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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07. 2019

모아이 석상을 밀고 있는
나는 바보다

이스터 섬 모아이 탐사①-아후 비나푸-바이후-라노라라쿠-통가리키

고물 지프차로 이스터 섬 탐험에 나서다 

    

이스터 섬은 우리나라 안면도 정도의 크기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와 함께 걸어서 섬 전체를 돌아보기엔 무리였다. 생각 끝에 마르타에게 물어보니 자동차를 렌트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스터 섬에는 일본산 중고차가 꽤 있는데 이는 영화 '라파누이(Rapa Nui, 1994년)'이를 촬영할 때 들여온 차들이라고 한다. 


이스터 섬 답사에 사용한 고물 지프차


마르타의 소개로 우리는 고물 스즈키 지프차를 하루에 45달러를 주고 렌트를 했다. 그런데 9시에 오기로 한 자동차가 9시 30분이 되어서야 왔다. 반시간 정도 늦은 것은 양호하다고 생각해야지.  차주는 라파누이 여인 바이오키(Bioky)였다. 비록 낡은 자동차이지만 남태평양의 바다 색깔처럼 진한 남색이 마음에 들었다. 라디오도 없고 기어도 스틱 기어다. 시동이 걸고 액셀을 밟아보니 고물 자동차는 슬슬 앞으로 굴러갔다. 사륜구동이라 힘은 좋아 보였다. 자동차가 출발하자 마르타와 로져, 미히노아가 우리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올라!" 

"이오라나!" 


우리는 대단한 장도에 오른 탐험대처럼  마르타 가족의 환송을 받으며 이스터 섬 탐사 길에 나섰다. 나는 로져가 준 지도에 표시된 코스를 따라가기로 했다. 새 그림과 모아이 석상들이 수없이 그려진 지도를 따라 답사에 나서니 마치 숨겨진 진귀한 보물을 찾아가는 것처럼 신비하게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읽었던 스티븐슨의 '보물섬'이라는 모험소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로져가 준 지도는 마치 해적단이 보물을 숨겼다는 그 지도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우린 지금 보물섬 투어에 나서고 있어요. 어디 진귀한 보물이 있는지 잘 살펴보시라고요. 하하."

"호호호, 나도 지금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하, 상상은 자유다. 우리는 정말 이스터 섬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가는 탐험대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미히노아의 집을 나선 나는 항가로아 마을에 있는 파스칼 마켓(Pascal Market)에 잠시 차를 멈추고 빵과 우유, 물 등 비상식량을 샀다. 이스터 섬을 탐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항가로아 마을에서 충분한 물과 비상식량을 준비해야 한다. 섬의 어느 곳도 항가로아 마을 외에는 먹을거리를 팔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터 섬 탐사도


나는 비상식량을 싣고 마타베리 공항을 지나 섬의 남쪽으로 향했다. 스즈키 지프차는 덜덜 거리면서도 4륜 구동이라 힘이 좋았다. 첫 번째 탐사 지는 라노 라라쿠 모아이 채석장이다. 마타베리 공항을 지나 섬의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남쪽을 향하다가 마타베리 공항 활주로 끝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따라가니 해안가에 항공유를 저장한 거대한 큰 유류탱크들이 나왔다. 그 유류탱크 부근에 축대를 쌓듯이 큰 돌을 쌓아 올린 세 개의 석조물이 보였다. 로져가 준 지도를 보니 이것이 바로 ‘아후 비나푸(Ahu Vinapu)’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빈틈없이 완벽하게 맞물린 돌덩어리들이 마치 쿠스코의 잉카문명 석벽과 비슷하게 생겼다.   


쿠스코 잉카문명의 석벽과 유사한 아후 비나푸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이에르달은 잉카문명을 닮은 아후 비나푸 석벽과 잉카문명 이전에 존재했던 볼리비아 티아우아나코 태양숭배 소에 있는 무릎 꿇고 있는 '투쿠투리' 석상과의 유사성을 보고 이스터 섬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자라나는 토토라 갈대가 이 섬에서 자라는 것도 이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하여 남동 무역풍이 거의 일 년 내내 분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1947년 유명한 콘티키 탐험대를 이끌고 다섯 명의 탐험대원과 함께 페루 카야호 항을 떠났다. 그가 탄 배는 가볍고 단단한 열대산 간목 발사로 만든 뗏목이었는데, 이 간단한 뗏목을 타고도 폴리네시아 동쪽으로 떠내려간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101일 동안 8,000km를 서쪽으로 떠내려 와 이스터 섬에 도착하지 못하고 타히티 동쪽 모래톱에 부딪쳤다. 이 영웅적인 탐험대는 서쪽으로 떠내려가는 항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했지만 남아메리카 인들이 이스터 섬으로 왔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많은 연구들이 남아메리카 보다는 폴리네시안 인들이 이 섬에 최초 보트피플 일 것이라고 반증을 했다. 또 섬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폴리네시안 혈통의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구비문학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적인 왕 호투 마투아가 이 섬의 최초의 보트피플일 것이라는 설이 훨씬 더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스즈키 고물차를 슬슬 몰고 가는데 해변 군데군데 모아이들이 넘어져 있거나 외로이 서 있었다. 항가포우쿠라, 바이후, 아카항가 등 모아이 석상은 저마다 전설을 담은 듯 태고의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어떤 것은 코를 땅에 박고 있고, 어떤 것은 눈알이 없는 애꾸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거인들은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모아이들은 누구를 닮았을까? 전설의 왕 호투 마투아를 닮았을까? 아니면 외계인을 닮았을까?  


바이후(Vaihu)


코를 처박고 영욕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룽가 배(Runga Va,e) 모아이 석상

   

     

모아이들의 분만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 영원히 잠들고 있는 모아이들


라노 라라쿠 채석장 입구에 도착하니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라파누이들이 돌로 만든 모아이 석상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노점상들이 있는 푸른 나무 터널을 지나니 거대한 채석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아이 거석을 만들어 내는 채석장은 이스터 섬에서 가장 인상적인 명소 가운데 하나다. 야외 채석장은 150m 높이의 돌산인 라노 라라쿠 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라노 라라쿠 화산이 채석장으로 선택된 이유는 조각 재료로는 최고의 돌이 나오기 때문이다. 


모아이들의 분만실 라노라라쿠 채석장


채석장 기슭에는 수백 개의 모아이 거석들이 누워 있거나 퇴적물 속에 묻혀 있다. 고개만 내밀고 있는 모아이, 두 동강 난 모아이, 길게 누워 있는 모아이, 바위 속에 제작을 하다가 그대로 누워 있는 모아이… 이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 화순 운주사의 석불들을 연상케 했다. 


라노 라라쿠는 모아이들의 '고향'이자 '분만실'이다. 지금까지 이스터 섬에 남아있는 석상들은 거의가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채석장의 모아이들은 대부분 제작과정에서 버려진 모습 그대로이다. 이제 막 다듬기 시작한 것도 있고, 작업이 다 끝나 운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있다.


모아이의 평균 크기는 5~7미터이지만 매우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엘 기간테(El Gigante)'는 길이가 약 20m에 달해 산등성이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다. 그 무게도 180톤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 석상의 크기는 파리 콩코드 광장이나, 바티칸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정도로 커 보인다(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의 크기는 22.8미터이다). 바위벽에 붙어 있는 이 거인은 거의 접근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데 어떻게 이러한 거석들을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제단으로 옮겼을까? 


길이가 20m가 넘는 엘 기간테 모아이. 이스터 섬 모아이 중에서 가장 크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 상에 대하여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은 바로 스위스 출신의 에리히 폰 다니켄이었다. 그는 1968년 이스터 섬을 방문하여 그곳 원주민들과 인터뷰하고, 곳곳의 전설을 채집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외계인이 만들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고향을 기리기 위한 외계인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외계인들은 이스터 섬에 불시착한 이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무료함을 달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거대 모아이 석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고향 행성에서 온 구명정을 타고 모두들 황급히 떠나가 버린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이스터 섬을 비롯한 근처 섬에는 '새사람'이라 부르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외계인을 뜻하며, 이스터 섬의 석상은 그 재질이 너무 단단하여 원주민들의 도구로는 절대 조각할 수 없다. 또한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이스터 섬의 환경상 그렇게 거대한 석상을 옮기고 세울만한 도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모아이 석상이 쓰고 있는 붉은색 모자가 바로 외계인의 '우주모(푸카오)'라는 것이다."

-에리히 폰 다니켄, '별들로의 귀환' 중에서-     


다니켄의 이러한 주장은 세계를 휩쓸었다. 갑자기 이스터 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제대로 볼 것이라고는 거대 석상 밖에 없는 이스터 섬이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은 것이다. 호화 유람선들은 코스에 꼭 이스터 섬을 넣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거대 석상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정말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외계인이 만들었을까? 아직까지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니켄이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근거로 세운 가장 큰 이유인 이스터 섬의 돌 재질이 너무나 단단하여 원주민의 도구로는 절대 조각할 수 없다는 것부터가 거짓말이다. 이스터 섬은 화산섬으로 모아이 석상 역시 화산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화산암으로 만든 모아이 석상의 재질은 간단한 도구만으로 쉽게 조각할 수 있는 암석이다. 또한 지금은 나무도 많지 않은 황폐한 섬이지만 모아이 석상이 만들어진 15~17세기 무렵에만 하더라도 나무가 매우 울창한 지역이었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새사람'이라는 것 역시 제비갈매기가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며 지배자를 뽑은 행사에서 나온 말로써 높은 벼랑에서 뛰어내려 제비갈매기의 알을 가장 먼저 가져오는 사람을 뽑아 '새사람'이라 부른 것에서 연유한다. 한마디로 다니켄은 날조된 거짓말로 사람을 끌어 모으려 했다. 그런데 그러한 그의 노력은 매우 훌륭한 결실을 맺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은 모아이 석상이 외계인의 흔적이라 믿고 있으니 그의 '세계적 낚시질'은 크게 성공을 한 샘이다. 그의 주장이 인간의 호기심을 끌어들이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다니켄은 허무맹랑한 주장에 현혹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라노라라쿠 채석장에 영원히 잠자고 있는 모아이들


채석장에는 수많은 거석들이 수수께끼를 품은 채 영원히 잠들어 있다. 채석장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서니 물이 질퍽하게 고여 있는 분화구가 나왔다. 이 진귀한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이 공간에서 돌을 쪼아 모아이를 만들어 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조우하는 감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라노 라라쿠 분화구


일부 공동에서는 화산에서 태어난 거상의 흔적만이 남아있기도 하고, 작업이 마무리된 거상이나 깨진 석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동도 있다. 조각가들은 암석 둘레의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했을 것이다. 석상이 똑바로 누워있는 형태에서 머리에서 시작하여, 몸체, 옆모습을 조각해 나갔을 것이다. 


다듬고 마무리하는 작업이 끝나면 석상을 암석과 분리한다. 마지막 단계는 아주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종종 석상이 깨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석상 밑을 파내고, 선체 밑바닥에 길고 큰 목재(용골)를 받친다. 그리고 용골에 구멍을 낸다. 그 구멍을 자꾸 넓게 파 나가다 보면 석상은 돌 부스러기 위에 얹혀 있는 샘이 된다. 이 과정에서 석상을 옮길 수 있도록 통나무나 다른 도구를 끼우는 작업도 병행한다. 


드디어 산자락으로 운반되어 구멍이나 계단식 단 위에 올려진다. 이 구멍과 단은 모아이의 등을 파기 위해 일시적으로 세워 두는 곳이다. 임시 작업대 위에서 작업을 마무리한 석상은 아후로 운반했다. 20km가 넘는 거리도 있는데 수백 개의 석상을 어떻게 운반을 했는지 그저 신비스러울 따름이다.       

   

모아이 석상은 스스로 걸어서 이동했다?     


"투코 이후, 마케 마케 신은 석상에게 '걸어가서' 아후에 올라가라고 명령했다. 석상들은 영적인 힘을 발휘해서 아후까지 저절로 걸어가거나, 족장의 명령대로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걸어왔고, 밤이 깊어지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신탁의 말씀을 전했다."    

 

섬사람들은 모아이를 옮긴 전설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스터 섬에는 이 석상을 옮길 만큼 많은 인구도, 기중기 같은 도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믿으면 신도 움직인다는 말은 진실일까?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설명을 찾아냈다. 


최근의 연구결과 이스터 섬에는 원래 나무가 울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토로미로, 칠레 포도 야자나무와 비슷한 야자나무 등 몇 가지 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석상을 운반용으로 썰매, 지렛대, 굴림대를 만들기 위하여 나무를 무분별하게 베어 냈다.


나무의 굴림대를 이용하여 모아이 석상을 옮겼다는 설, 비가 올 때 축축하게 옮겼다는 설, 맑은 날 옮겼다는 설, 세워서 옮겼다는 설, 눕혀서 옮겼다는 설, 뗏목으로 옮겼다는 설, 비스듬히 눕혀서 옮겼다는 설, 썰매를 이용해서 옮겼다는 설, 고구마나 감자 등 미끄러운 식물성 시름을 바르고 옮겼다는 설… 


실로 수많은 가정과 설이 난무 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모아이 석상을 어떻게 옮겼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아무튼 그들은 이 석상을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아후(Ahu)'라는 제단으로 옮겼다. 아후는 신과 고귀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야외 '성소'를 의미한다. 이 성소들은 아주 엄격한 금제(禁制)에 의해 보호되었으며,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 기능을 하였다.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그 아후의 혈통이 사라지면 그 성소를 버렸으며, 돌들은 다른 성소에서 사용하였다. 


일단 석상이 아후 아래에 도착을 하면 마무리 작업이 이루어진다. 모아이가 똑바로 세워지고, 이어 대좌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머리 위에 빨간색으로 된 거대한 원통형의 모자를 씌운다. 마치 왕관이나 터번처럼 생긴 원뿔형의 모자는 '푸카오'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고관들에게 씌운 상투 같은 것이다. 


모아이 머리 위에 써워지는 원뿔형 모자  푸카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얀 산호에 눈을 새겨 미리 파 놓은 두 개의 구멍에 집어넣는다. 모아이로 하여금 시력을 갖게 하는 순간이다. 시력을 갖게 된 모아이는 비로소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아이의 눈들은 모두 슬픈 표정을 하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근심과 걱정, 안쓰러움을 자아내게 하는 묘한 표정이다.


이스터 섬에는 성소가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해안가를 따라 나란히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일부 성소는 하지와 동지의 일출과 일몰 위치에 맞추어 수직으로 세운 것도 있다. 그리고 모아이는 모두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의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아이가 굽어보는 널따란 경사면에 모여 사람들은 사회적, 종교적인 공동의식을 진행했다.   

                                                                                                                                                                            

채석장을 내려오는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록 일어난다. 그들은 정말 이 거인들을 무슨 이유로 만들었을까? 밤이면 석상들이 걸어 다녔을까? 정말 외계인들이 와서 만든 것은 아닐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주인들은 왜 이런 절해고도에 모아이 석상을 만들었을까? 모아이를 만든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미륵이 도래한다는 기원을 담은 운주사의 전설과는 어떤 관계가 없을까? 이런 의문과는 아랑곳없다는 듯 거인들 옆에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어쨌든 이 석상들 때문에 섬사람들은 먹고 살아가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섬에는 사실 석상 말고는 딱히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단순히 그들의 조상들이 만든 석상을 보여주는 것 하나로 그들은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석상을 만든 그들이 기원했던 용화 세계는 별다른 생산물도 없이 그냥 보여주는 것만으로 후손들을 먹고살게 하는 것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일은 정말로 한 치의 앞도 알 수 없다.     

    


모아이 석상을 밀어대고 있는 나는 바보다


채석장을 내려오다가 나는 거의 45도로 기울어져 있는 모아이를 붙들고 힘껏 밀어보았다. 그러나 모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태평양의 절해고도 이스터 섬까지 와서 모아이를 밀어대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꿈쩍도 하지 않는 모아이 거석을 밀어대고 있는 나는 정말 바보다. 하릴없이 거인을 밀어대고 있다니....


거대한 모아이 석상을 밀어대고 있는 나는 바보다


도대체 이 모아이는 몇 백 년 동안 이렇게 기울어져 있었단 말인가? 침묵을 지키며 누워있는 있는 거인들과 함께 하고 있는 나 역시 사지가 굳어 버린 것만 같다. 모아이야, 말 좀 해보아라.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나 모아이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이 없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서 남쪽을 해변을 바라보니 거대한 석상들이 채석장을 바라보고 서 있다. '통가리키'라고 불리는 곳에 서 있는 모아이 석상들이다. 채석장을 내려오는데 해변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모아이야 잘 자고 있어라."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땅 속에 파묻힌 모아이들의 머리를 만지며 잠자는 거인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우리는 마케 마케 신의 지문을 밟으며 천천히 채석장을 내려왔다. 과연 마케 마케 신은 마나의 힘을 가지고 있었을까? 통가리키 해변에는 거대한 모아이들이 채석장을 향하여 서 있었다.


땅속에 파묻혀 영원히 잠들고 있는 모아이


"해변에 서 있는 모아이들이 마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만 같지 않소?"

"정말 그렇군요."


저 모아이들도 이 채석장에서 그리로 옮겨졌을 것인데 어떻게 운반했을까? 다시 그런 의문이 수수께끼처럼 고개를 든다. 튼튼한 밧줄이 있었고, 나무 굴림대를 밑에 받치고 굴려서 옮겼다고 치자. 그래도 그런 추정들을 믿을 수가 없다. 석상들에는 긁힌 흔적이 조금도 없다. 화산 응회암이 비교적 약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무 굴림대로 몇 킬로미터씩 끌어온 석상들은 긁힌 자국이 한 곳이라도 남아 있어 한다.


이성은 본래 논리적으로 만족할만한 증거를 찾는 법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원주민들이 모두 주저 없이 '마나'가 석상을 움직였다고 대답한다. 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마나'는 가장 뛰어난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대답이 항상 같다는 점이다. 그들은 명확히 단언했다. 섬사람들은 모아이를 열심히 조각을 했고, 작업이 끝나면 왕은 석상들을 움직일 수 있도록 석상들에게 '마나'의 힘을 주었다고 믿는다. 어떤 원주민은 석상들이 자신의 둥근 기초 위에서 180도로 돌아 똑바로 서서 이동했다고 말했다. 마나의 힘으로!


통가리키 모아이 석상


이스터 섬의 왕은 마나의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책임 아래 있는 영토는 재앙을 당하지 않고, 철새들과 거북이들이 제때에 나타나며, 가축들과 야채가 잘 자라고, 과일이 탐스럽게 열려,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은 바로 마나가 넘치는 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런 이야기를 웃어넘기는 것은 잘못이다. 논리적인 설명이 하나도 없는데, 사실일지도 모르는 가설을 거부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 


아후에 석상을 세우는 일을 현대 과학으로 생각해보자. 22미터(7층 빌딩의 높이)나 되는 석상이나 채석장 벼랑을 거의 가린 채 누워있는 석상들을 대하는 순간, 현대 과학에 대한 논리는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길이 7미터에 너비 3미터나 되는 머리와 목, 길이 3.7미터나 되는 코, 몸체가 13미터나 되는 석상을 상상해보라. 또 50톤을 넘는 무게는 어떠한가! 지금도 이런 큰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크레인은 드물다. 


높이가 2.3미터밖에 되지 않는 '파도를 부수는 사람'이란 유명한 석상을 옮기는 데는 500명 이상이 필요했고, 권양기와 온갖 도구들이 다 동원되었다. 프랑스 군함 라플로르호는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했지만, 석상을 통째로 옮기는데 실패를 하고, 머리를 몸체에서 떼어 머리 하나만 가져갔다. 이 머리는 파리 인류 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 


이스터 섬에는 이집트나 티아우아나코 같은 노예 군단의 존재나 자원도 없었다. 섬의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 해답을 완전히 다른 수준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계인이나 마나의 힘에 의존했다는 공상적인 발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이런 일이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마나의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통가리키 모아이 

   

통가리키 제단 앞으로 다가가니 오래된 집터들과 석상에서 떨어져 나간 갈색 돌모자(푸카오)들이 흩어져 있었다. 집터 주변 바위에는 암각화들이 수없이 새겨져 있다. 마케 마케 신의 얼굴, 거북이, 조인 등 문양도 가지가지다. 암각화 문양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독일 사람들로 보이는 한 떼의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들은 내리자 말자 통가리키 거인들에게 매료된 듯 카메라의 앵글을 부지런히 돌려댔다.


통가리키의 중앙 기단은 거대하다. 길이가 100미터, 양쪽에 달린 날개까지 합친 총길이는 220미터에 달한다. 기단의 높이는 4미터이고, 800개가 넘는 울퉁불퉁한 현무암 돌덩어리들로 어우러져 있다. 그 기단 위에 15개의 모아이 석상이 놓여 있다. 모아이의 높이는 5~8미터로 평균 중량은 40톤이 넘으며 중앙에 가장 큰 석상은 88톤이나 된다. 


통가리키 모아이


바다를 등지고 일렬로 서있는 모아이들의 모습은 위엄에 차 있다. 이 거석을 옮긴 주체는 누구였을까? 마나의 힘인가, 외계인의 힘인가? 다시 스위스의 공상가 에리히 폰 데니켄의 엉터리 같은 주장이 떠오른다. 엉터리 같은 주장이라고 하지만, 수수께끼의 모아이 석상 앞에 서 있는 지금은 그의 주장을 믿고만 싶다.     


"수천 년 전 우리 행성을 방문했던 미지의 우주 항해자들은 오늘날의 우리보다 현명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 인류가 자신의 기술과 의지로 우주로 진출할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지구의 지성인들이 비슷한 영적 존재, 생명, 우주에 사는 유사한 지성인들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 에리헤 폰 데니켄, '신들의 수례’,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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