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를 향하여

—붉은 강을 건너 티베트 순례길에 오르다

by 찰라

사파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국경도시 라오까이에 도착했을 때, 숨 막히는 열기가 우리를 덮쳤다. 고산지대의 서늘함은 사라지고, 따가운 햇살이 배낭을 멘 등에 땀방울을 송골송골 맺히게 했다.

베트남 출입국관리소를 지나 국경을 향해 걸어가자, 붉은 황토색 물줄기를 이룬 홍강(Hong River)이 눈앞에 펼쳐졌다. 중국 윈난성 중부 산지 헝돤산맥에서 발원해 1,149km를 흘러 통킹만으로 스며드는 이 강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강'으로 불린다.

중국과 베트남 국경을 이루는 홍강


“여보, 강물 빛이 온통 빨간색이네요.”

“그래서 붉은 강(紅江)이라고 불러요. 차마고도의 일부인 다리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려오고 있어요.”

200미터 남짓한 '콕레우 다리(Coc Leu Bridge)'를 건너면서, 사납게 흐르는 붉은 물살 위로 우리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드디어 우리는 차마고도의 시작점, 윈난성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윈난성 차마고도의 출발점인 시솽반나와 푸얼시가 있다. 푸얼시(보이-普洱)는 중국 보이차 생산의 원조다.

배낭을 메고 홍강을 건너 중국 윈난성으로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


아내는 묵직한 배낭을 지고 장도에 오르며 결연한 눈빛을 빛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내 마음속에 한 여인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19세기, 금단의 땅 티베트 라싸에 최초로 도착한 서양 여성 —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가슴 깊이 방랑벽을 품었다. 두 살, 다섯 살 무렵부터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 길을 탐험하곤 했던 소녀. 쥘 베른의 소설을 탐독하며 끝없이 세계를 꿈꾸었던 그녀는 열일곱 살에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그 이듬해에는 스페인을 홀로 여행했다. 그리고 스무 살, 신지학회에 들어가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를 배우며 오랜 구도의 길에 들어섰다.

1912년, 인도 칼림퐁에서 달라이 라마 13세를 만난 그녀는 티베트어 공부를 권유받고, 티베트 고승들의 제자가 되어 티베트 불교에 몰입했다. 열 번 넘는 시도 끝에 1924년, 마침내 티베트의 심장 라싸에 입성한 그녀는 신화가 되었다.

아내도 알렉산드라 못지않은 방랑벽을 지녔다. 가난한 농촌의 장녀로 태어나 가족을 돌보느라 학업을 포기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여행에 대한 꿈이 자라났다. 집안을 말끔히 정리하고 놋쇠 그릇을 닦으면, 어머니는 "너 또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라고 눈치챌 정도였다.

어린 시절, 아내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서 백년사라는 절에 머물곤 했다. 그리고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자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강한 반대로 꿈을 접고, 스물여섯에 나를 만나 결혼했다. 어쩌면 이 인연은, 나라는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불가사의한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세계지도를 펼치며 세계일주를 꿈꿨다. 우리는 주말마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서울 근교를 여행했다. 큰아이를 품에 안고도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낡은 자동차를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그녀는 언제나 눈빛을 반짝였다.

나는 생각한다. 인생이란 결국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동행이 있어도, 결국 가장 깊은 외로움과 가장 진실한 마주침은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다. 누군가가 나 대신 내 길을 걸어줄 수는 없다. 오직 스스로, 자신의 리듬과 속도로 걷는 것뿐이다.

여행의 기술을 이야기한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동행자에 의해 결정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외롭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듣는다. 아내와 나는 그런 의미에서 최적의 동반자였다. 나는 교통과 숙소, 여행 스케줄을, 아내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겼다. 서로의 자존심을 꺾는 대신 배려와 이해로 여행을 이어갔다. 갈등보다 웃음이 많았고, 문제보다 기쁨이 컸다.

붉은 강을 건너 5분쯤 걸으니, 우리는 중국 윈난성 허커우(Hekou)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차마고도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중국 측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의외로 친절한 공안원의 안내를 받으며 간단한 수속을 마쳤다.

무더운 허커우 거리. 우리는 화장실에 들어가 반바지와 얇은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허커우 버스터미널은 출입국관리소에서 멀지 않았다. 한산한 터미널에서 우리는 쿤밍행 버스표를 끊고, 간단히 중국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쿤밍으로 가는 버스

버스는 7시 30분에 출발했다.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침대 버스. 냉방도 안 되고, 시끄럽고, 화장실을 가려면 버스 복도에 벌렁 누운 사람들 틈을 비집고 지나야 했다. 열대야 같은 밤, 보름달만이 어두운 길을 비추고 있었다.

버스는 수차례 검문에 멈췄다. 미얀마산 마약이 베트남 국경을 넘어 유입되기에 공안의 단속이 엄격했다. 자정 무렵, 한적한 휴게소에 섰을 때였다. 은빛 달빛 아래,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국어. 아내는 반가워하며 나를 이끌었다. 쿤밍에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체류 중인 한 아주머니와 아이들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쿤밍에 가시면 석림과 구향동굴을 꼭 들러보세요. 특히 구향동굴이 감동적이에요."

짧은 만남. 그리고 달빛 속에 멀어지는 그녀의 손짓.

이튿날 아침, 버스는 쿤밍에 도착했다. 차화빈관(茶花賓館)이라는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고, 두어 시간 잠시 쉬었다. 쿤밍. 해발 1900m, 영원의 봄이 머무는 곳. 창밖으로 들려오는 새소리에 피로가 씻겨갔다. 우리는 토스트와 달걀부침, 바나나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인슐린을 냉장고에 맡긴 뒤 쿤밍 도심으로 길을 나섰다.


영원한 봄의 도시 쿤밍


"참 이상하군요. 보통 대웅전은 높은 곳에 있는데 여긴 계단 아래에 절이 있네요."

"글세 하심을 내라는 뜻이 아닐까?"

5번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원통사. 단나라 시기에 창건되어 12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윈난 성 불교의 중심 사찰이다. 도심의 소란을 한 걸음 벗어나면, 계단 아래로 숨은 듯한 이 사찰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의 절은 산 위로 올라야 닿지만, 이곳은 거꾸로 발걸음을 낮추어야 본당에 닿는다. 마치 수행자가 하심(下心)의 길로 내려가듯, 나 또한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낮추어 연못과 다리를 지나 불전 앞에 서게 된다. 도심 속에 있지만, 원통사는 고요와 맑음을 간직한 피난처 같은 곳이다.

1200년 역사를 지닌 윈통사


천여 년의 세월을 품은 이 절은,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그리고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이 한자리에 어우러져 있다. 석가모니의 불상은 장엄하고, 태국식 동불전은 이국의 숨결을 전하며, 라마교의 색채는 고원의 바람을 품고 있다. 서로 다른 길 같지만, 결국 하나의 진리로 모여드는 모습은 인류의 영적 여정 또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나는 이곳에서 묻는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진리에 닿을 수 있을까?”


도심의 번잡함도, 내 안의 욕망도, 심지어 간병의 고단함까지도 잠시나마 이곳 연못의 물결에 흘려보낸다. 그러면 남는 것은 오직 맑은 고요와 연민, 그리고 작은 감사뿐이다. 원통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티베트로 향하는 길목에 선 이 절은, 순례자에게 영혼의 첫 관문이 된다.


나는 여기서 기도를 드리며, 앞으로 이어질 험난한 차마고도의 길 위에 보호와 축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걷는 이 여정이 끝내 치유와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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