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

자연과 하나 되는 영혼의 순례 - 하늘과 땅이 맞닿은 인상여강 무대에서

by 찰라

하늘과 땅이 맞닿은 영혼의 무대, 인상여강


해발 3,100미터. 숨 한 번 고르는 일조차 버겁다. 산소 탱크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나는 생각했다. ‘이곳까지 함께 올 줄이야…’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의사로부터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었던 아내가 지금 내 곁에서 옥룡설산의 눈부신 빛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설산의 하얀 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살아 있음이, 함께 있음이, 그 자체로 이미 한 편의 공연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공연장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그러게 말이요. 이곳은 백두산보다 높은 곳인데... "

아내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그녀는 붉은 흙빛의 거대한 원형 무대를 바라보며 손을 모았다. 그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 속에서 생의 기적을 보았다.

인상여강(印象麗江). 장예모 감독이 옥룡설산 자락에 세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실경(實景) 공연. 무대는 따로 있지 않았다. 산과 하늘, 바람과 초원이 모두 배우였다. 10개의 소수민족, 500명의 배우, 100필의 말이 설산 아래서 노래한다.

장예모 감독의 인상여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3,000m 고지에 이 공연을 기획했을까? 인상여강은 그의 인상시리즈(광시성 인상리강, 저장성 인상서호, 하이난섬 인상하이난 등)의 한 축으로 기획한 야외 실경(實景) 공연이다. 그 중에서도 인상여강은 옥룡설산 아래 간해자초원 해발 3,100m 설치된 거대한 야외 공연장이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연장이 아닐까?



고난을 예술로 승화한 영혼 - 거장 장예모의 예술혼

이 거대한 발상을 처음 떠올린 사람, 도대체 장예모(張藝謀)는 어떤 인간일까? 인상여강을 제데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장예모 감독의 예술 혼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태어났다. 풍요와는 거리가 먼, 전쟁의 그림자 아래서 자랐다. 아버지는 국민당 장개석 휘하의 장교였고, 그 전력 하나로 그는 문화대혁명 시절 ‘반혁명가의 자식’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다.

십 대 후반의 장예모는 영화가 아닌 노동의 세계로 내던져졌다. 농장으로, 공장으로, 땀과 먼지, 쇳가루와 피 냄새 속에서 청춘을 태웠다. 7년 동안 면직공장에서 실을 잣으며 그는 세상의 빛과 어둠을 눈으로 익혔다.

그의 손끝에 남은 굳은살은 훗날 카메라를 쥐는 힘이 되었다. 그는 영화학교에 가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팔았다. 그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그의 첫 카메라의 렌즈를 샀다. 삶이 그토록 가혹했기에, 그의 예술은 더욱 투명하고 단단했다.

장예모의 작품은 늘 ‘자연의 숨결’을 품는다. 그는 인공의 조명을 싫어했다. 붉은 토양의 색, 람의 속도, 눈 내리는 하늘빛—그것이 그의 팔레트였다. 그의 영화 『붉은 수수밭』은 바로 그 붉은 대지 위에서 피어난 인간의 원초적 생명력의 찬가였다.


그 후로도 그는 늘 자연과 인간의 대화를 이어왔다. 그에게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의 스승이자, 인간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는 수많은 현장을 순례하며 바람의 리듬을 배우고, 산의 침묵 속에서 사색을 길렀다.

그의 카메라는 명상하는 눈이었다. 화려함보다는 단순함을, 속도보다는 정적을, 인위적 감정 대신 존재의 울림을 택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간다. 바람이 장면을 넘기고, 빛이 인물의 얼굴을 감싼다. 그의 미학은 결국 ‘무위(無爲)’의 철학이었다.



죽음의 문턱을 지나 다시 피어난 사랑


공연은 총 6부로 구성된다. 마이크 하나 없이, 오직 육성으로. 설산이 그들의 소리를 받아 메아리로 되돌려준다. 그 순간,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녹아내렸다. 붉은 흙으로 쌓은 언덕은 운남 고원의 대지와 생명력을 상징했고, 북소리와 함성은 신의 언어처럼 대기를 흔들었다. 그 울림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공연장이 아니라, 삶과 죽음, 인간과 신, 자연과 사랑이 하나 되는 성스러운 제단이라는 것을.


그 중에서 3부 천상인간편이 크게 울림을 주었다. 공연의 장면 하나하나가 우리 삶의 파편처럼 가슴에 박혔다. 설산 아래에서 말을 달리는 젊은 나시족의 연인들.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죽음조차 그들의 맹세를 꺾지 못했다.



‘당신은 사랑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가?’ 남자는 마방(馬幇)의 후손, 여자는 고성의 직조공 딸이다. 그들은 신분의 벽을 넘어 사랑했으나, 부족의 금기와 가문의 원한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밤마다 그들은 흑룡담(黑龍潭)에서 몰래 만났다.


“당신은 나의 봄입니다.”

“당신은 나의 영혼입니다.”


그 고백은 약속이었고, 기도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사랑은 발각되고, 남자는 먼 차마고도로, 여자는 원치 않는 결혼식장으로 내몰린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운명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설산의 바람이 붉게 물든 무대를 휘감고, 북소리가 멎는 순간, 그들은 운삼평(雲杉坪) 삼나무 숲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사랑은 죄가 아닙니다.”

“죽음이 있다면, 함께 가겠습니다.”


마침내,

둘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운삼평의 적벽에 몸을 던졌다. 그들의 못다핀 사랑은 하늘로 날아가 그곳에서 다시 피어났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가 병실에서 수없이 넘었던 절벽의 순간들, 숨이 끊어질 듯한 밤마다 내가 속으로 외쳤던 기도들—그 모든 것이 이 순간 설산의 바람과 함께 녹아내렸다.

‘그래, 우리가 아직 살아 있구나.

이 숨이, 이 빛이, 아직 우리를 부르고 있구나.’

그 깨달음이 밀려오자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다시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의 물이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영혼의 순례

장예모 감독은 인생의 고난을 예술로 승화한 사람이다. 그의 삶처럼, 이 공연 또한 고통을 통과한 아름다움이다. 그는 인공의 무대를 거부하고 자연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의 예술은 명상이었다. 화려한 조명 대신 하늘의 빛을, 배경음악 대신 바람의 숨결을 불러왔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꾸미는 대신, 자연이 인간을 품도록 했다.


그 철학 앞에서 나는 마음을 낮추었다. ‘우리의 여행도 결국 이와 같지 않은가.’ 티베트로 향하는 순례길도, 병과 간병의 세월도, 모두 자연과 하나 되기 위한 길이었다. 산은 기도였고, 하늘은 노래였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은 곧 눈 녹은 물이 되어 대지의 강으로 흘렀다. 그 강은 내 마음의 강이었고, 그 강을 따라 아내의 숨결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해가 설산 너머로 사라질 때,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공연장은 침묵 속에 잠겼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야.”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그 미소는 어느 말보다 깊은 대답이었다. 그날 밤, 설산의 별빛이 우리를 덮었다. 나는 그 빛 속에서 느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 인상여강, 그것은 인간의 공연이 아니라

자연과 신, 그리고 사랑이 함께 연주한 영혼의 교향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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