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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26. 2019

우르르 쾅쾅! 얼음왕국
페리토 모레노 빙하

끝없이 펼쳐진 얼음왕국!  페리토 모레노 빙하

우르르 쾅쾅! 얼음왕국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



죽기 전에 지나야 한다는 '루타 40번' 도로를 달리다

     

아침 일찍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향해 푸에르트 나탈레스를 출발했다. 봉고차를 몇 명이 렌트를 하여 타고 가는 현지 투어에 참여하였다. 데니카 호스텔로  봉고차가 픽업을 하러 와서 차에 오르는데 어제 같은 불상사는 없을 것이라고 데니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12인승 봉고차는 매우 낡아 보였다. 어쩐지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출발한 봉고차는 어제 갔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갔던 9번 도로를 따라 삼거리의 카페에서 우회전을 했다. 산장에서 칠레 국경을 통과하자 곧 아르헨티나 국경초소인 파소 리오 돈 구일레르모(Paso Rio Don Guillerrmo)가 나왔다. 국경초소에서는 여권을 검사했는데 우리 차례가 되어 여권을 건네받은 출입국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조회를 했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는데도 그는 아직 입국 스탬프를 찍어주지 않고 있었다. 우리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동행자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여권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요. 한국인이 이 초소를 통과는 것이 처음이라서 확인을 좀 하려고 그렇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충가라를 통해 칠레로 넘어갈 때도 그랬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현상이었다. 서울에서 사스 증명까지 첨부하여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받았던 아르헨티나 비자가 문제가 될 리가 없었다. 그는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은 우리 여권에 쾅쾅하고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국경초소를 출발하여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봉고차가 덜덜 거리더니 멈춰 섰다. 출발할 때 우려했던 일이 터진 것이다. 운전사가 내려가더니 왼쪽 앞바퀴가 타이어 펑크가 나서 타이어를 갈아 끼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봉고차에는 바퀴를 들어 올리는 어떤 장비도 없는 모양이었다. 할 수없이 여행자들이 모두 내려 펑크가 난 쪽의 바퀴를 들어 올리고 큰 돌을 괴어 놓고 타이어를 교체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가까스로 타이어를 교체하여 출발했다. 허지만 얼마가 가지 않아 자동차는 다시 멈췄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자 이번에는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가 났다는 것이었다.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아르헨티나 페리토 모레노 빙하로 가는 길


"이거야, 정말!"

"정말 너무 하네요. 차량 정비를 통 하지 않는 모양이지요?"

"글쎄 말이요. 출발을 할 때부터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더니만."


두 번째 펑크가 났을 때는 바퀴를 겔 큰 돌이 주변에 없었다. 그런데다 황량한 팜파스에는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몸이 훅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여행자들이 모두 내려서 바퀴를 교체하려고 낑낑대며 차체를 들어 올렸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마침 그때 지프차가 한 대 다가왔다. 운전사가 손을 흔들자 지프차는 봉고차 앞에 정지를 했다. 지프차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남자와 금발의 미녀가 내렸다. 그 뒤를 이어 덩치가 큰 알록달록한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따라 내렸다. 


“저런, 펑크가 났군요. 제차에 자키가 있어요.”


그는 지프차 트렁크에서 자키를 꺼내 봉고차 기사에게 넘겨주었다. 자동차는 수월하게 들려졌고 펑크 난 바퀴가 교체되었다. 펑크가 두 번씩이나 났는데도 여행자들은 불평이 한마디 없었다. 그들은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하는데 모두 협조적이었다. 오지를 여행하는 배낭 여행자들은 이런 일을 다반사로 만나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팜파스에서 두 번이나 펑크가 난 고물차


“헬로 미스터, 감사합니다!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지요?”
"네, 저희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 트레킹을 하러 가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모레노 빙하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줄 알았어요. 우리는 지금 그곳에서 오는 중인데요. 지금 모레노 빙하는 한참 떨어져 내리며 놀라운 장관을 보여주고 있어요. 좋은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독일에서 왔다는 지프차 여행자에게 모두들 감사 표시를 했다. 독일 부부는 쾌활하게 웃으며 얼룩 개와 함께 지프차에 타더니 표표히 사라져 갔다. 여행자들은 이렇게 금방 친해진다. 가까스로 펑크 난 바퀴를 두 번이나 수리를 한 자동차는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팜파스 지대를 지나갔다. 팜파스 평야는 수많은 양 떼들이 풀을 뜯다가 자동차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뛰어갔다. 한 마리가 뛰어가니 수천 마리의 양 떼들이 줄줄이 뛰어갔다. 양 떼들이 뛰어간 뒷자리에는 뿌연 먼지가 강풍에 휘날렸다. 


칼라파테로 가는 길은 루타 40번 도로로 이어진다. 이 길은 죽기 전에 꼭 지나야 한다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도로다. 아르헨티나 산타크루즈 주 리오가에고스 마젤란 해협에서 출발하여 볼리비아 국경 후후이주 라키아카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5,194km에 달하는 이 도로는 남북으로 11개 주를 통과하며 236개의 다리, 20개의 국립공원, 18개의 강을 지나간다. 짧은 구간이지만 어쨌든 루타 40번 도로를 달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출발한 지 4시간 30분이 지나 가까스로 엘 칼라파테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먹었다. 칼라파테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와 피츠로이 산으로 등반을 떠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인구 20,000여 명의 작은 도시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모레노 빙하로 출발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마침내 우리는 모레노 빙하에 도착한 우리는 천둥 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끝없이 펼쳐진 얼음왕국, 페리토 모레노 빙하



 "우르르 쾅쾅! 쏴아~ 쏴아~"


빙하가 본체에서 떨어져 내리며 천둥 치는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무너진 빙하는 안개 같은 물보라를 튀기며 아르헨티노 호수로 스르르 침잠을 했다. 그 광경은 실로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의 빙하는 마치 생명처럼 살아서 움직인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빙하를 보기 위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넋을 잃고 빙하가 연출하는 장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로스 글라시아레스(Los Glaciares) 국립공원은 190여 개의 크고 작은 빙하가 덮여 있는 빙하 국립공원이다. 굳이 남극까지 가지 않아도 살아서 움직이는 거대한 빙하군 만난 수 있는 곳이다. 남극 다음으로 큰 빙원과 거대한 빙하, 거울 같은 호수, 그리고 푸른 숲과 초원 등 얼음왕국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는 길이 50km, 폭 5km, 높이가 60~100m로 가장 아름답다. 지형상 육지와 아르헨티노 호수에 맞닿아 있는 모레노 빙하는 몇 해에 한 번씩 수압의 차이로 인해 터널이 만들어지고,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그 터널이 붕괴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곳 빙하는 지구온난화가 현상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팽창을 하고 있는 빙하로 하루 최대 2m, 1년에 700m씩 늘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빙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페리토 모레노 빙하로 가는 전진기지인 칼라파테에는 성수기인 11월~2월이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여행자들로 붐빈다. 그들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의 아름다운 장관을 구경하고, 웁살라 빙하를 거쳐, 피츠로이 산군으로 트레킹을 떠나는 여행자들이다. 모레노 빙하는 보트를 타고 빙하까지 갈 수도 있다. 


우리는 모레노 빙하를 관람하다가 한국인 학생 한 사람을 만났다. 반가웠다. 보스턴에서 온 그는 하버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파타고니아 지방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파타고니아 지방을 꼭 한 번 여행을 싶었다고 했다. 빙하처럼 싱싱한 기상이 넘치는 젊은이였다. 법학을 전공한다는 그는 미국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이 장래의 꿈이라고 했다. 


얼음왕국 페리토 모레노 빙하


아메리카는 분명 축복받은 땅이다. 알래스카에서 시작된 로키 산맥과 적도에서 솟아난 안데스 산맥은 공룡의 등뼈 모양을 이루며, 지구 상의 온갖 진기한 아름다움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남미대륙의 끝 파타고니아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태평양의 습한 공기가 안데스 산맥에 부딪쳐 엄청나게 쏟아져 내리는 파타고니아의 만년설은 녹지 않고 바람과 비에 다져지며 계속 쌓여간다. 그렇게 수천, 수 만년 동안 겹겹이 쌓인 눈은 그 자체의 엄청난 무게로 압박을 받아 그 속에 함유된 기공이 방출하며 빙하로 형성된다. 눈의 압력으로 다져진 파타고니아의 빙하는 극지방의 얼음 빙하 하고는 다른 형태다.


이렇게 형성된 빙하는 그 두께가 50~60m에 달해 계속 눌러 내리는 눈의 압력이 커진다. 빙하는 눌러 내리는 중력이 커지면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높은 곳으로부터 지형이 낮은 곳으로 조금씩 밀려 내려온다. 하루에 2m씩 팽창하는 빙하의 끝은 빙산이 되어 굉음소리를 내며 호수로 무너져 내린다. 


수십 명의 카메라맨들이 빙하를 향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빙하가 연출하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저렇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도 빙하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담기 위해 비디오를 빙하 벽에 고정시키고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사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빙하가 떨어져 내리며 호수 속으로 침잠하고 있는 장면


나는 1시간 동안에 빙하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두 번이나 잡을 수 있었다. 청자빛 빙하가 거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과히 장관이다. 빙하가 떨어져 내릴 때는 드라이아이스처럼 빙하에 붙은 눈들이 휘날리고 이어서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며 호수 속으로 침잠을 한다. 아마 겉으로 보이는 빙하보다는 호수에 잠긴 빙하가 훨씬 거대할 것이다. 그래서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나오지 않았는가? 대자연의 소리를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겐 큰 행운이었다.  


"오, 아름다운 저 야생화를 좀 봐요!"


아내는 꽃만 보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빙하 주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강풍에 휘날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음왕국에도 꽃은 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빙하가 고향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오후 6시에 출발하여 밤늦게 다시 나탈레스로 넘어왔다.   


모레노 빙하


우루루쾅쾅!

천둥치는 소리를 내며

억겁을 살아온 빙하가 죽어간다 


꽝꽝 꽈르르당!

번개도 치지 않는데

모레노 빙하는 천둥소리를 내며 

호수 속으로 사라져간다


쿵쿵 꽈당당당!

모레노 빙하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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