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험하고 아름다운 길

― 죽음 너머의 사랑을 향한 차마고도 순례

by 찰라


아내는 오랫동안 난치병과 싸워왔다. 루푸스라는 희귀병에 이어 심장이식과 수없는 약물 치료, 그리고 30년 넘는 당뇨 투병의 세월. 그녀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지만, 눈빛은 오히려 더 맑아졌다. 어느 날 병실 창가에서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죽기 전에, 꼭 티베트의 하늘을 보고 싶어요. 차마고도를 따라, 영혼의 도시 라싸까지 ᆢ”

그 한마디는 내 가슴을 깊이 흔들었다.

나는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

세상에서 가장 험하고도 아름다운 순례길 차마고도로.

아내의 시한부 인생 앞에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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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강이 갈라지는 뻔즈란


커피 한잔에 보리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샹그리라에서 더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20인승 작은 미니버스다. 길이 워낙 좁아 큰 버스는 다니기가 힘들다고 한다. 버스 좌석은 꽉 찼다. 대부분 티베트인과 중국인들이다. 이 도로는 운남성에서 차마고도로 가는 전장공로다. 운전사는 가락이 높고 긴 티베트 음악을 들려준다.


미니버스는 구불구불한 절벽길을 따라 달렸다. 차창 너머로 깊은 협곡이 아찔하게 열리고, 그 아래로는 금사강(金沙江)이 흘렀다. 장강의 상류, 문명의 젖줄이자 이 땅의 심장. 그 강물의 색은 짙은 갈색이었다. 천 년의 생과 사, 피와 눈물이 뒤섞인 빛이었다.


금사강이 크게 휘도는 지점, 금사강제일만(金沙江第一灣). 강이 산을 감싸 도는 그 굽이진 선은, 마치 인간의 삶이 굴곡을 거쳐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윤회의 상징 같았다. 아내는 창밖을 오래 바라보며 속삭였다.

“저 물결은 멈추지 않네요. 우리의 생도, 죽음도 그저 흘러가는 거겠죠.”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이 길이 언젠가 이별의 길이 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은 살아 있음 그 자체로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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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강, 란창강, 누강이 갈라져 나란히 흘러가는 삼강병류의 땅- 뻔즈란


버스가 다시 산을 오르자 뻔즈란(奔子欄)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나타났다. 티베트 고원으로 들어가는 차마고도의 관문. 예로부터 차(茶)와 말(馬)을 교환하던 교역의 길목이며, 금사강·란창강·누강, 세 강이 갈라져 나란히 흘러나가는 삼강병류(三江倂流)의 땅이다. 금사강은 양쯔강의 상류이고, 란창강은 베트남 메콩강의 상류이며. 누강은 미얀마 살윈강의 상류로 문명의 젖줄이자 생명의 강이다.


좁은 골목 사이로 말과 노새가 짐을 싣고 지나간다. 티베트 상인들이 울리는 방울소리는 천 년의 기억을 담은 영혼의 종소리처럼 협곡에 울려 퍼졌다. 그때 아내가 미소 지었다.

“저 소리 들려요? 마치 천상의 음악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고통을 넘어선 평화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녀의 순례는 육신이 아니라 영혼의 길 위에 서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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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망설산 ― 하얀 망각의 고개를 넘으며

버스는 동죽림사(東竹林寺)를 지나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곳곳에 눈사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잠시 후, 눈부신 흰 빛이 창가를 뒤덮는다. 백망설산(白茫雪山, 5430m)—순백의 대지 위에서 사람들은 일제히 외쳤다.

“와― 설산이다!”


해발 4,292미터의 백망설산(白茫雪山, 5430m). ‘하얗게 망각된 산’이라는 뜻이다. 전장공로의 가장 높은 지점이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자 어지러웠지만, 그 어지럼은 곧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버스에서 내려 순백의 도화지 같은 눈길을 걸으며 나는 아내를 향해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볼까?"

"호호, 어디까지 나는가 한번 볼까요?"

"아이고, 한 발자국도 못 날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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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망설산 고개를 넘을 때, 하늘은 눈보라로 가득했고, 바람은 비명을 질렀다. 버스가 출발하자 아내는 창문을 조금 열고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얼마나 순수한 공기인가요…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기적이에요.”


나는 그녀의 목에 스카프를 둘러주며 말했다.

“그래요, 살아 있다는 건 곧 순례 중이라는 뜻이라오.”


그 눈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하얀 설산은 단지 자연의 경계가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하늘의 다리였다. 눈은 모든 더러움을 덮고, 고통마저 성스러운 침묵으로 감쌌다. 눈은 세상의 상처를 감싸는 천의 이불이었다. 백망설산을 넘으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길을 끝까지 함께 가요. 설령 그 끝이 하늘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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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친(德欽)에 도착했다. 해발 3,550m. 이곳의 티베트어 이름은 아둔쓰, 즉 ‘평화로운 극락의 땅’이다. 1950년 이후 중국에 병합되었으나, 마을 곳곳에는 아직도 룽다(風馬旗)가 휘날리고 라마승들의 붉은 가사가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거리의 공기는 희박했고, 사람들의 눈빛은 깊었다. 더친 사람들은 이곳이야말로 제임스 힐턴이 『잃어버린 지평선』의 샹그리라를 구상한 진짜 영감의 땅이라고 자부한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총칼로 점령한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 티베트의 영혼은 여전히 자유를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이야말로 인류가 배워야 할 ‘내면의 평화’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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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사 ― 매리설산 최고의 전망대

신의 빛이 내리는 자리


긴 여정 끝에 비래사(飛來寺)에 도착했다. 석양이 붉게 타오르고, 저 멀리 메리설산(梅里雪山)의 봉우리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신의 얼굴이 산 위에 내려앉는 순간이다. 아내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빛이 그녀의 얼굴에 스며들고, 마치 하늘이 그녀를 품어 안는 듯했다.

“저 산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바람처럼 가벼웠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요. 하지만 아직, 당신은 나의 곁에 있어요. 우린 이 길을 끝까지 걸어야죠.”


아내는 아직 살아 있다.

그녀의 순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삶도, 그 길 위에 있다. 사랑은 가장 깊은 순례이자, 죽음을 넘어 피어나는 깨달음이다. 비래사에서 어느 티베트의 노승을 만났다. 노승은 매리설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산은 인간의 욕망을 거부한 신의 형상이다. 한 번도 정복된 적 없는 이유는, 그 정상에는 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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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금까지 수많은 등반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1991년 일본 탐험대의 17명이 한꺼번에 눈사태로 사망했을 때, 티베트 사람들은 슬퍼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 카와 카르포는 인간의 발자국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누구도 다시 그 산을 오르려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산을 오르지 않고, 산을 한 바퀴 도는 순례 ― ‘코라(Kora)’를 한다. 해마다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메리설산을 향해 걷는다. 그 길이는 170킬로미터, 험한 설산과 협곡, 폭포와 고개를 넘는 길이다.


순례자들은 오체투지로 세 걸음에 한 번씩 절하며, 자신의 죄와 고통을 대지에 내려놓는다. 그들은 말한다.

“삶은 짧지만, 신의 산은 영원하다. 산을 한 바퀴 도는 것은 곧 자신의 생을 완성하는 일이다.”


순간, 매리설산의 정상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빛은 설산을 넘어, 협곡의 란창강(瀾滄江)을 따라 은빛으로 번졌다. 그 물결은 생과 죽음을 잇는 하나의 노래처럼 들렸다.


우리는 더친에서 하루를 묵었다. 밤이 되자 밤하늘에 별이 쏟아졌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조용히 기도했다.

“이 길 위에서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이 세상의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의 물결이 되게 하소서.”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미소 지었다.

“당신과 함께한 이 길이라면, 이제 두렵지 않아요.”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순례는 목적지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사랑이 끝나지 않는 한, 여정도 끝나지 않는다. 험한 길이여, 그대는 나의 스승이었도다. 흰 눈이여, 그대는 나의 거울이었도다. 강물이여, 그대는 나의 기도였도다.


다음날 새벽 전망대 위에 오르자, 오색의 룽다가 세찬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빨강은 불, 노랑은 흙, 파랑은 하늘, 흰색은 구름, 초록은 물을 상징한다. 그 깃발 하나하나에는 사람들의 기도가 새겨져 있었다. 아내는 그 앞에 서서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설산의 흰빛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물이 흘렀다.

“살아 있는 동안 이 설산을 볼 수 있다니… 신이 제게 마지막 선물을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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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떨렸지만, 미소는 평온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그대의 기도는 이미 저 설산에 닿았어요. 카와카르포가 들었을 거예요.”

그녀는 조용히 룽다에 손을 뻗었다. 작은 천 조각에 자신의 기도를 적었다.

“내 생이 다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 길을 함께 걷게 해 주소서.”


바람이 불었다.

룽다가 한꺼번에 나부끼며 하늘로 기도를 날려 보냈다. 그 오색 깃발들이 설산의 하늘로 날아오를 때, 나는 그 속에서 그녀의 영혼이 천천히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내는 설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 두렵지 않아요. 저 설산이 내 마음의 고향이에요.”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요, 우리가 함께 본 이 산은 사랑의 증언이에요.”

그리고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사랑은 육신을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의 기도는 바람이 되고, 눈이 되어, 영원히 저 설산을 덮으리라.”


룽다가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며 하늘로 수천 개의 기도를 날리고 있었다. 그 깃발들이 멈추지 않는 한, 그녀의 생도, 우리의 사랑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새벽의 하늘이 푸른 고요로 열렸다. 해가 떠올랐다. 첫 햇살이 메리설산의 봉우리들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 빛은 단순한 태양빛이 아니라, 신의 축복이었다. 봉우리들이 하나씩 황금의 불길로 타오르며, 하늘과 인간, 사랑과 고통이 하나로 녹아내렸다.

아내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저 빛 속에 내가 있기를.”


그녀의 눈에는 눈물과 빛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이 산의 자비로 그녀의 고통을 거두어 주소서.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이 빛처럼 영원히 남기소서.”

그 순간, 설산의 봉우리 사이로 한 줄기 구름이 흘러가며 마치 미소 짓는 신의 얼굴을 닮았다. 나는 그것이 카와카르포의 응답이라 믿었다.



란창강을 따라 밍용촌으로


메리설산의 아침은 언제나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눈부신 흰 빛이 산의 능선을 감싸고, 룽다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는 매리설산을 향하여 다시 한번 절을 올렸다.

“이제 이 산의 품을 떠나, 그 젖줄을 따라 내려가리라.”


바로 그 젖줄이 란창강(瀾滄江)이다. 메리설산의 빙하가 녹아내리며 만들어낸 신의 물길, 그 물은 금빛 협곡을 따라 천 리를 흐르고 남쪽의 평야를 적시며 메콩이 되어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생명을 살린다. 아내는 조용히 속삭였다.

“이 물은 신의 젖이에요.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듯, 모든 생명을 살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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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이 강물이 인간의 눈물이자, 그녀의 고통이 녹아 흐르는 자비의 물결임을 느꼈다.


길은 점점 험해졌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절벽길을 돌고 또 돌며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 속으로 내려갔다. 바퀴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 그 아래로는 푸른 번개처럼 란창강이 굽이쳤다. 물이 바위를 치는 소리가, 마치 하늘의 심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아내는 창가에 기대어 강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가 있었다.

“저 물결을 보고 있으면,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모든 게 흘러가고, 또 돌아오잖아요.”


그녀의 말이 바람처럼 내 가슴을 스쳤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순례는 죽음을 이기는 길이 아니라, 죽음과 화해하는 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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