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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Aug 16. 2019

가우초들의 영혼이 깃든
팜파스를 달리다

아르헨티나-멘도사-팜파스-부에노스아이레스

    

오후 5시, 멘도사 옴니버스 터미널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행 카타 버스(Cata Bus)를 탔다. 아르헨티나의 장거리 버스는 깨끗하고 쿠션도 좋았다. 바릴로체, 코르도바, 살타, 산후안 등으로 가는 장거리 버스들이 보였다. 멘도사는 서부지역 교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멘도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는 17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오늘 밤도 버스에서 숙박을 해야 하는 긴 여정이다.


멘도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16시간 팜파스를 달려가는 카타버스


버스가 멘도사 시내를 벗어나자 곧 끝없는 벌판이 펼쳐진다. 팜파스 지대다! 하얀 뭉게 구름 덩어리가 마치 거대한 행글라이더처럼 석양 노을을 받으며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팜파스에 펼쳐진 구름의 유희! 구름은 곧 다른 형태로 변했다. 뭉게 구름 밑을 달리다 보니 마치 하얀 솜이불을 덮고 있는 듯 마음이 포근해졌다.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순간에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 속에 행복이 양탄자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노을이 지는 팜파스의 평원에 구름 솜이불을 덮고, 달리는 침대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랄까?


팜파스에 떠 있는 뭉게 구름

 

'팜파스(Pampas)'는 인디오 말로 '평원'을 뜻한다.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지대는 거의 무한대처럼 넓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이르는 이 평원은 아르헨티나 총면적의 5분의 1이나 된다. 브라질 남부 끝에서부터 남극권의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팜파스 지대는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산이라곤 없고 기껏해야 150미터 안팎의 구릉만 있을 뿐이다. 


안데스 산맥에 가까운 서부 팜파스는 건조하고, 대서양 연안으로 이어지는 동부는 강수량이 많아 세계 최대의 농목 지대를 이루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팜파스로부터 얻은 풍요로움으로 인하여 한때 세계경제 5위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사료를 주지 않아도 소떼들을 드넓은 팜파스에 방목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드넓은 팜파스의 목초지는 아르헨티나에 풍요를 안겨주었다. 


과거에 팜파스의 주인공은 당연히 가우초(gaucho)들은 팜파스의 대초원을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소와 양을 치면서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였다. 여유롭게 마테 차를 들이마시고, 기타를 치며 유랑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철조망이 보급되면서부터 가우초들이 말을 타고 누비던 자유로운 팜파스의 모습은 점점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지금은 관광용 가우초들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만큼 팜파스는 가우초들의 삶과 영혼이 깃든 초원이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사방은 암흑으로 변했다. 구름도, 초원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벌써 구름 이불을 덮고 달리는 침대에서 포근히 잠이 들었다. 나는 긴 여정의 회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내가 태어난 고향 남도의 끝 오룡산 자락에 대한 유년시절의 향수와 지금까지 걸어왔던 내 작은 인생의 항로…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내 항로는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이태리 자전거 여행자의 말처럼 나는 얼마만큼 내 마음속의 주인공이 이끄는 삶을 살아왔을까? 체면과 눈치, 성공과 욕망의 끈에 매달려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살아온 삶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내 마음의 주인공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하늘을 지붕 삼고 거친 대지를 침대 삼아 지구촌을 떠돌아다니고 있지만, 호화로운 침대나,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과 인생이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즐겁거나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고, 마지막까지 평정을 유지하면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고, 그들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보는 세상이나, 그 속의 어떤 것도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풀잎조차도 말이다. 내가 아는 것은 나 자신이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며, 내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흥미롭다는 것뿐이다……." 

-윌리엄 헨리 허드슨, '내 마음의 팜파스'중에서-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비슷한 시기에 팜파스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라난 영국의 조류학자 허드슨의 ‘내 마음의 팜파스’란 글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허드슨은 세네 살 어린 시절부터 팜파스 자연 속에 묻혀 인생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16세 때까지 자라났다. 그리고 먼 훗날 그가 죽기 7년 전, 그의 나이 70세를 넘기며 그때를 회상하며 'Far Away and Long Ago(한국어 판 '내 마음의 팜파스')'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소년 허드슨의 눈에 비친 팜파스는 때로는 아름답고, 격정적이며, 두려운 곳이었다. 


그의 글에는 롬바르디아의 포플러 숲과 습지, 비스카차, 아르마딜로, 뱀 새들과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뿔이 얽혀 죽어간 사슴들, 가우초들의 이야기들이 푸른 팜파스의 초원을 배경으로 다시 살아 나온다. 


자연과의 교감이 그에게 주는 형용할 수 없는 충만함과 행복감, 대평원을 오가는 방랑자나 여행객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그의 어머니,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아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소신으로 교육했던 아버지, 만나기만 하면 죽여야 하는 것으로 배웠던 뱀도 살려두어야 할 생명임을 알려준 이웃집 여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 양치기 개 캐사르의 죽음 등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어린아이가 소년으로 성장해 가면서 겪는 정신적 변화 과정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저자가 끝없는 팜파스에서 꿈을 키워오듯 나는 어린 시절 마을 뒤에 있는 오룡산을 오르며 꿈을 키워왔다. 내 고향 뒷산은 초원은 아니지만 그때의 자연은 영원한 배경으로 내 마음에 생생히 살아있다. 


노후에 병상에서 담담하게 어린 시절 팜파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허드슨의 이야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는 실마리를 준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내 인생은 늘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온 삶이 아니었던가?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더 작은 것에 충실하고, 더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고, 행복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어두운 평원을 달리다가 흔들리는 버스 요람에서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들어 창가를 바라보니 파란 초원에 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팜파스 초원에 아침이 찾아온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일부인 풀잎을 뜯어먹다가 사람에게 희생당하는 짐승들의 세계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차라리 경이롭다. 초원엔 누런 곡식이 익어가고 새들이 날아다닌다. 아르헨티나의 영원한 마돈나 아름다운 에비타를 잉태시키기도 한 팜파스답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밤새 16시간을 달려온 평원 끝에 강이 보였다. 라플라타 강이다. 황량한 대초원 끝에 라플라타 강 유역에 건설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것이다. "좋은 공기다!"란 뜻을 가진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의 도시, 남미의 파리에 이윽고 도착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갑자기 활기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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