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리라 고성-송친림사-나파하이까지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나는 샹그릴라행 버스를 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는 공교롭게도 며칠 전 호도협으로 갈 때 탔던 바로 그 낡은 미니버스였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익숙한 덜컹거림과 함께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차우타오를 지나자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버스는 깊은 협곡으로 들어섰고, 산허리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사 현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 정부는 쿤밍에서 다리, 리장, 그리고 샹그릴라로 이어지는 ‘거대한 샹그라라 관광 벨트를 구축 중이었다. 리장에 국제공항이 건설되고, 옛 마방길은 고속도로로 대체되어가고 있었다. 차와 소금을 싣고 수개월을 걸었던 마방들의 숨결은 이제 자동차바퀴 아래 깔려 있었다.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문명의 속도가 낙원의 호흡을 밀어내고 있었다.
창밖에는 비탈진 밭과 다랑논이 계단처럼 겹쳐 있었고,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버스는 헉헉거리며 굽이치는 고갯길을 올라갔다.
오후 한 시, 드디어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무대라 불리는 샹그릴라에 닿았다. 그러나 첫인상은 뜻밖이었다. 유토피아의 평화 대신, 먼지와 콘크리트 냄새가 먼저 반겼다. 이상향이라기엔 너무 소란스러웠고, 낭만이라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이 여전히 궁금했다.
나는 샹그리라라는 이름 속에서, “지상에 존재하는 마음의 낙원”을 찾고 싶었다. 네팔 여행 중 카트만두 서점에서 우연히 힐튼의 『Lost Horizon』을 발견하여 읽은 뒤, 그 ‘샹그리라’의 이미지가 내 영혼 속에 깊게 박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명확했다. 소설 속 이상향의 땅을 직접 밟고, 가능하다면 그 길을 따라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고 싶었다.
해발 3,300미터의 얇은 공기.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다. 숙소까지 걷는 걸 포기하고 택시를 탔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티베트식 대문이 위엄 있게 서 있었다. 방은 단출했지만 따뜻했다. 점심 무렵, 근처의 티베트 카페로 들어갔다. 벽에는 라싸의 전경 사진이 걸려 있었고, 붉은 천과 기도깃발이 천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야크 스테이크를 먹었다. 질기지만 담백한 그 맛! 차가운 고산의 바람을 견뎌온 동물의 생명력 같았다.
“야크고기를 먹으려고 하니, 야크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동감이오.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먹읍시다.”
아내의 말처럼 야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배가 고픈 탓인지 야크요리를 맛있게 먹고 티베트 아가씨가 가져온 수유차를 마셨다. 뜨거운 차를 마시고 나니 언 몸이 좀 풀렸다.
옆에 있는 배낭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엿들어 보니 차마고도를 통해 라싸로 가는 방법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빵차 운전사로 보이는 청년이 여행자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가 끊어진 동안에 나는 조심스레 빵차 운전사에게 물었다.
“여기서 라싸로 가는 길이 있습니까?”
티베트 청년이 웃었다.
“길은 있지만... 여자는 곤란하지요. 금방 발각돼요.”
그는 장난스레 내 아내를 바라보았다.
“내가 남장을 하면 되잖아요.”
비장한 눈빛으로 말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순간, 내 마음에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이 떠올랐다. 남장으로 변장해, 금지된 땅 라싸에 입성한 최초의 서양 여인. 그녀가 그 험난한 길을 걸어갔던 1924년의 밤하늘이 떠올랐다. 그녀의 용기가, 지금 내 앞의 아내의 비장한 얼굴에 겹쳐졌다.
해가 지자, 고성은 별빛처럼 깨어났다.
낮에는 설산의 신비로, 밤에는 달빛의 축복으로 숨 쉬는 고원의 도시로 변하는 샹그리라를 사람들은 '달빛 도시'라고 부른다. 돌로 깔린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했으며, 집집마다 문 앞에는 버터램프의 불빛이 부드럽게 깜박였다. 룽타가 바람에 펄럭이고, 버터차의 향기가 찻집마다 피어올랐다.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궈좡(Guozhuang, 티베트 전통춤)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돌바닥을 울리자, 그 울림은 고성의 벽을 타고 산으로 번져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불경이라는 것을.
우리는 골목 끝의 귀산공원으로 가서 대형 마니차를 돌렸다. 그러나 6만 kg이나 되는 거대한 마니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성인 10여 명이 돌려야만 움직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마니차였다.
“이 바퀴가 멈추지 않듯, 내 마음의 자비 또한 멈추지 않기를. 옴 마니 반메훔!”
고성의 언덕에는 라마사원을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전통 민가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외부는 티베트 전통 양식으로 되어 있지만, 내부는 현대문명의 이기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이 민가는 식당, 상점, 카페, 술집, 여관 등 관광업소로 바뀌어가고 있다.
샹그리라는 한족이 대거 이주하여 장삿속으로 변해가고 있다. 밤늦도록 술판을 벌려 샹그리라의 본 뜻이 훼손되어가고 있다. 티베트인들도 관광수입으로 돈의 축복을 받아 중국의 지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독립을 포기하고 대신 티베트 자치구를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원래 티베트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윈난성, 쓰촨성, 간쓰성, 칭하이성은 티베트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 지역은 중국 본토의 4분의 1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의 침략으로 고국을 잃은 티베트인은 인도, 네팔, 중국 서부 5 개성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밤은 깊었지만, 사원 위로 떠오른 달빛은 고요히 황금 법륜을 비추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 뒤에는 한족의 자본이 밀려들고 있었다. 티베트의 순수함은 서서히, 돈의 냄새 속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튿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송찬림사(Ganden Sumtseling Gompa)로 향했다. 언덕을 넘자, 금빛 찬란한 사원이 초원의 끝자락에 모습을 드러냈다. ‘운남의 포탈라’라 불리는 이 사원은 정신의 요새이자, 인간의 꿈이 닿는 천상의 궁전 같았다.
송찬림사는 1679년, 5대 달라이 라마의 지시로 세워진 겔룩파(黃教)의 중심 사원이다. 샹그리라 도심에서 5km 떨어진 포핑산(佛屛山) 기슭에 위치한 송찬림사는 윈난성 최대의 티베트 겔룩파 사원이다. ‘쑴첼링’은 ‘3명의 신선이 살던 땅’이라는 뜻으로 라싸의 포탈라궁을 본떠서 건축했다.
위쪽에 붉은색이 칠해진 부분은 신의 영역이고, 아래쪽에 흰색이 칠해진 부분은 일반인이 거주는 지역이다. 극도의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해발 2마일의 높은 고원에 이처럼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사원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이 사원이 과연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무대에 나오는 라마사원일까?
중앙에 대웅전 격인 대경당(大經堂) 아래에는 300개의 크고 작은 승방이 있다. 가장 흥성했던 시기에는 1,600여 명의 승려가 수도를 하고 있었으며, 8명의 활불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약 600여 명의 티베트 수도승이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숨이 차요."
"나도 뒷골이 땅겨요. 그러니 더 천천히 걸어야 해요. "
몇 걸음도 걷지 않았는데도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걷기가 힘들고 숨이 헉헉 거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샹그리라는 평균고도가 해발 3300m에 달하는 고원지대이다. 고원지구에 한번 올라서면 고도가 떨어지지 않는 지역이다. 만약에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바로 내렸더라면 고산증세는 훨씬 심했을 것이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마음으로 기도하듯 걸었다. 느림의 미학, 걷기 명상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티베트인들이 향을 사르고 오체투지로 절을 했다. 담벼락에는 흰 천으로 된 카타와 마니차가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카타를 목에 걸거나 벽에 걸고 ‘옴마니 반메훔’을 염송 하며 마니차를 돌렸다.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
우리도 옴마니 반메훔 진언을 외우며 그들 뒤를 따라 마니차를 돌리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신통하게도 숨이 차는 것이 점점 덜해졌다. '옴 마니 반메 훔(ॐ मणि पद्मे हूँ, Om Mani Padme Hum)'은 티베트 불교의 가장 신성한 여섯 글자 진언이다. 짧지만 그 안에는 우주의 진리가 압축되어 있다.
이 만트라는 문자 그대로는 “연꽃 속의 보석이여, 옴”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여정 전체를 상징한다. 옴(Om) — 우주의 근원적 소리. 모든 존재의 시작과 끝, 마니(Mani) — 보석, 자비의 상징, 반메(Padme) — 연꽃, 지혜의 상징, 훔(Hum) — 자비와 지혜가 하나로 융합되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소리다. 즉, “지혜와 자비가 합일되어 불성(佛性)이 드러나기를”이라는 기도이자 선언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 진언을 하루에도 수천 번씩 염송 하며, 기도 깃발(룽다)과 마니차(기도륜)에 소원을 빌며 산과 강, 바람에 맡긴다. 그들은 말한다. “진언이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세상에 한 줄기 자비의 바람이 퍼져나간다.”라고. 이 소리는 산의 바람과 함께 울리고, 사람의 가슴에 닿으면 눈물이 되어 흘러나온다.
라사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수많은 오색 룽다가 펄럭이는 것을 본다. 그 깃발마다 “옴 마니 반메 훔”이 새겨져 있다. 붉은색은 불의 힘, 파란색은 하늘의 넓음, 초록은 바람의 자유, 노랑은 땅의 풍요, 하양은 눈의 순수.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진언은 세상으로 흩어지고, 모든 존재의 고통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아내와 나는 힘이 들 때마다 이 진언을 외우기로 했다.
이제 나는 안다. 샹그리라의 하늘이든, 병실의 창가든, 기도는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대가 “옴 마니 반메 훔”을 속삭일 때, 이미 그대는 우주의 심장과 이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걸으며 기도한다.
옴 마니 반메 훔, 연꽃 속의 보석이여, 나의 마음이여!
신통한 주문 덕분인지 우리는 대경당으로 이어지는 108 계단을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드넓은 초원이 끝없이 이어져 있고, 아스라이 먼 곳에는 설산이 겹겹이 둘러져 있었다. 저 설산이 소설 속의 푸른 달빛의 골짜기일까?
법당 안에는 거대한 불상이 앉아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 얼굴은 자비로 가득했고, 눈은 세상의 슬픔을 꿰뚫는 듯 깊었다. 벽면에는 윤회의 여섯 길을 묘사한 벽화가 이어지고, 천정에는 천상의 문양이 가득했다. 수백 개의 버터램프가 켜져 있었다. 램프의 불꽃이 서로 반사되어 사원 전체가 따스한 별빛으로 물들었다. 그 빛 속에서 라마승들이 염불을 이어갔다. 낮게 울리는 그 음성은 산의 심장처럼 공간 전체를 울렸다.
순례자들이 라마승의 축복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은 불단에 돈을 놓고 절을 했다. 라마승은 흰 천으로 된 카타를 그들의 목에 걸어주거나 이마를 가볍게 만져 주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 끼어 줄을 섰다. 한 라마승이 다가와 내 어깨에 흰 카타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내 이마 위에 손을 얹고 마정수기를 해주었다. 그의 손길이 내 이마에 닿자 뭔가 알 수 없는 한줄기 전율이 스치고 지나갔다.
대경당을 지나 다른 승방으로 들어가니 늙은 라마승이 장작으로 지핀 난로에 야크차를 끓이고 있었다. 라마승은 뜨거운 야크차 한잔을 건네주며 마시라고 했다. 우리는 합장을 하고 노스님이 내준 차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귀하고 성스러운 차였다. 야크차를 마시고 나니 기운이 갑자기 솟아나는 것 같았다. 를 마신 후 나는 용기를 내서 노승에게 물었다.
“스님, 샹그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노승은 미소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답했다.
“상그리라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평화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상그리라지요.”
그 말은 내 영혼을 깊게 울렸다.
순례의 끝은 결국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이었다.
송찬림사 순례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온 우리는 호스텔 앞에 있는 작은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다. 목욕비는 5元을 받았다. 몽골식 재래 목욕탕은 장작을 지펴서 물을 데우고 있었다. 화덕에 장작을 지피면 불기운이 천장에 매달아 놓은 통으로 올라가 물이 더워졌다.
물의 양이 아주 작기 때문에 매우 아껴 써야 했다. 5원짜리 재래식 목욕이 어찌나 행복한지. 부족함이 주는 행복이었다. 그래, 샹그리라는 순간순간 다가오는 내 마음속에 있다.
목욕울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와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오늘 힘들었지요?”
“너무 행복했어요. 야크차를 내준 스님의 자비로운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요.”
“나도 샹그리라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노스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소.”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다음날, 우리는 나파하이 초원으로 갔다. 티베트어로 ‘하늘의 거울’이라 불리는 곳. 끝없는 초원 위로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야크와 말, 돼지, 새들이 한데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샹그릴라가 아닐까. 바람조차 쉬어가는 곳, 시간이 멈춘 듯한 하늘의 나라. 그러나 그 평화 속에서 문득 인간의 탐욕이 스쳤다.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 멈추지 않는 욕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원의 바람은 여전히 부드럽고, 설산은 묵묵히 세상을 품고 있었다.
나파하이는 고원에 펼쳐진 계절성 호수로 늦은 여름이나 초가을에 빈번하게 비가 내리면 호수면이 늘어나고, 늦가을에서 이듬해 여름까지 호수의 양이 줄어들면 초원이 된다. 지금은 건기인지라 호수에는 물이 없었고, 사방이 설산으로 싸여 있는 초원은 바람도 없었다. 초원을 따라 아득히 송찬림사의 금빛 찬란한 지붕이 보였다.
호수입구에 도착하니 말을 끌고 있는 마부들이 몰려온다. 말을 타라는 것이다.
“이 낙원의 초원에서 말을 탑시다.”
"좋아요."
우리는 소년 마부의 작은 조랑말을 골라 탔다. 조랑말을 타고 초원으로 달려갔다. 초원 가운데로 가니 그곳에는 야크와 말과 소, 그리고 돼지들이 함께 어울려 풀을 뜯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사랑스러웠다. 그것은 아름다운 삶의 조화였다!
가끔 구름 사이로 눈부신 태양이 얼굴을 내밀며 햇빛을 보내주었다. 햇빛사이로 만년설에 뒤덮인 설산들이 희뜩 희뜩 모습을 드러냈다. 조랑말을 타고 초원을 지쳐 가다 보니 갑자기 여기가 이상향의 세계인 샹그리라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설산은 마치 ‘시간의 큰 원’처럼 보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조랑말에서 내려 야크와 소와 돼지들과 한 때를 보냈다. 야크가 되고, 소가 되고, 돼지가 되고... 우린 친구였으며, 한 우리 안에서 함께 생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숨을 쉬었다.
나파하이의 고요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내 마음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이 피어났다. 샹그리라는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평화로운 곳에 있다. 샹그리라는 외부의 땅이 아니라, 내 안의 해와 달, 자비와 고요의 빛이었다. 나는 오늘도 그 마음으로 걷는다.
"내가 걷는 이 길 위에 자비의 바람이 불고, 내 안의 상그리라가 깨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