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Dec 23. 2019

지구 상에 마지막 남은 절경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죽기 전에 꼭 가 보아야 할 비경


칠레가 가장 자랑하는 비경을 간직한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의미를 가진 '울티마 에스페란자(Ultima Esperanza)' 주(州)에 속해 있다. 한 주(州)의 이름이 이토록 비장할 수 있을까? 그만 큼 이 지역은 인류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직 손길이 닿지 않은 태곳적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네스코가 생물다양성 보존지역으로 지정한 이곳은 파타고니아 대초원 지대에 2,000미터에서 3,000미터의 높이로 치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 산군들이 주변에 펼쳐진 빙하 등 숨 막히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비경이 펼쳐진 이 지역에는 낙타과에 속하는 구아나코, 플라멩코, 사슴, 독수리, 퓨마 등 많은 야생동물과 조우를 할 수 있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마이클 브라이트 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 그리고 세계 3대 트레킹 스폿 등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수차례 선정되고 있다. 그만큼 지구 상에 마지막 남아있는 절경 중에 하나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는 길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시작된다. 푼타아레나스를 출발한 지 4시간.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사방은 훤하다. 남극권에서 맞이하는 백야현상이다. 노르웨이 나르빅과 트럼쇠 부근의 북극권에서도 백야의 밤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북극의 반대편인 남극권에 속하는 칠레의 파타고니아에서 또 다른 백야의 밤을 맞이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인구 약 2만 명이 살고 있는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는 울티마 에스페란자 주의 주도로 파에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등산객들은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에 취하기 전에 이곳에 며칠 머물며 체력도 충분히 보충을 하고 트레킹 장비를 준비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는 두 개다. 트레일 모양이 'W'자 모형처럼 생겼다고 하여 'W 트랙'으로 불리는 4박 5일(78km) 코스와, 전 구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7발 8일(101km) 코스가 있다. 예측을 할 수 없는 날씨와 악명 높은 바람으로 하루에 사계절을 다 겪게 되는 트레킹 코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곳 전진기지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숙소를 찾아 백야의 도시를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모두가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 모여든 배낭족들이다. 론니 플레닛에서 미리 알아둔 데니카 호스텔에 도착을 하니 스페인계 여주인이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데니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에게 방을 배정받고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표를 부탁했다. 왕복 버스표는 11,000 페소인데 국립공원입장료는 별도로 내야 한다고 했다. 


“데니카, 그레이 빙하에서 당일 돌아오는 버스가 있나요?”

“네, 오후 4시에 돌아오는 버스가 그레이 빙하 산장에서 출발해요. 4시 이전까지는 산장에 도착을 해야 합니다.”

"데니카 말을 믿어도 되겠지요?"

"그럼요. 그 대신 이곳에서 아침에 출발하는 버스는 파이네 국립공원 입장 티켓을 파는 매표소까지만 갑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곳에서 트레킹을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만약에 그레이 빙하를 가려면 호텔 라고 그레이까지 걸어서 가야 해요."

"그럼 공원 입구에서 그 호텔까지는  얼마나 걸리지요?"

"어디 보자. 약 15km 정도 되니까 3시간 정도 걸려요."

"와우 그렇게 많이 걸어야 하나요?"

"그 정도는 걸어야지요. 그래도 그 험한 파이네 국립공원을 며칠씩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 정도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지요. 호호호."

"하긴 그렇기도 하네요."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 매표서에서 호텔 라고 그레이까지는 15km로 걸어서 약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둥그런 타원형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데니카는 아주 오래전부터 만났던 오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는데 그레이 빙하를 보지 않고 그냥 갈 수은 없는 않은가? 우리는 데니카의 말을 믿고 내일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여보, 내일 3시간이나 걸어도 괜찮겠소?"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아무런 장비도 없는데 트레킹을 할 수도 없고요. 걱정 말아요. 이래 봬도 걷는 데는 일가견이 있잖아요."

"하하하.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자 일찍 잠이나 자 둡시다."


데니카 호스텔에는 밤새 여행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 독서를 하는 사람, 무언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 그들은 해가 지지 않는 있는 파타고니아는 밤을 잊은 듯했다. 우리도 그 분위기에 들떠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12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7시에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회사 이름이 고메즈(Gomez)였다. 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에는 대부분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트레킹을 가는 젊은 남녀 여행객들이다. 상쾌한 아침이다. 햇빛이 아침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순식간에 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비가 내렸다. 해는 구름에 가리었다가 다시 뜨곤 했다. 변화무쌍한 날씨다.


“오우, 무지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창밖을 바라보니 호수 위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둥그런 원을 그리며 강 위에 걸려 있었다. 모두들 차 창가로 카메라를 들이밀며 무지개를 찍기 여념이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날씨의 변덕이다. 로켓포처럼 생긴 안데스의 봉우리엔 시커먼 먹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댔다. 뿔처럼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눈에 덮여 하얀 머리칼을 휘어감은 듯 희한하게 보였다. 


그 신비한 조화의 풍경에 저마다 여행자들은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죽기 전에 꼭 가 보아야 절경'으로 계속 지목을 받고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경치가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1,200만 전에 화강암으로 형성된 산괴는 세 개의 봉우리가 로켓포처럼 우뚝 서 있다. 그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파이네 그란데이고, 그 옆에는 '파이네의 뿔'이라고 부르는 쿠에르노스 데 파이네의 봉우리들이 사나운 소의 뿔처럼 삐쭉삐쭉 솟아있다. 산 밑에는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려 쪽빛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파이네 국립공원을 둘러싼 빙하가 무려 12개나 된다고 한다. 

 

초원에는 구아나코와 냔두가 뛰어다녔다. 양 떼와 소떼를 몰고 가는 카우보이와 목동들의 모습도 보였다. 산골짜기에는 푸른 호수가 에메랄드 융단처럼 아름다운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달려가다가 삼거리에 있는 카페에 정차를 했다. 카페 앞에 서 있는 원주민 동상이 낯익게 느껴졌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이 베링해협을 건너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어쩐지 우리네 가까운 할아버지 같은 다정하게 보였다.



여행자들은 산장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로 몸을 녹였다. 잠시 후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12시경 공원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800페소의 입장료를 내고 공원 입장 허가를 받았다. 트레킹을 하는 여행자들은 입장료가 훨씬 더 비쌌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파이네 국립공원 트레킹을 하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로켓포 같은 산을 향해 걸어갔다.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파이네 국립공원을 하려면 상당한 장비가 필요하다. 체력도 부족하고 장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그레이 빙하투어를 하기로 했다. 


데니카의 말대로 공원 입구에서 버스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나는 올 때 일이 조금 걱정이 되어서 고메즈 버스 운전사에게 오후 4시에 호텔 라고 그레이까지 버스가 오느냐고 확인을 하였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는 "오케이"하고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레이 방하로 가는 여행객들은 대부분 패키지 투어를 하는 단체 여행자들로 전세 버스를 타고 갔다. 걸어서 가는 여행자는 아내와 나 단 둘 뿐이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머리칼이 바람이 이리저리 휘말렸다. 변화무쌍한 날씨 만큼이나 풍경은 야성적이고 놀랄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비포장도로 된 자갈길을 걸어갔다. 주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야생화 사이사이로 푸르스름한 빛을 띤 눈 덮인 토레스 델 파이네의 뾰쪽뾰쪽한 뿔들이 구름 사이로 숨 막힐 듯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토레(Torre)는 스페인어로 ‘탑’을 뜻하고, 파이네(Paine)는 파타고니아 원주민 테우펠 체(Tehuelche) 언어로 ‘파란색’을 의미한다. 이를 풀이하면 '창백한 블루 타워'란 뜻이다.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로켓포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는 푸른 산들이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처럼 보였다. 그 사이로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빙하가 신비하게 비추이고,  빙하가 녹아내려 물들이 쪽빛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구아나코가 이상하다는 듯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냔두들이 후다닥 달려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깜짝깜짝 놀라 서로 부둥켜안았다. 우리는 마치 비밀의 정원을 산책하듯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끝없이 피어있는 길을 걸어갔다. 아내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볼 때마다 "와아, 너무 아름다워요!"하고 탄성을 지르며 감탄을 했다. 그러나 3시간이 넘도록 험한 자갈길에서 걷다 보니 거의 그로키 상태가 될 정도로 지쳐버렸다. 우리는 넘어질 듯하면 서로를 부축하며 비틀비틀 걸어갔다. 마침내 호수가 보였다. 


“와아! 빙하예요!”

“오, 그레이 빙하요! 마침내 도착했군!”



빙하를 본 아내는 신기한 듯 소리를 질렀다. 거대한 빙하 덩어리가 녹아내리며 여기저기 천천히 떠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유빙들은 어디로 흘러내려갈까? 빙하를 보니 없던 힘이 솟아났다. 호텔 라고 그레이에 도착을 하니 거의 오후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호텔 입구에서 2시에 출발하는 그레이 빙하 티켓 두 장을 샀다. 우리는 호텔 커피숍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산장에는 그레이 빙하를 구경하러 가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오후 2시 우리는 그레이 빙하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주민 발등에 키스를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