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미루어온 아프리카 종단 여행
아프리카 종단 여행기를 시작하며...
"하쿠나 마타타!"
한 달간 아프리카 여행을 하고 나서 아프리카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지요. 아프리카는 아시아 대륙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고, 분쟁지역을 포함하면 61개 국가(분쟁지역 제외 55개국)에 약 11억 명(2014년 기준)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 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거대한 아프리카를 단 한 번만의 여행으로는 도저히 그 빙산의 일각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대륙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 인 셈이지만, 두 번의 여행은 사하라 사막 북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수단 국경 인접지역인 아스완과 아부심벨, 그리고 튀니지를 거쳐 리비아의 사하라 사막 깊숙이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주로 사하라 사막지대 여행으로 사하라 사막 남쪽 아프리카 여행은 이번의 처음입니다. 사실 아프리카 여행은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을 여행하는 것이 진정한 아프리카의 맛을 볼 수 있는 있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프리카 여행기를 쓴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곤 합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서야 할지 망설이다가 그만 컴퓨터를 꺼버리기를 수차례. 참 다른 어떤 여행지보다도 아프리카 대륙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 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케냐의 작가 비냐방가는 아프리카에 대하여 글을 쓸 경우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크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며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어느 여행지이던지 첫 여행, 첫 느낌이 가장 인상에 남는 것 같습니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이지만 내가 본 대로 들은 대로 아프리카에 대한 느낌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려고 합니다.
마침내... 아프리카로 떠난다.
하지만, 아내를 집에 남겨두고 홀로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어쩐지 마음이 짠~ 하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만 타도 아픈 곳이 싹 나아버린다는 아내가 아니던가? 더욱이 아프리카 종단 여행은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오늘 나 홀로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떠난다.
여행으로 건강은 되찾은 아내의 유일한 취미와 희망은 여행을 떠나는 것 하나다. 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아내는 여행가방을 거실에 내놓고 이것저것 짐을 싸며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는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그때부터 아내의 온몸에는 엔도르핀이 펑펑 돌며 생기를 찾는다. 나는 아직까지 아내를 집에 두고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이번 여행도 당연히 아내와 함께 떠나야 했다. 그런데 아내가 챙겨주는 여행가방을 들고 홀로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프리카 종단 여행은 내가 오래전부터 그려왔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이다. 나는 1995년도에 튀니지를 경유해서 리비아 사하라 사막 깊숙이 위치한 사리르(Sarir)라는 지역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다. 현지인의 이야기로는 사하라 사막 지하 깊은 땅속에 나일강이 200년 동안 흐르는 유수량이 1만 년 전부터 잠자고 있다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은 한때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토지였는데 지각변동에 의하여 물과 동식물이 함몰되어버리고 기후변동으로 인해 사막이 되었다고 한다.
가다피 정권은 이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북부 지중해 해안에 있는 도시와 농경 수로 공급하기 위해 지름 4m, 길이 7.5m, 총길이가 4,000km에 달하는 리비아 대수로(Great Manmade River)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의 동아건설이 건설하고 있는 리비아 대수로(Great Manmade River)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동아건설은 사리르 취수장에서 벵가지까지 955km에 달하는 송수관 라인을 건설하고 있었다. 지하 500m를 뚫고 내려가면 거대한 지하수가 잠겨 있는 호수에 닿게 된다고 했다. 리비아는 사하라 사막 지하호수 곳곳에 1,300개 이상의 우물을 파서 무게 75톤에 달하는 송수관을 묻어 지중해 연안을 끌어들이는 대수로를 건설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우물을 파는 과정에서 갖가지 화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사막을 파 내려가면 나무화석과 동물의 뼈 등이 검출되었다. 당시 나는 사막을 걷다가 우연히 모래 속에 묻힌 작은 나무 화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하라 사막을 여행한 후부터 나는 아프리카 땅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아프리카에 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덴마크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카렌 블릭센이 문명세계를 버리고 17년 간 아프리카에 살다가 덴마크로 돌아가 저술한 책이다. 아프리카의 자연과 동물, 아프리카 부족과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 그리고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데니스와 로맨스가 눈길을 끈다.
어릴 때부터 아프리카를 동경한 제인 구달은 1957년 케냐로 건너가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탄자니아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평생을 침팬지 연구에 바쳤다. 그리고 아프리카 정글에서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 한 영홍의 메시지를 '희망의 이유'라는 책에 담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우리가 조금씩 함께 노략한다면, 지구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고 역설한다.
생텍쥐페리는 비행 중 아프리카 사막에 불시착을 하여 우거진 바오밥 나무와 별이 쏟아지는 사막에서 불세출의 저서 '어린 왕자'를 탄생시켰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에서 맞이하는 아침을 알기 전까지는 아침에 눈을 뜬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서른네 살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했다. 1974년 미국의 고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은 에티오피아 하다르 계곡에서 인류 최초의 인간으로 추정되는 루시(Lucy) 화석을 발견하였다. 키 120cm, 몸무게 20kg의 루시는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발견된 사람 유인원이다. 나는 ‘최초의 인간 루시’를 읽으며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에 빠져 들어갔다.
그렇다고 내가 전혀 아프리카 땅을 밟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1년에는 아내와 나는 터키와 그리스를 거쳐 이집트 일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러나 이집트는 어떻게 보면 온전한 아프리카 땅이라기보다는 지중해와 유럽에 가까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는 크게 이집트 지역과 사하라 사막 이남의 ‘블랙 아프리카’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과거에 사하라 사막은 유럽인들에게 거의 통과할 수 없는 천연 장벽이 되었다. 유럽인들이 이 천연 장벽을 통과한 것은 포르투갈 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 희망봉에 도달한 15세기 말이었다. 아랍의 지리학자들은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을 흑인들의 땅(Bilad-as-Sudan)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아프리카는 수단에서 열대와 적도를 지나 남부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흥미를 느끼며 가고자 하는 아프리카도 바로 이 지역이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여행을 '여행의 끝판왕'이라 부른다. 허지만 아프리카는 점점 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지붕인 킬리만자로 정상에 20m 넘게 쌓인 만년설은 이미 85퍼센트가 녹아 사라져 버렸다. 수천 년을 버티며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바오밥나무도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죽어가고 있다. 푸르른 초원과 흙먼지가 휘날리던 아프리카 초원은 아스팔트로 점점 덮이며 흰코뿔소 등 희귀 동물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이 더 이상 파괴되기 전에 나는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
나는 일찍이 아프리카 여행을 내 여행의 버킷리스트에 담아 놓았다. 그리고 20년 전부터 진정한 의미의 아프리카 땅을 밟기 위해 아프리카 종단 여행 계획에 착수했었다. 그 무렵 나는 잠시 라오스를 여행하다가 빙비엥에서 젊은 배낭 여행자를 만났는데, 그는 아프리카 여행에 앞서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에 티베트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티베트는 4000m를 전후한 고원지대이므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여행을 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면서.
듣고 보니 그의 설명이 옳았다. 나는 아프리카 여행 계획을 잠시 접 어두 고아 내와 함께 80일간의 티베트 일주 여행을 떠났다. 해발 '0'm의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시작하여 육로를 통하여 윈난성으로 건너가 차마고도를 통해 티베트 라싸, 간체, 시가체 등을 여행하고, 티베트에서 다시 육로를 통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초모랑마)를 넘어 네팔, 인도 다람살라, 라다크까지 티베트 문화권을 답사하는 대장정이었다. 이 여정은 고희를 넘긴 지금의 나이로서는 도저희 갈 수 없는 오지여행이었다. 티베트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는 다시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떠날 준비를 서서히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갑자기 심장병이 악화되어 아프리카 여행은 또다시 미루어지게 되었다.
2008년도에 아내가 심장이식까지 받게 되자 우리들의 모든 여행은 잠시 중단되어야 했다. 그러나 심장이식을 받은 지 1년 후 다행히 아내는 다시 여행을 떠나도 좋은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 나는 건강이 회복된 아내와 함께 제주올레길 240km 완주를 비롯하여 한라산 백록담, 지리산 천왕봉, 설악산 대청봉, 그리고 백두산 천지까지 등정했다. 그리고 급기야 해발 3~4000m가 넘는 히말라야를 넘으며 시킴과 부탄여행을 다녀오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여행을 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회복되었던 것이다.
아내의 건강 회복을 계기로 우리는 2014년도부터 다시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황열병 예방접종>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또다시 아프리카 종단 여행의 발목을 잡았다. 10년 유효기간이 지나 다시 예방접종을 하여야만 하는데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아내는 황열병 주사를 맞으면 황열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했다. 황열병 주사는 생약이기 때문에 면역이 약한 사람은 황열병 생균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아프리카 여행은 또다시 좌절되었다. 이래저래 우리들과 아프리카 여행은 인연이 멀어진 듯했다.
작년 12월 신당동 회봉이라는 토속음식점에서 부탄으로 배낭여행을 함께 떠났던 여행 마니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병용 아우가 아프리카 여행을 꺼냈다. 그는 내 블로그에 게재된 세계일주 여행기 열열 독자로 블로그를 통해서 만난 사이다. 그는 남대문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몸이 셋이라도 부족할 정도로 매우 바쁜 사람이다. 그런데 내 블로그를 통해서 여행문화를 알게 되었고, 삶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새벽에 사업장에 나가면 컴퓨터를 켜고 제일 먼저 내 블로그에서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는 것에서부터 하루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온 가족 다섯 명을 이끌고 유럽여행을 다녀왔단다. 사업장을 단 하루를 빠져도 큰 일 나는 줄 알았는데 15일 간이나 비어도 아무 일 없이 사업이 잘 돌아가더라는 것.
그 후로 2012년 5월에는 나와 함께 15일간의 인도, 부탄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나로 인하여 점점 여행병에 물든 그는 1년에 한 번씩 한 달 정도의 배낭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행 마니아가 되었다. 그런 아우가 대뜸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형수님, 찰나 형님이 아프리카 여행을 가는 것을 윤허(?) 해 주세요. 형수님과 함께 가지 못해 죄송하지만 내년엔 형님과 함께 꼭 아프리카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생각해 보신다는 말씀은 윤허를 해주신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하하하.”
“형수님이 가지 못할 형편 때문에 찰라 형님까지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겠죠?”
그렇게 해서 나의 아프리카 종단 여행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금년 7월에 떠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마침 동석을 했던 정애자 선생님이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 선생님 친구 한 분도 함께 합류하기로 하고, 병용 아우 6촌 동생 커플도 합류하기로 하여 6명의 소그룹이 형성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항상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내를 두고 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황열병 예방접종 때문에 아프리카 여행이 금단의 지역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