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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Aug 15. 2019

10년간이나 자전거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이탈리아부부

아르헨티나 -멘도사

멘도사 보데가 와이너리 투어

                                                                                                                                                

배낭여행 중에 공짜로 고급 와인을 시음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이런 기회가 온다면 가급적 참여하여 여독으로 지친 마음과 다리를 쉬며 재충전을 하는 것도 좋으리라. 멘도사는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의 메카이다. 와이너리 견학은 시내에서 가까운 지역에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도 있고, 일반 버스를 타고 가벼운 기분으로 갈 수도 있다. 


호스텔의 털보 지배인은 전통 있는 와이너리를 견학하기 위해서는 풀 데이로 와인 투어를 실시하고 있는 여행사를 통해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의 메카인 트라피체 지역의 보데가를 찾아가라고 권유했다. 그는 메이푸 지역의 루안 데 쿠요에 있는 '보데가 와이너트'를 견학할 것을 적극 추천했다. 와이너트는 트라피체 보데가 보다는 규모는 작지만 편안하게 시음을 하며 아르헨티나 와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것. 우리는 털보 지배인의 권유에 따라 보데가 와이너트로 가는 투어 버스에 올랐다. 


멘도사 시내를 벗어나니 곧바로 여기저기에 포도밭이 보였다. 멘도사 중심가에서 12km 정도 떨어진 보데가 퍼밀리아(Bodega Familia Baberis)에 도착하여 맨 먼저 우리가 찾아간 곳은 포도밭이었다. 싱그러운 청포도가 강열한 햇빛 아래 알알이 익어 가고 있었다. 빈야드에는 안데스 산맥에서 끌어온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고랑을 타고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고랑마다 작은 수문이 있고 시간대별로 일정하게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지하의 와인 숙성 공장에 들어가니 참나무로 만든 거대한 와인 통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와이너리 안내원은 오크통의 숙성 비밀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보데가 퍼밀리아 포도밭. 아콩과거 산에서 눈 녹은 물로 사막에 일구어낸 포도밭이다.


  

오크통은 와인의 맛을 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참나무를 구워서 장인의 손을 거쳐 만든 와인 통은 그 와인이 어떠한 맛을 낼지 중요한 결정요소라는 것. 오크통을 만드는 방법은 최소 150년 이상 된 참나무들을 불 또는 스팀을 가해 널빤지를 휘게 한 후 고리에 걸어 통 모양으로 만든다. 완성된 오크통은 내부를 불로 그슬리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크통에 포도를 으깬 즙을 집어넣고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담가 두면 나무 성분에 포도즙이 녹아들어 각종 나무 향기가 베어든 와인이 서서히 숙성된다. 포도의 고유한 맛(아로마)과 오크통이 혼합되어 만들어 내는 일종의 '부케'향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오크통의 원료가 되는 참나무에는 타닌, 당분, 바닐라, 태운 맛, 커피 향 등 여러 가지 고유 성분들이 들어 있어 각종 향이 든 맛을 낸다는 것. 또한 오크통의 그슬림 정도에 따라 와인은 가벼움(light toast), 중간(medium), 무거움(heavy)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보데가 퍼밀리아 오크통


오크통은 와인 제조사 고유 스타일을 잘 설명하는 언어라고 한다. 따라서 와인 맛은 포도 원료도 중요하지만 참나무의 재질과 잘 구운 참나무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것. 또한 와인 병에 코르크로 사용되고 있는 병마개용 참나무의 아주 미세한 구멍을 통하여 공기가 아주 조금씩 소통되면서 와인 숙성을 도와준다고 한다.    

 

와인의 세계는 정말로 무궁무진했다. 지하 숙성 창고에서 나온 우리는 가장 기다려지는 무료 시음회에 참석했다. 보데가 퍼밀리아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주로 말벡(Malbec-지방에 따라 불리는 포도 품종의 하나로)으로 빚어낸 와인들이다. 생산연도, 포도 수확, 와인 통에 따라 와인 맛이 다르다. 시음하는 와인들은 맛이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한데, 와인의 초짜인 나로서는 그 깊은 맛의 묘미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와인 시음장


보데가 퍼밀리아에서 우리는 호스텔의 대머리 지배인이 극구 추천을 했던 '와이너트 보데가 카바스(Weinert Bodega y Cavas)'로 갔다. 보데가 와이너트에는 더 큰 오크통들이 천장을 찌를 듯 보관되어 있었다. 어떤 오크통은 조각도 아주 정교했다. 이런 오크통은 아마 엄청 비쌀 것 같다.


보데가 와이너트는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방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와인 전문서적에 소개되고 있으며, 섬세함을 자랑하는 유럽 와인에 남미 특유의 향긋함과 경쾌함을 가미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와이너리에는 흡사 와인 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옛날에 쓰던 각종 와인 도구와 통들이 지열되어 있었다. 포도 원료로는 Cabernet Sauvignon (까베르네 소비뇽), Malbec (말벡), Merlot (메를로)를 사용하며 그중에서도 말벡으로 빚은 와인이 이 회사의 자랑거리라고 한다. 와이너트의 와인 브랜드는 Bodega Weinert Malbec, Chardonnay, Merlot, Cabernet Sauvignon, Cavas de Weinert 등으로 출품되고 있다.


보데가 와이너트 


우리의 관심사는 역시 이 회사의 공짜 와인 시음회였다. 이곳에는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시음회에 참석을 하고 있었다. 회사 측의 설명에 따라 여러 가지 와인을 시음하다 보니 은근히 취기가 돌았다. 공짜라고 해서 너무 많이 마시다간 정말 취할 것 같았다. 와이너리를 떠날 때쯤에는 이곳을 견학하는 사람들 모두가 볼이 볼그레하게 취해 있었다. 아내와 나 역시 공짜 와인 시음으로 벌써 꽤 취해 있었다. 우리는 레드와인 1병, 화이트 와인 1병을 사들고 와이너리를 나왔다.     


포도의 품종은 하도 복잡해서 아무리 익히려고 해도 그만 잊어버린다. 그러나 와이너리에서 직접 시음을 해본 말벡(Malbec) 만큼은 잊히지가 않는다. 말벡은 원래 프랑스 보르도에서 온 품종이지만 아르헨티나의 대표 품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말벡은 멘도사의 토양과 기후에 맞게 블랜딩 하여 특유의 맛을 빚어내고 있다. 말벡의 특징은 자두 맛, 건포도 맛, 커피 맛, 초콜릿 맛과 꽃 향을 지녔으며, 타닌 또한 메를로처럼 부드럽고 우아하여 보르도의 말벡보다 전반적으로 구조의 짜임이 탄탄하고 조화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10년째 자전거 여행을 다니고 있는 이태리 부부 


와이너리 투어에서 호스텔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니 이태리인으로 보이는 건장한 부인이 부엌에 토스트를 굽고 있었다. 나시를 걸쳐 입은 여인의 어깨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와우! 저 근육! 육체미 운동을 했을까? 


내가 포도주 코르크를 따며 눈인사를 하자 그녀도 흰 이를 드러내며 생긋 웃었다.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는 이태리에서 온 루시아노와 베레나 부부. 그들은 이 도시에서 단 하루를 머물다 가려고 했는데 녹색의 도시 멘도사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10일째 발목이 잡혀 있다고 했다. 와인의 메카 멘도사란 녹색 도시에 흠뻑 빠져 버려다는 것. 이해가 갔다. 


"도대체 난 이런 도시가 좋아요. 당초에는 그냥 하루 밤만 보내려고 했는데 10일간이나 머물고 있지요"

"아, 그렇군요! 저 역시 이 도시가 너무 좋아 하루 밤 더 머물다 갈 생각입니다."

"겨우 하루 더요? 좀 더 머물다 가지 않고요?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가 않거든요." 

"그렇기는 하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저런, 뭐가 그리 바쁘시지요?"

"뭐, 꼭 바쁘다고 하기보다는 다음 여행지에 호기심이 나서 그렇지요." 

"하긴, 그런데 멘도사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머물렀지요?"

"산티아고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왔답니다."

"아하, 우린 자전거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로 가려고 하는데."

“자전거로 그 가파른 안데스 산맥을 넘는다고요?”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보데가에서 사 온 포도주를 한잔 권하니 베레나와 그녀의 남편인 루시아노는 기꺼이 와인 잔을 받았다. 베레나는 원래 사이클 선수였고, 남편인 루시아노는 사진작가라고 했다. 어쩐지 여인의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했더니. 포도주 한잔으로 친숙해진 우리의 여행담은 더욱 무르익어갔다. 여행자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이렇게 쉽게 친해진다. 배낭여행의 백미는 바로 이런데 있다. 


"아니 베레나 씨, 설마 진짜로 자전거를 타고 안데스를 넘는 건 아니겠지요? 버스를 타고 오는데도 고도가 높아 고산증 때문에 힘이 들었는데…"

"고산증 적응을 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오히려 훨씬 수월해요. 천천히 고도를 높여 가는 데다가 가다가 힘이 들면 쉬어가고, 그래도 힘이 들면 텐트를 치고 자고 가면 되니까요."

"아하, 그렇기도 하겠군요. 도대체 자전거를 타고 얼마나 여행을 하셨는지요?"

"아, 우리는 10년째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네? 10년씩이 나요? 가정과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요?"

"네, 뭐 그리 긴 시간도 아니지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살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짧아요! 우물쭈물하다가 우리들의 인생은 흐르는 강물처럼 금방 지나가고 말거든요. 그래서 우린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로 작정을 했답니다."

"그 하고 싶은 일이 자전거 여행이군요."

"딱 맞추었어요. 짧은 생애 동안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면 전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답니다. 만약에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냥 가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한국의 서울에도 딱 한번 간 적이 있었어요. 88 올림픽 게임 때였지요."

"아, 그래요? 고맙군요. 서울은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서울이요? 우린 대부분 서울 같은 대도시 여행을 좋아하지 않은 편인데, 서울은 그 정도가 더 심했지요."

"어떤 점이?"

"거리는 인파로 넘치고, 활기가 넘쳤지만 사람들은 도대체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어요. 게다가 얼굴엔 웃음이 없고 표정이 무뚝뚝했어요(impolite). 사람들이 거리나 지하철에서 옆구리를 치고 가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리더군요."

"그것 참, 미안하군요."


베레나의 말을 듣다 보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 나름대로는 아주 친절하게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치렀다고 자부하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지만 역시 서울을 찾는 대다수의 관광객들이 느낌은 베레나 부부와 같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지금까지 돌아본 여러 나라에 비해 비교적 우리나라 사람들의 표정은 웃음이 적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미안합니다(Excuse me)"와 "감사합니다(Thank you)"란 말이 인색한 나라. 칭찬에 인색하고, 눈치와 체면에 약하며, 바쁘다는 핑계가 많고,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닌가? 


"뭐, 꼭 서울만 그런 건 아니지요. 대부분의 대도시가 다 그렇다는 거지요."

"아닙니다. 정확하게 잘 보셨습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이태리 로마는 서울보다 더 심해요.”


나는 그녀의 솔직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베레나 씨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본 이태리 로마는 볼만한 관광지를 빼놓고는 인심은 서울보다 훨씬 야박했다. 소매치기와 집시의 공격, 로마 인구와 맞먹는 오토바이의 물결은 정신을 빼놓고 마는 곳이 로마가 아닌가? 


그녀는 포도주를 잘 마셨다고 하면서 남편이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한 장 건네주었다. 호주의 울루루 근처 올가 산에서 찍은 멋진 사진이었다. 두 부부가 올가의 바위에서 자전거를 앞에 놓고 황홀한 일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루시아노 씨가 자전거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


조기에 은퇴를 한 루시아노 씨는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며 멋진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엽서를 만들거나 자료로 제공하여 여행비용을 마련한다고 한다. 베레나는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것이 비용이 가장 적게 든다며 자전거 여행을 극찬했다. 첫째, 교통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둘째, 숙소는 대부분 야영을 하고 대도시에서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잔다. 셋째, 먹는 것은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구입하여 직접 해 먹으니 비용이 크게 들게 없단다. 오히려 로마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생활비가 든다는 것. 역시 맞는 말이다. 소신껏 인생을 살아가는 멋진 부부다. 우린 이메일 주소를 서로 주고받으며 앞으로도 서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우리 여행을 하다가 생각이 나면 메일을 서로 드롭(drop) 해요. 오늘 함께 마신 멘도사 와인 한잔을 기억하면서 말이에요."  

"좋은 말씀입니다. 자전거 타고 안데스 잘 넘어가세요." 


부부 둘이서 10년 간이나 자전거 여행을 다닌다는 베레나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들은 자전거 여행이 생활 그 자체였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다니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정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살아가기엔 너무나 짧은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어깨를 들어 근육을 보여주는 시늉을 하며 활짝 웃으면서 남편의 손을 잡고 총총히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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