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설산-운삼평-옥수채-흑룡담-물레방아-리장고성-생명수
공연이 끝난 다음 날, 나는 ‘사랑을 위하여 죽는 자들의 성지’ 운삼평으로 향했다. 인상여강 공연에서 사랑을 위하여 죽는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곤돌라를 타고 삼나무 숲을 오르자, 옥룡설산의 눈물이 계단식 돌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물은 은처럼 맑고, 백옥처럼 차가웠다.
해발 3,240미터. 그곳은 삼나무와 구름이 서로 기대어 잠든 듯한 평원이었다. ‘운삼평’이란 이름 그대로, ‘구름이 노니는 평전’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인상여강에서 보여준 공연처럼 서로 다른 씨족의 사랑을 금지당한 연인들이 마지막으로 목숨을 끊은 곳이라 한다. 연인들은 사랑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죽은 후, 옥룡설산을 떠도는 구름이 되어 하늘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이후로 사람들은 이 숲을 ‘사랑의 끝이자, 영혼의 시작’이라 부르게 되었다. 미국의 지리학자 조지프 락은 27년 동안 리장에 머물며 이곳을 방문한 후 ‘영혼을 정화하는 에덴동산’이라 부르며 “나는 이곳에서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삼나무 숲에 앉았다. 눈 덮인 옥룡설산의 봉우리는 은빛으로 빛나고 바람은 고요했다. 그 순간, ‘사랑’이란 단어가 죽음과 생 사이의 고요 속에서 천천히 녹아들었다. 명상은 곧 사랑을 놓아주는 일이다.
“나는 사랑을 붙잡지 않겠습니다. 나는 사랑 그 자체가 되겠습니다.”
그런 생각의 들자 마음속의 소유욕이 흩어지고, 남겨진 것은 연민과 감사뿐이었다. 들숨에 “아내의 건강과 행복을”, 날숨에 “나의 집착을” 실어 보냈다. 그렇게 사랑은 나를 넘어, 구름과 바람으로 흘러갔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죽음을 넘어선다. 그것은 형태 없는 사랑, 소유가 아닌 자유, 끝이 아닌 순환이다. 운삼평의 바람이 불어올 때, 나는 그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랑은 죽지 않는다.
사랑은 다시 태어나,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자유를 축복하는 일임을. 진정한 명상은 사랑을 품은 침묵이라는 것을. 리장의 하늘 아래, 운삼평의 삼나무들은 오늘도 바람을 품고 속삭인다.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 사랑은 영혼의 숨으로 남아, 하늘을 감싸는 구름이 된다.”
운삼평에서 나는 옥룡설산의 물줄기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하늘과 맞닿은 설산은 나시족의 신령한 어머니이자 하늘의 젖줄이다. 그 품속에 잠든 얼음과 눈은 하늘이 내린 첫 번째 축복이었다. 해가 떠오르면 눈 녹은 물이 운삼평을 지나 백수하로 숨결처럼 흘러내린다. 그 물은 단순한 눈 녹은 물이 아니라, 신의 젖줄이요 생명의 피였다. 동파의 제사장은 새벽마다 설산을 향해 합장하며 속삭였다.
“우리의 영혼은 물로 태어나 물로 돌아간다.”
물은 옥수채에서 정화를 한 후 흑룡담으로 흘러든다. 흑룡담에서 흘러나온 물은 리장 고성 골목골목으로 흘러든다, 그리고 물레방아, 생명의 바퀴 리듬을 따라 생명수로 태어난다.
옥수채는 옥룡설산에서 리장으로 가는 계곡에 있다. 옥수채에 도착하여 대자연신법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리장의 수원 발원지인 여강원이 있다. 여강원 비석이 우뚝 서 있고 작은 연못 한가운데는 나시족이 숭배하는 대자연신이 황금빛을 발산하면서 찬란하게 서 있다. 대자연신은 관세음보살을 닮은 얼굴에 상체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하체는 코브라들이 머리를 들어 공격자세로 자연신을 보호하고 있다. 그 주위에는 동물신상들이 이 뱀신을 둘러싸고 있다.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사람과 자연은 이복형제 사이였는데, 부모가 죽고 난 뒤 서로 싸움을 벌였다. 싸움에서 진 사람은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하늘의 신이 이를 보고 동파족의 신을 내려 보내 중재를 하게 했다고 한다.
중재를 하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함부로 나무를 베고, 동물을 죽이고, 희생제물의 피로 강물을 더럽히는 등 자연을 파괴하여 중재는 난항을 겪게 되었다. 하늘의 신은 앞으로 그들이 자연을 보호하고, 이 거룩한 샘에서 자연에 경배드리는 조건으로 중재를 성립시켰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연에 경배하는 제물을 올리고, 가뭄이 들 때도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자연을 신성시하고 보호하려는 동파족의 자연숭배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눈 녹은 물이 처음 머무는 곳, 옥수채(玉水寨)는 하늘의 정화가 끝나는 첫 제단이었다. 맑디맑은 물이 푸른 돌 위로 흐르며 하늘과 인간의 경계를 씻어낸다. 여기서 동파의 제사장들은 생명수를 그릇에 담아 신에게 바쳤다. 그 물 한 방울은 리장 사람들의 혼을 깨우는 성수다. 장족과 나시족, 바이족은 이곳을 자기들의 성소(聖所)라고 한다. 옥수채의 물을 바가지에 떠서 마시니 뱃속까지 시원하다.
대자연신에서 물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화합원이란 사원이 나왔다. 화합원은 동파문화를 전시해 놓은 일종의 민속박물관이다. 사원 한가운데는 오색의 띠를 두르고 하늘을 향해 분기 탱천하는 돌기둥이 우뚝 서 있다. 그 모습이 꼭 남근을 닮았다. 이 돌기둥의 이름은 천향로(天香爐)라는 향로인데 실제로 남성의 성기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다. 나시족들의 남근을 숭배하는 사상이 깃든 향로다.
'천향로'는 '하늘의 향로'라는 뜻인데, 이곳에 향을 피워 풍요와 소원을 비는 행위를 한다고 한다. 천향로는 나시족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 옥수채를 방문하는 사람들 소원을 빌며 남근을 시계방향으로 돌기도 한다. 천향로 안에는 향을 피우고 있어서 하얀 연기가 하늘로 솟아나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거룩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남자의 정액처럼 보여 남녀가 성욕을 느끼기도 한다고.
이곳에는 사원 부근에 거주하였던 민족과 관련된 전설이 하나 내려오고 있다. 한 장족 청년이 선녀를 사랑하여 정을 통해 아이 셋을 낳았는데 모두 벙어리였단다. 그는 말을 못 하는 자식을 위해 이곳에 사원을 짓고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의 뜻이 통하여 세 명의 아이들이 모두 말을 하게 되었고, 이들이 자라나 나시족, 장족, 백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사원아래로 내려오면 연못가에 야크들이 매여져 있다. 관광객을 태우고 모델 역할을 하는 야크이다. 긴털과 옥빛 폭포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야생에서 풀을 뜯으며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데 짧은 줄에 매여져 인간의 돈벌이 역할을 하고 있으니 측은한 생각이 든다.
옥수채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 흑룡담에 이른다. 흑룡담에 도착하니 호수가 거울처럼 잔잔하다. 깊고 어두운 연못 속에는 하얀 용과 검은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도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는 빛과 어둠, 생과 멸(滅)이 하나로 순환함을 뜻한다. 동파의 사제는 이곳에서 하늘과 땅, 인간과 영혼이 하나 되는 주문을 외웠다. 흑룡담은 곧 우주의 심장, 모든 이원성이 잠드는 고요의 바다였다.
리장의 새벽은 옥빛 물소리로 깨어난다. 안개는 산을 감싸고, 하늘의 구름은 천천히 내려와 흑룡담 호수의 품에 안긴다. 흑룡담은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든 생명의 숨결이 머무는 성소이다. 이 호수는 이름과 달리 검지 않다. 햇살이 비추면 비췻빛으로, 달빛이 비치면 은빛으로 변한다.
그 투명한 물결은 천년 동안 설산의 눈물과 인간의 기도를 품어왔다. 나시족은 이 물을 “신의 피”라 불렀다.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잠들어 있어, 그가 깨어나면 비가 내리고, 세상에 생명이 싹튼다고 믿었다. 그들은 매년 봄이면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물 한 잔을 떠서 대지에 뿌렸다. 그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삶과 사랑이 다시 태어나는 순환의 예배였다.
흑룡담의 물은 다시 리장 고성의 골목골목으로 흘러들어 간다. 그 물길은 마치 생명의 핏줄처럼 도시를 순환하며 모든 생명을 하나로 잇는다. 리장은 물의 도시이자, 영혼의 도시다. 여기서는 물이 곧 기도이며, 흐름이 곧 명상이다. 한 방울의 물이 떨어질 때마다, 하늘의 눈물 한 줄기가 땅에 닿는 것이다. 리장 사람들은 지금도 새벽마다 이곳을 찾는다. 한 손에는 향을 들고, 다른 손에는 맑은 물을 떠서 하늘에 뿌린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의 삶은 이 물에서 왔다가, 이 물로 돌아간다.”
흑룡담은 사랑의 성소이기도 하다. 나시족의 젊은 연인들은 이곳에 와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서약한다. “흑룡이여,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소서.” 그들은 호수에 조용히 돌을 던진다. 돌이 세 번 물결을 일으키면, 그들의 사랑은 하늘의 허락을 받은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돌이 가라앉기 전에 물결이 끊기면,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럴 때 연인들은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리고 “다음 생에서는 당신과 함께하리라.” 속삭인다. 그래서 흑룡담의 물결은 늘 슬프다. 그러나 그 슬픔은 절망이 아니라, 영혼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울림이다.
흑룡담에서 흘러나온 물은 리장고성의 골목골목으로 스며든다. 돌다리 아래, 좁은 골목 사이로 졸졸 흐르는 수로는 이 도시의 혈맥이며, 그 흐름은 세월보다 오래되었다. 나시족은 물길을 세 갈래로 나누어 썼다.
한 줄기는 마시기 위한 물, 한 줄기는 세탁, 또 한 줄기는 농사를 짓는데 쓰인다. 질서와 조화 속에 자연의 법이 스며 있었다. 리장고성은 인간의 손으로 지었지만, 그 설계도는 자연이 쓴 것이었다.
나는 호숫가에 앉았다. 바람 한 줄기에도 수면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의 얼굴도 함께 떨렸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사랑이란 흑룡담의 물과 같다. 붙잡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을 비춘다. 가질 수 없지만, 모든 것을 살린다. 그리하여 나는 속삭였다.
“사랑이여, 나를 비추이되, 나를 삼키지 말라.”
그 말이 물 위로 퍼져나가자, 햇살이 흩어지고, 바람이 멈췄다. 그 순간, 흑룡담은 내 안의 마음이 되었다. 사랑은 여전히 흘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사랑의 근원은 흑룡담의 물처럼, 끝없이 흐르는 생명의 명상이라는 것을.
리장고성의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귀에 닿는 것은 물레방아의 노래다. 나무 바퀴가 물살에 맞추어 회전하며 삶의 리듬을 만든다. 그 회전은 단순한 기계의 움직임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동파교에서는 물레방아를 운명의 바퀴라 부른다.
“생은 돌고, 사랑은 흘러, 결국 다시 본래의 물로 돌아간다.”
그 소리는 설산의 숨결이 되어 마을의 하루를 깨운다. 물레방아에서 흘러나온 물은 다시 골목을 지나 마을의 밭으로 향한다. 그 물을 먹고 자란 곡식은 다시 사람의 피와 살이 된다. 물은 떠나지만, 생명은 남는다. 그 순환 속에서 나시족은 ‘살아 있음’의 신비를 배운다. 그들은 말한다.
“하늘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마시는 물 한 모금이 곧 하늘이다.”
나는 그날, 흑룡담의 물가에 앉아 한참을 물소리만 들었다. 그 소리 속에는 생과 사, 출발과 귀환, 모든 존재의 순환이 담겨 있었다. 동파의 신앙이 말없이 내게 속삭였다.
“삶이란 흘러가되, 결코 사라지지 않는 물과 같다.”
리장의 물은 곧 깨달음의 강이었다. 리장의 물길은 하늘에서 시작되어 옥룡설산-운삼평-옥수채-흑룡담-물레방아를 거쳐 생명수로 변해 사람의 심장을 거쳐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끝없는 순환의 순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