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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Aug 05. 2019

69.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오아시스 마을

칠레 -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가마솥처럼 지글지글 끓는 듯한 사막 위에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오아시스 마을을 본 순간 문득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 속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황량한 사막 속에 살고 있는 푸른 나무들이 신비롭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 나무 밑에는 사막 속에 가장 진귀한 보석인 ‘우물’이 묻혀 있기에 푸른 나무들이 살 수 있다. 어린 왕자의 말처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우물처럼 ‘보이지 않는 그 무엇’들이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볼리비아에서 우유니 사막투어를 마치고 칠레로 입국하거나, 반대로 칠레에서 우유니 사막으로 넘어가는 경로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 마을이다. 해발 2,440m 고원의 아타카마 사막 중앙에 위치한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숨은 지주 같은 ‘오아시스’ 마을이다.


아타카마 사막 오아시스 마을 산 페드로 아타카마 아르마스 광장


이렇게 건조한 사막에서 물이 난다는 것이 그저 경이롭게만 보인다. 칼라마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마을은 2,000여 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잉카시대 이전부터 아타카메뇨족이 처음 정착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주민들은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거나 민박을 운영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침 9시 45분, 버스가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민박을 유치하러 온 주민들이 안내장을 나누어주며 서로 자기 내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아리카를 출발하여 밤새 달려온 냉방 버스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지글지글 끊는 가마솥처럼 뜨겁다. 이곳은 낮에는 뜨겁고 밤이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일교차가 매우 심하다.


불볕더위에 숨을 쉬지 못하고 서 있는데 솥뚜껑처럼 큰 손을 가진 거인 원주민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싸고 좋은 방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짧은 구레나룻을 기르고 우직하게 생긴 그는 목소리도 굵은 바리톤 음성이었다. 솔직하게 보이는 그가 어쩐지 믿음직하게 보였다. 우리는 그의 고물 봉고차를 타기로 했다. 그는 민박집을 알선해주고 아타카마 사막 투어를 해주는 운전사 겸 안내인이라고 했다. 십여 명의 여행자들이 그의 봉고차를 타고 민박집을 찾아갔다.


그는 무료로 마을의 민박집을 여기저기 순회를 하며 여행자들을 내려주었다. 대신 사막투어를 이용할 때는 자기 봉고차를 이용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쩐지 믿음직하게 보인 그에게 나는 오늘 오후 4시에 떠나는 ‘달의 계곡’ 투어를 신청했다.


민박집을 순회하는 동안 여행자들은 마음에 드는 민박집을 골라 하나둘 내렸다. 마지막으로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루나 모녀와 우리가 봉고차에 남았다. 아내는 루나 모녀가 머무는 곳에 우리도 함께 머물자고 했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두 모녀는 인상이 좋고 우리에게 싹싹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온 루나라고 해요. 여긴 저희 어머니시고요.  산치아고에 살고 계시는데 '달의 계곡'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왔어요."

"아, 그래요? 저희 들은 코리아에서 왔어요. 반갑습니다."


루나(luna)는 스페인어로 달이라는 뜻인데 루나는 보름달처럼 둥그렇고 예쁜 여인이었다. 아타카마 사막을 찾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 ‘달의 계곡(Valle de Luna)’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의 계곡'은 칠레 사람들도 평생에 한번 와 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다.


우리는 중심가에서 다소 떨어진 엘 카르멘(El Carmen)이라는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루나의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에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 민박집에서 머물렀다고 했다. 우리는 털보 운전사에게  '달의 계곡’ 투어를 신청을 하고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고맙습니다. 오후 4시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푹 쉬세요."

"오케이, 감사합니다."


털보 운전사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흙먼지를 날리며 사라져 갔다. 엘 카르멘 민박집은 원주민이 경영하는 조그마한 게스트 하우스다. 우리는 골방처럼 생긴 작은 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맨 먼저 냉장고를 찾아 아내의 인슐린 약을 보관했다. 이처럼 더운 곳에서는 인슐린이 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원주민 스타일의 전통 부엌에는 다행히 아주 작은 냉장고가 있었다. 엘 카르맨 민박집은 하룻밤에 4,000페소로 아주 저렴했다. 나는 이 숙소에서 이틀간 머물기로 했다.   


17세기에 세워진 산 페드로 성당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아르마스 광장으로 걸어 나갔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마을이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 걸어 다니기가 힘들었다. 오아시스 마을 중앙에는 작지만 콜로니얼 식의 아르마스 광장이 있고, 그 옆에는 온통 하얀색으로 칠한 산 페드로 성당이 서 있었다.


이 성당은 17세기에 지어진 자리에 세워졌으며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의 하나다. 흰색의 종루와 십자가가 푸른 하늘에 돋보이는 이 성당은 돌과 어도비 벽돌을 사용해 지어졌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카르동이라는 선인장을 건축자재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마을의 집들 또한 대부분 낮은 담장에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이 지방의 건축물은 옛날부터 건축 재료로 선인장을 사용하고, 못 대신 라마의 가죽 끈으로 묶어서 사용해 왔다고 한다.   


기념품 숍과 시장 풍경

   

“천연재료를 사용한 지붕이 매우 이색적이네요!”

“아타카마 사막에서 나는 선인장으로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사막에 잘 어울리는 지붕이네!”  


마을 중앙에는 작은 시장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천연 선인장 재료로 만든 지붕이 시원스럽게 보였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진기하게만 보였다. 기념품 등을 파는 시장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우리는 기념품 숍을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아르마스 광장 부근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은 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여행사에 들렸다. 이곳 여행사에서는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투어와 달의 계곡, 그리고 알티플라노 투어를 알선해주고 있었다.


"여보, 여기서 우유니 사막으로 가는 3박 4일짜리 투어가 있는데, 라파스에서 가지 못했으니 여기서 가면 어떨까? 거리도 가깝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은데."

"또 볼리비아요? 전 볼리비아 다시 가고 싶지 않아요."


라파스에서 우유니 사막을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아내를 설득했지만, 아내는 라파스의 택시강도 악몽이 되살아나는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자 아차 내가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유니 대신 아타카마 소금 사막과 알티플라노 1일짜리 투어를 신청했다.


허지만 나는 우유니 사막을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투어를 신청하고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준 원주민 운전사는 '달의 골짜기' 투어는 아르마스 강장에서 오후 4시에 출발을 한다고 했다. 낮에는 햇볕이 너무 따갑고 더우므로 저녁 일몰도 볼 겸 대부분의 투어가 오후 4시를 전후하여 떠난다고 한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오후 4시경 예의 그 원주민 운전사가 털털 거리는 봉고차를 몰고 왔다. 그는 우리를 태우고 나서 다른 여행자들을 태우기 위해 하얀 벽돌담으로 된 좁을 길을 서서히 돌았다. 어도비 벽돌로 쌓아 올린 가옥들과 담은 모두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하얀색 건물 일색인 산 페드로 아타카마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하니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원주민 청년 두 명이 안데스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하얀 아치 사이로 울려 퍼지는 안데스 음악이 사막의 힘든 여독을 풀어주고 있었다. 한 사람은 차랑고를, 다른 한 사람은 북을 쳤다. 두 사람의 목에는 산포냐(피리의 일종)가 걸려 있었다. 그들은 수시로 장단에 맞추어 경쾌하면서도 구슬프게 산포냐를 불어댔다.


세 사람의 여행객이 우리와 합류를 했다. 운전사는 우리를 포함하여 5명을 태우고 달의 골짜기로 떠났다. 달의 골짜기는 산 페드로에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마을 어귀를 벗어나니 눈에 보이는 것은 황량한 그지없는 사막뿐이다. 달의 계곡에 가까워질수록 땅의 표면이 우둘투둘하게 돌출되어 있다. 그 모습이 달의 표면을 닮았다고 하여 달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긴 지구가 아닌 다른 별세상 같아요!”

“우린 지금 달의 골짜기로 여행을 떠나고 있질 않소?”


어디를 바라보나 폐허 같은 흙더미와 황량한 모래사막뿐이다. 건조하고 따가운 살인적인 햇볕은 모든 것들을 고사시켜 버릴 것만 같다. 물은커녕 풀 한 포기도 없었다. 그러나 침묵 속에 싸인 달의 계곡은 신비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죽음의 계곡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


'달의 계곡'으로 가는 사막 풍경


아무리 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일지라도 처음 대하는 풍경에 대한 경이로움은 끝이 없다. 이곳엔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모했던 낯선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문명의 이기에 찌든 여행자들이 갖은 고초를 무릅쓰면서까지 이렇게 머나먼 오지로 오는 모양이다.


사하라 사막과 애리조나 사막, 아라비아 사막, 고비사막과 실크로드 등 지구촌의 사막을 두루 돌아보았지만, 그래도 이처럼 황폐하고 건조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무너진 흙더미는 공상영화에서만 보았던 어느 혹성의 폐허처럼 보였다. 퍼석퍼석한 흙더미가 아름다운 독버섯처럼 날을 세우고 있는가 하면, 끝없는 모래 비탈이 펼쳐진다. 너무 더워 옷을 벗어버린 서양인들 모습은 지구가 아닌 어느 외계에서 온 이방인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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