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에서 만난 선재동자
새벽의 바다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안개는 물 위를 감싸며 바위섬들의 윤곽을 희미하게 삼켰다. 안개가 걷히자 수천의 섬들이 바다 위에 흩어져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하롱베이의 전설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꼬리를 휘두른 듯 신비로웠다.
나는 배 위에 앉아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았다. 출렁이는 파도는 내 마음의 그림자 같았다. 아내의 병,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이 던져준 무거운 짐들이 파도와 함께 드러났다가 이내 흩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바다가 내 고통을 품어주는 듯했다.
마음을 어디에 머물 것인가?
하롱베이의 물은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 산과 산 사이에 갇혀 있는 듯 보이지만, 늘 바다와 통하고, 하늘을 비추며 흘러간다. 나는 그 물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집착 없는 자유란, 그저 흘러가는 것임을. 흐르기에 썩지 않고, 흐르기에 만물을 적시며, 흐르기에 늘 새로워진다.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 누군가의 칭찬에도, 원망에도 머무르지 않고, 성공에도, 실패에도 머무르지 않고, 한순간 맑은 물결처럼 자유로이 살아가고 싶다. 하롱베이의 물은 오늘도 석회암 절벽을 감싸 안으며 “응무소주이생기심”을 속삭인다.
머물지 않음 속에서 사랑은 더 깊어지고, 비움 속에서 마음은 더 넓어진다. 나는 그 물처럼, 흘러가는 한 줄기 자유인이 되고 싶다. 물은 부딪치지 않으면서도 길을 내고, 흘러가면서도 멈추며,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그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삶의 진실을 보았다. 두려움은 허상일 뿐, 모든 것은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는 사실을.
순간 나는 이곳 편안하고 아늑한 하롱베이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곧 이 또한 집착임을 깨달았다.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
물 위에서 맞이한 순례길의 첫 아침, 바다는 내게 물의 언어로 가르침을 건넸다. 안개가 걷히자 햇살이 바위섬을 깨우며 바다 위로 쏟아졌다. 섬들은 신전의 기둥처럼 우뚝 섰고, 바다는 은빛으로 눈부셨다. 물 위의 신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하롱베이를 지키는 용(龍)이 가호를 해주는 것일까?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제의 고통은 어둠처럼 물러가고, 오늘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듯했다.
하롱베이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내 영혼의 순례가 시작되는 첫 관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니었다. 이제 나는 내 안의 길을 걷는 순례자가 되었다.
두려움 속에 숨지 않으리라.
두려우면 갇혀버린다.
물처럼 흘러가되, 그 흐름 속에서 진리를 찾으리라.
고통 속에서도 치유의 씨앗을 발견하리라.
바다는 마지막까지 내게 속삭였다. 태양조차 낮아져 바닷속으로 가라앉듯, 인생 또한 낮아져야 비로소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낮아짐은 결코 패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힘이었다. 바다처럼 가장 낮은 곳에 머물러 모든 것을 품는 마음, 그것이 바로 ‘하심(下心)’임을 깨달았다.
노을이 지고 밤이 되자 삼천여 개의 섬들이 고요 속에 잠들었다. 아내와 나는 갑판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고자 했지만, 오히려 번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별똥별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도 별이 되어 티베트의 하늘 위에서 반짝이겠지. 죽음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선실의 작은 침실로 내려와 금강경을 펼쳐 들고 독경을 시작했다.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 어떻게 마음을 머물게 하고, 어떻게 마음을 항복시킬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화두였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삶으로는 다가가기 힘든 물음이었다. 마음을 낮추고 겸손히 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면서도, 나는 오히려 아심(我心)에 사로잡혀 살아온 날이 많았다.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며, 남을 은연중에 업신여겼던 시간들…. 그 순간 나는 깊이 고개를 떨구었다. 부끄러움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임을 직감했다. 하심(下心), 가장 낮은 자리에 마음을 두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나의 교만을 내려놓고 다시 태어나라는 부르심이었다.
깨달음은 머나먼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비가 아니었다.
바다의 물결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하롱베이를 떠나 사파로 갈 채비를 차렸다. 짧은 인연이었던 외국인 친구 힐은 젓가락질을 하는 작은 일 하나를 배우고도 감사 인사를 남겼다. 소소한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그의 마음이 아름다웠다.
이별의 아쉬움 속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유람선 가이드 얀이 "미스터 초이! 여기요." 하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나의 전대가 들려있었다. 전날 밤, 방심한 채 벗어 두었던 그것에는 여권과 현금과 여행자수표, 항공권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나는 순간 쿵! 하고 심장이 멎는 듯했다. 만약 그것을 잃었더라면, 모든 순례길이 무너질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얀은 담담하게 말했다.
“여행 중에는 항상 조심하세요.”
“얀, 고마워요!”
선재선재!
선재동자가 따로 없었다.
그날 전대를 돌려준 얀이 바로 선재동자였다. 나는 그의 선한 마음 앞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전대 속의 돈이나 여권보다 더 귀한 것을 나는 그에게서 돌려받았다. 그것은 곧 신뢰와 은혜,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눈부신 선의(善意)였다. 어쩌면 얀과 나 사이에는 전생의 인연이 이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티베트 방랑의 첫발에 만난 이 따스한 인연은 분명 좋은 징조였다. 선재선재로다!
돌이켜보면, 하롱베이에서 보낸 그 시간은 이번 순례길에서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잠시였지만 다도해를 품은 내 고향 오룡산(五龍山) 자락에 머문 듯 아늑했다. 이름마저 기이하다. 하룡(下龍)과 오룡(五龍). 두 지명이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용(龍)의 기운은 바다와 산을 넘어 내 삶의 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 하롱베이에서 열린 방랑의 문은 차마고도의 험난한 길로, 티베트의 설원으로, 그리고 지금 내가 걷는 간병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길은 나를 낮추고 또 낮추는 과정이었다. 낮아짐 속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있었고, 그 풍경은 언제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래, 지금 이 순강이 가장 젊은 날이며,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니 순간순간 머물지 말고 물처럼 흘러가자. 나는 하롱베이의 바다 위에서, 영혼의 순례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물처럼 흘러가되 그 흐름 속에서 진리를 찾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