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살거라면
영국, 미국, 독일 등 해외 18개국에 판권을 수출하여 동양의 현자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읽히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보다 외국에서 점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전면 게재되고, 출간 즉시 인문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각종 화제를 낳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코로나19는 언제나 끝날까?
지구상에 전쟁은 언제 끝날까?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쟁은 언제나 화합을 이루고 민생을 위한 정치가 될까?
이처럼 우리는 정답이 없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삶이 막막하고 답답한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삶이 불안한 시대에 두 권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책은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위한 찬사』(마리나 반 주일렌 저)이고, 두 번째 책은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근후 저)이다. 나는 두 권의 책을 폭염속에서 선풍기를 틀어 놓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프랑스 태생의 마라나 반 주일렌은 세계적인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 쇼펜하우어, 버지니아 울프, 니체, 스피노자,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조지 엘리엇, 오웰 등을 다수 인용하며, 평범하지만 찬란한 삶은 헛된 야망의 실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나와 타인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라고…
그는 세계적인 현자(주로 서양사람들)들이 평범함에 찬사를 보내며 남긴 수많은 기록을 오랫동안 끈질기게 수집한 결과물을 토대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평범한 삶’을 가치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글은 구체적인 삶에 의한 사례가 아니어서 다소 추상적이다. 서양의 현자들의 글을 인용하여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 내용들이어서 한국인에게는 이해가 얼른 가지 않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반면에 노학자 이근후의 글은 매우 현실적이다. 아흔 살의 저자가 몸소 체험하고 느낀 것을 쉽게 풀어서 쓰고 있어 이해하기 쉽고 곧 가슴에 와닿는다. 일제강점기에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다니고, 중학교 때 6.25 전쟁을 겪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져 단칸방을 전전했고, 대학 시절 4.19와 5.16 반대 시위에 참여해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작가는 전쟁과 가난이 사람의 의지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시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다고 한다. 그는 마침내 이화여자대학교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50년 동안 15만 명의 환자를 치유하며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퇴임 후에는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상담, 부모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교육 등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또한 광명보육원 이사로 50년 넘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35년간 네팔의 간질병 환자를 돕는 국제의료봉사를 했다. 그는 봉사와 상담, 교육을 통해서 터득한 지혜를 담은 20여 종의 책을 썼다. 2013년도에 출간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라는 무려 4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뭐든지 외제를 좋아하는 한국의 독자들은 책도 국내 서적보다는 서양 서적을 더 선호한다. 따라서 한국의 철학자보다 서양의 철학자의 말을 더 신뢰하고 많이 인용한다. 이근후는 한국의 낳은 동양의 현자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이 낳은 아흔 살 노학자 이근후 작가가 백 살을 바라보며 전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신과전문의인 작가는 자신의 체험과 수많은 환자를 상대하고, 오랜 기간 봉사 활동하면서 몸소 터득한 지혜를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다.
삶은 하루하루가 기적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만약에 당신이 의사로부터 ‘단 1년만 살 수 있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받았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작가의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아흔이 넘은 노학자 이근후는 일곱까지 병을 앓고 있다. 당뇨, 고혈압, 통풍, 담석증, 관상동맥질환, 허리디스크, 실명…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다. 그는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 번은 관상동맥이 막혀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대수술을 받아 기적처럼 살아났다. 다른 한 번은 겨울에 집 앞 빙판길에서 넘어져 뇌를 크게 다쳐 기절했다. 다행히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수술받아 다시 기적처럼 살아났다.
이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는 남은 생을 덤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도 살아 있구나!”하고 감사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두 번의 죽을 고비와 일곱 가지 병을 달고 다니면서도 그는 저술과 강연,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그의 말대로 인생을 ‘야금야금’ 즐겨 가면서 말이다.
그는 인생을 ‘야금야금’ 살아가다 보면 시련은 일상의 작은 기쁨들로 인해 회복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취해야 할 유일한 삶의 태도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받아들이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 야금야금 누리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한들 과거는 바꿀 수가 없고, 아무리 걱정한들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미래이다. 더 나쁜 점은 이 두 가지가 지금, 여기에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의 기쁨들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을 읽으면서 내가 밑줄을 그어가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던 문구들을 몇 가지 추려서 게재해 본다.
-후회와 불안에 잠을 설치게 된다면
지나온 삶을 수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라.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까지 피해 살 수는 없다.
아무리 준비한들 찾아오는 노화와 상실을 막을 수는 없다.
구체적으로 준비하되 불안한 마음을
현재의 즐거움으로 달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지금 여기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야금야금 맛보며 사소한 기쁨을 잃지 않는 한, 절대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인생을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아가는 진짜 이유라고 말한다.
-더 이상 불필요한 일과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말라-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면 실제로 논쟁과 시간만 낭비하는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낮잠을 자거나 나 자신을 먼저 챙기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의 나는 그대로 멋졌고,
현재의 나는 이대로 괜찮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다면,
삶을 괴롭게 만드는 열등감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에게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으로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 미리 걱정을 사서 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는 생명의 길이가 아니다.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적절한 잣대는
그 사람의 일평생 살아온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파크골프장에서 나는 가끔 한 쪽이 팔이 없는 사람이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파크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본다. 그들은 이미 없어진 팔이나, 절뚝거리는 다리를 되돌이킬 수는 없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게만 보인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찾아가라.-
이 문구를 읽으며 나는 크게 후회한 일이 하나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형제인 고모님을 늦기 전에 찾아봬야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왔다. 결국 장례식장에서 고모님의 사진을 뵙기는 했지만 살아생전에 뵙지 못한 게 크게 후회가 되었다.
-젊은이들 앞에서는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꼭 명심해야 할 명언이다. 노인을 끼워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아프면 의사의 말을 잘 따르고
약을 꼬박꼬박 먹으면서 병을 다스려야 한다.-
나이 들어 찾아오는 여러 가지 변화 중 가장 큰 컷은 단연 신체의 노화다. 인간은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 일곱까지 병을 앓고 있는 작가는 자신이 의사이지만 의사가 처방한 약을 무슨 약인지도 잘 모르면서 의사의 말을 잘 따르고 꼬박꼬박 약을 먹으면서 병을 다스리고 있다.
-여든이야말로 노년기의 정점이 아닐까 싶다.
서양 속담에 노인을 일컬어 ‘앙금 없는 포도주’라고 하는데
이 나이를 먹고 보니 그 말의 참뜻이 새겨진다.-
작가는 여든 살이 되어 “올 한해는 1년 내내 내 생일이다,”
팔순 잔치를 어떻게 치르고 싶냐는 가족들의 물음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생일 하루만 챙기기에는 80년이라는 세월이 아깝고, 친척과 지인을 전부 불러 놓고 비싼 밥 한 끼 먹으며 제대로 이야기도 못 나누는 잔치라면, 재미도 의미도 없을 것 같으니, 차라리 팔순을 핑계로 1년 내내 소중한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지난날을 추억하고 싶다.”라고.
작가는 연천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깜짝 발표한 적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작가는 가족아카데미아 제자 다섯 분과 함께 최전방 연천 우리 집을 방문했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내 생일날이었다. 제자들이 수박과 위문품(최전방에 살고 있는 나를 위해)을 잔뜩 가지고 왔다.
“최 선생, 사실은 오늘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 수강생들인데 최 선생 부부를 모델로 체험하러 왔어요. 그러니 잠시 이분들에게 몇 분 동안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하, 드릴 말씀은 없고요. 그냥 보고 느끼시면 됩니다. 그런데 마침 오늘이 내 생일날인데 여러분께서 꼭 제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오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생일 파티를 먼저 해야겠네요.”
그렇게 해서 급기야 수박을 반으로 잘라 촛불을 붉은 수박에 꽂아 놓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생일 축하 공연이 이루어졌다. 수박에 켜 놓은 촛불을 끄고 수박을 쪼개 먹으려고 하는데 이근후 선생님이 한 말씀 하셨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오늘이 내 생일이라오. 허허.”
“아이고 그래요. 그럼 박사님 생일 파티도 해야겠네요.”
그래서 우리는 수박 위쪽을 잘라내고 그 위에 촛불을 다시 켜고 생일 축하 공연을 다시 하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축하 공연이 끝나고 수박을 잘라 먹으면서 이근후 선생님이 시침을 뚝 떼고 말씀하셨다.
“사실은 고백하자면 오늘이 내 생일이 아니라오. 올해 내 나이가 팔십인데, 올해부터는 1년 365일을 내 생일로 생각하고 살기로 했어요.”
그날을 들은 우리는 모두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어차피 덤으로 사는 세월인데, 백 살까지 유쾌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그다운 유머였다.
-언젠가 큰아들(천문학자 이명현)은 내가 죽으면 제사는 끝이라고 선언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알았다”하고 한마디만 했다. 내가 죽고 나면 제사를 이어받을 사람은 큰아들이므로,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으니 가족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그다운 발상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분개하기도 했지만, 자식들과 가깝게 지내는 데에는 이런 선 긋기가 한몫한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 비슷한 시기에 눈을 감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죽고 사는 문제가 마음대로 되던가, 몸은 불편한데 배우자를 먼저 보내서 힘든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에 비하면 아파도 배우자가 곁에 있는 게 정신 건강 면에서 훨씬 낫다.-
삶의 능동성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주어진 운명이라도 적극적으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인생이 만족도가 더해지고 행복도 더 올라간다는 말이다.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이야말로 죽을 때 가장 큰 후회를 부른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한 인생 끝에 편안한 죽음이 찾아온다. 진인사한 사람만이 대천명을 할 수 있다는 공자의 참뜻이 여기에 있다.
-나는 용서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다음 세 단계를 거칠 것을 권한다.
첫째, 나에게 상처를 준 대상과 관계를 끊어라. 상처가 된 기억과 거리를 두겠다고, 아예 무심해지겠다고 결심하라. 그렇게 원한의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둘째, 여유가 생겼다면 상처받았던 그 상황을 새롭게 이해해 보라. 억울한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이해의 여지가 생긴다.
셋째, 내가 나를 용서하자. 화내고 억울해하는 나를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용서해주겠느냐고 반문한다. 때가 되면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을 이제는 용서해 보겠다고 마음먹어보자.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이처럼 작가는 자신이 몸소 겪어온 체험에서 얻은 지혜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살아보니 알겠다.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살이다. 그래서 사람은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 사소한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내가 저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9월 29일이다. 나는 그가 이끄는 네팔의료봉사팀에 아내와 함께 합류하여 네팔 땅을 밟았다. 그 당시 뉴욕의 무역센터에서 발생한 엄청난 테러로 전 세계가 어수선하고 곧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험한 시기였다. 거의 모든 여행이 취소되고 있는데도 항공기도 결항하고 있는데도 이근후 선생님은 네팔의 환자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네팔행을 결행하였다.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여행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한산했다. 호텔에도 손님이 없어 우리는 아주 귀한 손님(?)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아 가며 10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소화할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아내가 저혈당으로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는데, 그 일이 있고 난 뒤 이근후 선생님은 식사 시간이 되면 아내의 밥을 제일 먼저 챙기게 하는 배려를 해주었다.
네팔에서 처음 만난 이근후 선생님의 첫인상은 의사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알아 왔던 친구 같기도 하고, 듬직한 형님 같기도 했다. 훤칠한 키에 늘 미소를 짓는 호남형의 그는 스펀지처럼 강한 흡수력이 있었다. 고민을 털어놓고 밤새 이야기를 하고 싶은 다정한 그런 사람…. 그러나 봉사 활동을 이끌어가는 선생님은 평범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어떤 비범한 힘이 숨어 있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라고 할까?
네팔에 머무는 동안 그는 단원들의 의견을 여과 없이 흡수했다. 그의 사전에는 절대로 ‘No’가 없었다. 어떤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를 인연으로 나는 이근후 선생님과 20년 넘게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