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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19. 2019

남미 최고의 숨은 비경, 파타고니아!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의 무대’ 파타고니아를 가다

김치와 라면, 두꺼운 옷까지 챙겨 주는 고마운 사람


산티아고로 돌아와 파타고니아로 떠나는 날 K사장은 두꺼운 옷과 라면, 그리고 김치를 듬뿍 배낭에 넣어 주었다. 남극이 가까운 파타고니아는 한 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바람이 강해 우리가 가진 옷으로는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하면서… 한 달 전 리스본에서 무거운 겨울옷을 한국으로 보내버린 우리들은 두꺼운 옷이 필요했다. 12월의 산티아고는 한여름이지만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는 춥다. 


"옷이 좀 멋은 없지만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서는 이 두꺼운 옷이 필요할 겁니다."

"멋진 옷인데요. 정말 가져가도 되나요?"

"그럼요.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K사장은 한국에서 남미로 배낭여행을 가는 여행자들로부터 '남미 배낭여행들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한국의 배낭여행자들을 챙겨준다고 했다. 멀리 고국에서 온 배낭 여행자를 만나면 먹 거리는 물론 이것저것 챙겨주고 때로는 여비가 떨어진 한국인에게 차비까지 주기도 한다고 한다. 정말 그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까지 챙겨주니 말이다. K사장 집을 떠나면서 우린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파타고니아에 가시거든 푼타아레나스에서 땅 끝으로 가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곳엔 뭐가 있지요?"

"한 여름에만 땅에 바짝 엎드려 피어나는 남극의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두 분을 반겨 줄 겁니다."

"오, 그래요! 거긴 꼭 가봐야겠군요."

"돌아오시면 꼭 연락을 주세요."

"네, 사장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옷까지 챙겨주시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그는 파타고니아 여행지에 대한 정보까지 자세히 알려주며 우릴 배웅해 주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가 없다. 오늘 만난 인연이 언제 다시 지구촌 어디에서 만날지…. 그러니 베풀 수 있을 때 선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아마 K사장은 먼 과거 생에 우리한 테 신세를 왕창 졌을까? 나는 K사장의 따듯한 영접을 인연법으로 밖에 해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국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생면부지의 여행자를 이리도 따뜻하게 맞이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남미 최고의 숨은 비경을 간직한 파타고니아로...

   

파타고니아행 란 칠레 755 비행기가 산티아고 공항을 가볍게 이륙했다. 고도를 높여가는 비행기 아래로 산티아고의 건물과 자동차들이 점점 멀어져 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빌딩들은 우글거리는 빈대처럼 보이고, 자동차와 사람들은 떼를 지어 기어 다니는 개미처럼 보였다. 마침내 그것들이 지상에 찍어 놓은 점들로 변하더니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저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웃고, 분노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이륙을 하는 순간, 나는 항상 마음이 설레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게 된다. 비행기는 6,000미터 고봉들이 도열해 있는 안데스의 설봉 위를 날아가다가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태평양 상공을 날아가기도 했다. 바람이 심한 기류를 만나면 비행기는 널뛰기를 하듯 흔들렸다. 바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비행기의 맥을 쥐고 있는 듯 마음대로 비행기를 잡았다가 놓아주었다가 하는 마술사와도 같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기내 방송이 급하게 울려 퍼졌다.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가 안데스의 설봉 위로 추락하지나 않을까? 그런 조바심이 순간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이렇게 흔들거리는 파타고니아행 비행기의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안데스의 험준한 산맥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평생을 비행기와 함께 살아갔던 생텍쥐페리와 그의 소설 ‘야간비행’을 떠올렸다.  

    

“만약 내가 추락한다면 정말이지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우글거리는 개미집 같은 미래는 나를 공포스럽게 한다. ……나는 원래 정원사가 되었어야 한다.”  

   

이것은 생텍쥐페리가 마지막 비행을 떠나기 전에 남긴 편지 중의 한 구절이다. 어쩌면 그는 ‘어린 왕자’가 사막의 한가운데서 사선으로 넘어서며 자신의 별로 돌아가듯이 그도 그렇게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지구와 다른 세계, 은하계의 작은 별에서 바오바브나무와 비행기가 있는 조용한 별에 살면서 홀로 정원을 손질하며 고요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타고니아로 가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안데스  산맥

 

파타고니아!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파타고니아는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의 상위 리스트에 항상 올라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셰익스피어가  <템페스트>의 영감을 얻은 땅,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의 모델을 제공한 땅, 찰스 다윈의 마음을 사로잡은 땅,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의 무대가 된 땅, 그리고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의 소재가 된 땅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파타고니아는 지구 상에서 숨겨진 비경을 무수히 간직한 은둔의 땅이다.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 남미 대륙 최남단의 도시 푼타아레나스, 피츠로이 산과  매일 2미터씩 떨어져 내리며 굉음을 내는 모레노 빙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절경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과 그레이 빙하.....  


내가 파타고니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생텍쥐페리(1900~1944)의 ‘야간비행(Night Flight)'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생텍쥐페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행기다. 1929년 아르헨티나 항공회사 지사장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생텍쥐페리는 부에노스에서 파타고니아 간 우편기를 조종하는 비행체험을 바탕으로 ‘야간비행’이란 소설을 발표한다. 야간비행은 파타고니아의 악천후를 무릅쓰고 남미의 땅 끝 우수아이아와 남극으로의 파타고니아 노선을 오가는 우편 비행에 얽힌 이야기를 쓴 내용이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문체로 장식한 야간비행은 무섭도록 고독하다. 주인공인 조종사 파비앵은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오며 심한 폭풍을 만난다. 그는 시커먼 급류에 휘말려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결투하며 마지막 전문을 보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


조종사에게 폭풍 속의 밤은 어느 항구로도 닿을 수 없고, 새벽으로도 이르지 못하는 속수무책의 밤이다. 끝없는 어둠 속을 무작정 흘러 다닐 수밖에 없을 뿐…… 비행기는 캄캄한 바다 위에 떠 있고, 그는 얼핏 폭풍의 틈새로 보이는 몇 개의 반짝이는 빛을 향해 올라간다. 그러나 그 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조종사는 영원히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정말 아름답군.’ 폭풍 위에서 수없이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파비엥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생을 마감한다. 


야간비행의 주인공 파비엥은 생텍쥐페리 그 자신이다. 군 복무 시절 몰래 단독으로 비행을 하다가 사고를 내 영창을 갔던 첫 비행에서부터 마지막 비행까지 수많은 위험한 사고가 뒤따랐지만 하늘을 날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리비에르는 실존인물로 생텍쥐페리에게 큰 감명을 준 직장상사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은 생텍쥐페리가 부성애를 느낄 정도로 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생텍쥐페리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5회만 출격한다는 조건으로 사정하여 정찰비행단에 복귀한다. 그리고 코르시카 기지를 출발하여 그르노블-앙시 상공으로 정찰비행을 떠난 후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당초 약속한 다섯 번보다 5회가 많은 열 번째 비행 날 그는 하늘에서 사라져 갔다. 1998년 9월, 프랑스 마르세이유 방돌 해안에서 한 어부가 그물망에 생텍쥐페리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가 걸려 나왔으며, 사람들은 그가 정찰비행 중 독일군에 의해 추락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는 하늘에서는 날면서 명상을 하고 지상에서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 


우리는 항상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값진 뭔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이 세상에는 구해내야 할 무엇인가 다른 것, 인간의 생명보다 더 영속적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것. 생텍쥐페리는 생명보다 더 영속적인 그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비행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란 칠레 소속 비행기는 강한 바람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비행을 하며 곡예를 하듯 구름 속을 날아갔다. 파타고니아에 진입한 비행기는 푸에르토몬트에 잠시 기착을 하여 숨을 고른 뒤 다시 이륙을 하여 남미의 땅 끝 푼타아레나스로 날아갔다. 눈 덮인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 사이를 곡예비행을 하는 조종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는 항상 이 무거운 기체를 하늘에서 조종을 하는 조종사들이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한한 존엄성마저 느껴진다. 어떻게 이 어두운 하늘을 손바닥 보듯 정확하게 날아갈까? 아무리 과학의 계기판을 따라 움직인다 해도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절대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드디어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며 땅으로 내려갔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곧 어디론가 추락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이 순간 나는 세상에 대한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기만을 바랬다. 기내의 승객들은 한결 같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장 숭고한 '그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주 날개에 또 다른 날개가 위로 솟아 나오고 비행기 바퀴가 드디어 땅에 닿았다. 폭발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비행기는 속력을 낮추고 아스팔트 위에서 안도의 숨을 고르며 천천히 속도를 낮추었다.


"휴~ 살았다!"


적어도 승객들은 말은 안 하지만 다들 그런 표정이었다. 조종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들의 생명을 땅 위에 무사히 걷게 하는 숭고한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조종사는 생텍쥐페리가 말한 것처럼 흔적을 남기는 촛농이 아니라 촛불과 같은 존재였다. 비행기 트랩을 나오는데 몸을 들어서 훅 날려버릴 듯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렇게 강한 바람을 뚫고 안전하게 비행을 하여 착륙을 하다니…… 나는 조정석을 향하여 이런 날씨에 내가 살아서 땅 위를 걷게 한 조종사에게 고개를 숙여 경의를 보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웅크리며 겨우 공항 대합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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