로 바라보이는 쪽빛 호수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다로 나 있는 돌계단을 내려다보니 자기 몸뚱이보다 더 큰 짐을 등에 멘 타킬레 섬 주민들이 언덕 아래 호수에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맨손으로 올라오기도 힘든데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오다니 그들의 심장 구조는 우리와 많이 다른 모양이다. 길가에 앉아있거나 서 있는 아이들은 순진하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섬에 온 이방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니 선장이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선착장에는 인형 같은 보트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1박 2일 동안의 꿈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타킬레 섬을 출발한 통통배는 1시간여 만에 푸노 항구에 도착했다. 내일 아침엔 볼리비아로 갈 예정이므로 호스텔로 돌아온 우리는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일직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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