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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31. 2019

64. 택시강도로 돌변한
라파스의 가짜 경찰

볼리비아 - 라파스의 택시 강도


오늘 밤 라파스에서 머물려고 찜해둔 숙소는 3달러짜리 게스트하우스다. 론니플래닛 가이드북에 나타난 지도를 보니 걸어서 15여분은 족히 걸려야 할 것 같았다. 허지만 고도가 워낙 높은 데다가 티티카카 호수 푸노를 출발하여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왔기 때문에 나도 아내도 무척 지쳐 있었다.   

   

“여보 오늘은 택시를 타고 가지요? 도저히 걷지 못하겠어요.” 

“그래야겠어. 사실 나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걷기가 힘들어요."      


어쩌다가 택시를 타려고 하면 극구 말리던 아내가 오늘만은 너무 힘이 드는지 택시를 타자고 했다. 버스여행에 지친 다른 여행객들도 택시를 타고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아내가 호텔 앞에 서있는 택시를 손짓으로 불렀다. 곧 택시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지친 심신을 조금이라고 빨리 숙소로 가서 쉬고 싶었다. 나는 택시 운전사에게 론리플래닛에 나타난 지도를 내밀며 말핬다. 

 

“알로자미엔토 호스텔로 가는데 얼마지요?” 

“10 볼리비아노.” 

“너무 비싼데요. 5 볼리비아노.” 

“오케이!”    

  

10 볼리비아노라고 해보아야 1200원 정도다. 남미에선 택시비를 사전에 흥정을 해야 한다. 운전수의 대답이 의외로 시원시원하여 아주 쉽게 흥정이 되었다. 미남처럼 생긴 운전수가 우리의 배낭을 받아 트렁크에 실었다. 그는 친절하고 싹싹했다. 그런데 기분 좋게 탄 택시가 엄청난 화근을 몰고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멀리 엘 알토 언덕 빈민촌에서 밝힌 불빛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택시는 산 프란시스코 광장을 지나갔다. 라파스의 모든 길은 산 프란시스코 광장으로 통한다. 여행자 센터도 이곳에 있다. 이 광장에서는 군중집회도 종종 열린다. 거리의 악사가 얼기설기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라파스는 높은 곳에는 주로 빈민들이 살고, 낮은 곳에는 부자들이 산다. 광장을 지나자 거리의 노점상들이 이상한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었다. 그 옆에는 많은 원주민들이 길바닥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택시는 큰길을 지나 점점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프란시스코 광장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면 도착을 할 수 있는 거리인데 어쩐지 택시가 빙빙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동차의 불빛이 명멸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라파스의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기사님, 다 온 것 아니요?” 

“길이 막혀서 조금 돌아가야 해요.” 


모퉁이를 돌아가더니 운전수는 난데없이 손을 흔들고 있는 어떤 남자 한 사람을 태웠다. 빼빼한 체구에 안경을 쓴 눈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그는 백인과 혼혈인 메스티소였다. 


“왜 다른 사람을 태우지요?” 

“같은 방향이어서 태운 거요.” 

“다른 사람과 함께 탈 수는 없어요. 우릴 먼저 데려다주시오.” 


그 순간 또 한 사람의 건장한 남자가 택시에 곧바로 올라탔다. 구릿빛 얼굴에 키가 크고 마치 레슬링 선수처럼 생긴 근육질의 원주민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그가 어쩐지 섬뜩해 보였다.  작은 배낭을 걸머지고 앞자리에 먼저 탄 앉은 메스티소는 브라질에서 온 여행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을 태운 택시는 재빨리 출발했다. 


“왜 또 사람을 태우느냐?” 

“이 사람은 경찰이다.” 

“경찰?” 

“그렇다. 나는 마약을 단속하는 특수경찰이다.” 

“경찰이 왜 사복을 입고 있느냐? 믿을 수 없다.” 

"특수경찰이라 사복을 입은 것이다. 이게 내 경찰 신분증이다. 마약을 소지했는지 검문을 해야 하니 세 사람 다 신분증을 보여주시오.” 

“사복을 입은 당신을 경찰이라고 믿을 수 없어요. 검문에 응할 수 없다. 운전사 우리를 빨리 내려달라!”     

 

볼리비아에서는 가짜 경찰 행세를 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정보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보통 관광지에서 여자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접근을 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이 경찰 복장을 한 일당이 접근하여 마약 단속 등을 빌미로 검문을 한다. 가짜 경찰이 검문을 하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 여자도 순순히 검문에 응한다. 그리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택시로 관광객을 데리고 가 택시에 태운 뒤 마약 검사를 빌미로 가방을 뒤지고는 마약이 없다며 하차를 하라고 한다. 택시에서 내린 관광객이 나중에 가방을 살펴보면 지갑, 휴대폰, 카메라 등이 감쪽 같이 없어지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경찰복장을 한 가짜 경찰도 여권 검사를 빌미로 접근하여 사기를 친다는데 하물며 사복을 입은 경찰은 100% 가짜 경찰이다. 그렇다고 이미 출발을 하여 달리고 있는 택시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더구나 큰 배낭은 트렁크에 들어있고.  ' 앗차, 내가 방심을 했구나! 라디오 택시를 타야 하는데... ' 그러나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경찰의 검문에 응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러니 빨리 여권을 보여주시오.” 

“절대로 응할 수 없다. 이봐요 운전사, 우리를 빨리 내려줘요." 


그러나 택시 운전사는 내 말을 무시하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경찰을 사칭한 사내는 계속 여권을 보여주라고 재촉을 했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여행자가 어눌하게 말을 하며, 순순히 여권을 꺼내어 가짜 경찰에게 건네주었다. 경찰은 그자의 여권을 받아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시늉을 했다. 


“이분 진짜 경찰이 맞는 것 같아요.” 


메스티소 사내는 가짜 경찰의 검문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같은 일당인데 무슨 말을 못 하겠는가?


“이봐요, 당신 전대와 양말도 벗어서 보여줘요!" 


그러자 브라질 여행자는 순순히 허리에서 전대를 끌러 경찰에게 보여주고 양말까지 벗어서 건네주었다. 경찰을 사칭한 사내는 전대와 양말에 마약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면서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 사내의 배낭도 받아 뒤지기 시작했다. 


“음, 마약은 없군.” 


그러더니 그자는 브라질 인이 건네준 전대와 양말, 배낭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일순 그가 경찰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가짜 경찰과 그 일당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정말 특수 마약 단속반 경찰이오. 당신도 이 사람처럼 내 검문에 순순히 응하시오.” 

“믿을 수 없다. 당신은 경찰복도 입지 않았느냐?” 

“마약 단속 특수반이라 그렇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도 믿을 수 없다. 당신이 정말로 경찰이라면 나와 함께 경찰서로 가자.” 

“경찰의 검문에 응하지 않으면 곤란할 텐데.” 

“절대로 응할 수 없다.” 

“그러면 강제로 몸수색을 할 수밖에 없다.” 


그자와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운전수는 이미 어느 으쓱한 골목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 적막한 골목이었다. 아내는 이미 겁에 질려 얼굴이 파래져 있었다. 이젠 강도의 본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모양이었다. 좁은 택시 안에서 경찰을 사칭한 사내와 운전수 그리고 브라질 여행객 행세를 했던 자가 합세하여 달려들었다. 그들은 카메라가 든 내 작은 배낭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 아내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반항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순간 엄습해 왔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몸을 다쳐서는 안 된다' 나는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들은 앞뒤에서 나를 틀어잡고 강제로 내 몸수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악! 사람 살려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곳엔 그 소리를 들어줄 사람도 없는 외진 곳이었다. 이제 그들은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태세였다. 힘으로 몸을 뒤진 그들은 내 지갑과 전대를 낚아챘다. 그들의 팔과 손을 잡고 저항을 했으나 무지막지한 힘으로 내 팔을 뿌리쳤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침착하자. 돈을 주더라도 몸은 다쳐서는 안 된다' 나는 침착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게서 지갑과 전대를 빼앗은 그들은 자크를 열고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과 전대에서 여권과 항공권, 신용카드, 여행자 수표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계속하여 카메라가 든 내 작은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금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내 작은 배낭에는 카메라와 비디오, 가이드북 등이 들어 있을 뿐 현금은 없었다. 


경찰을 사칭한 강도가 내 배낭을 뒤지다가 작은 금강경 소책자를 발견하고 꺼내 들더니 그 안에 끼어둔 우리 가족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금강경 소책자 안에 아이들이 어릴 때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을 끼어 놓고 여행을 다닐 때에는 언제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고 있다. 금강경 속에 끼어둔 가족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강도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다소 엉뚱한 데가 있는 강도였다. 


“이건 너희 가족사진이냐?” 

“… 그렇다.” 

“이쪽은 너희 아이들이냐?” 

“그렇다.” 

“아이들이 참 예쁘다.” 

“제발… 그만 내려주기나 하라.” 

“이 글자들은 뭐냐?” 

“다이아몬드 수투라라는 부처님 말씀이다.” 

“다이아몬드 수투라?” 

“…….” 

"다이아몬드 수투라란 무슨 뜻이냐?"

“다이아몬드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진리다.”

“그거 참 글자 모양이 신기한데?”

“여보시오. 우릴 빨리 보내주기나 하시오.”


그러나 그는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문으로 쓰인 금강경을 신기하다는 듯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일순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 사진과 금강경을 번갈아 들여다보는 강도가 천진한 구석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금강경의 진리가 저 가짜 경찰을 물리쳐 주지 않을까? 아무 일 없이 보내줄지도 모른다는 실 날 같은 기대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금강경을 접어 배낭 속에 넣더니 아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마치 빚을 받으러 온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당신 전대도 순순히 내놔라!” 


그는 아내를 향해 다그쳤다. 


“아내에게 손을 대면 가만 두지 않겠다.” 

"하하,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만약 그들이 아내의 몸에 손을 대면 목숨을 걸고라도 저항을 할 태세를 갖추며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파랗게 질린 아내가 지레 겁을 먹고 전대를 끌러서 그들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아내의 전대에는 푸노에서 여행자 수표를 바꾼 현금이 800달러나 들어 있었다. 우리가 한 달 동안 남미를 여행할 비용이었다. 우유니 사막 여행에는 현금이 필요하다는 정보를 듣고, 환전수수료가 거의 없는 푸노의 은행에서 유유니 사막까지 갈 여행비를 미리 바꾸어 놓았던 돈이다. 아내의 전대를 들고 다시 코를 킁킁 거리며 마약 냄새 맡는 시늉을 하던 강도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마약은 없는 것 같군. 이봐, 운전사 이 친구들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 드려.” 


강도인 주제에 끝까지 그는 경찰 행세를 했다. 그자가 셋 중에 두목인 것 같았다.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뒤로 가더니 트렁크를 열고 우리 큰 배낭을 땅바닥에 팽개쳤다. 


“당신들에게는 더 이상 조사를 할 게 없다. 여기 당신 여권과 지갑과 전대와 가방을 다 돌려줄 테니 가지고 차에서 빨리 내려라!” 


그는 우리들의 여권, 지갑, 전대, 카드, 카메라와 가방, 그리고 여행자 수표까지 우리에게 모두 순순히 돌려주었다. 나는 그가 넘겨준 것들을 챙겨서 넣고 떨고 있는 아내를 부축하며 일단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트렁크 문도 닫지 않은 채 냅다 황급히 사라졌다. 얼이 빠져나간 듯 우린 멀어져 가는 택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팽개쳐진 배낭 앞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은 내 지갑과 전대에서 현찰을 찾다가 아내의 전대에서 현찰이 나오자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돈을 전대에서 꺼내 들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그때까지 파랗게 질려만 있던 갑자기 아내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 지경을 당하자고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엘 알토의 빈민촌 언덕에서는 은하계의 별처럼 수많은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남미에 도착하자마자 페루 리마에서 아내의 작은 배낭을 도둑맞은 뒤 두 번째로 맞이하는 위기였다. 여행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중단하고 귀국을 해야 할 것인가?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갑자기 비극의 주인공 햄릿의 대사가 떠올랐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꽂힌 고통을 죽은 듯 참는 것이 과연 장한 일인가. 아니면 두 손으로 거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치는 것이 옳은가. 나는 비극의 주인공 햄릿처럼 라파스의 어두 밤하늘 밑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극 중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허지만 어찌하겠는가?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으로 빨리 잊어야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침착하게 행동하자. 일단 아내를 달래어 숙소로 가자고 했다. 


“자, 그만 울고 가야지. 몸을 다치지 않을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고….” 

“그래도 그렇지요. 세상에… 여행을 하다가 이런 일을 다 당하다니… 흑흑흑…” 

“그보다 더한 일도 많아요. 다 내 잘 못이오. 내가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하는 건데… 자, 이제 숙소를 찾아가자고요.” 


그때 마침 캡에 전화번호를 새긴 라디오 택시가 나타났다. 라파스에서 ‘라디오 택시(Radio Movil)’란 캡을 단 택시는 안전하다는 정보를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일단 택시를 불러 세웠다. 길을 전혀 모르는 곳이라 택시를 타지 않으면 숙소를 찾을 수도 갈 수도 없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3달러의 현금이 떨렁 남아있었다. 택시강도가 남겨준 3달러!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도의 마음 한편에도 택시비를 남겨주는 한 조각 자비의 마음이 있었단 말인가? 내 지갑에는 30달러 정도의 현금이 있었는데 그중에 1달러짜리 지폐 세장만 딸랑 남아있었다. 


여행 중에 우리들 수중에는 많아야 항상 100달 정도의 현금만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이런 경우에 거액의 현금을 지니고 있었다. 허지만 현금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여권과 신용카드, 여행자 수표를 몽땅 뺏길 수도 있었다. 현금만 몽땅 털리고 여권 등 다른 것들은 고스란히 넘겨받고 몸을 다치지 않았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털린 돈은 '라이프 머니'라고 생각하자. 라이프 머니, 생명을 구해준 돈…. 돈을 지키다가는 몸에 칼이 들어온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일까?


“택시에서 강도를 당하고 또 택시를 타요? 흑흑흑…” 


아내는 울면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택시 앞에서 한발 자욱 물러섰다. 맞는 말이다. 택시강도에게 당하고 다시 택시를 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외진 곳에서 이 택시를 놓치면 언제 택시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 그만 울어요. 버스도 없는 곳이니 택시를 탈 수밖에 없지 않소. 그리고 이건 라디오 택시라 안전할 거야.” 

“그걸 어떻게 믿어요. 흑흑흑…”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당겨 먼저 태우고 이번엔 큰 배낭을 트렁크에 싣지 않고 좁은 좌석에서 끌어안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호텔 콘티넨털로 갑시다.” 


아내는 택시 안에서도 계속 울먹였다. 택시 운전수는 울고 있는 아내가 안 되었다는 듯 백미러를 통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콘티넨털 호텔은 15달러 정도 하는데, 당초에 숙소를 이 호텔로 정했다가 숙박비를 조금이라도 아끼자는 아내의 제안으로 알로자미엔토 게스트하우스로 바꾸었었다. 죽을 쑤어서 개를 준다고 하더니 우리가 마치 그런 꼴이었다. 지금까지 아낀 여행비와 숙박비를 고스란히 한 입에 털어 넣고 말았으니 말이다. 돈이라는 것은 아무리 아껴도 내 것이 안 되려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이 일을 당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크다. 방심은 금물인데 잠시 방심을 하는 사이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 라파스에 도착하여 내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 아무 택시나 타지 않고 라디오 택시를 골라 이렇게까지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택시 강도 일당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을 이미 노리며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리마에 도착할 때는 잔뜩 주의를 기울여 공항에서 정복을 한 경찰에게 택시를 잡아달라고까지 부탁하여 택시를 탔던 내가 아니었든가! 라파스에서도 주의를 기울여 라디오 택시를 탔어야 했다.     


어쨌든 택시 강도가 남겨준 3달러의 여유(?)로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 콘티넨털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금강경의 위력으로 남겨준 3달러일까? 몽땅 털어가지 않고 3달러라도 남겨준 강도가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호텔 콘티넨털은 비센타 광장 근처에 있었다. 길거리는 밤인데도 노점상들로 북적거렸다. 허지만 주변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강도를 당하고 나니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도둑이나 강도처럼 보였다. 아내는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할 때까지도 흐느끼고 있었다. 호텔 데스크의 아가씨가 체크인을 하고 있는 나와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며 이상한 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우리가 마치 부부싸움을 해서 내가 아내를 울린 게 아닌가 하는 그런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아내의 모습과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노라면 그런 오해를 받을 만도 했다. 체크인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며 아내를 달랠 말을 잠시 궁리를 해보았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생각에 잠긴 나는 아내에게 낮은 소리로 가만히 말했다. 


“여보, 오늘 일은 우리가 그 택시 강도들에게 진 전생의 빚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립시다." 

“이런 일을 어떻게 금방 잊어버릴 수가 있어요." 

"허지만 어찌하겠소. 이미 당한 일이니." 

"전… 지금이라도 당장 볼리비아 땅을 떠나고 싶어요. 사람들이 다 도둑과 강도로만 보여 무서워요.” 

“그래도 우유니 소금사막과 아마존은 가보아야지 않겠소?” 

“우유니고 아마존이고 간에 전 볼리비아라는 나라가 싫어요!” 

“알았소. 그러나 오늘은 이미 너무 늦었고, 저녁이라도 먹고 좀 쉰 다음에 생각을 해봅시다.” 

“지금은 밥 생각도 전혀 없어요.” 

“나도 그래. 허지만 인슐린을 맞으려면 그래도 좀 먹어야 하지 않겠소?” 

“내일 아침에라도 일찍 여길 떠나요.” 

“어디로?” 

“어디로든 볼리비아 땅이 아닌 곳으로 가요. 하여간 저는 볼리비아가 싫어요.” 

“으음…. 여기까지 와서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그럼 칠레로 넘어가는 버스시간표를 알아보고 오리라.” 


아내는 마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식으로 무조건 볼리비아를 떠나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볼리비아에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과 아마존을 꼭 가보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었다. 이 두 곳은 볼리비아 여행의 핵심이다. 이 두 곳을 보기 위해 고산병과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볼리비아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파스에서 만난 강도는 우리가 그들에게 전생에 진 빚의 일부를 갚았는지도 모른다. 볼리비아에는 남미에서도 인디오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다. ‘몽골리언 일만 년의 지혜’(폴라 언더우드 지음)란 책을 읽어 보면, 먼 옛 날 몽골계의 종족이 베링 해의 얼음을 타고 알래스카로 건너가 먹 거리와 살 곳을 찾아 남으로 남으로 이동하여 남미까지 와서 살게 되었고 한다. 그 후손들이 오늘날 남미에서 살고 있는 아메리카 인디오(인디오란 말은 서양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폄하해서 쓴 말이므로 앞으로는 인디오 대신 원주민이란 말을 쓰겠다)들이라고 한다. 그들에게서도 어릴 때 엉덩이에 몽골반점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와 같은 혈통을 지닌 그 택시 강도가 아주 먼 옛날 전생에 나와 가까이 살았던 형제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진 빚을 뺏긴 돈으로 갚은 샘 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라파스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버스 편을 알아보기 위해 프런트로 갔다.          





*다음은 주볼리비아대사관에서 공지한 택시 강도 안전유의 안내내용입니다. 볼리비아 여행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볼리비아 택시 강도 안전유의 안내

(2016-01-05 주볼리비아대사관 공지사항)


지난 11.1(일) 아침 9시경 볼리비아 라파스 중심가 현대미술관 인근에서

우리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경찰 사칭 택시 강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사건 경위

1. 40대 여성이 자신을 여행객이라고 소개하며 접근, 길을 묻고 사진 요

청을 하는 등 경계심을 풀게 함


2.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아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경찰 복장을 한 일당

이 접근하여 여권 검사를 요구함


3. 여권 검사 후 경찰서까지 동행할 것을 요구하며 미리 준비되어 있던

택시(택시기사도 일당)에 태우고 2-3분 정도 가다가 마약 검사를 이유로

가방, 허리색, 복대 등의 검사를 요구함


4. 소지품 검사 후 앞좌석에 탑승한 경찰은 여행객에게 문제가 없다고

하며 인적이 드문 길가에 하차 시킴(이 과정에서 현금 절취. 반항을 하면 

목을 조르거나 흉기로찌를 수 있으므로 절대로 반항을 하면 안됨)


최근 2-3년 간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우리 여행객 대상으로 위와 같은 택

시 강도 사례가 빈발하고 있으니 볼리비아를 여행 중이시거나 여행을 계

획하고 계신 분들께서는 아래 사항을 참고하시어 신변안전에 각별히 유

의하시기 바랍니다.


o 낯선 사람이 접근하여 과도한 친절을 베풀 경우 경계를 늦추지 말

o 택시는 절대 합승하지 말 것

o 터미널 하차 시, Pasajero Seguro(승객 안전)이라는 노란 스티커가 붙

어있는 터미널 등록 택시(승차 시 등록증 확인 가능)를 이용

o 일반택시 승차 시에도 되도록 택시 위쪽에 번호가 적혀있는 Radio

Taxi를 이용하시기 바람(역시 위험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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