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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Aug 02. 2019

66. 라파스에서 안데스를 넘어 칠레 아리카로 가다

볼리비아 라파스-칠레 아리카


라파스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 아리카로 가는 길

안데스 산맥을 넘어서 칠레 아리카로 가는 장거리 버스를 탔다. 칠레 터어 버스는 볼리비아 버스보다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다. 운전사와 차장도 복장을 아주 깔끔하게 차려입어서 산뜻하게 보였다. 버스의 엔진 소리조차 볼리비아 버스와는 매우 부드럽게 들렸다. 어쩐지 이 버스는 고장이 나지 않고 목적지까지 잘 가리라는 믿음이 갔다.     


버스는 달팽이처럼 돌돌 감긴 길을 돌아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마치 블랙홀 같은 라파스 시내를 서서히 빠져나갔다. 길이 워낙 가파르다 보니 점점 고도를 높여가며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밤에는 은하계의 별처럼 아름답던 빈민촌 엘 알토가 날이 밝은 아침에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진드기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보였다. 이처럼 풍경은 때와 느낌에 따라 달라져 보인다.     


라파스 엘 알토 

해발 4000m의 고원으로 올라온 버스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벌판을 달려갔다. 칠레 아리카로 통하는 2차선 도로는 곳곳이 패어있고 중앙선도 없었다. 라파스에서 500km 떨어진 태평양에 위치한 아리카까지는 버스로 1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길 사정에 따라 20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아리카는 원래 볼리비아 영토였으나 1879년 칠레와 벌어진 ‘태평양 전쟁’으로 바다에 접한 항구를 빼앗겨 버렸다. 볼리비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구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면서도 남미에서 가장 못 사는 전락하고 만 나라이다.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다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182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한 이후 200여 차례의 쿠데타로 190번이나 정권이 바뀔 정도로 불안한 정치가 큰 요인도 크다. 그러나 국제교역의 핵인 아리카 항구를 잃어버린 손실은 매우 컸다.      


버스는 점점 고도를 높여갔다. 도로에는 대형트럭이 위태롭게 중앙선을 스치고 지나갈 뿐 자동차도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어쩌다가 양이나 소를 몰고 가는 원주민들이 보이고, 라마들이 풀을 뜯다가 긴 목을 쳐들고 지나가는 멀뚱히 쳐다보며 버스를 구경했다.      


정오가 되자 버스 차장이 볼리비아 측 국경 검문소에 도착을 하였다고 하며 여권을 들고 모두 내리라고 했다. 라파스에서 330km 떨어진 볼리비아 국경 검문소 탐보 퀘마도(Tambo Quemado) 도착했다. 라파스를 출발한 지 5시간이 넘어 걸리고 있었다.  탐보 퀘마도는 해발 4660m 달하는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다.


버스에서 내려 한 발자국 움직이는데도 숨이 찼다.  10여 채의 원두막 같은 집이 있고, 이민국 사무소, 세관이 있는 작은 마을에는 노점상들이 앉아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출국 절차를 밟고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했다. 이번 여정 중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나라였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볼리비아 국경

   

“여보,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볼리비아 땅도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움이 남네요. 우유니 사막을 가지 못한 것도 아쉽고.”

“우유니 사막이고 뭐고 간에 전 지옥 같은 볼리비아를 떠나니 좋기만 한데요.”

“허허, 그래도 볼리비아 국경에서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볼까?”

“그거야 좋지요.”     


우리들을 가족처럼 돌보아 주었던 밀렌카 모녀와 잉카 식당의 C여사가 눈에 어른거렸다. 심지어 우리를 괴롭혔던 택시강도까지도 이젠 한 장의 추억거리로 새겨지고 있었다. 세상일은 지나고     나면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다 추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우리는 라파스의 택시 강도 때문에 라파스를 울고 들어갔다가 우리들의 수호천사 밀렌카 가족과 잉카 식당 C여사 덕분에 웃으며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하고 있었다.    


 

볼리비아 국경을 지나 5km 정도를 가니 국경검문소 충가라(Chungara)에 도착했다. 충가라는 볼리비안 국경보다 더 높은 해발 4900m에 위치하고 있다. 칠레의 국경검문소는 매우 까다로웠다. 짐을 모두 내려서 풀어보고 하나하나 엄격하게 검사를 했다. 입국 스탬프를 찍어주는 절차도 매우 느렸다. 줄을 서서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자 세관원은 내 여권을 한참 동안 이리저리 들여다보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른 세관원이 오더니 내 여권과 아내의 여권의 들고나가버렸다. 


“아니, 왜 그러지요?”

“글쎄, 나도 모르겠네.”


세관원에게 이유를 물으니 밖에 나가 부를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했다. 불안 해 하는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니 코앞에 만년설에 뒤덮인 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검문소의 바로 옆에는 충가라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호수에는 플라밍고들이 한가로이 먹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아니, 이곳에도 플라밍고가 있나 봐요!”

“저 호수는 소금호수임에 틀림없을 거야.”


칠레국경 충가라 와 충가라 호수(해발 4900m)


호수 가까이 가서 손으로 물을 떠서 맛을 보니 역시 매우 짠맛이 났다. 태양이 작열하는 안데스의 산맥은 거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지대이지만 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5,000m 고지에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이 지역에는 볼리비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볼칸 사자마(Volcan Sajama, 6542m)를 중심으로 사자마 국립공원이 펼쳐져 있고, 칠레 쪽에는 라쿠카 국립공원이 이어져 있다. 화산지대인 이 지역은 온천과 간헐천이 수없이 솟아나고 있다. 소금호수에는 플라밍고 일종인 홍학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리 이름을 호출하여 데스크로 갔더니 세관원이 마침내 우리 여권에도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내가 왜 그렇게 늦느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동안 한국인이 이 국경을 넘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서 비자가 면제되어 있는지 조회를 하느라고 늦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누가 이 고생을 하며 라파스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리카로 넘어가겠는가?   

  

칠레 국경을 넘어가자 이제 아리카로 가는 급격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고 곤두박질을 치며 내려가다 보니 오금이 저려 그만 오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마치 행글라이더를 타고 급강하를 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여행은 때 아닌 곳에서 스릴과 재미를 만끽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칠레 국경을 넘자 해발 5000~6000m의 안데스 산맥이 가파른 급경사를 이루며 갑자기 태평양 쪽으로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절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화산 연기가 타오르는 산이 바로 가까이에 보이는가 하면, 주변은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같은 메마른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점점 낮은 계곡으로 내려오자 물이 흐르고 푸른 색깔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곡지대를 지나가자 곧 짠 바다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바다 냄새가 나요!”

“드디어… 태평양에 도착을 했군!”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라파스를 출발한 지 13시간 만에 마침내 칠레 최북단의 도시 아리카에 도착했다. 성능이 좋은 칠레 버스 덕분에 별 사고 없이 우리를 태평양 연안의 도시 아리카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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