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불씨 하나를 꺼지지 않게 지켜내는 일이다
리장고성 수로에 소원등을 띄어 보내며...
다리에서 오후 2시 40분, 우리는 리장으로 향하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산맥이 겹겹이 가까워질수록 계곡은 깊어지고, 산비탈에는 계단식 논과 밭이 켜켜이 포개져 있었다. 물길을 따라 반짝이는 작은 논들은 하늘 조각을 품은 거울 같았고, 그 사이로 짙은 푸른빛의 소나무들이 바람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차창 밖 풍경은 점점 ‘속도’의 의미를 잊게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영상의 재생 버튼을 반쯤만 눌러 둔 듯, 모든 것이 느리게, 한 프레임씩 정중히 흘렀다.
오후 5시 40분, 예상과 다른 곳에서 내려졌다. 정류장 대신 어정쩡한 길가. 2번 버스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 함께 타고 온 갸름한 얼굴의 나시족 아가씨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다가와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리장 고성이라 답하니, 그녀는 익숙한 손짓으로 택시를 불러주고, 우리가 묵을 ‘고성객잔’에 전화까지 걸어 위치를 확인해 주었다. 말끝마다 배려가 묻어 있었고, 그 친절은 얼굴보다 더 예뻤다. 여행길에서 문득 마주치는 이런 호의는, 삶이 우리에게 보내는 작은 경전(經典) 한 장 같다.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의 마음이 길이 된다’는 구절처럼.
멀리 눈 덮인 옥룡설산(玉龍雪山)이 장엄하게 솟아 있었다. 그 산은 단순한 자연의 산맥이 아니라, 나시족(納西族)에게는 ‘조상의 혼이 깃든 성산’이다. 옥룡설산은 13개의 봉우리가 용의 비늘처럼 흰빛으로 이어진다. 가장 높은 봉우리 샨즈두(扇子陡)는 해발 5,596미터, 언제나 구름에 싸여 있다.
나시족은 그 설산을 하늘의 신 ‘삼다(三多)’의 좌정처로 여긴다. 삼다는 정의롭고 강한 남신으로, 악을 베어내는 검을 들고 하늘을 수호한다. 봄이 오면 그가 깨어나 얼음을 녹이고, 여름에는 번개와 비를 내려 만물을 살린다. 그래서 리장 사람들은 설산의 첫눈을 ‘삼다의 숨결’이라 부른다. 그 흰 숨결이 들판을 적시면, 나시족의 농부들은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리장고성은 그 산 아래, 만년설의 물줄기가 모여든 곳에 자리한다. 돌다리가 걸린 운하가 골목마다 흐르고, 나시족 여인들은 자수치마를 입고 은장신구를 달아 짤랑이는 소리를 낸다. 그들은 물을 ‘신의 언어’로 여긴다. 그래서 리장의 물은 세 갈래로 나뉘어 흐른다. 하나는 마을의 식수, 하나는 가정의 살림,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마음의 정화에 쓰인다. 이 단정한 구분은 단순한 위생이 아니라, 신성한 질서였다. 물은 곧 생명이요, 신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택시는 버드나무 그늘과 홍등이 번지는 골목을 비집고 들어갔다. 리장은 해발 2,400미터. 숨이 조금 가빠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워졌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느림의 공간’이 넓어졌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고, 가게의 문도 천천히 열리고 천천히 닫혔다. 어딘가로 빨리 가야 한다는 강박 대신, 지금 여기의 바람과 물소리와 발자국을 똑바로 듣는 일에 모두가 동의한 도시.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는군요.” 아내가 숨 찬 소리로 말했다. “여긴 2,400m 라오. 이제부터 거북이걸음이오.” 거북이걸음은 명상의 호흡과 닮아 있었다. 짧고 얕은 숨 대신, 깊고 느린 호흡. 목적지보다 발걸음 그 자체에 마음을 두는 일. 우리는 해발 0미터 하롱베이에서, 사파 1600미터, 쿤밍 1900미터, 다리 2000미터, 그리고 2400미터의 리장까지 고도를 적응하며 걸어왔다. 그래서 해발 2400미터에서 걷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고성객잔은 ‘ㄷ’ 자형의 나시 전통가옥이었다. 안마당을 감싸는 나무 기둥과 검은 기와,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흔들리는 대나무 잎. 방은 작았지만 단정했고, 문살 사이로 흘러드는 물소리가 은은했다. 흙과 나무 냄새가 범벅된 이 집은 작은 수도원에 가까웠다. 하루 60위안이라는 주인장의 말에, 우리는 미소 섞인 흥정을 더해 50위안에 사흘을 머물기로 했다. 사흘은 결국 일주일이 되었고, 일주일은 지금도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은 채 흐른다.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길모퉁이 좌판에서 ‘위미 바바(玉米巴巴)’를 사 먹었다. 옥수수 껍질 위에 얹혀 나온, 호떡과 떡 사이 어딘가의 식감. 설탕과 깨, 복숭아씨를 갈아 넣기도 하고, 간 고기를 넣기도 한다는 바바를 할머니 손에서 받아 들며, 나는 문득 오래전 어머니의 부엌을 떠올렸다.
낯선 향신료가 코끝을 스치고, 익숙하지 않은 짠맛이 혀끝을 당겼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음식의 진짜 맛은 레시피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난다는 사실을, 이 낯선 간식이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어둠이 깔리자, 고성은 한순간에 신비의 무대로 변모했다. 집집마다 걸린 홍등이 물결처럼 점멸했고, 골목을 따라 흐르는 수로는 불빛을 실어 나르며 고성에 작은 별자리들을 만들었다. 물레방아가 도는 소리는 밤의 심장박동처럼 느리게 울렸다. 우리는 미로 같은 자갈길 속으로 스며들었다. 돌다리마다 작은 다리 난간마다, 누군가의 웃음과 현지 음악, 잔 부딪는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나시족의 가락이 겹겹이 얹혔다.
수로 옆에서 연꽃 모양의 종이배에 촛불을 켜서 띄워 보냈다. 불씨가 흔들릴 때마다 우리의 지난 길이 잠깐씩 스쳐갔다. 병상에서의 밤, 헤매던 낮, 다시 길 위에 서기까지의 망설임들. 촛불은 아슬아슬하게 깜박였지만, 꺼지지 않았다. 나는 그 불빛이 물 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서 타고 있음을 깨달았다. 명상은 눈을 감는 일이 아니라, 빛을 바깥에서 안으로 옮겨 심는 일. 외부의 등불을 내면의 등불로 이식하는 조용한 의식.
리장의 밤이 더 깊어지자, 느림은 더욱 또렷해졌다. 나시 여인들이 등에 멘 ‘하늘 망토’의 흰 줄과 검은 줄은 낮과 밤을, 등 뒤의 일곱 원은 별자리를 뜻한다 했다. 그 상징들이 실제 하늘과 물 위의 불빛, 그리고 우리의 호흡과 포개지면서,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만다라처럼 보였다. 지붕과 지붕이 이마를 맞대고, 다리와 다리가 손을 맞잡고, 물길과 사람길이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곳.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던 목조가옥처럼, 이곳의 삶은 자연의 법도에 기대어 ‘버티는 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동양의 베니스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군.” 내가 속삭이자, 아내가 맞장구쳤다. “하지만 여기의 물은 바다에서 오지 않고, 설산에서 오지요.” 맞다. 이 물은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헤이룽탄에 모였다가, 다시 도시의 혈관이 되어 흘러든 물. 하늘이 보낸 물이 사람들의 소망을 싣고 흘러가는, 순례의 강이었다.
그 밤, 우리는 골목 끝 작은 다리 위에서 한참 서 있었다. 불빛이 멀어지면 어둠도 뒤따라 흐르고, 불빛이 굽이돌면 우리의 마음도 한 번 더 굽이쳤다. 나는 조용히 합장했다. 삶이란, 이 불씨 하나를 꺼지지 않게 호흡으로, 걸음으로, 사소한 친절로 지켜내는 일. 리장에서 배운 느림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의 리듬이었다. 서로의 시간, 서로의 숨, 서로의 상처를 천천히 다루는 태도. 그 느림이야말로, 우리가 이 설산의 품에서 다시 살아갈 힘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우리가 띄운 작은 등불은 결국 물을 따라 흘러가겠지만, 그 불빛이 남긴 흔적은 물 위가 아니라 사람의 가슴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다음날 아침, 수로에 비친 하늘이 더 맑아 보인 까닭은, 어쩌면 우리 내부에 어젯밤 심은 등불이 아직도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날이 밝으면 미로 같은 리장고성을 걸으며 다리 위에 서서 설산을 올려다본다. 그 흰빛은 차갑지만, 그 안에는 불멸의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바람이 지나가고, 물이 흐르고, 나시족의 오래된 노래가 골목을 따라 퍼진다. 그들은 말한다.
“산은 신의 몸이고, 물은 신의 피이며, 바람은 신의 숨결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깨닫는다. 리장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신과 사랑이 서로 스며든 거대한 한 편의 서사시였다.
고성의 골목을 걷다 보면, 물이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물은 옥룡설산에서 녹아내린 눈물이다. 바위와 자갈을 타고 흐르며 수천 년 동안 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는 그 물가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며 명상에 들었다. 한 모금의 숨, 한 번의 들숨 속에 설산의 바람이 스며들었다. 눈을 감으니 눈보라가 아니라 순백의 기운이 내 안으로 내려앉는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이곳은 단순한 여행의 종착지가 아니라, 영혼이 잠시 머무는 안식처라는 것을.
나는 조용히 물 위에 손을 담갔다. 찬 물이 손끝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졌다. 그 순간, 아내의 숨결이 떠올랐다. 긴 세월 병과 싸우며 함께 걸어온 우리의 길이, 이 리장의 물결처럼 고요하고도 단단히 이어져 있었다.
“그대의 고통도 언젠가 이 물처럼 흘러가리라.”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고요한 물이 내 안의 언어를 받아 흘려보냈고, 설산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들었다.
새벽녘, 다시 설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여전히 웅장했고, 고성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 그 설산이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내 안의 두려움과 사랑, 기쁨과 슬픔이 설산의 봉우리마다 걸려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명상이란 결코 세상과 단절된 침묵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리장은 내게 그 껴안음의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눈은 녹아 물이 되고, 물은 흘러 생명을 낳는다.
영혼이 설산을 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