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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27. 2019

밀로돈의 동굴로 떠나는 시간여행

1만 년 전 땅늘보가 살았던 거인 밀로돈의 동굴을 가다

1만 년 전 땅늘보 밀로돈이 살았던 동굴로 떠나는 시간여행


밀로돈 동굴과 야생동물, 유빙, 파타고니아 자연탐사


호기심이 많은 나는 가까운 곳에 1만 년 전 밀로돈이 살았던 동굴이 있다고 하니 가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밀로돈으로 가는 자동차가 왔다. 아내와 함께 나는 자동차에 올라 1만 년 전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어릴 적 걸리버 여행기를 읽을 때 상상했던 거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여 나는 다소 흥분이 되었다. 영국의 풍자소설가 조나단 스위프트의 여행기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들도 이 밀로돈을 모델로 삼았다고 하질 않았는가?


밀로돈은 거대한 땅늘보(Ground Sloth)로 황소보다 큰 남아메리카 특유의 초식동물이다. 몸길이가 3미터에서 7미터, 몸무게 1톤에 달하는 거대한 땅늘보 밀로돈은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 약 1만 년 전까지 생존했으며, 그 뒤로는 멸종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밀로돈 동굴 앞에 서 있는 밀로돈 동상. 동굴에서 1만 년 전 살았던 밀로돈의 가죽과 뼈가 발견되었다. 

  

론리 플레닛 가이드북에는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북쪽으로 불과 24km 정도 떨어진 위치에 밀로돈이 서식을 했던 동굴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밀로돈의 동굴은 1895년 2월 독일인 여행가 헤르만 에버하르트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그가 밀로돈 동굴을 발견하게 된 경위는 매우 흥미로워 부르스 채트윈의 책 파타고니아에 기술된 내용을 소개한다.      


헤르만의 아버지는 프러시아 군대의 대령으로 헤르만을 육군사관학교로 보냈다. 그러나 군대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 헤르만은 어느 여름날 아침 수영하러 강에 간다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강둑에 양복 한 벌을 벗어서 남겨둔 채 5년간 행방이 묘연했다. 그는 미국의 네브래스카 양돈 농장, 알류샨 열도의 포경선 기지, 그리고 중국의 베이징까지 갔다고 한다. 

     

독일 육군 당국은 베이징에서 탈영을 한 헤르만을 붙잡아 본국으로 송환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군법회의에서 자신이 판사를 맡겠다고 자청해, 아들에게 탈영 죄를 적용하여 20년간의 중노동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헤르만의 친구들은 너무 가혹하다고 항소하여 형량은 18개월로 감형되었다.   

   

형량을 채운 헤르만은 독일에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아르헨티나 포틀랜드 섬으로 가서 수로 안내인으로 일했다. 어느 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영국 대사 두둘리 백작의 요트 마르체사 호를 마젤란 해협을 경유하여 발파라이소까지 운반해 달라고 의뢰했다. 돈은 뒷전이고, 요트를 타는 것만으로 헤르만은 흥분했다. 그가 요트를 내리려고 할 때, 두둘리 경은 헤르만의 손에 봉투 하나를 쥐어주며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중에 봉투를 열어보니 천 파운드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귀족(Lord)은 신(Lord)이었던 시절이었다. 


수표 액수가 어마어마해서 어디에다 쓸지 모르고 있던 그는 결국 양 목장을 구입했다. 1893년, 새로운 방목장을 찾던 그는, 해군에서 탈영한 두 명의 영국인과 함께 라스트호프 만까지 배를 저어갔다. 푸에르토 콘수엘로(푸에르토 나탈레스 인근)까지 오자 그가 말했다. “이곳이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1895년 2월, 헤르만은 개척지 뒷산에 동굴이 하나 있다는 걸 알고, 그곳을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처남과 함께 동굴로 간 그는 인간의 두개골과 지면에 반 정도 파묻힌 한 조각의 가죽을 발견했다. 가죽의 길이 약 120센티미터, 폭은 그 반 정도가 되었다. 가죽의 한쪽 면은 뻣뻣한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표면에 소금이 생겨 있었다. 반대 면에는 하얀 작은 뼈가 박혀 있었다. 그는 유물을 웁살라 박물관의 아인나르 렌베르크 박사에게 보냈다. 나중에 이 가죽은 남아메리카 고생물 학계가 대가 플로렌티노 아메기노 박사의 논문에 의해서 밀로돈의 가죽으로 밝혀졌다.  (브루스 채트인 저, 파타고니아에서 발취함)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우리는 곧 '밀로돈 동굴(Cueva Del Milodon)'이라고 표시된 곳에 도착했다. 마침 날도 맑게 개어 사방에 탁 트여 시야가 매우 널어졌다. 우리는 땅늘보가 느리게 걸어가듯 길가에 핀 야생화를 감상하며 밀로돈의 동굴로 서서히 걸어갔다.


밀로돈 동굴 표지판

       

역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에 폭 120미터 정도 되는 동굴 입구가 죠스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처럼 나타났다. 하얀 종유석이 날카로운 죠스의 이빨처럼 사납게 보였다. 높이 30미터, 깊이 200미터에 달하는 밀로돈 동굴은 규모가 대단했다.       


동굴 입구에는 밀로돈을 복원한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언 듯 보면 공룡 같기도 하고 곰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서 있는 모습이나 머리 배 등이 다르게 보였다. 머리는 말처럼 생겼지만 인간처럼 직립으로 서 있는 모습이 어쩐지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동상이 서있는 자리에서 헤르만이 울긋불긋한 긴 털을 간직한 밀로돈의 가죽을 발견했다고 한다.    

  

동굴 내부로 들어가 보니 비바람과 눈을 피하기에 아주 적합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동굴 양옆 면에는 소금의 결정으로 뒤덮여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한족 바닥은 짐승의 똥으로 뒤덮여 있었다. 밀로돈의 똥일까? 순간 나는 거대한 밀로돈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똥을 누는 환상이 그려졌다. 


밀로돈의 동굴


다행인 것은 동굴 주변과 동구 내부가  자연 그대로 보조되어 있었다. 1만 년 전에도 햇빛과 자연은 지금 있는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시공을 넘어서 1만 전의 과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굴 내부는 햇빛과 바람도 비교적 잘 통해서 동물이나 원시인들이 거주하기에 아주 적합했을 것 같았다. 동굴에서는  밀로돈 외에도 원시인들이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동굴 속에서 나오자 자는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복귀를 했다. 세월이 가도 저 동굴은 큰 지각변동이 없는 한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거인 밀로돈을 비롯해서 이 동굴을 거쳐 간 짐승들과 사람들은 모두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사라져 가고 말겠지.


관광을 온 여인들이 밀로돈의 동상 앞에서 다리와 배를 만지며 포즈를 취했다. 저 여인들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겠지. 세월이 흘러 육체는 사라지고 없지만 밀로돈의 영혼은 동굴 주위를 맴돌고 있을까? 동굴을 나오는데 멀리 흰 눈으로 뒤덮인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봉우리들이 아스라이 보였다. 나는 밀로돈의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아내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밀로돈 앞에 서 있는 당신 모습이 꼭 야만인처럼 보이는군요.”

“하하, 밀로돈을 닮은 야후처럼 보이질 않소?”

"에그, 정말 제발 그 수염이나 좀 깎아요!"     


밀로돈의 동상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아내가 수염을 제발 깎으라고 채근했다. 남미 여행이 끝나갈 시기에 당도한 파타고니아! 내 발은 이미 퉁퉁 부어 원주민의 발처럼 커져 있었고, 미처 깎지 못해 텁수룩하게 긴 수염은 은둔자를 방불케 했다. 사진을 찍고 동굴을 나와 자동차를 타어 가는데 길 양옆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와, 저 예쁜 노란 꽃이 무슨 꽃이지요?'

"칼라파테 꽃이라고 한다는군."

"칼라파테? 무슨 영화 이름 같군요."

"저 열매를 먹으면 다시 파타고니아에 온다는군."

"정말이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

"그럼 우리 저 열매를 하나씩 따 먹어요."

"아예 한 주먹을 따 먹지. 그래야 여러 번 올게 아닌가?"

"에그, 더도 말고 한 번만이라도 더 왔으면 좋겠어요."

"그 열매를 먹으면 당신의 소원을 꼭 들어줄 거야."     


칼라파테 꽃


파타고니아 전설에 의하면 이 칼라파테의 열매를 먹으면 다시 파타고니아에 온다고 전해오고 있다. 아내와 나는 마치 기도를 하듯 설익은 칼라파테 열매를 따 먹었다. 정말 이 열매가 다시 이곳에 오게 해 줄까? 암튼 전설의 열매를 먹었으니 파타고니아 바람의 신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     

  

우리는 야생화들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길을 지나 버스에 올랐다. 팜파스의 들판에는 수천 마리의 소 떼들이 가우초들과 소몰이 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목장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초지를 찾아가는 것일까? 갈색 몸뚱이에 머리와 배가 하얗게 생긴 소 떼들의 행렬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말을 타고 소 떼를 모는 가우초들의 모습이 퍽 자유롭게 보였다. 개 짖는 소리와 소떼 우는 소리들이 뒤엉켜서 하모니가 되어 초원에 울려 퍼졌다. 저렇게 방목을 하는 소들은 건강하고 고기 맛도 좋다고 한다.   

   

소떼를 지나자 이번에는 과나코 무리들이 나타났다. 새끼들과 함께 무리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퍽 낭만적으로 보였다. 남미 산지에 서식하는 과나코는 어깨 높이 100~120미터, 몸무게 약 100킬로그램 정도 되는 낙타과 동물이다. 모두가 황갈색이 몸뚱이에 아랫면은 백색을 띠고 있다. 녀석들은 우리가 다가가도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새끼들과 무리 지어 여유롭게 거닐며 풀을 뜯는 모습이 야생의 자유 그대로다.   


말을 타고 소를 모는 가오초 목동, 유빙(위), 파타고니아에 서식하는 과나코, 냔두

    

바람에 흔들리는 야생화, 호수에 둥둥 떠내려 오는 거대한 유빙, 폭포, 눈 덮인 산, 들소와 과나코 야생동물들, 말을 타고 들소를 모는 가우초 목동들… 이곳은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때 묻지 않고 남아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퍽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만 년 전에 땅늘보 밀로돈도 이런 환경 속에서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물을 마시고 풀을 뜯어먹었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거대한 유빙들이 서서히 떠내려 오는 호수변을  느릿느릿 걸었다. 밀로돈처럼 거대한 저 유빙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빙하의 고향은 바다일까? 아니면 산일까? 저 거대한 유빙도 바다로 가지전에 다 녹아버리겠지.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로 다시 온다고 하는데...


밀로돈의 동굴과 주변의 자연을 탐방하고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데니카(Danica) 호스텔로 들어가니 호스텔 주인 데니카가 밀로돈의 동굴은 잘 다녀왔느냐고 웃으며 반긴다. 그리고 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듯 말했다.


"초이, 저기, 코레아 프렌드가 있어요."


눈치로 보아서는 한국인이 와 있다는 말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저녁을 지어먹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정말 나랑 비슷하게 눈이 찢어진 한국인 청년 한 사람이 식탁에 외롭게 앉아있다. 반가웠다. 이런 오지에서 동포를 만나다니. 특히 아내가 정색을 하며 반겼다. 한국말에 배가 고팠던 아내였다.


J는 한국을 떠나 온 지 10개월째라고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 기념으로 세계 일주를 떠나왔는데 장모님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산티아고에서 아내를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파타고니아를 홀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암벽을 타는 등산전문가였는데 어느 날부터 여행이 좋아져서 세계 여행을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눈가에 늘 웃음을 짓는 그의 인상이 너무 좋아 보였다.  


그는 장기간 여행을 다니면서 아내와 많이 다투기도 했다는데, 정작 아내가 곁을 떠나고 나니 너무나 심심해져서 여행도, 먹는 것도 별로 흥미가 없어져 버렸다고 했다. 아내가 곁에 있을 때에는 제발 좀 따로 떨어져 혼자 홀가분하게 여행을 좀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었는데, 막상 아내가 떠나고 나니 그녀가 없는 여행은 김이 빠져 여행도 먹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 부부란 이렇게 알콩달콩 싸우면서 정이 드는 것인가 보다.


우리는 푸줏간에서 고기를 좀 사다가 구워 먹기로 했다. 여기저기 그동안 육체노동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영양보충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데니카가 가리켜 준 정육점으로 가는데 정군이 따라나섰다. 심심하던 차에 우리 부부를 만나니 그도 무척 좋았던 모양이다. 푸줏간에서 남미 산 소고기를 사들고 호스텔로 오는데, 오마이 갓! 또 한 사람의 한국인이 거기에 와 있질 않은가!


더구나 그는 한 달 전에 페루 쿠스코와 티티카카 호수에서 만난 L 군이었다. 참 세상 정말 좁다. 세상의 끝에서 그를 다시 만나다니. L군 역시 홀로 세계 일주를 다니고 있는 여행광이었다. 암튼 내가 고기를 사 오자, J군이 포도주 한 병을 샀고, L군이 쌀밥을 지어 가져왔다. 


우리는 소고기 반찬에 쌀밥, 그리고 포도주 잔을 기울이며 여행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국말이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날마다 잘 알아듣지도 잘할 줄도 모르는 슬픈 외국어에 시달리며 여행을 다니다 오랜만에 고국의 여행자들과 한국말로 주고받으며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게 되니 심신의 피로가 확 풀이는 것 같았다. 피로가  더구나 남미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밤이 지지 않는 세상의 끝에서 붉은 포도주 잔을 마주치며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마다 독특한 여행담을 신나게 늘어놓는 우리들은 마치 자신들만의 왕국을 꿈꾸는 몽상가들처럼 보였다. 


J군과 L군은 아직 파이네 국립공원 투어를 하지 않아서 며칠 이 곳에 더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암벽등반가인 J군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거쳐서 피츠로이 산을 등반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가 내일 푼타아레나스로 간다는 말을 듣고 그가 묵었던 호스텔을 가리켜 주면서 인연이 되면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L군은 원래 말이 별로 없는 여행자였다. 그는 이곳에 머물다가 리오갈레고스로 가서 우수아이아로 갈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는 항상 목적지를 유보한 여행자였다. 말하자면 발길 닿는 대로 그때그때 때와 장소에 따라 여행을 즐기는 자유로운 방랑객이라고나 할까? 쿠스코에서도 스페인어를 배우며 그냥 호스텔에 죽치고 있던 그였다.


다음 날 아침 우린 푼타아레나스 행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데니카가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다. 며칠 머무는 동안 정이 듬뿍 들었던 것. 아내는 데니카와 긴 이별의 포옹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을 하자 데니카가 손을 흔들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며 점점 멀어져 갔다.


"데니카 잘 있어요."

"미스터 초이, 꼭 다시 한번 오세요."

"굿 바이~"

"바이~바이~"


오누이처럼 다정했던 데니카 호스텔 주인 데니카. 정이 듬뿍 들었던  그녀는 버스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왔다.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고 했지


파타고니아에 강한 바람이 분다.

바람의 신이 파타고니아로 다시 데려다줄까?


땅에 바짝 엎드린 너도밤나무가 

여인의 머릿결처럼 바람에 휘날린다.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고 했지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고 했지.


칼라파테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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