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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23. 2019

60. 티티카카 호수 갈대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페루 - 티티카카 호수 우로스 섬


갈대 속으로 뚫린 수로에는 퓨마 모양을 한 작은 갈대 보트들이 노를 저으며 건너 다녔다. 모형은 꼭 베니스의 운하를 끼어 다니는 곤돌라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갈대숲을 저어 가는 모습이 태곳적 원시생활을 느끼게 했다. 티티카카 호수 우로스 섬은 갈대로 만든 '바루사(Barusa)'란 갈대배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우로스 섬은 ‘토토라(Totora)’라고 부르는 갈대를 겹쳐 쌓아 만든 인공 섬으로 호수에 '떠 있는 갈대 섬'이다. 티티카카 호수에는 크고 작은 갈대 섬들이 40여 개나 흩어져 있다. 유람선에서 내린 아내가 갈대섬에 발을 내 디디며 말했다.


“여보, 푹신푹신해요!”

“하하, 정말 솜처럼 푹신푹신하네요!”


토토라라고 하는 갈대로 만든 우로스 섬과 갈대 집들


갈대 섬에 오르니 바닥이 푹신푹신했다. 우로스 섬은 해마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토토라 갈대를 베어 3m 정도 쌓아서 섬이 가라앉지 않도록  유지한다고 한다. 물에 잠긴 부분이 썩으면 새로운 토토라를 잘라 계속 쌓아 올려 섬을 유지한다는 것. 


"우와, 저건 갈대 우체국이야."

"어젯밤에 아이들에게 쓴 엽서를 저 갈대 우체국에서 부쳐야겠네요."


갈대 우체국에 엽서를 부치는 아내

아내는 갈대 우체통에 엽서를 넣으며 깔깔거렸다. 섬의 크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300여 명 정도가 생활하는 섬까지 다양하다. 갈대 섬 안에는 학교와 우체국, 교회, 박물관도 있었다. 모두가 갈대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섬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로 우루족으로 티티카카 호수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나 물새를 잡아서 생활하고 있다. 



우루족은 티티카카 호반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일설에 의하면 잉카 시대에 천민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볼리비아 쪽 코파카바나에서 생활을 하다가 스페인 군에 쫓겨서 이곳 티티카카 호수에서 갈대 섬을 만들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들은 몇 백 년에 걸쳐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원시생활 형태를 유지하면서 대를 이어 갈대 섬에서 살아오고 있다. 우루족의 가장 중요한 생활수단은 토토라란 갈대이다. 토토라로 생활 터전인 섬을 만들고, 집, 불씨, 가축의 먹이는 물론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도 만든다. 


“자, 이 갈대를 한번 맛보시지요.”

“그걸 먹을 수도 있는 모양이죠?”

“그럼요.”


선장이 토토라 갈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하다가 껍질을 벗기고 꺾어서 맛을 보라고 권했다. 우직하게 생긴 우로족 선장은 꾸밈이 없고 순수했다. 그가 잘라준 토토라 줄기의 속을 씹어보니 달달했다. 마치 수수 대를 씹는 맛이랄까?


토토라 갈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우로 족의 선장


“선장님 화장실은 어디에 있지요?”

“저기 세워진 전망대 같은 곳이 화장실입니다.”

“에게게, 무슨 화실이 저렇게 생겼지?”

“응가를 하기에는 좀 곤란하겠는데.”


화장실이 마치 과수원에 세워둔 움막처럼 보였다. 따로 정화시설이 없이 바로 갈대위로 배설을 하고 있어 그 배설물이 호수로 흘러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 갈대 화장실을 보니 티티카카 호수의 수질 오염이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선장은 토토라 갈대는 무엇이든지 빨아들이는 특성이 있어 오염물질을 자연 분해하여 흡수를 한다고 했다. 


화장실 사방이 갈대 사이로 바람이 솔솔 통해서 통풍은 기가 막히게 잘 될 것 같았다. 하기야 섬에 사는 인구가 몇 명 되지 않으니까 자연방사를 해도 자연스럽게 분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정화시설도 없이 그대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티티카카 호수를 오염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우리는 차마 갈대 화장실에서 일은 보지 못하고 구경만 했다. 


우로스 섬의 갈대 화장실

  

갈대 화장실을 뒤로하고 원추형의 움막으로 다가가자 섬 아이들이 통치마를 입고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티피'라고 하는 이 갈대 움막집은 세 개의 기둥을 세우고 갈대를 입혀 부엌살림을 두고 침실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순박하게 보였다. 


아주 튼튼하게 보이는 아이들의 손에는 갈대가 들려져 있었는데 아이들은 선장이 설명을 해주었듯이 그 갈대를 꺾어서 씹어 먹었다. 이곳 아이들에게는 갈대가 간식이나 다름없는 모양이다. 그 어떤 놀이기구도 없는 갈대섬의 아이들이지만 전혀 불만이나 불평이 없어 보였다. 손에 24시간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우리나라 아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자유로워 보이는가? 문명의 이기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행동과 생활을 구속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행동이 구속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낮이나 밤이나 번뇌 속에서 살아간다.  


순진무구하게 보이는 갈대 섬의 아이들


티티카카 호수 우로스 갈대 섬에 사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모습

 

순진무구! 아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니 매우 수줍음을 탔다. 햇볕에 그을려 검붉게 탄 얼굴, 까만 눈동자, 얼크러진 머리칼… 해맑게 웃는 자연 그대의 모습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은 것을 부끄러워하던 아이들이 손도 들어주고 멋진 포즈를 취해 주기도 했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에 순응하며 맨발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모습이 하나같이 우량아처럼 건강하게 보였다. 


아이들의 엄마는 호수에서 잡아 올린 고기를 검은 옹기에 넣고 끓이고 있었다. 화덕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거의 윤곽을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아마 몇 백 년 동안을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호수에서 잡히는 고기는 주로 메기나 검은 줄무늬가 있는 ‘톱 미노’란 물고기 2가지가 주종인데 최근에는 무지개 송어(Rainbow Trout)도 잡힌다고 한다.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은 아예 웃통을 벗어 제치고 물렁한 갈대 바닥에 누워 선 텐을 즐기기도 했다. 


티티카카 호수에 잡아올린 물고기와 화덕


“자, 우리도 이 천혜의 침실에 한 번 누워 보자고요.”

“아이고, 바닥이 젖이 있잖아요.”

“이 정도야 괜찮아요.”


푹신 거리는 바닥에 벌렁 누워 하늘을 보았다. 침대와 이불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자연 그대로가 매트리스요 이불이 된다. 파란 하늘엔 흰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떠갔다. 세상의 모든 복잡한 일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가도 행복하지 않은가! 문득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고, 산을 베개 삼아”살아간다는 진묵대사의 시가 생각났다. 달을 등불 삼고,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잔 삼아 자연 속에서 대취해서  걸림 없이 살아가는 진묵대사야 말로 대자유인이 아닐까? 


섬의 한쪽에서는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토토라로 갈대배를 만들고 있었다. 갈대는 물에 잘 뜨는 성분이 있어서 가라앉지 않는다고 한다. 말린 토토라를 이리저리 꼬아서 배를 만드는 모습이 매우 신기했다. 한 아름 정도의 토토라를 끈으로 묶어서 다발로 엮어 배를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만든 배가 아주 단단하여 물이 새지 않고, 어른 여러 명이 타도 가라앉지 않고 떠간다니 그저 신기하게만 보였다. 


토토라 갈대로 배를 만들고 있는 우로스 섬 사람들


“여보, 나 저 배를 한번 타보고 싶어요.”

“사실 아까부터 나도 타보고 싶었어요.”


선장에게 물으니 희망자는 타도 좋다고 했다. 선장이 갈대배 주인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아마 유람선의 다음 행선지인 갈대 섬으로 우리를 태우고 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금방 가라앉을 것만 같은 갈대배에 아내와 나 둘만 올랐다. 그러나 갈대배는 가라앉지 않고 유유히 호수 위를 미끄러져 갔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우루족의 아주머니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노를 저었다. 중절모자를 쓰고, 길게 내리 딴 머리, 뽀예라스 통치마를 입은 여자 선장(?)의 모습이 제법 여유롭고 근엄하게 보였다. 노를 젓는 솜씨도 유연했다. 갈대배는 푸른 물결을 헤치며 다른 섬으로 유유히 흘러갔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갈대배를 타다.


‘바루사’라고 부르는 갈대배는 마치 베니스의 곤돌라와 비슷해 보이는데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가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게만 보였다. 보통 4.5m의 길이로 중앙이 넓고 양끝이 좁아지며 뱃머리에는 퓨마를 상징하는 머리 모양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20여분이 지나 건너편 있는 좀 더 큰 갈대 섬에 도착했다. 맷돌 비슷한 돌로 우루족의 노파가 곡식을 빻고 있었다. 이곳 우로스 섬에서는 모든 생활이 원시적이다. 갈대 섬에서 느리게 살아가는 주민들은 근심과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들의 원시적인 생활을 보고 있노라니 법정스님의 '소욕지족(少欲知足)'하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고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법정,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 중에서 


스님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할 수 있으면 얻는 것보다 덜 쓰며 살아야 한다. 우로스 갈대 섬에서 살아가는 우루족의 삶이 바로 그런 모습처럼 보였다. 


전망대에 올라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니 하늘과 호수가 끝없이 맞닿아 있었다. 바다인가 호수인가? 정말 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었다. 


갈대 전망대와 맷돌


우리는 우로스 섬을 출발하여 아만타니 섬으로 향했다. 긴 토토라 통로를 빠져나와 넓은 호수로 나오니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파도가 일렁이는 호수는 바다로 변하고 만다. 큰 파도에 흔들거리는 작은 보트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허지만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여행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전율과 스릴을 느꼈다.    

 


바다처럼 넓은 티티카카 호수에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하늘과 호수가 맞닿아 있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

바다인가 호수인가?    


호수 위로 구름이 둥둥 떠가고

내 마음은 푸른 호수 속에 잠겨있네


어머니의 대지 

맑고 푸른 하늘

깊고 투명한 호수


호수 속 깊은 심연에서

나는 문득 어머니의 모습을 보네

아아, 어머니의 호수 티티카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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