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의 심장, 호도협을 걷다

— 죽음보다 먼 마방의 길 위에서

by 찰라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인 호도협은 차마고도 마방들이 생과 사를 넘나들며 말을 몰고 다녔던 죽음보다 먼 길이다. 하바설산과 옥룡설산을 가르는 진사강이 협곡을 이루고 있다.


세계 3대 트레킹 코스 호도협


이른 아침, 리장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낡은 버스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른다.

창문 너머로 눈 덮인 봉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구름이 발끝을 스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이 가빠지지만, 마음은 오히려 맑아진다.

마침내 버스가 멈춰 선 곳 ― 호도협(虎跳峽),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불리는 차마고도의 심장부였다.


아침 햇살이 옥룡설산의 만년설을 금빛으로 물들일 때,
나는 그 눈부신 빛 아래서 오래전 마방들의 숨결을 느꼈다.
그들은 말의 고삐를 고쳐 쥐고, 해발 5,000미터의 하늘길로 발을 내디뎠다.
숨은 얕고, 하늘은 높았다.
그 길은 삶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었다.


차마고도(茶馬古道).
이름부터가 이미 운명처럼 씁쓸하고 향기로웠다.
찻잎은 푸르고 향기로웠으나,
그것을 옮기던 어깨와 말의 다리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마방의 길은 늘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죽음의 길이었다.

눈사태, 낭떠러지, 야생동물, 도적, 질병…


그러나 마방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나른 것은 단순한 차가 아니라,
산과 바다를 잇는 생명의 숨결이었기 때문이다.


리장의 나시족은 지금도 마방의 영혼을 기리는 노래를 부른다.

“설산 넘어 흰 차향기, 말발굽 아래 흘러가는 별빛이여,
우리는 죽어도 다시 걸으리. 차와 사랑을 싣고서.”


협곡의 문턱, 나시족 여인과 마방의 종소리

호도협 입구 차오터우에 도착하자, 곧바로 거대한 옥룡설산(玉龍雪山, 5,596m)이 눈앞에 병풍처럼 솟아 있다. 만년설의 흰 자락이 하늘까지 뻗어 있고, 그 맞은편으로는 하바설산(哈巴雪山, 5,396m)이 신의 어깨처럼 마주 서 있다.

용의 기운을 받은 나시족 성산 옥룡설산


아침 안개가 걷히기도 전,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진사강을 따라 난 좁은 산길로 발을 들였다.

두 거대한 산맥이 연인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깊은 협곡을 파고든 진사강이 천둥처럼 요동쳤다.

이곳이 바로 호랑이조차 뛰어넘을 만큼 깊고, 좁은 협곡이라 불리는 호도협이다.

두 산은 진사강(양쯔강 상류)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하나는 용의 형상으로, 하나는 호랑이의 기운을 품고 있다. 현지 사람들은 이 두 산을 용과 호랑이의 영혼이 마주 선 성산이라고 부른다.

그 사이를 가르며 흘러내리는 진사강(金沙江)은

마치 하늘의 젖줄 같았다.

그 물결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생명을 낳고, 아픔을 씻고, 영혼을 정화했다.


협곡 입구에 들어 서니 진사강의 물소리가 땅 밑에서 울린다.

눈 녹은 물이 산의 심장에서 터져 나와,

절벽과 절벽 사이를 미친 듯이 굽이친다. 발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그리고 머리 위로는 설산에서 흘러내린 구름이 길게 머문다.

절경을 이루고 있는 강과 협곡의 기운이 온몸에 전율하듯 느껴진다.

호도협 트레킹은 단순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 인간과 대자연,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 걷는 영혼이 협곡을 걷는 것이다.


트레킹 입구 가게 앞에는 우산처럼 넓은 모자를 쓴 나시족 여인의 미소가 너무나 다정하게 느껴진다.

햇빛과 비를 함께 막아주는 그 모자는, 이 고원의 일상과 생존의 지혜였다.


여인들 뒤로는 워낭소리가 울리고,

말을 이끄는 마방(馬幇)들이 트레커들을 향해 “마, 마(馬)!”하며 손짓했다.


옛날 이 길을 넘던 마방들의 후손들이다.

그 소리 속에는 천년을 이어온 마방의 숨결과, 산을 넘던 인간의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나시족 여인과 트레킹 족을 태워날리는 말

아내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나도 말 한 필 타야겠어요.”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병든 몸을 이끌고도 이 협곡을 걷고자 한 그녀의 의지 앞에

어떤 말로도 제지할 수 없었다.

마부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아내를 안아 올려 말에 태웠다.

그리고 말고삐를 잡고, 그 앞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아내가 탄 말의 뒤를 따랐다.

워낭소리가 계곡 사이로 번져나가며,

하늘까지 이어진 길 위에서 은은한 리듬이 되었다.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호도협 좁은 길

계곡아래로는 다랑논이 층층이 펼쳐져 있었다.

물빛이 하늘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논두렁 사이에는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렸다.


산허리의 좁은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바람은 때로 칼날처럼 차갑고, 때로 포근한 손길처럼 따스했다.

길은 단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다.

낙엽 하나만 굴러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그 길을 나는 한 걸음씩, 마치 죽음의 문턱을 밟듯 걸었다.




마방의 길 ― 생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


길 위에는 여전히 마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과거 차마고도를 따라

차(茶)를 등에 지고, 말을 몰아

히말라야 너머 티베트로 향했던 사람들이다.


오늘날에는 그 후손들이 이 협곡을 따라

여행자들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며

이 길을 오른다.

그들의 걸음에는 세월의 먼지가 묻어 있고,

그들의 눈빛에는 산을 아는 자만의 침묵이 있다.


차마고도를 오갔던 마방의 후손. 지금은 여행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나는 아내를 태우고 가는 마방에게 물었다.

“이 길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셨나요?”


그는 잠시 웃으며 대답했다.

“평생을요. 하지만 산은 아직 한 번도 나를 허락하지 않았지요.”

그 말은 곧, 진정한 여행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이라는 깨달음이었다.

2시간여를 걸었을까, 돌담으로 둘러싸인 나시객잔(納西客棧)이 나타났다.

지붕 처마에는 옥수수와 붉은 고추가 줄지어 걸려 있었고,

벽 밑에는 장작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한국인 환영>이라는 글씨가 유난히 정겹게 느껴졌다. 나는 객잔 돌계단 위에 앉았다.


나시객잔 풍경

나시족 여인에게 차를 마시겠다고 하니,

차향처럼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차를 따라 주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차의 향기와 설산이 맑은 눈빛이 스며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니, 진사강의 바람이 허파 깊숙이 스며들었다.

정원에는 해발 2,000미터에서도 장미가 피어나 있었다. 차의 향기와 자이 향기 속에서 아내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 향기, 살아 있다는 느낌이에요.”


스물여덟 굽이, 천천히 걷는 기도의 길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었다.

일명 ‘28 굽이 코스’ ―

좁은 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며 끝없이 산허리를 감아 오른다.


오른쪽에는 옥룡설산이 흰 용처럼 누워 있고,

왼쪽으로는 하바설산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발아래로는 진사강이 뱀처럼 휘돌아가며,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협곡을 이룬다.

가끔 바위 위에 올려진 돌탑이 보인다.

그건 오래전 나시족이 세운 무덤이자,

이 길을 무사히 건너길 기원하는 기도의 탑이었다.


호랑이가 점프를 하여 진사강을 건너 갔다는 바위

숨이 차오를수록 발걸음은 느려졌지만,

마치 산이 우리를 기다려주는 듯,

공기는 점점 더 맑아지고 하늘은 가까워졌다.

가파른 비탈을 말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는 아내의 모습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작은 불꽃같았지만,

그 눈빛만은 누구보다도 단단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나는 말고삐를 잡은 마부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지만, 미소는 한결같았다.

이 산의 사람들은 침묵으로 기도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내를 태워준 순박한 마방과 말


차마객잔에서 맞이한 새벽


해발 3,000미터, 우리는 마침내 트레킹의 정점인 차마객잔에 도착했다.

차마객잔에 들어서자, 눈앞에 옥룡설산이 고요히 펼쳐졌고, 절벽 밑에는 강물의 우렁찬 울림이 들려왔다. 숙소가 산허리 위에 있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지면보다 한 걸음 더 하늘에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이 객잔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아내를 태워준 마방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몰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곳 차마객잔(茶馬客栈)은 한때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로 향하던 마방들이 머물던 쉼터였다. 지금은 지친 여행자들의 숨을 고르게 하는 곳이 되었다.

벽에는 오래된 나시족 그림이 걸려 있었고,

주인 여인이 흙냄새가 밴 차를 끓여 건넸다.

그 향은 바람 속에 섞여 설산의 냉기와 만나며 신비한 온도를 만들었다.


마방들의 쉼터 차마객잔. 지금은 여행자들의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밤새 강물의 포효가 잠을 깨웠다.

진사강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두 설산의 눈이 녹아 흘러든 물줄기가 협곡의 바위를 치며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지구의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몸을 돌려 창문을 열었다.

한 줄기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 낡은 나무 책상 위를 희미하게 비췄다.

새벽 5시 반,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나는 객잔 앞마당에 섰다.

공기는 차가웠고, 내 숨결은 금세 흰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멀리 하바설산의 봉우리가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반대편의 옥룡설산은 아직 푸른 안갯속에서 깊은 잠이 들어 있었다.

두 산은 서로 다른 빛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음양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차마객잔에서 맞이한 아침 풍경

그사이에 선 나는,

마치 두 산의 숨결 사이에 낀 먼지처럼 미세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미세함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했다.

산은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라고,

“왜 이곳에 왔느냐?”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바람이 대답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 지금 아내와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지금 이 길을 걷는 것으로 행복하다.

나는 하늘을 향하여 양팔을 들어 올리고 깊게 호흡을 들이쉬며 눈을 감았다.

강물의 울림이 마음속으로 번져왔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맑은 침묵이 깃들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어제의 나를, 어릴 적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떠올렸다. 하지만 곧 모두 진사강의 흐르는 강물 속으로 사 라저 갔다. 그리고 내 마음은 텅 빈 공의 세계로 돌아갔다.


삶이란 결국, 이처럼 고요 속에서 다시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멀리서 여명이 터지며 설산의 봉우리가 불꽃처럼 빛났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떠난다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한 결심이라는 것을.

“차마객잔의 새벽은, 세상 모든 여정의 원점이었다.”

차마객잔 풍경
계곡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과 용틀임을 하고 있는 옥룡설산


진사강물 노래 속에, 영혼을 씻다


다음 날 아침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강물의 노래가 다 가까이 들려왔다.

급류는 바위를 부딪치며 하얀 물거품을 일으켰고,

멀리서 폭포 소리가 굉음을 냈다.

하바설산에서 녹은 눈이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였다.

그 아래서 아내가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아, 시원해요! 원더풀! 온몸과 마음이 폭포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요.

그 웃음은 이 협곡의 모든 음을 흡수해 하나의 선율이 되었다.

나는 그 물보라 속에서 아내의 웃음을 보았다. 그 웃음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 순간, 나는 기도했다.

“이 폭포의 물보라가 그녀의 고통을 씻어 주기를.”


하바설산 폭포. 깎아지른 절벽 폭포옆에 서있는 아내의 모습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작은 보랏빛 꽃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향기는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평화를 품고 있었다.



설산 아래의 밤, 별빛과 자비


해 질 무렵, 우리는 티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진사강 바로 위, 절벽 끝에 매달린 듯한 작은 집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기로 했다.

밤이 내리자 강물은 검은 비단처럼 빛나고,

옥룡설산의 봉우리는 달빛을 머리에 얹고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보, 오늘 당신 정말 대단했어요.”

“호호, 나 이래 봬도 강하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당신을 환자라 부르지 않을 거예요.”

그날 밤, 진사강의 물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우리의 잠을 재웠다.

나는 꿈속에서 보았다.

한 마리의 호랑이가 강을 뛰어넘고,

그 뒤를 따라 두 영혼이 손을 잡고 건너는 장면을.


이튿날 새벽,

두 설산의 봉우리에 첫 햇살이 닿는 순간,

세상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빛은 눈 부셨지만, 차갑지 않았다.

그것은 치유의 빛이었다.


옥룡설산 아침 풍경

나는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아 있게 해 주셔서.”


그때 들려왔다.

진사강이 부르는 노래, 바람의 속삭임,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방의 워낭소리를.

“그대는 여행자가 아니다.
그대는 순례자이다.
이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영혼이 걷는 길이다.”


하바설산과 옥룡설산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걸었던 호도협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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