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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Aug 03. 2019

67. 하루 사계절이 다 있는
지구상 가장 긴 나라

칠레 - 아리카

남북 4,300km에 달하는 칠레의 지형

아리카는 칠레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8만 명의 작은 도시다. 초석(硝石-niter)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아타카마 사막과 아리카 항은 볼리비아 영토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볼리비아는 칠레와의 태평양 전쟁으로 바다로 나가는 길목인 아리카 항을 칠레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볼리비아 사람들은 아리카 항을 빼앗긴 지 120년이 지났는데도, 마음속에는 아직도 이 땅이 자기네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다. 볼리비아는 언젠가는 다시 아리카를 되찾는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티티카카 호수에 해군이 주둔시키고 있다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 없는 볼리비아는 발전의 발목을 칠레에게 잡히고 있다. 초석으로 인해 발발한 태평양 전쟁 이후 아리카 항을 빼앗긴 이후 칠레는 볼리비아 사람들이 칠레가 가장 미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스와 터키, 영국과 프랑스 등  가까운 나라끼리 서로 친숙하게 지내야 할 텐데 세상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인접 국가끼리 서로 앙숙이 되어 가장 미워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칠레만큼 지형 적로 매우 흥미로운 나라도 없을 것이다. '칠레(Chile)'는 아이마라어로 ‘대지가 끝나는 곳’이란 뜻이다. 칠레는 페루 국경에서부터 안데스 산맥을 따라 남극권에 이르는 마젤란 해협까지 갈치처럼 가느다랗게 뻗어 있는 지구 상에서 가장 긴 나라다. 남북의 길이는 무려 4,300km에 달한다. 


남북 간의 위도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칠레는 연중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다. 북쪽은 지구 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이 있고, 수도 산티아고가 있는 중부는 온화한 날씨 대이며, 남극에 가까운 파타고니아는 춥다. 그러므로 칠레는 온화하고, 덥고, 선선하고, 추운 날씨를 하루에 다 경험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또 이웃나라인 아르헨티나와 6,000m급 안데스 산맥이 장연적인 경계를 이루고 있다. '안데스'는 잉카어로 '구리(copper)'를 뜻하는 말로 예부터 안데스 산맥에는 구리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세계 최대 구리 광산이 분포되어 있는 칠레에는 약 40여 개의 대규모 구리 광산이 있다. 


또 최남단 해안에는 들쭉 날쭉한 피오르 해안과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마젤란 해협이 있다. 남극으로 향하는 푼타아레나스가 있고, 남태평양에는 다니엘 디포우의 소설 무대인 로빈슨 크루소 섬과 수수께끼의 모아이 상이 있는 이스터 섬이 있다. 우리는 칠레의 최북단 아리카에서 아타카마 사막을 거쳐 칠레의 땅 끝 파타고니아까지 간  후 남태평양의 절해 고도 이스터 섬까지 여행을 할 예정이다. 


아리카는 연중 평균기온이 18~23°C로 온화하여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그동안 해발 3,000~5,000m 고지대에만 머물다가 오랜만에 바다가 인접해 있는 낮은 지역으로 내려오니 우선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로도비아리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느긋해진 마음으로 터미널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연원한 봄의 도시 아리카 다운 타운


“이거, 야단 났는데요!" 

“또 무슨 일이데?"

“스웨터가 없어졌어요.”

“버스에 두고 온 것 아닌가?”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더니 스웨터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젠 야단 났다는 말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랬다. 갑자기 피로가 엄습해 오는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아 다행이지만 어쨌든 피곤한 일이었다.


무려 12시간이 넘게 장거리 버스여행을 하고 온 데다가 해발 5~6,000m 고지의 건조하고 산소가 희박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오면서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나있는 상태였다. 버스를 내렸던 곳으로 가보니 이미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티켓 매표소로 가서 금발의 여직원에게 버스에 스웨터를 두고 내렸는데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여자 매표원은 매우 싹싹했다. 


“어머, 그래요? 아마, 지금쯤 버스가 정비공장으로 갔을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요?”

“잠깐만요… 나와 함께 정비공장까지 가서 찾아봅시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천만예요.”     


그녀는 하던 일을 옆 사람에게 맡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카페에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를 따라 주차장으로 갔더니 하늘색 승용차 문을 열며 옆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내가 그녀의 옆 자리에 앉자 그녀는 엑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으며 버스터미널을 출발했다. 아내가 스웨터를 잊어버렸다고 말할 때에는 솔직히 짜증이 났지만, 칠레의 미인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게 되니 갑자기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참 사람 마음은 이렇게 간사하다. 그녀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축구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2002년도에 한국에서 열렸던 월드컵축구는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아, 그래요? 축구를 좋아하시는 모양이지요?”

“물론이지요. 칠레 사람들은 축구를 다 좋아하지요".

"남미의 모든 나라는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월드컵을 치른 이후 우리 한국도 축구 붐이 크게 일어나고 있지요."

"특히 이태리 전에서 두 골을 넣은 그 선수는 정말 멋이 있었어요. 미남에다가 머리도 삼손처럼 길게 길었고요. 호호호.” 

"하하, 그랬었군요. 안정환이라는 선수지요."


정비공장은 터미널에서 생각보다 상당히 멀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2002년도에 한국에서 열렸던 월드컵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모릴레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붉은 악마 응원단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응원을 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붉은 악마 응원단들이 길거리에  널려 있는 그 많은 쓰레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치우고 돌아가는 국민들은 아마 이 지구 상에 없을 거라는 말도 했다.     

 

“그런 일은 우리나라에선 보통 있는 일이지요.”

“어머! 정말요?”

“그럼요.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자신들의 동네 길을 쓸고 청소를 한답니다.”

“와! 우리나라는 언제 그렇게 될까?”     


내가 한 술 더 떠서 약간 부풀려서 하는 이야기에 그녀는 더욱 감동을 받은 듯했다. 칠레 국민들은 축구를 지독히도 좋아하지만 관중의 매너는 빵점이라고 했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던지, 지던지 축구경기가 끝나고 나면 으레 관중들끼리 서로 싸워서 길거리의 간판이나 술집이 부서지는 사고가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기분이 좋아서 한잔, 지면 분통이 터져서 한잔… 그러다 보니 다혈질인 축구 펜들은 사고를 치기 마련이라는 것. 그녀는 아들만 셋이 있는데, 절대로 축구선수는 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확실히 월드컵 이후에 한국에 대한 남미 인들의 인식이 매우 좋아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까다롭던 남미 국가들의 비자도 면제 협정을 속속 체결했다.  정비공장에 도착을 해서 버스 안을 뒤져보니 아내가 탄 좌석 위의 시렁에 다행히 스웨터가 그대고 놓여 있었다. 버스 안에서 스웨터를 흔들며 나오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밝게 웃었다. 


나는 다시 그녀의 옆 좌석에 앉는 특권을 누리며 터미널로 돌아왔다. 미인 곁에 앉아 시내 구경을 하다 보니 장거리 버스여행의 여독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터미널로 돌아온 나는 스웨터를 둘둘 말아 뒤에 감추고 아내 곁으로 갔다. 




“왜 그렇게 늦었어요? 스웨터는 찾았나요?”

“정비공장이 생각보다 꽤 멀었어요. 그런데 스웨터가 없어요. 누가 가져갔나 봐.”

“세상에! 그런 걸 다 가져가다니…”

“당신 스웨터는 없었는데 대신 이게 있더라고.”

“아니, 이건 내 것인데… 날 골탕 먹이고 있는 거지요?”     


스웨터를 받아 든 아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작은 물건이지만 다시 찾았다는 안도감이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스웨터를 찾아준 모릴레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끈이 달린 볼펜 세 개를 선물로 주었다.     


“작은 선물이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볼펜이니 세 아들 목에 걸어 주세요.”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다니. 감사합니다.”     


그녀는 크고 아름다운 눈을 위로 치켜뜨며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작은 선물에도 아주 기뻐하는 서양인들의 솔직한 감정 표시는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표현은 아무리 남발을 해도 부족하지 않는 멋진 말이다. 볼펜 세 자루를 받고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모릴레스의 표정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스웨터를 찾아든 우리는 갑자기 기운을 되찾은 듯했다. 아내는 스웨터를 찾아서 기운을 찾았겠지만, 내가 기운 찾은 것은 아름다운 칠레 미녀의 친절 덕분이었다. 칠레에 도착한 첫날부터 우리는 행운을 맞이하고 있었다. 볼리비아 라파스에 도착한 첫날 택사 강도 악당을 만났지만, 칠레 아리카에서 우리는 천사 같은 모릴레스를 만났다. 앞으로의 여정도 순탄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천사 같은 모릴레스로부터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로 가는 밤 11시 버스표를 샀다.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7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큰 배낭을 카페에 맡겨두고 ‘영원한 봄의 도시’ 아리카 시내 산책에 나섰다.  

    

아리카 시내는 몇 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다. 번화가인 "9월 8일", "5월 21일" 거리는 레스토랑, 은행, 숍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민예품을 파는 골목은 충분한 눈요기 구실을 해주었다. 중앙광장인 콜론광장으로 나가면, 스페인 콜로니얼 스타일의 건축양식과는 다른 앙증맞은 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산 마르코 교회는 에펠 탑을 설계한 건축가 에펠이 설계한 것이라고 하는데 아리카에서 에펠의 작품을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하얀 벽에 밤색 철재로 심플하게 장식한 내부가 매우 독특했다.   


에펠이 설계한 산 마르코 교회

   

"교회가 참 앙증맞게 예쁘군요."

"에펠이 여기까지 와서 교회건물을 설계하다니 놀라운 일이야."     


교회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감사기도를 드린 후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콜론 광장에는 남국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거리의 꽃들을 감상하며 몇 발자국 걸어가니 이윽고 끝없이 넓은 태평양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국의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태평양을 바라보게 되니 내 조국과 아이들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영이야, 경이야, 아빠와 엄만 잘 있다! 너희들도 무사하겠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잘 있어라!”

"애들아,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있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태평양을 향하여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쳐 불러보았다. 그러나 파도는 곧 우리들의 소리를 삼켜 버렸다. 우리는 아이들의 이름을 절규하듯 큰 소리로 몇 번 더 불렀다. 와락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이들만 두고 집을 떠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카 구릉과 태평양의 일몰


바다는 어머니의 품처럼 언제나 좋았다. 바다는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부드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나서 그런지 갑자기 허기가 졌다. 우리는 아리카 구릉을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해물 탕을 싼 값으로 맛있게 잘한다는 마리시스코(Marisco)라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콜론 거리와 매이푸 거리 모퉁이에 있는 레스토랑을 찾느라 꽤 애를 먹었는데 음식 맛은 기대치 이하였다. 우린 칠레산 포도주를 한잔씩 들고 축배를 들었다.    

  

“페루의 도둑들아, 라파스의 강도들아, 이제 전생에 진 너희들 빚을 다 받아갔겠지? 사람 잡는 고산병도 그만 물러가라! 자, 우리의 앞날을 위하여 건배!”

“호호호, 당신 벌써 술 취했나 봐요. 술주정 같은 소리 같아요. 건배!”


아리카 기념품 숍


탕탕! 내가 마치 주술을 외듯 포도주 잔을 부딪치며 축배를 들자 건너편에 홀로 앉아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던 노인이 씽긋 웃으며 잉크를 보냈다. 아내의 말처럼 나는 포도주도 마시기 전에 벌써 취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먹은 뒤 아내는 식당 근처에 있는 야시장에 들려 사막에서 먹을 과일을 잔뜩 샀다. 과일이 싱싱하고 가격도 쌌다. 아내는 아타카마 사막은 과일 값이 비쌀 거라고 하면서 귤, 포도 등을 골라 담는 바람에 내 배낭만 점점 더 무거워졌다. 밤 11시. 로도비아리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산 페드로 아타카마 사막을 향해 태평양 해변을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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