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Dec 20. 2019

원주민 발등에 키스를 하다!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에 서다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에 서다


파타고니아(Patagonia)는 ‘발(Pata)’이 ‘큰(Gon)'이란 뜻이다. 1520년 이곳에 도착한 마젤란은 해변에서 구아나코 털 모피를 걸치고 모카신(인디오의 뒤축이 없는 신)을 신은 원주민이 껑충껑충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구릿빛 피부를 한 그 거인의 발이 어찌나 크던지 마젤란은 "오! 파타곤!"하고 외쳤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이 지역은 파타고니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 이곳에는 셀쿠남족, 오남족, 야강족 등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멸하고 대신 이민자들로 채워져 있다.


거대한 공룡의 꼬리처럼 생긴 파타고니아는 남위 40도 이남 지역으로 남미의 땅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람이 많은 대지’라고 불린다. 사계절 바람이 강하게 부는 까닭에 너도밤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은 바람에 버틸 수 있는 낮게 엎드린 자세로 자란다. 식물들도 줄기가 작아지면서 땅에 납작하게 엎드리다시피 한 모습을 하면서 꽃을 피운다. 


파타고니아의 북부는 광활한 팜파스를 이루고 있고, 남부는 건조한 불모의 대지뿐이다, 그리고 태평양 연안에는 피오르드가 복잡하게 얽혀 산과 호수를 이루고 있다. 나는 오래전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읽으면서 파타고니아를 막연하게 동경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칠레의 저항 문인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veda)의 ‘파타고니아 특급’을 읽게 되면서부터 은둔자들의 땅에 대한 큰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 두 권의 책은 이번 세계일주 여행 중 파타고니아까지 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아르헨티나의 엘 투르비오에서 출발하여 리오가예고스까지 240km에 달하는 철도다. 주로 파타고니아 목동들이 이용하는 철도였는데, 지금은 운행되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남극의 철마다. 


세풀베다의 자전적 여행기인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에는 황당하면서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감시망을 따돌리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로 전파를 쏘아 보냈던 무선 라디오 방송사, 소작농들을 향해 정부군의 발포가 시작된 밤 9시 28분에 70년 넘도록 멈춰서 있는 히라미요 역의 시계. 고래와 대화를 나누는 소년 판치토, 황금으로 가득한 ‘트라파난다’ 왕국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타고니아로 간 칠레 총독 아리아스의 이야기 등……. 


특히 아리아스는 “트라파난다엔 괴물과 역병이 가득하다”는 보고서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일설에 의하면 아리아스는 트라파난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이들이 오지 못하도록 이런 보고서를 남겼다고도 한다. 작가 세풀베다는 “아리아스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희한한 상상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환상문학이 태어난다”라고 말한다. 


파타고니아에 대한 또 한 권의 흥미로운 책은 영국 기자 출신 작가 브루스 채트윈(1940~1989)이 쓴 ‘파타고니아’를 들 수 있다. 그는 근세에 들어와 파타고니아를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파타고니아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1940년 영국 사우스요크셔주의 셰필드에서 태어난 그는 소더비스(Sptheby's)의 수위로 입사해 8년 후 유능한 미술 감정가가 되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수많은 예술 작품을 접했다. 1966년 소더비스를 그만둔 채트윈은 에든버러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다가 1972년부터 3년 간 <선데이 타임스> 기자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6개월간 파타고니아로 떠난다’란 전보를 남기고, 홀연히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그리고 실제로 파타고니아를 여행 한 뒤 파타고니아(In Patagonia)란 책을 썼다. 


채트윈에 의하면 파타고니아는 은둔과 낭만의 땅이다. 파타고니아는 수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 탐험가를 불러들인 신비의 땅이면서 망명자, 죄수, 몽상가들이 몰려든 은신처이자 해방구였다. 미국 서부시대의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나오는 은행 강도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는 볼리비아에서 죽은 게 아니라, 파타고니아에 은둔하며 은행을 계속 털었다고 전한다. 채트윈은 파타고니아를 찾은 시인과 모험가들의 유랑 기질을 보들레르의 시에 빗대 ‘고향을 꺼리는 위대한 고질병’이라고 말한다.


1년 내내 강한 바람이 부는 황량한 땅 파타고니아


채트윈에 눈에 비친 파타고니아는 빙산과 바람 부는 초원에 사는 구아나코와 귀여운 펭귄들이 사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방랑자들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은신처였다. 그들은 모두 고향을 등진 자들이요 파타고니아를 최종 도착지로 삼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지독히도 사랑했던 채트윈은 중국 여행 중에 앓은 풍토병이 원인이 되어 1989년 1월 애석하게도 재능을 다 꽃 피우지 못하고 48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원주민 발등에 키스를 하다    


하여간… 채트윈보 더 여행을 사랑하는 우리 부부는 꿈에 그리던 파타고니아에 도착했다! 남미 여행이 끝나갈 시기에 당도한 파타고니아 땅에 선 감회는 깊었다. 노르웨이 최북단 나르빅에서 대각선을 긋는 긴 여정 끝, 남극으로 가는 전진기지까지 오직 아내와 나 둘만 떠나온 여행길이었다. 내 발은 퉁퉁 부어 마치 마젤란이 발견한 원주민의 발처럼 엄청나게 커져 있었고, 미처 깎지 못해 텁수룩하게 긴 수염은 채트윈이 서술한 도망자나 은둔자를 방불케 했다. 남미의 강열한 햇볕에 검게 탄 구릿빛 피부는 영락없는 원주민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신 그 모습이 영락없이 원주민 방랑자를 닮은 모습 같군요.”

“하하, 원래 인생은 방랑자가 아니겠소.”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리는 한 종족이다. 먼 옛날 우리와 피가 같은 우랄알타이아 종족이 베링 해를 건너 남으로 남으로 남하하여 이곳 파타고니아까지 오게 되었다고 역사가들은 전하고 있다. 은둔자들의 땅 파타고니아에  도착한 우리는 마치 원주민의 후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에서 2,400km 떨어진 푼타아레나스는 남극으로 가는 마지막 전진기지다. 남극의 세종기지를 가기 위해서도 이곳을 통과해야만 한다. 푼타아레나스는 스페인어로 ‘곶의 선단’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520년 마젤란 함대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해협을 찾고 있던 중 남하하면서 ‘세계사를 바꾸는 해협’을 발견하였다. 실로 세계사를 바꾸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푼타아레나스는 마젤란 해협을 쉴 새 없이 통과하는 대형 선박들과 함께 번성하였으나,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이 되면서부터 번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은 남극으로 가는 마지막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콜렉티보(합승버스)를 타고 바람 부는 해안가를 따라 공항에서 20km 떨어진 푼타아레나스 시내로 들어갔다. 오늘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푸에르토 나탈레스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 콜렉티보가 멈췄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파체코 버스가 18시 30분에 있었다. 출발시간까지는 아직 3시간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이미 그곳에는 우리처럼 배낭을 걸머진 여행자들이 벌써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여행자들이었다. 여행자들은 주로 젊은 층으로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트레킹을 하러 가는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이었다. 버스표를 산 뒤 큰 배낭을 맡겨두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마젤란의 동상을 떠 받치고 있는 원주민 상이 새겨진 동상


푼타아레나스는 인구 11만의 조용한 도시다. 남극이 가까운 이곳은 날씨의 변덕이 무척 심하다. 맑은 하늘이 어느 틈에 먹구름이 몰려와 덮어 버렸다. 바람의 땅에는 구름도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지나가는 모양이다. 내 눈에 비친 땅 끝의 도시 푼타아레나스는 어쩐지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먹구름 속에서 빗방울을 뿌리더니 곧 멈추었다. 도대체 예측을 할 수 없는 날씨였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젤란의 동상이었다. 대포에 오른발을 거만하게 걸친 마젤란이 정복자의 모습으로 진군하듯 서 있고, 그 밑에는 원주민들이 마젤란을 떠받쳐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젤란을 떠 받치고 있는 아라카르프족과 우웰체족이라고 한다. 이들은 마젤란의 파타고니아 발견으로 인하여 원주민들은 절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 동상은 ‘죽어가는 갈리아 인(The Dying Gaul)'을 본떠 조각한 것이라고 하는데, 원주민에게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인 동상이다.  


마젤란 동상 밑에 있는 원주민의 발


아르마스 광장을 찾는 여행자들은 마젤란보다도 그 밑에 앉아 있는 원주민에게 관심을 더 보인다. 여행자들은 벌거벗은 채 한 발을 내려뜨리고 있는 한 원주민의 발등을 누구나 예외 없이 만져본다. 활처럼 휘어진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원주민은 멸종위기에 있는 아라카르프족이다. 그런데 예부터 이 원주민의 발을 만지면 “무사히 항해를 마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전설 덕분에 항해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면 이 원주민의 발등을 너나없이 만지게 된다. 하도 만져서 발등과 발가락, 다리까지 번쩍번쩍 빛이 날 정도다.      


"원주민 발등=만지면=무사항해=행운"     


이 미신적인 공식이 방문자들로 하여금 누구나 원주민의 발등을 만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도 만져서 발등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항해 시대에는 이런 막다른 지구의 땅 끝에 오면 누구나 위기감에 처하게 되고 말았을  것이다. 


“여보, 원주민 발등이 반질반질해요!”

“당신도 보석처럼 빛나 보이는 이 발등에 키스를 한번 해봐요.”

"발등에 키스를 해요?"

"응, 키스를 하며 소원을 말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야."

"설마..."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해봐요."

"그럼... 키스를 한번 해볼까?"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해진 원주민 발등. 만지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다.


원주민 발등을 만지며 키스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원주민 발등에 키스를 했다. 원주민의 발등은 빗방울에 촉촉이 젖어있었다. 빗방울에 젖어있는 발등에 키스를 하는 기분이 야릇했다. 원주민의 눈물이 발등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숙연해졌다. 


광장 주위에는 옛 금권 정치 시절에 지어진 대성당, 호텔, 그리고 고관들의 클럽으로 이용되는 옛 부호들의 건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우리는 대성당과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 있는 가게들을 기웃거리다가 터미널로 갔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는 만원이었다. 저녁 6시 30분, 우리는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곳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는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버스는 푼타아레나스 시내를 벗어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 벌판을 달려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미 최고의 숨은 비경, 파타고니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