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산 - 얼하이호에서의 명상
창산의 바람이 내 머리를 식히고, 얼하이의 물결이 내 마음을 씻어주었다
by
찰라
Oct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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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을 출발하여 운남의 대리(大理)에 닿았을 때, 나는 오래된 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서쪽에는 눈 덮인 창산(蒼山)이 천년의 요새처럼 솟아 있고,
동쪽에는 거울처럼 맑은 얼하이(洱海)가 고요히 누워 있었다.
하늘과 땅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호흡을 나누는 그 풍경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그러나 경건하게 흘러갔다.
창산의 봉우리들은 모두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말봉(馬龍峰), 성봉(聖峰), 백운봉(白雲峰)…
해발 4,000미터 안팎의 열아홉 봉우리들은 신의 손가락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 산을 바라보는 일은 곧 기도였다.
푸른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흰 새들이 그 아래를 고요히 스쳐간다.
산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깊은 설법이었다.
새벽안개가 걷히기 전, 나는 창산의 산문으로 향했다.
돌길 옆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었고,
그 향은 어제의 번뇌를 씻어내듯 은은했다.
산아래는 숭성사 삼탑이 바이족의 천년고도 다리고성을 고고히 지키고 있었다.
산허리를 오르자 바람이 달라졌다.
도시의 냄새는 사라지고, 오직 나무와 물, 바위의 숨결만이 남았다.
리프트를 타고 중화사(中和寺)에 닿았을 때,
노승 한 분이 향을 피우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깊고 잔잔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종소리가 안개를 헤치며 골짜기로 흘러갔다.
그 울림은 얼하이의 수면 위로 번져,
마치 세상 전체가 한 줄의 염불이 되는 듯했다.
사원을 내려와 산자락 길을 걷자, 멀리 얼하이의 은빛 수면이 보였다.
그 물은 창산의 눈 녹은 물로 시작되어,
수많은 계곡을 지나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이룬다.
호숫가에는 흰 새들이 날고, 낚싯배 하나가 바람에 떠밀리듯 흘러갔다.
나는 작은 유람선을 타고 남쪽의 남조풍정도(南诏风情岛)로 건너갔다.
그곳은 작은 낙원 같았다.
창산을 배경으로 물결이 안아주는 형국, 배산임수의 명당이었다.
나는 호숫가 돌 위에 앉아 거대한 창산을 마주하며 명상에 잠겼다.
바람은 얼하이호를 건너와 내 뺨을 스쳤다.
그 바람에는 천년 전 남조의 노래가 실려 있었다.
은빛 물결이 마음의 파문처럼 잔잔히 번졌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들었다.
물의 숨결, 구름의 속삭임, 그리고 내 안에서 울려오는 오래된 회상의 메아리를.
멀리 창산은 푸른 실루엣으로 호수를 감싸고 있었다.
산의 정기와 물의 영기가 맞닿는 곳,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이곳에서의 명상은 앉음이 아니라 흐름이었다.
호수의 물결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 그저 흘러가는 것.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얼하이의 수면 위로 드리운 내 그림자도 그렇게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짐은 끝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새처럼 가벼워지고, 물처럼 투명해지고, 산처럼 고요해졌다.
호수는 말이 없었지만, 모든 답을 품고 있었다.
사랑과 이별, 고통과 희망의 이야기까지.
남조의 왕들이 꿈꾸던 이상향이
지금은 이 잔잔한 물결 속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차가운 물가에 발끝을 담갔다.
그 차가움이 내 안의 불안을 데려가고,
남은 것은 투명한 침묵뿐이었다.
바람이 호수 위를 지나며 내 볼을 스쳤다.
그 바람 속에는 먼 과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에서 불교가 처음 들어왔던 시대의 수행자들,
그들이 새긴 발자국과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아직도 이 물결 속에 남아 있는 듯했다.
“창산의 바람이 내 머리를 식혀주고,
얼하이의 물결이 내 마음을 씻어주었다.”
그리하여 나의 순례는 더 이상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한 방식, 살아 있는 명상 그 자체였다.
해 질 녘, 창산의 능선이 붉게 물들었다.
노을이 산의 어깨를 감싸고, 얼하이의 수면은 불빛처럼 반짝였다.
마을의 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저녁 기도와도 같았고,
하루의 삶에 대한 감사의 선언처럼 들렸다.
나는 호숫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아 숨을 고른다.
숨결이 바람이 되고, 바람이 물결이 되어,
다시 산으로, 하늘로, 나 자신으로 되돌아간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이 순례는 이동이 아니라, 귀향이었다는 것을.
“산은 나의 마음이요,
물은 나의 영혼이었다.
그 둘이 하나 되어 흐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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