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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27. 2019

63. 걸어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가 라파스에 도착하다

페루-코파카바나-라파스

    

걸어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가다    

 

티티카카 호수 인근에 있는 볼리비아 국경을 걸어서 넘어갔다. 

푸노에서 1인당 30 솔(약 8달러)에 코파카바나를 거쳐 라파스까지 가는 버스표를 킹덤 여행사에서 구입을 했다. 킹덤 여행사 직원은 푸노에서 미니버스로 코파카바나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볼리비아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말했다. 푸노에서 라파스까지는 약 300km 거리로 버스로 하루를 꼬박 걸리는 거리다. 

     

호스텔에서 일직 일어나 라파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저혈당 증세가 나타났다. 급히 아내의 입에 초콜릿을 넣어주고 주스를 마시게 했다. 지금까지 잘 견디어 주었는데...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30여분이 지나자 아내의 저혈당 증세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 


“여보, 하루 정도 푸노에 더 머물다 가는 것이 어떨까?”

“괜찮아요. 곧 나아질 거예요. 그러니 염려 말고 출발해요.”     


저혈당 증세가 오면 당분과 탄수화물을 보충해주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동안 힘든 여정으로 피로가 누적이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아내의 저혈당 증세가 걱정이 되어 출발을 늦추자고 했지만 아내가 먼저 배낭을 메고 일어섰다. 용기인가? 고집인가? 아무튼 아내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아내를 앞장 세우고 푸노의 버스터미널로 천천히 걸어갔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우리를 태우고 갈 미니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8시, 여행자들을 가득 채운 미니버스는 라파스를 향해 출발했다. 다행히 아내의 컨디션이 점점 나아졌다.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며 페루를 떠나려고 하니 왠지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만큼 잉카제국의 문화와 유적 그리고 잉카의 후예들에게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페루는 나의 첫 남미 여행지다. 남미보다 먼저 멕시코를 다녀오기는 했지만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는 많은 부분이 거의 미국화가 되어 있다. 반면에 잉카제국의 문화와 유적을 가진 페루에서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어느 여행자가 말했던가? “페루는 단지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되돌아가야 하는 곳이다”라고. 지금도  남미의 여러 나라 중 언제나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페루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가 그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페루는 새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온다는 땅이다. 그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영혼을 반환하고 가서 죽는다고 했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불가사의 한 나스카 지상화, 하늘 아래 첫 호수 티티카카, 바람처럼 빠른 리마의 도둑… 페루는 아내와 나에게 기쁨과 환희, 그리고 고통을 안겨주었다.  살아생전에 다시 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페루를 떠나야 한다. 페루보다 더 험한 내륙 고원지대에 위치한 볼리비아로….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가는 여행자들


미니버스는 좌측에 티티카카 호수를 끼고 천천히 달려갔다. 차창에 티티카카 호수가 숨바꼭질을 하듯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약 2시간 정도를 달려가니 코파카바나 인근 페루 국경도시 융구요(Yunguyo)에 도착했다. 운전사는 버스에서 모두 내려 걸어서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걸어서 불리비아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 출입국 관리사무소로 갔다. 볼리비아 출입국관리사무소 카사니(Kasszni) 앞에는 여행자들이 줄을 서서 입국절차를 밟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미니 여권 카피 대금을 10 솔을 내라고 했다. 비자를 받은 멀쩡한 여권이 있는데도 카피 요금을 별도로 내라고 하다니. 울며 겨자 먹기로 10 솔을 지불했다. 


국경초소 앞에 있는 세 그루의 파인 트리가 퍽 인상적으로 보였다. 그 앞에는 이상하게 생긴 토템플(돌장승)이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꺼운 입술, 일자형의 눈이 토착민을 닮아 보였다. 우리나라 장승과 흡사하다. 꽃으로 장식한 빨간색 자동차도 국경을 통과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허니문 여행을 떠나는 모양이다. 우리는 걸어서 국경을 통과한 후 다시 미니버스를 탔다. 


볼리비아 국경초소 앞에 세워진 토템플


“여보, 걸어서 국경을 통과하는 느낌이 어때요?” 

“이렇게 쉽게 국경을 넘어가다니 국경이란 실감이 별로 자니 않네요.”

“그러게 말이요. 우리나라도 휴전선을 이렇게 걸러서 남과 북이 왕래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게 말이요.”     


버스는 곧 티티카카 호수 변에 위치한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볼리비아 땅을 밟으니 문득 체 게바라가 생각났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라 혁명가이다. 쿠바에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라는 이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 그는 아프리카 콩고로 가서 혁명군을 지원하다가 1966년 볼리비아로 잠입하여 반정부 게릴라 부대를 이끌었다. 결국 그는 1967년 10월 8일, 미국이 지원하는 볼리비아 독재정권의 정부군에 생포되어 총살되었다.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가 마지막 생을 거둔 볼리비아 땅에 우리는 발을 내딛고 있었다. 


볼리비아 국경 풍경


볼리비아는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도 없는 매우 생소한 나라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 볼리비아는 평균 해발 3000m가 넘는 안데스의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남미의 티베트'라고 불린다. 수도 라파스(La Paz, 평화라는 뜻)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다. 때문에 비행기로 라파스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심한 고산증세에 시달리게 되어 며칠 동안을 꼼짝 못 하고 누워 있기도 한다. 볼리비아는 잉카의 탄생 전설을 간직한 티티카카 호수, 소금사막 우유니, 은광 산으로 유명한 포토시, 가파른 협곡과 폭포가 많은 아찔한 융가스 계곡, 아마존의 밀림지대 등 천혜의 때 묻지 않는 자연경관과 신비한 유적지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잦은 군사 쿠데타로 9개월마다 대통령을 갈아치우는 등 극도의 불안한 정치상황을 맞고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매장하고 있는 복 받은 나라이지만 계속되는 전쟁의 패배, 정정불안과 독재자들의 부패로 주요 자원은 외국 매판자본에 팔아넘겨져 ‘은을 짊어진 당나귀’, ‘금방석 위의 거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때문에 독재정권에 맞서는 반정부 게릴라 저항도 자주 발생한다. 

   

걸어서 국경을 통과한 우리는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20여분 정도를 가니 티티카카 호수 변에 위치한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버스 정류소에서 쿠스코에서 만났던 L 군을 다시 만났다. 그는 쿠스코의 비바라틴에서 스페인어와 살사 춤을 배우며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그는 볼리비아 쪽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태양의 섬(Isla del Sol)을 돌아보기 위해 코파카바나에서 하루를 묵는다고 했다. 세상은 참 좁다. 아니 세상이 좁은 게 아니라 길이 하나로 통하다 보니 자꾸만 만나는 거다. 언제 어디서 그를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다.   

 

푸노에서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하여 여행자들이 티티카카 호반에 위치한 코파카바나에 머무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잉카 탄생의 전설이 서린 티티카카 호수에 위치한 ‘태양의 섬 Isla Del Sol’과 ‘달의 섬 Isla Del Luna'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순례지의 하나로 꼽히는 '검은 마돈나(Black Madonna)'를 모신 ‘대성당’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이 성당은 400년의 역사를 가진 남미에서 매우 유서 깊은 가톨릭 순례지다.   

  

태양신 인티가 망코 카팍과 오크요를 내려 보냈다는 ‘태양의 섬’으로 가려면 다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넘게 가야 한다. 그곳에는 ‘태양신전’과 마시면 젊어진다는 ‘잉카의 샘’이 있다고 하는데, 이미 티티카카의 섬을 세 곳이나 돌아온 우리는 ‘태양의 섬’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곳을 다녀오려면 하루를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검은 마돈나가 있는 대성당을 둘러본 후 라파스로 가기로 했다.  볼리비아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시간이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점심을 먹기 위해 호수 변으로 걸어 나갔다.      



기적을 일으키는 코파카바나의 ‘검은 성모’     


바다처럼 넓은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며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이미 페루 쪽의 티티카카를 돌아보았지만 볼리비아 쪽에서 바라보는 파란 호수는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어떤 형용할 수 없는 ‘신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국경초소에 세워진 돌장승의 잔영이 다시 떠올랐다. 그 돌장승은 비라코차를 닮은 모습 같기도 했다. 과연 잉카의 창조신인 비라코차는 존재했던 신일까? 


코파카바나 해변


코파카바나를 지나면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잉카의 창조신 비라코차와 잉카 이전의 고대 도시 티아우아나코에 대한 전설이다. 고대 전설에 의하면 먼 과거 시절 티티카카 호수는 바다였고, 인근에 있는 티아우아나코는 바다에 접한 항구도시였다고 한다. 티아우아나코(Tiahuanaco)는 선사시대에 세워졌다는 잉카 이전의 고대 도시다. 티티카카 호수에 대홍수가 나서 티아우아나코를 삼켜버린 후 세월이 지나면서 수위가 30m나 낮아져 지금은 호수와 분리되게 되었다고 한다.


잉카의 창조신 비라코차(Viracocha)는 먼 ‘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하였다고 아이마라족 들은 믿고 있다. 비라코차는 ‘바다의 거품’이라는 뜻이다.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비라코차는 후에 잉카 족의 태양신인 ‘인티(Inti)’가 된다. 아이마라인 들은 나스카에 있는 지상 그림도 비라코차가 그렸다고 전한다.


비라코차는 키가 크고, 턱수염을 길렀으며, 피부색이 하얗고, 샌들을 신고, 길고 헐렁한 옷을 입은 백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가 홍수로 물에 잠기고 태양이 사라진 암흑기에 사람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티티카카 호수에 나타났다고 한다. 티티카카 호수에 나타난 비라코차는 과학과 마술에 능통한 자였으며, 무서운 병기를 다루고, 병자를 치료하는 신통력을 가진 자로서 혼란한 세계질서를 바로잡았다. 


비라코차는 티티카카 호수 인근에 있는 티아우아나코에 신전을 세우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한 후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예언을 남기고는 바다 위를 걸으며 서쪽으로 기적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잉카인들은 “비라코차는 반드시 돌아온다"라고 약속한 것을 지금까지 굳게 믿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비라코차가 피부색이 하얀 백인이었다는 전설 때문에 스페인의 피사로가 잉카제국에 침입을 하였을 때 원주민들은 정복자들을 비라코차로 받아들여 제대로 된 전투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난 후 시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대성당으로 갔다. 백색의 성당 건물이 그림처럼 나타났다. ‘검은 마돈나’라고 불리는 성모를 모시고 있는 대성당은 볼리비아 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검은 마돈나는 이 지역 원주민 예술가였던 프란시스코 티토 윤판쿠(Fransisco Tito Yunpanqui)가 1592년 검은 나무에 용설란 섬유로 마리아 상을 제작한 이후, 수많은 기적을 불러일으키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기적을 일으킨다는 코파카바나의 검은 성모


“여보, 당신도 한 가지 소원을 기적을 일으키는 성모 마리아 님께 기원해 봐요.”

“검은 성모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줄까요?”

“당신의 기도가 검은 마돈나님을 감동시킬 만큼 충분히 진실하고 간절하다면….”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고 해서 다 들어줄 수는 없겠지요. 허지만 원주민을 닮은 성모님이 왠지 정감이 가는군요.”


성당 안에는 금으로 장식된 웅장한 제단과 보석으로 덮인 망토를 입고 금관을 쓴 성모 마리아 상이 있었다. 우리는 원주민을 닮은 된 성모 마리아 님께 애정을 느끼며 합장을 했다. 기적의 성모 마리아를 찾아서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볼리비아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매년 2월 1일과 2일에는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오후 2시. 버스가 라파스를 향해 코파카바나 터미널을 출발했다.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을 한 멋쟁이 운전수는 매혹적인 안데스 음악을 틀어주었다. 버스의 부자 소리를 울리는 것도 특이했다. 운전석 앞 백미러 밑에 달린 줄을 리드미컬하게 당기면 멋진 부자 소리가 울렸다. 멋쟁이 운전수 덕분에 버스 여행길이 지루하지가 않았다. 우리는 안데스의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라파스를 향해 달려갔다.     


알티플라노 고원의 도시 라파스에 도착하다!    

  

버스는 U자형의 커브를 곡예를 하듯 오르내리며 티티카카 호수 주변을 달려갔다. 산 페드로 티키나(San Pedro Tiquina)라는 포구에 도착하자 티티카카 호수가 강처럼 가로막혀 길이 끊겼다. 운전수는 승객들을 모두 내리라고 했다. 항구에 도착한 승객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버스는 바루사라는 뗏목에 실려 따로따로 호수를 건너야 한다고 했다. 승객들은 론치(launch)라는 조그만 모터보트를 탔다. 그런데 버스는 거대한 뗏목으로 만들어진 바루사에 실었다. 버스를 실은 뗏목은 사람이 간짓대로 노를 저어갔다.


"참으로 희한하군. 버스를 뗏목에 싣고 가다니… "


프레 잉카 시대에 토토라로 만든 갈대배에 몇 백 톤이나 되는 무거운 돌들을 운반했다는 전설이 재현되는 것 같았다.     티티카카 호수의 토토라로 만든 배와 나일 강의 파피루스로 만든 갈대배는 유사한 점이 많다. 그 갈대배에 몇 백 톤이나 되는 무거운 돌덩어리들을 운반하여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신전을 세웠다는 전설을 반신반의하며 믿지를 않았는데…. 지금 이런 것들이 그냥 전설 속에서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저 무거운 버스를 싣고도 가라앉지 않는 뗏목이 신기하기만 하네?”

“그러게 말이에요!”


뗏목에 버스를 싣고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고 있다.


당연히 모터보트를 탄 우리들이 버스보다 먼저 도착을 했다. 호수를 건너니 토토라로 만든 이상한 모양의 동물이 광장에 서있었다. 퓨마를 상징하는 모형 같았다. 중앙 탑 위에는 토토라로 만든 큰 갈대배가 신주처럼 모셔져 있었다. 우리들이 탔던 버스를 실은 뗏목이 도착했다. 승객을 태운 버스는 다시 라파스로 향하여 출발했다. 버스는 만년설을 낀 안데스 산맥 사이로 난 황량한 고원지대를 달려갔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원지대라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해가 안데스의 만년설 속으로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라파스가 가까워질수록 교통체증이 심해졌다. 버스는 거의 기어가는 속도였다.  

   

버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 라파스로 진입했다. 그러나 시내로 들어갈수록 원인을 모를 교통체증이 끝없이 이어졌다. 파란 군복을 입은 군인과 사이카를 탄 경찰들이 도로가에 도열해 있었다. 무슨 시위가 있었는지 무언가 심상치 않는 분위기였다. 볼리비아는 언제나 정세가 불안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의 ‘해외안전정보’에도 라파스 근처는 여행의 필요성을 신중히 검토하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위험과 불안을 감수하며 마치 돈키호테처럼 라파스로 진군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불안과 위험은 지구 상의 어디에나 항상 상존한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안방 침대가 가장 위험하다. 탈무드에 보면 사람은 침대에서 90% 이상이 죽어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멀리 만년설에 덮인 일리마니(6,438m) 정상이 석양빛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흰 눈에 덮인 일리마니 산은 마치 삭막한 고원에 피어난 한 송이 백합처럼 보였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일리마니 산이 라파스를 지켜준다고 믿고 있다. 


 라파스로 진입하는 풍경. 멀리 일리마니 산이 보인다.


버스는 교통 체증을 참다못해 골목으로 빠져나갔다. 어느 순간 버스는 갑자기 계곡 밑을 향해 곤두박질치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버스는     달팽이처럼 생긴 도로를 따라 빙빙 돌며 도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거대한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라파스는 마치 블랙홀 같은 도시처럼 보였다. 알티플라노 고원 약 3600m에 위치한 라파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에 있는 수도로 하나의 거대한 비행접시처럼 생긴 분지와 협곡에 세워져 있다. 라파스는 태고에 엄청난 물이 폭포처럼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위와 자갈이 격류에 휩쓸리며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움푹 팬 거대한 웅덩이처럼 보인다. 때문에 라파스로 진입하는 자동차들은 달팽이처럼 빙빙 돌며 4000m 고원지대에서 갑자기 400m 아래로 굴러 내려가야 한다. 


버스는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듯 계곡을 빙빙 돌며 한 참을 내려갔다. 길 양 옆에는 갈색의 집들이 마치 빈대처럼 언덕 위에 빽빽이 붙어 있었다. 엘 알토(El Alto)라고 하는 빈민촌이다. 계곡 아래로 내려 갈수록 회색 빌딩들로 이루어진 스카이라인과 언덕 위의 빈민촌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로 눈 덮인 일리마니 산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자 엘 알토의 언덕에는 수만 개의 불빛이 마치 은하계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계곡의 언덕에 빼곡히 들어찬 빈민촌에서 밝힌 불빛이 밤에는 진귀한 야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켠 등불이 은하계의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엘 알토 지구를 지나 버스는 골목을 돌더니 버스터미널이 아닌 프란시스코 광장 근처의 글로리아 호텔이라고 표시된 도심에 정차했다. 고산지대 여행에 지친 여행객들이 마치 묶인 자루처럼 힘없이 버스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버스에서 내리니 현기증이 나고 어지러웠다. 한 걸음을 옮기는 데도 숨이 차고 뒷골이 띵했다. 더욱이나 라파스의 지형은 울퉁불퉁하여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우리나라 성남시 상대원동 하대원동을 오르내리는 것보다 훨씬 심하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몇 걸음을 걷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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