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카페 창문 너머로 스며들었다. 쿤밍 차화빈관의 테라스에는 따뜻한 향이 감도는 커피와 빵 냄새가 은근하게 퍼졌다. 그날 아침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돌의 숲 ― 석림(石林) ― 을 향해 있었다. 빈관 앞에 서니, 전날 서산으로 데려다주었던 택시 기사가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는 “오늘도 내가 모시겠소”라며 웃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의 얼굴에는 믿음직한 생기가 배어 있었다. 나는 400위안에 석림과 구향동굴을 함께 다녀오는 조건으로 흥정을 마쳤다. 도로를 따라 택시가 달리기 시작하자, 대지는 점점 초록빛에서 회색빛으로 변했다. 멀리 들판 끝에서부터 바위의 첨탑들이 솟구치더니, 이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산이 아니라, 바위가 산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석림 ― ‘돌의 숲’.
처음 그 앞에 섰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위 하나하나가 부처의 좌상 같았다. 천년의 세월이 만든 주름과 상처, 그 속에 새겨진 침묵의 설법이 들려왔다. 돌은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 침묵이 오히려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이곳의 역사는 2억 7천만 년 전, 지구의 바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옛날 윈난은 깊은 해저였다. 인도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부딪치며 땅이 솟구쳤고, 바닷속 석회암층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늘의 기암괴석이 되었다. 수천만 년 동안 바람과 비가 돌을 깎고, 물이 흔적을 남겼다. 그 긴 고통의 세월이 이 장엄한 조각품을 빚어낸 것이다.
바람과 물이 조각가요, 시간은 예술가였다.
바위마다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돌, 악수를 청하는 손 모양의 바위, 서로 입맞춤을 나누는 연인 같은 형상…. 이름 없는 바위들은 하나같이 생명체처럼 살아 있었다. 어떤 바위는 “양심석(良心石)”이라 불렸다. 양심이 불량한 사람이 그 아래를 지나면, 바위가 떨어진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무심코 웃었지만, 문득 마음 한편이 조용히 떨렸다. 그 돌 앞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돌과 돌 사이, 틈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뿌리를 바위틈에 파묻고, 굽이치며 하늘로 오르는 모습은 마치 생명이 돌에게서 태어난 듯했다. 어떤 덩굴은 360도로 원을 그리며 돌기둥을 감싸 안고 있었다. 돌과 나무가 서로를 껴안고 살아가는 풍경. 그것이 바로 생명의 정의였다.
나는 왕펑팅(望峰亭)에 올라 석림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끝없는 돌의 바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그리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기도처럼 들려왔다. 이곳의 바위들은 부서지고 깎이며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상처가 있었기에 오히려 더 단단했고, 더 아름다웠다.
나는 바위 사이에 앉아 눈을 감았다. 바람이 돌 틈을 스치며 낮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종소리 같기도 하고, 불경 낭송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명상이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돌의 대화 속에 이미 있었다.
아내는 내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바위처럼 단단했다. 그 눈빛 속에 나는 오래된 기도의 불빛을 보았다. 그녀의 미소는 말이 없었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경전이었다. 석림은 내게 속삭였다.
“강함이란 부서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깎이고도 서 있는 것이다.”
구향동굴 ― 어둠 속의 울림
석림의 침묵을 뒤로하고 우리는 구향동굴(九鄕洞窟)로 향했다. 산길이 깊어지자, 갑자기 대지가 거대한 입을 벌렸다. 그 어둠의 입구는 마치 지구가 자기의 심장을 드러내는 듯 웅장했다.
동굴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60m 아래로 내려가자, 곧 계곡 속 보트 선착장이 나타났다. 천정에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계곡 아래는 안개로 가득했다.
작은 보트를 타고 협곡을 따라 들어가니, 바람 소리조차 멈춘 듯한 고요가 우리를 감쌌다. 계곡을 지나 동굴 속으로 들어서자, 그 규모는 상상을 넘어섰다. 거대한 광장에는 한여름이면 음악회가 열린다 했다. 이 천연의 성전에는 2만 명이 앉을 수 있다니,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 건축가인지 새삼 느껴졌다.
쌍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Y’ 자 모양으로 흩어지며 천장까지 물보라를 올렸다. 조명이 켜지자, 암벽 위의 돌무늬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 순간 나는 마치 하늘의 안쪽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동굴 속은 서늘했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고요의 심장박동 같았다. 빛이 닿을 때마다 바위의 표정은 달라졌다. 어떤 것은 용의 등뼈 같고, 어떤 것은 부처의 옷자락 같았다. 나는 잠시 멈춰 눈을 감았다. 어둠은 나를 삼켰지만, 동시에 내 안의 빛을 드러내 주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찬란하다.”
만약 세상이 늘 밝기만 하다면, 우리는 빛의 고마움을 알 수 없으리라. 어둠은 결핍이 아니라, 빛을 잉태하는 자궁이었다. 아내는 벽에 손을 얹었다. 그 손끝은 수천 년을 건너온 인간의 기도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전해진 온기는 돌보다 더 단단한 생명의 맥박이었다.
깊숙이 들어서자 천정이 높아지고,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이 우리를 삼켰다. 목소리를 내면 메아리가 일곱 번이나 되돌아왔다. 그 울림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욕망, 두려움, 그리고 미약한 희망….
모두가 바위에 부딪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것은 참회의 소리였고, 동시에 새로운 약속이었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그 빛은 단순히 눈을 찌르는 밝음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을 비추는 따스한 빛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석림의 돌의 침묵과, 구향동굴의 어둠의 울림은 결국 하나였다. 둘 다 내 안의 침묵과 울림을 비추는 거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