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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Aug 19. 2019

밤새 먹고 마시고, 탱고를
추는 사람들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

실수로 스텝이 엉키는 것이 탱고다?   


여행은 체험이다. 여행지의 문화에 대한 체험, 음식체험, 종교체험, 사회체험.... 현지의 체험을 통해서 만이 그 나라의 속 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를 할 수 있다. 나는 탱고의 발상지인 아르헨티나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호스텔에서 실시하는 하룻밤  탱고 레슨에 참여하기로 했다.  


밤이 되자 밀하우스 호스텔에서는 카페의 의자를 모두 치우고 무도장으로 만들었다. 식탁을 치우자 홀은 그럴듯한 무도장으로 변했다. 탱고 교수라고 하는 마리아노 씨가 남녀 한 쌍의 젊은 탱고 댄서와 함께 나타났다. 마리아노는 짧은 턱수염을 기른 40대의 중년 남자였고, 두 사람의 댄서는 춤꾼처럼 생긴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호스텔에 묵고 있는 20여 명의 젊은이들이 탱고 레슨에 참여를 했다. 먼저 마리아노가 탱고를 추는 이론을 간단히 설명을 하고, 곧이어 두 젊은 탱고 댄서들이 시범으로 춤을 추어 보였다. 관중은 모두 숨을 죽이고 두 댄서의 몸놀림과 현란한 발놀림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오만하게 펼쳐지는 춤의 유희! 치고 빠지는 발놀림, 땅에 닿을 듯 늘어지는 여인의 허리… 두 댄서의 춤 속에서 강한 에로티시즘이 느껴졌다. 


호스텔 탱고 레슨에서 탱고춤 시범을 보이는 댄서


춤은 고대로부터 만국의 언어다. 원시시절부터 사람들은 언어 대신 몸짓으로 대화를 하고 구애를 해왔다. 머리, 이성, 의식은 비판 속에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그러나 몸, 감성, 무의식은 거리가 없다. 솔직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육체의 부활보다 성령의 부활을 강조하는 기독교 교리, 육신을 공으로 보고 정신의 윤회를 역설하는 불교의 교리 등 각종 종교의 교리는 정신을 추구하고 몸을 불신해 왔다. 종교는 몸을 죄악시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내몰았다. 


몸은 신선한 것이다. 진리를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언어의 노래보다 몸의 노래, 즉 춤의 언어가 매체를 통해 청중을 휘어잡고 있다. 지금 눈앞에는 환상적인 댄서의 몸동작이 펼쳐지고 있다. 곧추세워 각진 팔 동작, 차가운 얼굴 표정, 고정된 시선, 오만한 춤 동작! 춤 속에서 강한 에로티시즘을 떠올리게 됨은 왜일까?


탱고는 브루스나 람바다, 살사 등에 비하면 남녀 사이의 노골적인 신체 접촉이 적은 편이다. 상체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상대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탱고 음악의 리듬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 탱고 춤이다. 그럼에도 탱고 하면 에로티시즘을 연상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히려 역설적인 동작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상대방과 한껏 춤을 즐기면서도 오만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냉랭한 시선, 각진 동작이 오히려 에로티시즘의 갈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한다.


"탱고는 다리와의 전쟁이다!" 혹자는 탱고를 이렇게 표현한다. 탱고는 현란한 발놀림이다. 서로의 가랑이 사이로 다리를 날렵하게 집어넣었다 뺐다 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동작이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탱고를 일명 ‘다리 사이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다리 사이의 전쟁은 노골적인 접촉이 아니라 서로가 갈증만 더해 가는 스침일 뿐이다. 때문에 탱고는 에로티시즘을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춤꾼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이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애를 태우게 하여 강한 에로티시즘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탱고는 추는 춤보다는 보는 춤으로 통한다고 한다.

     

댄서의 시범이 끝나고 우리는 남녀가 짝을 지어 탱고 레슨에 들어갔다.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 남녀들이 자연스럽게 파트너를 이루었다. 물론 나의 파트너는 아내였다. 여자 파트너가 적어 남자끼리 파트너를 이룬 경우도 있었다. 젊은이들은 마리아노와 댄서의 지도에 따라 춤을 추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서로 발이 걸려 넘어질 것만 같았다. 춤의 문외한인 나와 아내는 애꿎게도 스텝이 엉켜 상대방의 발만 밟고 있었다. 스텝이 서로 엉켜 넘어질 것만 같았다. 아내가 교습 포기를 선언했다. 


“난 도저히 못하겠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탱고 춤 레슨을 받고 있는 호스텔 여행자들


이를 보다 못해 여자 댄서 사범이 나에게로 왔다. 그녀는 왼손으로 나의 허리를 가볍게 쥐고, 오른손은 옆으로 치켜 뻗은 채 자연스럽게 스텝을 유도했다. 얼굴은 서로 엇갈리게 했다. 그녀의 날렵한 허리가 나의 손에 터치되며 부드럽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스텝이 자주 엉키더니 점점 발이 자유로워졌다. 스텝이 엉킬 때마다 내가 미안해하자 그녀는 웃기만 했다. 즐거웠다. “아하, 춤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우둔한 나의 다리가 그녀의 유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경쾌하다.


"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 라오." 

(If you make a mistake, if you get all tangled, you just tango on)


몇 판의 곡이 끝나자 마리아노 교수가 청중을 향해 말했다. 명언 중의 명언이었다. 탱고의 초짜들은 서로들 다리가 엉켜 넘어질 것 같은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되었다. 그는 유명한 탱고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며 스텝이 엉키는 실수를 괘념치 말라고 했다. 90년대에 한 때 인기 폭발했던 탱고를 소재로 한 ‘여인의 향기’란 영화는 주인공인 시각 장애자인 알 파치노가 죽음을 위한 여행 중 마지막 삶의 쾌락을 맛보고 싶어 한다. 그는 어느 레스토랑에서 애인을 기다리고 있는 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춤을 청한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세련되게 춤을 리드하는 알 파치노의 의연한 춤 장면은 청중에게 감동을 준다. 이 영화에서 탱고는 단순한 춤이 아닌, 인생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두 시간 동안의 탱고 교습이 끝나고 우리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밤 10시인데도 레스토랑은 만원이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도 아르헨티나의 밤거리는 사람들로 홍수를 이루며 흥청거렸다. 포도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마리아노 교수의 탱고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카세트에 탱고의 기원을 담은 테이프를 장착하고 음악을 틀어주며 탱고의 기원에 대하여 열강을 했다. 음악이 나올 때마다 레스토랑의 좁은 공간에서 두 댄서가 역사적인 탱고 음악에 맞추어 탱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밤 10시에 저녁식사를 하며 탱고에 대한 역사를 들려주는 마니아노 교수(중앙)


마리아노 교수는 탱고의 역사를 진지하게 얘기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일찍이 ‘남미의 파리’가 되기를 열망했다. 팜파스에서 나오는 밀과 육류를 부의 원천으로 그들은 풍요로움을 가꾸어 나갔다. 1930년대부터 지하철을 건설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회의사당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태리 대리석 한 장과 소 한 마리를 바꾸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불레바르'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널찍한 파리 식 도로를 건설하고, 핑크 빛 대통령궁, 호화로운 교회, 오페라하우스, 노천카페와 부티크 쇼핑가인 플로리다 거리를 건설하며 그들은 ‘남미의 파리’가 되기를 원했다. 교향악, 오페라, 연극, 캉캉 춤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히트한 모든 공연이 뉴욕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들어왔다. 


허지만 찬란함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19세기 말 신대륙의 부를 찾아 유럽에서 몰려든 농업 이민자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 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용 잡부로 몰려들었다. 갑자기 늘어난 인구는 부에노스를 대도시로 단숨에 탈바꿈시켜 놓았다. 


이민자들이 타향살이의 설움을 주로 달랜 곳은 부에노스의 포구에 접해 있는 '보카' 지구였다. 그들은 타향살이의 설움, 고독, 향수를 음악과 춤으로 달랬다. 그리고 그들은 탱고를 탄생시켰다. 항구 도시 리스본의 알파카 지구의 선술집에서 파두가 탄생한 것처럼 이곳 보카 지구에서 그들은 탱고를 탄생시킨 것이다.


보카의 카미니토 거리는 탱고의 메카다. 현란한 원색으로 덧칠해진 서민의 애환이 담긴 거리. 고달픈 항구의 삶이 수평선 넘어 황혼으로 사라지면, 노동자들은 어두운 선술집으로 몰려들어 술잔을 기울이며 휴식을 취했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술을 파는 여인들과 춤을 추며 외로움을 달랬다.



밤새 먹고, 마시고, 탱고를 추는 사람들


“탱고에 가장 많이 영향을 준 음악은 밀롱가를 들 수 있지요.”


마리아노는 카세트에 새로운 테이프를 넣고 밀롱가(milonga, 아르헨티나 탱고의 전신에 해 당하는 2/4 박자 무곡)라는 음악을 선보였다. 두 댄서가 다시 밀롱가에 맞추어 시범을 보였다. 밀롱가는 폴카, 마주르카, 왈츠 같은 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밀롱가는 원래 팜파스에서 살고 있었던 가우초라는 아르헨티나 카우보이들이 추던 춤이었습니다. 그 춤이 도시의 뒷골목으로 들어와서 탱고로 변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탱고 초기에는 아르헨티나 토착민들에게서 냉대를 받았다. 선술집에서 하층 서민들이나 잡부들이 추는 춤이었으니 파리의 고급 사교계에서 춤을 추던 상류층들은 당연히 탱고를 경시했다는 것. 초기에는 오늘날의 정제되고 세련된 탱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기 탱고는 즉흥적인 연주에 따라 결투를 하듯 거칠고 투박했다. 


그러나 1910년 이후부터 유럽에 상륙한 탱고는 앙헬 비욜도(Angel Villoldo)라는 전설적인 작곡가에 의해 유럽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탱고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몸을 가장 밀착시킬 수 있는 커플 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자, 이제 역사 공부는 그만하고 전통 탱고의 진수를 보러 밀롱가로 가 볼까요?”


아르헨티나의 저녁식사 시간은 매우 길었다. 내 일생 동안 저녁 식사 중 가장 긴 시간이었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디너는 끝이 났다. 


“아휴~ 졸리는데 어디로 가자는 거지요?”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밀롱가라는 탱고 클럽으로 간데요.” 

"내친 거름이니까 잠깐만 들렀다 가는 것이 어떨까?"


나는 밀롱가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하여 아내를 설득하여 마리아노 교수를 따라나섰다. 밀롱가는 아르헨티나의 전형적인 탱고 클럽이다. 택시를 타고 간 곳은 보카 지구의 어느 허름한 창고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어두운 조명이지만 원색으로 칠한 벽이 현란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다소 어두운 실내는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욱한 담배연기에 아내는 우선 질리고 말았다. 


홀의 중앙에서는 수많은 남녀들이 탱고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바로 옆에 있는 바에서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건장한 사내와 다가와서 제지를 했다. 사진은 절대로 찍을 수 없단다. 호스텔에서 실습을 한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파트너를 찾아 홀 속으로 들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탱고 클럽 밀롱가


“여보, 숨이 막혀서 도저히 더 이상 못 참겠어요.”

“그래요. 사실 나도 담배연기에 질려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오.”


마리아노 교수에게 숙소로 가겠다고 말하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밤의 무대가 시작되는데 벌써 가느냐고 말했다. 우리 부부를 30대로만 알고 있었던지 마리아노는 이해를 하지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숙소에 돌아오니 새벽 2시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은 길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란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을 즐기려고 하는 그들의 낙천적인 국민성을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지만 밤새 먹고, 마시고 탱고를 즐기는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자구만 뒷걸음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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