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설산 순례 ― 눈물과 기도의 땅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티베트인들의 기도

by 찰라


밍용촌― 설산 아래의 마을


해질 무렵, 우리는 밍용촌(明永村)에 도착했다. 이곳은 란창강을 따라 올라온 순례자들이 메리설산의 빙하로 향하기 전 머무는 성스러운 마을이다. 작은 가옥들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설산의 그림자에 스며들고, 강물 소리가 마치 저녁 예불처럼 은은하게 들려왔다.

매리설산 품 안, 깊은 협곡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은 세상의 끝 같으면서도 또 다른 생의 시작처럼 느껴는 곳이다. 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저녁, 햇살은 눈 위에서 부서지고, 하늘은 눈부시게 투명하다. 바람은 빙하의 숨결을 품고, 차갑지만 생생한 온기를 전한다.

마을은 마치 한 편의 불경처럼 고요하다. 민박촌이 계곡의 경사면을 따라 늘어서 있고, 지붕마다 티베트식 룽다가 펄럭인다. 오색 깃발들은 기도문을 하늘로 실어 보내며, 바람이 불 때마다 마을 전체가 염불을 외우는 듯하다.

우리는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정하기 위해 마을을 돌아보았다. 게스트 하우스는 대부분 화장실과 방이 따로 있어 화장실을 자주 가는 아내에게는 위험했다. 계곡 초입에 가무극장에 달린 2층 숙소의 화장실은 2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게 되어 있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거나 밖에 있는 것보다는 안전했다. 80위안을 달라고 하는 것을 60위안으로 흥정하여 숙소를 정했다.


가무극장 카페에서 야채 볶은밥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마을의 북쪽, 매리설산의 허리에 거대한 흰 강이 내려온다. 그것이 바로 밍용빙촌(明冰川)이다. 신의 눈물이 흘러 만들어낸 하얀 강. 빙하는 낮에는 은빛으로, 밤에는 달빛을 머금어 푸른 수정처럼 빛난다. 그 아래에서 녹아 흐르는 물은 란창강의 첫 숨결이 되어 아시아의 생명을 살린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 물은 신의 젖줄이다.

마시면 죄가 씻기고,

그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먼지가 사라진다.”라고.


길을 따라 오르니, 하얀 쵸르텐이 매리설산 골짜기를 지키고 있었다. 초르텐 앞에 황금 마니차 세 개는 아직도 이곳이 티베트의 영혼이 깃든 땅임을 증언하듯 바람결에 은은히 돌고 있었다. 우리는 카타에 감긴 마니차를 돌리며 이곳까지 무사히 인도한 부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때, 구름 속에서 설산의 봉우리가 베일처럼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것은 신의 얼굴이 엿보였다 사라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카와카르포 ― 인간의 발길이 닿지 못한 신의 산이다. 티베트인들이 ‘설산의 신’이라 부르는 카와카르포(卡瓦格博, 6,740m)가 좌우대칭의 계곡 위로 눈부신 피라미드처럼 솟아 있었다. 룽다 사이로 보이는 설산이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매리설산으로 오른 길 초입에는 보랏빛 붓꽃이 다소곳이 피어있었다. 설산 밑에 핀 붓꽃이 더욱 고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아내가 감동 어린 눈빛으로 붓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랏빛 붓꽃이 너무 예뻐요!”

“이 산에는 귀한 약초가 많이 있다고 해요.”


매리설산은 티베트어로 ‘마인리(སྨན་རི།)’설산이라고 하는데, ‘마인리’는 ‘약초산’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 산에 귀한 약초가 많기 때문에 ‘마인리’란 이름을 붙였다. 아내의 난치병을 치료하는 약초도 이 산에 있을까? 설산에 핀 붓꽃을 보고 감동하는 순간 아내는 치유되고 있겠지.

계곡에 점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빙하 계곡을 올라가기로 하고 숙소로 내려왔다. 장족이 한 무리의 염소 떼를 몰고 골짜기에서 내려왔다. 숙소 옆에서 미니버스를 몰고 왔던 운전사가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그는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자기 아들이라고 했다. 티베트 장족의 피가 흐르는 아기의 눈동자는 매리설산의 눈처럼 맑았다. 아내가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기 모습이 너무 순박하고 평화로워요.”


아이를 품은 젊은 운전사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는 티베트의 미래를 짊어질 존재입니다.”

아이와 아빠의 눈동자는 설산의 얼음처럼 맑고 깊었다.

어둠이 내리자 마을은 하늘에 닿았다. 별들이 손에 잡힐 듯 쏟아지고, 그 빛은 빙하 위에 내려앉아 반짝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 인간의 시간마저 멎은 듯했다. 아내는 그 하늘 아래에서 매리설산을 향해 합장했다.


“이 별빛은 당신의 눈물이에요.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이 별빛을 잊지 않겠어요.”

나는 그녀 곁에 앉아 고개를 들었다. 별빛이 그녀의 눈가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마을은 신이 내려앉은 자리이자,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자리라는 것을.


아내는 젊은 시절 비구니가 되기 위해 절에서 수행을 해온 이였다. 그녀는 세속을 떠나 출가를 준비하던 중, 어쩌면 한 사람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으로 다시 내려왔는지도 모른다.

그 중생이 바로 나였다. 욕망과 집착, 세속의 허영으로 살아가던 나를 그녀는 조용히 끌어안았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병으로 쓰러졌을 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 긴 병상의 밤마다 그녀의 기도소리가 내 숨을 이어주었다. 그녀는 내게 불경을 외워주었고, 나는 그 음성 속에서 다시 숨을 쉬었다.

그녀는 스님이 아니었지만, 나의 마음을 깨우친 살아 있는 보살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우리를 시험했다. 그녀는 어느 날, 루푸스라는 희귀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피가 몸을 적으로 삼는 병, 그 고통은 칼날처럼 매 순간을 베어갔다. 나는 그녀의 머리맡에서 울었다. 숨결이 희미해지는 그 얼굴 앞에서, 나는 이렇게 맹세했다.


“당신이 다시 일어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소. 세상 끝이라도, 신의 산이라도 함께 가겠소.”


그날 이후, 나는 내 생을 다시 태운 듯 살았다. 그녀가 웃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길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가 걷고 싶어 했던 티베트, 그 설산의 신 앞에 서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위해나는 결국 직장과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매리설산(카와 카르포)의 품에 서 있었다.


밍용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을이지만, 동시에 순례자들의 영혼의 마을이기도 하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순례를 마치고, 자신의 생을 설산에 맡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죽음도 두렵지 않다. 빙하가 녹아 흐르듯, 삶과 죽음 또한 한 물결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인의 영혼, 창의 노래와 춤

산책을 하고 가무극장으로 내려오니 불빛이 아름답게 번졌다.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남녀노소가 티베트 전통복을 입고 원을 그리며 춤을 췄다. 붉은 볼을 한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는 매리설산의 정상까지 치솟는 듯한 고음으로 맑고도 비통했다.


화려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설산의 무대에서 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가슴을 파고드는 영혼의 노래였다. 매리설산이 무대였고, 계곡의 물소리가 자연의 화음이 되었다. 그녀는 노래를 한곡 부르고 나서 관객들에게 흰 천을 걸어주며 작은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녀는 이방인인 우리 부부에게도 다가와 술잔을 내밀었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우린 술을 못합니다.”라고 말했더니, “오늘 밤은 매리설산 영혼의 술을 한 잔 마셔 보세요. 이 술은 당신의 몸을 덥히는 신의 술이랍니다.”


그녀의 권에 못 이겨 나는 작은 술잔을 들어 투명하게 빛나는 술을 마셨다. 술이 목구멍에 닿자마자 기도가 뜨거워지며 목구멍이 화끈거렸다. 불타 듯한 불기운이 위장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더니 그 기운이 곧장 머리로 올라오며 눈알이 핑~ 돌았다. 아내는 입에 술잔을 대자가 “퇴퇴”하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어휴, 무슨 술이 이리도 독해요.”

알고 보니 그 술은 창 중에서도 도수가 40도가 넘는 티베트의 불, 아라(ཨ་ར་, ara)였다. 나는 한 잔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졌다. 보리의 향, 불의 숨결이 목을 타고 흐를 때 세상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매리설산 근처(더친, 밍융 산악지역) 고지대는 추위 때문에 독한 술을 즐겨마신다. 공연자나 순례객들에게는 ‘몸을 덥히는 신의 술’로 통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배주와 비슷한 술이랄까?

가수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나에게 손이 내밀어 무대로 이끌었다. 그녀의 손끝은 차갑고도 따스했다. 창의 노래가 북소리 위로 번지자 사람들은 둥근 원이 되어 돌았다. 나는 그 원 안으로 들어갔다.

언어가 사라지고, 이름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오직 호흡과 리듬뿐. 설산의 그림자 아래, 달빛이 우리를 감쌌다. 그녀의 눈동자에 눈꽃이 녹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춤은 기쁨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기도의 몸짓임을.

그날 밤 가수가 부른 노래는 “바람의 잔으로(Chang gi ge — Lhung gi be’u, 창의 노래)”라는 노래였다. 가무극장 주인에게 노래의 가사 내용을 물어보니 티베트 영혼이 담긴 노래로 그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설산의 마을에 춤이 일고,

하늘과 대지가 하나 되는 그 시간.

고요한 창(보리술)의 마을에서

제단 위로 향기로운 술을 바치네.

흰빛의 회오리 속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후렴)

오, 창이여 —

그대는 바람인가, 생명인가

산맥을 넘어 울려 퍼지는

영혼의 노래여

어머니는 노래하고,

아들은 먼 길을 떠나네.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찬가의 술, 창이여.

삶의 굴레와 괴로움 속에서도

창의 열기 속에 춤이 이어지네.

(후렴)


밤하늘엔 별이 피고

매리설산엔 달이 내리네

그대와 나, 말없이 잔을 부딪치면

세상은 잠들고 마음은 깨어나네

(후렴)

가수가 부른 노래마디 후에 후렴은 관중들이 함께 합창을 했다. 이 노래는 순례자의 기도이자 고백이며, 티베트인의 삶이자 순례자의 숨결이었다.

밤이 깊어 홀의 불빛이 꺼지고, 밖으로 나오니 별들이 쏟아질 듯 흩어져 있었다. 계곡의 바람마저 멈춘 듯 고요했고, 어슴푸레한 메리설산의 봉우리가 하늘과 맞닿은 채 꿈처럼 서 있었다.


그 순간, 산의 정상에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오색 룽다가 펄럭이며 그 기도를 받는 듯했다. 그 천 조각들은 하늘로 흩어져 별빛과 섞였고, 나는 그것이 곧 기도가 빛이 되어 오르는 장면임을 알았다.

계곡은 정적 속에 잠겼다. 바람도, 물소리도, 사람의 숨결도 모두 멈춘 듯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어떤 강렬한 생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살아 있음’의 소리였다.


하얀 봉우리의 윤곽은 달빛에 은은히 빛났고,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부처의 옆모습 같았다. 매리설산의 밤은 인간의 욕망이 멎은 자리, 침묵이 기도로 변하는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알았다.

순례의 진짜 목적지는 산의 꼭대기가 아니라, 그 산이 품은 밤의 고요 속에 있다는 것을.


매리설산의 눈물, 그리고 티베트의 기도


이른 새벽, 계곡의 물소리에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매리설산은 하얀 옷을 입은 천사처럼 서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빙하순례에 나섰다. 길 초입에는 푸른 붓꽃이 피어 있었고, 조랑말을 몰던 마부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설산 입구에는 말과 마부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허연 입김이 산공기 속으로 피어오르고, 말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로 이들이 옛 마방(馬幇)의 후예들일까. 차마고도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이 길 위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겠지만, 그 풍경은 왠지 숙연했다. 설산은 말똥 냄새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순례자들의 기도소리가 뒤섞인 기묘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좁은 오르막길에는 먼지가 풀풀 날렸다. 말발굽이 돌을 차며 일으킨 흙먼지가 햇살에 반짝였고, 그 속에서 순례자들은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말을 타고 지나갔다. 그러나 진정한 순례는, 힘들더라도 두 발로 걸어가는 이들의 것이었다. 순례자들의 걸음마다 작은 기도가 묻어 있었다.

“옴 마니 반메 훔.”


바람에 실린 그 진언이, 산의 허공을 천천히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순례자들의 뒤를 따라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길은 험했고 숨은 차올랐지만, 그 설산이 손짓하는 듯 우리를 이끌었다.



두 시간의 오름 끝에 태자묘(太子廟, Taizi Temple)에 닿았다. 이곳에 위치한 태자묘는 6,000m 이상의 태자 13봉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순례지이다.

태자묘(太子廟)’라는 이름은 전설에 따라, 설산의 신 카와카르포(Kawa Karpo, 6740m)가 인간 세상에 태자(王子)의 화신으로 내려왔다는 믿음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이 사원은 ‘신의 자식에게 바치는 성전’, 즉 신성한 경외의 관문이라 여겨지고 있다. 카와카르포를 신격화한 ‘설산 숭배’(雪山崇拜)의 중심지이며, 매년 음력 10월경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기도를 올린다.


태자묘는 나무와 돌로 지어진 아담한 사원으로, 벽에는 불경과 만다라 문양이 그려져 있고, 지붕에는 룽다(風馬旗)가 바람결에 펄럭였다.


사원 앞쪽은 자연 그대로의 전망대처럼 트여 있으며, 바로 아래로는 밍융빙천(明永氷川)이 흘러내렸다. 매리설산의 주봉 카와카르포가 정면으로 보였다. 마치 하늘이 열리고 신이 손짓하는 듯한 풍경이다.



태자묘 앞에는 순례자들이 오체투지로 옴 몸으로 절을 올리고 있었다. 흰 카타가 나무에 걸리고, 작은 동전이 돌 위에 얹혀 있었다. 어떤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어떤 젊은이는 두 손을 모은 채 빙하를 향해 눈을 감았다. 나는 그 곁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 속에는 천 년의 기도와 눈물, 그리고 인간의 겸허함이 스며 있었다. 빙하는 천둥처럼 쿵쿵 울렸고, 그 소리는 마치 “모든 것은 생하고 멸한다”는 가르침처럼 들렸다. 태자묘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나의 어둠이 이 얼음처럼 맑아지기를. 나의 두려움이 이 빛처럼 녹아내리기를.”



순간, 룽다가 한꺼번에 바람을 받아 펄럭였다. 마치 산신이 그 기도를 받아 올리는 듯했다.

고개를 드니 바람에 휘날리는 룽다와 타르쵸 사이로 옥빛 빙하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반도의 지형과 닮아 있었다.


나는 이상한 향수에 젖었다. 고향을 닮은 빙하, 그러나 그 빙하는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지구가 앓는 열병처럼, 설산은 천천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빙하의 균열 사이로 터져 나오는 굉음, 그것은 신의 신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것은 단지 얼음의 붕괴가 아니라 이 행성과 인간의 죄를 대신한 눈물이라는 것을.


나라를 잃은 민족의 기도는 빙하의 물소리 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부디 라싸까지 무사히 가게 하소서.” 그리고, “티베트의 자유와 평화가 속히 이루어지게 하소서.”기도는 끝내 자신을 위한 염원으로 변해갔다.

"아내의 난치병이 사라지게 해주소서."

"우리의 조국도 언젠가 분단의 빙하를 녹이게 하소서."


절벽 사이로 노란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그 어떤 억압도 그들의 생명을 꺾을 수 없었다. 자유는 꽃처럼 피어나 마침내 바람으로 흩어진다. 샹그리라, 그 이상향을 찾아 쿤밍에서 다리, 리장, 중뎬, 더친을 거쳐 숨 가쁘게 달려온 순례의 끝에 우리를 맞이한 것은 눈물 흘리는 매리설산이었다.


그 눈물은 단지 빙하의 눈물이 아니라 티베트인들의 상처였고, 지구와 인간 모두의 눈물이기도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빙하를 향해 속삭였다.

“부디, 모든 생명이 평화로 돌아가기를.”


그 말이 바람에 실려 타르쵸의 색색 깃발 사이로 흩어졌다. 그때 나는 알았다. 샹그리라는 어딘가 멀리 있는 낙원이 아니라, 눈물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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