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정해진 것이 없다

사파로 가는 밤 기차

by 찰라


밤은 천천히 도시의 불빛을 삼키고 있었다. 하노이 역의 낡은 플랫폼 위에는 기다림과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길게 울려 퍼지는 기적 소리에,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하나의 운명처럼 묵직하게 열차로 향했다. 우리의 순례길 또한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하롱베이에서의 편안한 휴식은 이미 뒤로 물러나고, 이제는 고원을 향한 본격적인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발 2천 미터, 사람들이 ‘베트남의 알프스’라 부르는 사파.



열차가 움직이자 철길의 진동은 곧 심장의 박동과 하나가 되었다. 창밖은 검은 어둠뿐이었으나, 그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라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들판을 달리며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병으로 지친 손이었지만 그 온기만은 살아 있었다. 차창에 비친 우리의 얼굴은 흔들렸고, 그 흔들림 속에서 삶의 연약함과 소중함이 드러났다. 바퀴 소리는 규칙적인 박동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모든 길은 지나가고, 모든 밤은 새벽으로 이어진다.”


객차 안은 낯선 삶들의 작은 우주였다. 배낭을 베고 누운 청년, 책을 읽다 잠든 여행자,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부부….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중년의 베트남인을 만났다. 그는 자신을 라이(Thiet Lai)라 소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으며, 26년 만에 혈육의 뿌리를 찾아 고국을 방문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삶의 긴 사연을 풀어놓았다.

1979년, 그는 보트피플로 가족과 흩어졌다. 작은 몸 하나를 실은 채 바다를 건너 홍콩으로, 다시 천신만고 끝에 미국으로. 이후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다시 캘리포니아에 모여 살게 되었고, 큰아버지는 싱가포르, 작은아버지는 호주에서 삶을 이어갔다. 이번 여정은 호주에 사는 사촌 누이와 만나기 위해 사파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이산가족 재회와 닮은, 아름답고도 아픈 이야기였다. 전쟁과 분단은 왜 늘 인간을 갈라놓는가. 이 지구상에서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그의 하소연은 자정을 넘길 때까지 이어졌다.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그는 내게 여러 번 고맙다 말하더니 차창에 기대 편안히 잠들었다.

삶이란 정해진 것이 없다. 우리의 운명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파로 가는 기차에서 보트피플 라이를 만나 그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들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러니 오늘 이 소중한 시간을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 또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바람 소리와 철길의 울림은 마치 오래된 불경의 독송처럼 이어졌다. 떠나온 삶의 무게가 조금씩 씻겨나가고, 다가올 순례의 길이 앞에 열리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부디 이 길이 고통을 씻어내고, 우리를 새롭게 하게 하소서.”


기차는 밤새 달려 사파를 향했다. 창밖의 어둠은 점점 옅어지고, 산의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인생의 또 다른 장이 열리듯, 새로운 빛이 눈앞에 깃들었다.

아침 7시 반, 기차는 길고도 깊은 여정을 마친 듯 기적 소리를 울리며 종착역 라오까이에 도착했다. 우리는 미스터 라이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비니버스를 타고 사파로 향했다.


버스가 역을 벗어나자, 천상의 계단 같은 라이스 테라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물안개와 구름이 계곡을 감싸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그려냈다. 대지는 이미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밤 기차는 우리를 어둠 속으로 데려가지만, 결국 새벽으로 싣고 간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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