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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Aug 18. 2019

보랏빛 자카란다 꽃 일렁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산책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


“좋은 공기다!”     


19세기 초엽 산초 델 캄포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상륙하여 첫 발을 딛었을 때, 대초원에 불고 있는 신선한 공기에 감동하여 외친 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란 도시 이름은 ‘좋은 공기다!’란 그의 말이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오랜 항해 끝에 대초원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나면 누구나 그런 기분이 되리라.  


멘도사에서 버스를 타고 1,100km를 달려온 긴 여정 끝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땅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에도 신선한 아침 공기가 흠뻑 스며들고 있었다. 번개와 천둥이 치는 팜파스를 새우잠을 자며 밤새 달려온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비 온 뒤의 청량하고 평화로운 아침! 상쾌한 탱고의 리듬처럼 도시의 풍경이 깔끔하고 질서가 정연하게 잡혀 있었다. ‘은(銀)’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플라타’ 강에 둘러싸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과연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9시 30분, 레티로(Retiro)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코스펠(Cospel)이라는 지하철 동전 티켓을 사들고 지하철 C선을 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수브테(Subte, 지하철)는 A, B, C, D, E 다섯 개의 노선이 있다. 이 지하철은 우리가 우마차를 타고 다니던 100년 전부터 건설된 것으로 아르헨티나의 오랜 역사와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다.


노선도를 보니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밀하우스(Milhouse) 호스텔은 네 번째 정거장인 매이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매이요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한눈에 다운타운 거리가 들어왔다. 호스텔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건물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흥미롭게 보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풍자한 그림들은 도시의 생활상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들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풍자한 거리의 벽화


“호스텔 치고는 좋은 시설이군요!” 


호스텔로 들어서며 아내가 말한 첫 일성이었다. 두심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호스텔은 비교적 깨끗하고 편의 시설도 좋았다. 호스텔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여기서도 룸이 없어 남녀가 따로 구분되어 있는 도미토리를 배정받았다. 아내는 시설도 좋고 도심에 있으니 괜찮다고 하며 이곳에 그냥 머물자고 했다. 아내는 2층으로 나는 3층으로 이산가족이 되어 각각 자기 방을 찾아갔다. 이제 이런 일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샤워를 한 후 식당 겸 홀에서 아내와 재회(?)를 하여 커피 한잔에 간단한 스낵으로 아침을 느긋하게 먹은 우리는 아이들에게 엽서를 썼다. 엽서를 쓸 때에는 언제나 고향의 집과 아이들이 그리웠다. 엽서를 들고 프런트 데스크로 가는데 “Tango Lesson & Tour"라는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호스텔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호스텔에서 탱고 레슨을 받고, 탱고 교수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아르헨티나 탱고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현지 전통 탱고 무도장으로 가서 견학을 하며 현지인과 함께 탱고를 추는 코스라고 했다. 아내는 별 흥미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에 와서 꼭 한번 체험해 보고 싶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은 도로 폭이 144m로 세계 최대라는 ‘7월 9일 거리(Av 9 de Julio)'와 정부청사가 운집해 있는 ‘5월 거리(Av de Mayo)',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플로리다 거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5월 광장’에 들어서니 시야가 탁 트이고 분홍색으로 치장된 대통령 궁이 보였다. 비둘기와 새들이 대통령 궁 앞을 평화롭게 날고 있었다. 5월의 탑 앞에서는 수십 개의 아르헨티나 국기를 리어카 싣고 기념품을 파는 소년이 있었다. 아내는 소년에게 다가가서 에비타 사진이 있는 엽서를 몇 장 샀다.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페론 대통령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에비타는 우리에겐 ‘뮤지컬 에비타’로 더 알려진 여인이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궁


5월 광장 부근을 서성거리다가 우리는 지하철 C선을 타고 산마르틴 역으로 갔다. 광장으로 나가니 영국 탑이 런던의 빅벤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아르헨티나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영국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이 세운 탑이라고 하는데, 1982년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있다. 시계탑에서는 종소리가 맑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거리에는 보라색 자카란다 꽃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길손을 반기고 있었다. 아내는 보라색을 가장 좋아하는데 마침 보라색 자카란다 꽃이 환영이라고 하듯 피어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1월은 봄에 해당되는 계절이다. 우리는 보랏빛 자카란다 꽃 향연으로 일렁이는 거리를 경쾌하게 걸어갔다.  


보랏빛 자카란다 꽃. 11월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자카란다 꽃이 만개하여 향연을 벌인다.


산마르틴 광장에서 플로리다 거리 쪽으로 가는 잔디밭에는 젊은이들이 웃통을 벗어 제치고 선 텐을 즐기고 있었다. 광장의 위쪽에 있는 거대한 나무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무가 얼마나 거대한지 도대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잎사귀 모양은 반얀트리 같기도 한데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이 거대한 나무 밑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웃옷을 벗은 채 누워서 쏟아지는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큰 나무는 처음 봐요?”

“여보, 나무의 정령이 당신을 반기고 있어요.”

“정말요? 이 거대한 나무 앞에 서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들어요.”

“나무가 발산하는 보이지 않는 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요.”


산 마르틴 광장의 거대한 반얀트리 나무


나뭇가지가 얼마나 길게 뻗혀 있던지 굄목을 받쳐서 보호를 하고 있다. 푸른 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술렁이며 하늘거렸다. 우리는 나무 밑에 앉아서 한동안 더위를 식히다가 플로리다 거리로 갔다. 플로리다 거리 초입에 있는 맥도널드 집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은 우리는 화려한 쇼핑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산마르틴 광장에서 5월 대로와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부티크, 기프트 숍,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서점 등이 빼곡히 들어 차 거리는 관광객과 포르테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부에노스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멋있는 항구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스스로 ‘포르테뇨(porteno)’라고 부르며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월등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아르헨티나의 유행은 이 거리를 찾는 포르테뇨들에 의해서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여보, 나 저 가죽지갑을 사고 싶어요?”

“당신도 부에노스의 포르테뇨가 되고 싶은 모양이지?”

“가죽이 부드럽고 값도 싸서 그래요.”

“무얼 주저하세요.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버세요.”

“저기 마테 차 컵도 사고 싶은데요?”

“아하, 저건 우리가 코펜하겐에서 만났던 아르헨티나의  둘리 자매가 쓰던 찻종기 아닌가?”

“맞아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쇼핑가


아내는 아이들 선물로도 좋다며 작은 손지갑 5개를 골랐다. 주인과 가격을 깎는 실랑이 끝에 320페소란 거금을 주고 가죽지갑을 손에 든 아내의 표정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나는 탱고 CD 한 장과 마테 찻종기를 골랐다.  플로리다 거리에서 아이쇼핑을 실컷 하면서 우리는 자카란다 향기가 그윽한 거리를 걸어 밀하우스 호스텔로 돌아왔다.

           

“난, 오늘 밤 탱고 레슨 투어에 참여를 하고 싶은데 당신은 어때요?”

“아침부터 알아봤어요. 당신이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는 것을요.”

“그럼 오케이라는 뜻이겠지?”

“좋으실 때로 해석하세요.”


탱고 투어는 탱고 교수로부터 탱고 레슨을 받고, 저녁 식사 그리고 아르헨티나 전통 탱고 무도회장 견학을 포함하여 1인당 70페소였다. 140페소를 호스텔 카운터에 지불하고 탱고 레슨 티켓을 쥔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만면에 웃음 지어 보였다. 아내가 쇼핑을 하고 만족해하는 웃음과 견줄만한 나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게 좋아요?” 

“그럼! 좋고말고.” 


오늘 밤은 탱고에 젖어보는 거다. 밤의 공기가 더욱 좋게만 느껴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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