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산 고물차를 몰고 우수아이아로 출발했지만...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푼타아레나스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L군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그는 하루 밤 사이에 푼타아레나스로 돌아가기로 마음이 변했다고 했다. 그는 푼타아레나스에서 하루 밤을 머문 뒤 우수아이아로 갈 거라고 했다. 어쨌든 반가웠다. L군과 맺어진 인연의 고리는 이렇게 끊기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푼타아레나스에 도착을 하니 투숙객을 유치하려는 아줌마들이 몰려와 서로 자기네 숙소로 가자고 호객을 했다. 아내와 나는 J군이 가리켜 준 '마뉴엘'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고, L군은 자신이 전에 머물렀던 집으로 간다고 했다. 나 홀로 고독을 즐기는 L군은 홀로 머물기를 좋아했다. 그런 그가 야속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침묵하는 자유인, 그는 그렇게 보였다.
마뉴엘의 집 앞까지 거의 도착을 했는데, 버스 터미널에서 호객 행위를 했던 아줌마가 봉고차를 몰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하루 밤에 7달러로 해줄 테니 자기 집으로 가자는 것. 나는 그냥 마뉴엘의 집에 머물자고 했고 아내는 3달러가 더 싼 그녀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길거리에서 아내와 옥신각신 할 수도 없고, 이거야 정말~ 나는 아내의 의견을 좇아 그 아줌마의 봉고차를 탔다.
우리를 데리고 간 아줌마네 집은 2층으로 된 작은 민박집이었다. 1층에 부엌이 있고 2층에 손바닥만 하게 방을 쪼개어 몇 개를 세놓고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시켜 우리 방에 작은 TV도 들여놓아 주었다. 마뉴엘의 집은 하룻밤에 10달러인데 이곳은 7달러로 3달러가 쌌다.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800달러를 택시강도한테 뺏기고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자 하는 아내의 마음이 가상하게 보였다.
우리는 저녁거리로 생선을 사다가 생선찌개를 끓여 먹기로 했다. 푼타아레나스는 항구도시라 시장에는 생선이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지구촌 어디를 가나 시장은 언제나 생기가 도는 곳이다. 우리는 이름도 잘 모르는 남극의 생선을 사들고 생선찌개를 끓였다. 산티아고에서 K사장이 준 고추장을 풀어 넣고 생선국을 끓이니 훌륭한 찌개가 되었다. 맛이 그만이었다. 생선국은 실컷 먹고도 남았다. 아내는 내일 아침에 남은 생선을 데어서 먹자고 하면서 생선국을 식힌 다음 냉장고에 소중하게 넣어 두었다.
저녁식사를 끝마치고 나니 푸른 눈의 서양 아가씨가 홀로 들어왔다. 딱 보니 독일 여자였다. 늘씬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미인이었다. 이제는 여행자를 보면 대충 어느 나라 사람인지 짐작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대체로 독일 사람들은 옷차림이 깔끔하고 키가 크다. 푸른 눈에 다소 차가운 기운이 도는 여자들은 거의가 독일 여자들이다. 반면에 프랑스 여자들은 키가 좀 작고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상당히 도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모험심이 강하고 다소 터프한 분위기가 풍겨 난다. 문화의 차이에 따라 풍겨오는 인상이 다르다.
독일 아가씨는 내일 아침 자동차를 렌트를 하여 홀로 우수아이아를 간다고 했다. 그녀는 자동차를 이미 렌트를 하여 놓았으니 나보다 시간이 되면 같이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수아이아는 꼭 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푼타아레나스에서 우수아이아까지는 635킬로미터로 승용차로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렇게 먼 거리를 혼자 자동차를 몰고 가기에 너무 버거웠을까? 아니면 적적하게 생각이 되었을까? 그녀는 우수아이아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다시 푼타아레나스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했다.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싫다고 했다. 그냥 우리끼리 자유롭게 돌아다니자는 것이었다. 잘 생긴 독일 여자가 싫었을까? 하하,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다소 아까웠지만 어쨌든 나는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독일 아가씨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노 프로블렘." 하면서 웃으며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그 생선국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뒤지니 국이 없었다. 누군가 먹어 버렸거나 아니면 버린 모양이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 생선국을 버렸다고 했다. 화가 난 아내는 당장에 숙소를 옮기자고 했다. 이 집으로 오자고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다시 옮기자고 하니 여자의 마음은 참으로 변덕스러웠다.
맛있는 생선국을 잃어버린 아내는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나도 기분이 좋아 않았지만 그 일로 아내와 싸울 수도 없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짐을 챙겨 들고 J가 말해준 마뉴엘의 집으로 갔다. 마뉴엘의 집에 도착을 하니 마침 반가운 사람이 와 있었다. J가 와 있었던 것. 그는 피츠로이 등산을 포기하고 예정보다 빨리 왔다고 했다. 혼자서 등산을 하려고 하니 재미도 없고 괜히 신세가 처량한 것 같아 푼타아레나스로 돌아왔다고 했다.
우리는 도미토리 룸에서 J와 같은 방을 썼다. 아내와 나는 자동차 렌트를 하여 가능하다면 우수아이아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 독일 아가씨와 함께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금도 셰어를 하고 운전도 교대를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집주인 마뉴엘에게 렌터카를 부탁을 했더니 그는 '베리 굿 카"를 연발하며 아주 싸고 좋은 차가 있으니 염려 말라고 했다. 그는 항상 싱글거리며 웃고 다니는 쾌남아였다. 베리 굿 카, 과연 어떤 차일지 몹시 궁금했다.
다음 날 아침 마뉴엘은 고물 자동차 한 대를 끌고 왔다. 베리 굿 카라고 한 자동차는 놀랍게도 낡을 대로 낡은 1975년 산 도요다 포터였다. 렌터카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AE-96-18, 1975 산 도요다,
하루 렌트 비용은 30달러,
무제한 마일리지.
이게 민박집주인 마뉴엘이 '베리 굿 카'라고 극찬을 하면서 소개를 해준 자동차였다. 전신에 녹을 뒤집어쓴 포터는 발로 한번 차면 와장창 으스러져 버릴 것만 같은 낡은 자동차였다. 만지기만 해도 붙어있는 녹이 덜덜 떨어져 내렸다. 자동차의 문을 닫을 때마다 그 울림으로 녹 껍질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파타고니아 강풍에 벌집이라도 나 버릴 것만 같은 그런 허름한 자동차를 마뉴엘은 여전히 베리굿 카라고 극찬했다.
"마뉴엘, 이게 어떻게 베리 굿 카냐?"
"내 차는 1970년 산인 데, 이 차는 5년 후에 나온 1975년 산이니 당연히 베리 굿 카다. 4륜 구동이라 힘이 좋다."
"하하하. 그렇기도 하다. 이거 가다가 엔진이 꺼지는 것은 아니냐."
"절대로 그럴 염려는 없다. 마음 놓고 타봐라."
나는 약간 돈키호테 기질이 발동했다. 나는 어쩐지 파타고니아 땅에 괴물처럼 생긴 이 낡은 자동차가 어울릴 것만 같아 마뉴엘의 추천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내도 가격이 싸니 좋다고 동의를 했다. 낮에 시내에 들렸던 렌터카점에서는 소형 승용차가 하루 50달러에 마일리지 제한을 두고 있어 가격이 배이상 비쌌다.
하여간… 우리는 푼타아레나스에서 우수아이아를 가기 위해 베리굿 카라는 닉네임이 붙은 도요타 포터를 렌트를 했다. 마뉴엘은 고장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자동차를 수리하는 연장 도구와 펜 벨트 하나를 챙겨주며 씩 웃었다. 이거야 정말, 병 주고 약을 주는군.
처음에는 마뉴엘이 동승을 하여 시운전을 해주었다. 수동식 기어가 잘 들어가지 않아 변속을 하는데 애를 먹었다. 마뉴엘은 교습을 끝내주고 자동차에서 내렸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다시 씩 웃었다.
“베리 굿 카!”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베리 굿 카에 아내와 J군이 함께 동승하여 우리는 우수아이아를 향해 엑셀을 힘차게 밟았다. 고물 자동차는 일단 잘 굴러갔다. 론리 플래닛에 의하면 푼타아레나스에서 버스로 리오 그란데까지는 8시간, 우수아이아까지는 12시간이 걸린다고 나와 있었다. 그러나 과연 이 고물 자동차가 우수아이아까지 갈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자동차를 탄 게 아니라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라도 탄 기분이었다. 나는 이 자동차를 "로시난테"라고 명명하고 제발 우수아이아까지 데려다 달라고 기원을 했다.
팬벨트가 떨어지고 오일 계기판이 고장 나고...
푼타아레나스를 벗어나 9번 도로를 타고 북상을 하다가 255번 도로로 접어드니 비포장도로가 이어졌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팜파스에는 바람만이 윙윙 불어댔다. 마을은커녕 자동차도 구경하기 힘든 도로였다. 성능 좋아 보이는 캠핑카 한대가 슝~하고 지나갔다.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다 보면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허무가 온몸을 휘어 감는다. 그러나 그 황량한 팜파스의 바람 속에 며칠만 자신을 내동댕이치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은 바로 '아, 아직도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경이로움이다. 인생이 바닥을 친다고 해도 결코 슬퍼만 할 필요는 없다. 바닥은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재기의 터닝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끝은 바로 세상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런 강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바로 우수아이아였다.
우수아이아가 있는 '푸에르토 델 푸에고 섬'은 한 마디로 '지구의 끝'이다. 사람들은 이 섬을 '세상의 끝'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세상의 끝은 어디에나 있다. 유럽 사람들은 포르투갈의 로카 곶을 지구의 서쪽 끝이라고 부르고, 호주 사람들은 태즈메이니아 호바트를 지구의 끝이라고 부르며,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대륙의 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긴 우리나라에도 해남에 '땅 끝'이라는 지명이 있다.
1520년 11월 1일 마젤란이 이곳을 지날 때 원주민이 신호를 하려고 횃불을 밝혔는데, 바람이 강한 불모의 대지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불가사의하게 느껴진 마젤란은 '티에라 델 푸에고(불의 땅)'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서쪽은 마젤란 해협과 피오르드, 남쪽은 비글 수로로 둘러싸인 섬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반반씩 차지하고 있다.
푸에고 섬이 문명세계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덕분이다. 비글호를 타고 섬의 원주민을 처음 보게 된 다윈은 그들의 생활이 너무 비참함을 보고 크게 놀랬다. 진눈깨비가 내리는데도 가릴 것 하나 없이 아이를 안은 젊은 원주민 여인, 소매 없는 찢어진 망토를 두르거나 손바닥만 한 짐승 가죽으로 앞을 겨우 가린 원주민들이 보였다.
푸에고 섬에는 원래 약 8,000여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백인들의 배가 들어오면서부터 폐렴, 연주창, 독감, 백일해, 성병 따위의 질병으로 거의 멸종하다시피 줄어들어 순수한 원주민은 단 한 명도 없고 혼혈족만이 수십 명 정도 남아있다고 한다. 원래 푸에고 섬의 원주민은 수천 년간 대자연을 잘 견디며 잘 살아왔다. 그러나 문명의 세계에서 온 질병은 무력보다도 더 무섭게 그들을 멸종시켜 버렸다. "비누와 교육은 총과 같이 치명적일 수 있다. 다만 사람을 죽이는데 총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라고 말한 마크 트웨인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내와 나, 그리고 J, 세 사람은 덜컹거리는 애마 로시난테에 몸을 의지하고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여보, 어쩐지 으스스하기만 해요."
"뭐가?"
"원, 이렇게 마을 하나, 자동차 한 대 구경하기가 힘드니 말이에요."
"흐음… 허지만 이런 게 진정한 여행이 아니겠소?"
우수아이아로 가는 길은 그리 녹녹치가 않았다. 길은 가다가 끊어지기도 하고 엉망진창으로 질척거리기도 했다. 아내가 말을 한 것처럼 파타고니아의 팜파스는 으스스했다. 집은커녕 자동차도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오지를 고물 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마젤란이나 다윈이 이곳을 탐험했던 것보다도 더 위험하고 무모한 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영락없이 오도 가도 못할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유사시에 어떤 통신수단도, 우리를 보호해주는 보호막도 하나 갖춘 게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3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저만치 황량한 벌판에 트럭을 세워놓고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마도 트럭이 고장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내가 일단 자동차를 멈추자 그가 우리 곁으로 와서 양손으로 제스처를 하며 스페인어로 뭐라고 말을 했다.
그는 기름때가 뒤룩뒤룩 묻은 꾀죄죄한 원피스 작업복을 입었는데, 콧수염을 기르고 마른 얼굴에 눈꼬리가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몇 세기를 걸쳐 피가 섞인 메스티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페인어에 문외한인 우리들은 그의 말을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대강 유추해 보건대 자기 트럭이 고장이 나서 그러니 좀 태워달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일단 그를 태웠다. 산 그레고리오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로 보아서 여기에서 가까운 도시인 산 그레고리오까지 데려다 달라는 것 같았다.
영어가 도통 통하지 않으니 우리는 침묵을 지키며 1시간여를 달려갔다. 그러자 어느 조그마한 마을이 나왔다. 그는 거기에서 전화를 걸어 더 큰 도시에 자동차를 수리 요청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 트럭 운전사를 내려 주고 1시간쯤 갔을까? 갑자기 엔진 쪽에서 펑하는 소리가 났다. 엇! 나의 로시난테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 액셀을 밟으니 그래도 자동차는 굴러가기는 하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다. 젠장, 로시난테, 어찌 된 거야.
자동차를 세우려고 하는데 마침 전방에 트럭 두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트럭도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린 구세주를 만난 듯 일단 트럭 옆에 차를 세웠다. 본 네트를 열어보니 오 마이 갓! 펜 벨트가 떨어져 있질 않은가!
떨어진 펜 벨트를 들고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트럭을 수리하던 기사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다행히 영어가 좀 통하는 기사였다. 그는 여분의 벨트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푼타아레나스를 출발하기 전에 마뉴엘이 준 벨트가 생각이 나서 짐칸에서 벨트를 찾아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벨트를 끼어 보더니 이건 너무 커서 맞지 않으니 다른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것밖에 없다고 하자 그는 벨트를 철사로 줄여서 벨트라인에 동여 멨다.
그는 우리보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내가 우수아이아로 간다고 했더니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이 자동차로는 도저히 거기까지 갈 수 없다고 했다. 빨리 가까운 도시로 가서 자동차를 수리해야 한다는 것. 임시방편으로 펜 벨트를 고정시켜 놓았는데 너무 오래 달리면 곧 다시 고장이 날 거라고 했다. 그러니 차를 살살 달래며 가까운 도시로 돌아가라고 눈을 부릅뜨고 충고를 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푼타아레나스로 가는 것이 좋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바람은 더 세차게 불어오고 갈 길은 멀었다. 아내와 J군과 협의 끝에 우리는 그 트럭 운전사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우리는 이제 조금 전에 태워주었던 트럭기사가 우리에게 연발을 했던 “그라시아스”를 우리 자동차를 수리해준 트럭기사에게 연발하며 오던 길로 자동차를 살살 돌렸다. 할 수 없다. 일단 오늘은 후퇴하는 거다.
'불의 땅'을 눈앞에 두고 후퇴를 해야 하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길을 잘 못 들어 우리는 아르헨티나 국경까지 가고 말았다.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은 물론 스마트폰이나 핸드폰도 없었다. 오로지 론리 플레닛 가이드북과 지도에 의존을 할 때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내가 그런 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연료 계기판을 보니 거의 바닥까지 내려와 연료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로시난테, 어찌 된 일이야. 길을 제대로 인도해야지." 나는 홀로 중얼거리며 칠레 국경수비대원에게 다가갔다. 칠레 국경수비대 직원에게 이 근방에 주유소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 지역에는 없고 이곳에서 푼타아레나스 쪽으로 70km를 더 가야 주유소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푼타아레나스에서 190킬로미터나 먼 곳에 와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곳에서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일단 우리는 자동차를 살살 달래며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내도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져 곧 멈춰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동차 계기판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도 로시난테는 덜덜거리며 잘도 굴러갔다. 엑셀을 세게 밟기도 겁이 났다. 펜 벨트도 임시로 갈아 끼었지, 기름은 바닥이 났지, 한 번 서기라도 하면 로시난테는 영영 멈추어 서버릴 것만 같았다. 허지만 신기하게도 로시난테는 주유소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을 하였다. 오, 나의 로시난테여 장하도다!
끝없는 팜파스가 펼쳐진 외딴곳에 바다를 등지고 터미널 그레고리오(Terminal Gregorio)란 나무간판이 걸려있는 작은 주유소가 있었다. 주유소에는 종이 하나 달려 있었다. 아마 종을 쳐야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주유소의 종을 땡땡땡 세 번이나 쳤다. 그러나 할아버지 한 분이 안에서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를 만나자 우리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다. 우리는 가까스로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
"그라시아스!"
내가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그는 그저 싱긋 웃기만 했다. 주유소를 출발하여 밤 9시에 푼타아레나스 마뉴엘 집에 도착했다. 마뉴엘이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며 내일 올 줄 알았는데 왜 벌써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마뉴엘, 베리 굿 카의 펜 벨트가 떨어져 죽을 뻔했다. 그래도 이 자동차가 베리 굿 카냐?"
"그렇고말고. 베리 굿 카가 아니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겠느냐. 아마 내 고물차였다면 도저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뭐라고? 푸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우리는 마뉴엘의 유머에 모두 하늘을 바라보며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어대고 비까지 세차게 내렸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는 점점 더 많이 쏟아져 내렸다.
"초이, 돌아오길 잘했소. 만약에 우수아이아까지 갔더라면 이 비바람을 어떻게 견딜 뻔했소. 아마 케이프 혼의 물귀신이 되고 말았을지도 모르지."
“정말 그럴 수도 있었겠네. 마뉴엘, 그런데 이 자동차는 참 이상해요. 오일 계기판이 바닥을 쳤는데도 굴러가던데 어찌 된 일이지?”
“하하하. 거봐라. 내가 베리 굿 카라고 하지 않더냐?”
마뉴엘이 계기판을 점검해보더니 계기판 자체가 고장이 나 있었다고 했다. ㅋㅋㅋ 그 말에 모두가 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어쩐지 주유소에서 기름값을 적게 받는다 했는데 기름이 상당히 있었던 것이다. 고장 난 계기판 덕분에 우리는 살아서 돌아온 거나 다름없었다. 마뉴엘과 우리는 베리 굿 카에 대한 무용담을 한참이나 지껄이며 통쾌하게 웃었다.
고물 자동차를 빌려준 마뉴엘이 왠지 밉지가 않았다. 번개 불이 번쩍이더니 하늘은 천둥소리로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자동차를 날려버리기라도 할 듯 강풍이 불어왔다. 마뉴엘의 말처럼 강행을 했더라면 이 폭풍 속에 케이프 혼의 귀신이 될 법도 했다.
인간은 가끔씩 놀이공원으로 가서 무서운 귀신의 집을 즐기듯이 두들겨 맞는 메조키스트 적인 면이 있나 보다. 펜 벨트가 떨어져 우수아이아로 가는 여행이 무산이 되고 천둥을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공포 속에서도 이상하게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