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 라이스 테라스 걷기 명상
베트남 북서부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사파는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 불리는 판시판산(3,143m)과 호앙리엔손 산맥에 둘러싸여 웅장한 산봉우리에서 춤추듯 흘러내리는 운해와 안개, 그 속에 천국의 계단 같은 라이스 테리스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라이스 테라스는 수세기 동안 소수민족들이 산비탈을 깎아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온 삶의 현장이다.
사파의 아침은 언제나 안개로 시작된다. 산맥을 휘감은 흰 숨결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다가, 서서히 걷히는 순간 ― 계단식 논들이 끝없이 펼쳐지며 하늘을 품는다. 층층이 겹쳐진 라이스 테라스 위로 구름은 유영하고, 물빛은 은빛 거울처럼 반짝이며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논 위로는 막 심긴 모들이 연둣빛으로 춤추고, 들꽃들은 바람결에 작은 종소리처럼 흔들린다. 풍경은 단순히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휘감으며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숨이 막히듯 오래도록 서 있었다. 옆에 선 아내는 풍경에 압도된 듯 멍하니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꼭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 같아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대가 걷는 길이 곧 천국의 계단이오.”
병실의 그림자 속에서 움츠렸던 그녀의 얼굴이, 그 순간 빛으로 환해졌다. 사람은 놀라운 풍경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나는 지금 아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몽족 소녀, 쇼(Sho).
검은 전통 옷을 입고, 빨간 머플러를 머리에 두른 소녀는 산처럼 깊고 맑은 눈빛을 가졌다. 그녀는 소박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이틀 동안 라이스 테라스를 걷는 길, 그녀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깟깟마을과 타핀에서 라오차이, 타반, 장따짜이에 이르는 길은 계단식 논과 야생화,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맨발로 진흙탕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여인들은 바구니를 지고 묵묵히 걸어갔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얼굴에 스민 미소는 세상의 어떤 부유함보다 빛나 보였다.
쇼는 걷는 내내 길섶의 꽃과 만나는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녀가 건네는 말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풍경 속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노래 같았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나 또한 이곳 사람처럼 논둑 위를 평생 걸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논둑을 따라 걷다 보니 발걸음은 곧 호흡이 되었고, 호흡은 명상으로 이어졌다. 바람은 눈두렁의 풀을 흔들며 파도 같은 소리를 냈고, 새들의 지저귐은 멀리 절집의 범종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몇 번이나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걸음 하나하나가 기도가 되고, 길 전체가 수행의 도장이 되었다.
아내도 그 풍경 속에서 서서히 녹아들었다. 처음엔 숨을 고르며 힘들어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에 고요한 평화가 깃들었다. 병이 앗아간 힘이 아니라, 자연이 돌려주는 생명의 숨결이 그녀 안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점심은 언덕배기에 앉아 쇼가 싸 온 소박한 도시락을 함께 나누었다. 빵과 치즈, 토마토 몇 개, 오이.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정성껏 잘라 우리 앞에 펼쳐놓았다. 부족함은 오히려 풍요로 변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많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라는 것을.
막 모내기를 끝낸 논은 새 생명의 푸른 기운으로 가득했고, 길섶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몽족과 자오족 사람들이 지어 보이는 미소 속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순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낯선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친근함과 고향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걷는 동안 발걸음은 차츰 호흡과 하나가 되었고, 호흡은 다시 명상으로 이어졌다. 논두렁을 따라 이어진 길 위에서 나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머물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대로 기도가 되고, 그 길 전체가 도(道)를 닦는 수행의 길이었다. 그러나 머무름조차 오래 허락되지 않는다.
“이런 길은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아요. ”
“어제와 오늘까지 우린 30km나 걸었는데?”
“그래도 더 걷고만 싶어 져요.”
“하지만 내일 아침 우린 차마고도로 떠나야 하니 맛있는 베트남 요리를 먹고 휴식을 취하도록 합시다.”
이틀 동안 걸으며 나는 자주 아내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힘겨운 숨을 몰아쉬었지만, 점차 얼굴에 맑은 빛이 돌아왔다. 병실에서 잃었던 미소가, 라이스 테라스의 계단 위에서 다시 피어났다.
아이들의 웃음, 대문 없는 집, 흙바닥을 뛰노는 순박한 삶….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치유하고 있었다. 풍경은 단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빛이었다.
라이스 테라스는 나에게 수행의 길이었고, 아내에게는 치유의 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기도가 되고, 바람 한 줄기가 곧 법문이 되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다시 다짐했다.
“삶은 부족해도 충분하고,
낮아질수록 더 넓어진다.”
그리고 두 손 모아 기원했다. 몽족 소녀 쇼의 앞날에, 아내의 내일에, 다시 피어나는 모든 생명 위에 평화가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