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설산에서 아미산까지 - 숨으로 걷는 길
메리설산의 아침은 천년의 고요 속에서 깨어났다.
새벽의 빛이 카와카르포의 빙벽을 어루만지자, 흰 눈이 금빛으로 번졌다. 나는 찬 바람에 휘날리는 룽다 사이로 카와카르포 정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숨을 고르며 산을 내려왔다. 빙하의 냉기가 뺨을 스쳤고, 산기슭의 바람은 오래된 기도처럼 내 귀를 울렸다.
더친의 마을 언덕에서, 며칠 전 헤어졌던 서양 여행자들을 다시 만났다. 그들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렸지만 미소는 여전했다. 그들은 라싸를 향해 가고 싶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 길은 닫혀 있었다.
라싸, 그 이름은 나에게 육신의 목적지가 아니라, 영혼이 걸어가는 하나의 별자리였다. 나는 카와카르포 설산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언젠가는 너를 넘어, 영혼의 땅 라싸로 가리라.”
그때, 머리 위에서 눈보라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산신이 내 다짐을 듣고 흰 숨결로 대답하는 듯했다.
밍융촌에서 어제 아기를 안고 만났던 티베트 운전사를 만났다. 그는 더친에서 깡딩으로 넘어가는 길이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일시적으로 막혔다고 했다. 볶음밥 냄새와 차마고도의 먼지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티베트인 운전수의 제안을 들었다.
“오늘 오후, 샹그리라로 가는 자리가 두 좌석 있소. 60위안이면 됩니다.”
그는 순박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그가 내 인생의 다음 이정표를 가리키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오후 두 시, 네 명의 중국인 여행자와 함께 빵차에 올랐다. 차는 란창강 협곡을 따라 비명을 질렀다. 운전수는 마치 경주하듯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절벽길을 달렸다.
낭떠러지 아래로는 천 길 낙하의 바람이 출렁이고, 길가에는 추락한 차의 잔해가 마치 경고문처럼 서 있었다.
“제발 천천히, 부탁하오!”
나의 외침에 그가 웃었다. “오케이, 걱정 마시오!” 그러나 그의 발은 브레이크 대신 운명에 닿은 듯했다. 차는 산의 몸통을 뚫고, 구름 속으로 달려갔다. 저녁 여덟 시, 샹그리라에 도착했을 때 무릎은 떨렸고, 손바닥은 땀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생과 사의 경계가 모호한 그 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숨’이 '기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과 사는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다. 들숨을 내쉬지 못하면 금생의 삶은 끝나고 만다. 삶은 그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다. 명상도, 깨달음도 그 '숨' 사이에 있다.
샹그리라의 밤 —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우리는 샹그리라에서 매리설산으로 갈 때 머물렀던 호스텔에 여장을 풀고 걸어서 그 카페로 갔다. 저녁을 먹고 차도 한잔 마시고 샹그리라에서 청두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여자 종업원이 우리를 알아보고 싱긋 웃었다.
샹그리라의 하늘은 붉은 노을 속에 잠들어 있었다. 거리마다 룽다가 펄럭이고, 티베트 카페의 창문에는 여행자들의 눈빛이 반사되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야크 스테이크를 썰며 이 세상의 한가운데서 가장 먼 고요를 맛보았다.
우리 테이블 옆에는 여행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도 라싸로 넘어가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는데 여의치 않다고 했다. 깡딩으로 넘어가는 길도 사정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우리도 이곳에서 라싸로 가고자 하는데 무슨 방법을 찾았소?”
“이곳에선 외국인에게 여행허가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공안들의 눈을 피해 가는 방법은 있긴 한데, 중국인처럼 행세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어도 신통치 않고, 공안에게 발각이 되면 벌금을 물고 추방을 당한다고 해서 망설이고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할 건가요?”
“칭하이성 골무드에서만 외국인에게 육로를 통해서 라싸로 가는 여행허가서를 발급해 준다고 해서 골무드로 갈까 생각 중입니다.”
“같은 중국정부가 통치하는 땅인데 이해할 수 없군요.”
“그러게 말이요.”
아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보, 지금으로선 외국인이 육로로 라싸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칭하이성 골무드에서 칭장공로를 통해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럼 골무드로 갑시다. 이번에 가지 못하면 영영 못 갈지도 몰라요.”
“여기서 청두로 가는 길은 막혀 있데요. 리장에서 쓰촨성으로 넘어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는데.”
“빙빙 돌아가네요.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지요. 난 꼭 영혼의 땅, 라싸로 가고 싶어요.”
아내의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경계를 딛고 선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생의 열망이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라싸보다 더 깊은 신의 나라가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의 슬픔과 허무를 초월한 어떤 결심의 자리에서 서 있었다.
카페에서 호스텔로 향하던 길목에서 밍융촌에서 함께 빵차를 타고 왔던 중국인 루시요를 만났다. 그들은 그 빵차를 다시 렌트해 리장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며, 두 자리가 비어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두 좌석이 우리에게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리를 위해 비워둔 좌석처럼. 나는 그들과 함께 동행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여보, 이곳에서 라싸로 가는 길은 험하고 멀어요. 후회하지 않겠소?”
“가다가 죽더라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얼마나 오랫동안 꿈꿔온 길인데요.”
“흠, 과연 이 길이 우리가 찾아 헤맨 길일까?”
“가보면 알겠죠. 갈 데까지 가보는 거예요.”
그때 문득, 오래전 청춘의 노래가 가슴속에서 되살아났다.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나를 걱정하던 그대여,
그래, 아마 나는 세상을 모르나 봐.
하지만 후회는 없어.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나는 새삼 아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병실에서,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시한부 삶 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며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었다. 그래도 꿈만은 잃지 않았다. 다시 기사회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먼 길을 떠나더라도 그 끝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티베트로 머나먼 순례의 길을 떠나고 있었다.
이제 나의 세상은 출세도, 성공도 아닌 — 그녀와 함께 걷는 이 길, 이것이 바로 '내 세상', '우리의 세상'이었다. 나는 젊은 시절 오직 출세를 위하여 달려왔다. 주경야학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뉴욕과 런던으로 금융 유학을 떠났던 일, 그리고 지점장직에 올랐을 때, 나는 세속의 정상에 서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허공 같았다. 병든 아내를 두고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녀와 함께 떠났다. 세상은 내려놓을수록 넓어졌다. 밤이 깊자 룽다는 달빛 속에 흩날리고, 멀리서 승려의 염송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숨을 세어라. 그리고 그 숨으로 세상을 넘어라.”
나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숨을 세었다. 한 숨, 두 숨, 세 숨… 숨과 숨 사이로 세상이 멎고, 시간의 흐름이 사라졌다. 마침내 의식이 고요의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 길은 라싸로 향한 길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귀향길이었구나.’
라싸로 가는 길은 지도로 그릴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이 마지막 남긴 물음이었고, 죽음을 넘어서려는 한 여인의 염원이었다. 아내는 병든 몸으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다른 세상의 빛이었다. 그곳에는 절망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가야 한다’는 한 줄기 서원만이 있었다.
달빛이 허공을 가르며 흩어질 때,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추고,
세상은 단 한 개의 숨처럼 고요했다.
우리는 끝없이 빙빙 돌았다. 영혼의 땅 라싸로 가는 길 위에서 우리의 육체는 점점 지쳐갔으나, 영혼은 그 반대였다 —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었다. 길가의 흙먼지 속에서 룽다가 펄럭였고, 고원의 바람이 우리의 뺨을 때릴 때마다 나는 깨달았다. 이 여정은 ‘라싸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내 안의 라싸’로 가는 길임을. 라싸는 지리상의 도시가 아니라, 영혼이 도달해야 할 마지막 고개임을.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빵차를 타고 리장으로 향했다. 길은 여전히 구불구불했고, 창밖의 협곡에는 바람을 가르며 한 마리 매가 날았다. 리장의 고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질 무렵이었다. 거리는 축제의 열기로 들끓었고, 홍등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방이 없어요.”
전에 머물렀던 고성객잔 주인은 우리보다 옥상 텐트에서 자라고 했다. 객잔 주인의 말에 아내는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밤에는 춥다. 면역이 약한 아내와 함께 옥상에서는 차마 잘 수가 없어 방을 찾아 나섰다. 여행 중에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고성객잔에서 내려와 방을 찾아 골목을 따라 걸었다. 정말 방이 없었다. 5월 노동절 휴가철이라 거리마다 중국인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리장은 밤을 잊은 듯 여행자들로 들끓었다.
리장의 밤은 낮보다 더 느리게 흐른다. 해가 지면, 돌바닥 골목마다 하나둘 붉은 등이 켜진다. 바람이 한 줄기 스치면 등불이 흔들리고, 그 붉은빛은 오래된 기와지붕 위로 피어난다. 홍등의 불빛은 마치 사람의 숨결처럼 떨린다.
어떤 것은 떠나간 연인을 위한 것이고, 어떤 것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자를 위한 것이었다. 좁은 돌길 위로 발걸음이 젖어든다. 멀리서 흘러오는 물길 소리, 작은 개울을 따라 늘어선 찻집과 주점들. 한 모퉁이를 돌면 피리소리가, 또 다른 골목에선 나시족의 현악기가 밤을 찢는 듯 울린다.
한 사내가 대나무 의자에 기대어 술을 마신다. 그의 눈빛은 등불보다 더 붉고, 더 쓸쓸하다. 그리고 그 옆을 지나가던 여인은 손끝으로 등불 아래 달빛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린다.
“여기선 모두가 길을 잃어도 괜찮아요. 리장은 길을 잃은 자들을 품어주니까요.”
아내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여보, 이 홍등 아래를 걸으니 이상하게 눈물이 나요.”
“아마 우리가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겠죠. 이 빛은 돌아갈 길이 없는 자들의 불빛이에요.”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홍등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오늘 밤만은 아무 데도 가지 말아요. 이 리장의 등불 속에서 그냥 살아요.”
"그래도 등을 기댈 방은 구해야죠."
밤하늘에는 별이 뜨고, 골목의 홍등이 바람에 흔들렸다. 불빛과 물빛이 서로 어깨를 기대며 흐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리장의 홍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길 위의 모든 영혼을 위로하는 작은 불공(佛供)이었다. 수많은 떠남과 이별, 기다림과 사랑이 그 등불 하나하나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골목 끝에서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수백 개의 붉은 등이 한꺼번에 흔들리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붉은빛 사이로 우리의 지난날과 눈물,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이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홍등이 별처럼, 달처럼 흔들이는 리장의 골목을 헤매다가 겨우 다락방 하나를 얻었다. 기와지붕 위로 별이 보였고, 다락방의 창문으로 흘러든 바람이 우리를 감쌌다. 그 밤, 리장은 별과 홍등의 도시였다.
겨우 구한 2층 작은 다락방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아내가 낮게 읊조렸다.
“이곳이 샹그리라보다 더 샹그리라 같아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잃어버린 지평선은 어쩌면 우리의 눈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었던 거요.”
이튿날 새벽, 미니버스가 협곡을 따라 흔들렸다. 창밖에는 해발 3,000미터의 고개와 다랑논이 교차했고, 바퀴 밑으로 구름이 흘렀다. 아침에 먹은 국수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버스는 다시 산을 넘었다.
드문 평원 위에는 소를 몰며 쟁기질을 하는 농부가 있었다. 그는 소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산다는 것을.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사고가 난 모양이다. 버스기사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버스가 멈춘 사유를 당연히 설명할 텐데… 그러나 승객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히 기다리기만 한다. 버스는 30분 동안이나 그냥 서 있다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후 3시 반, 붉은 꽃의 도시 판즈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사강을 따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고, 그 아래 붉은 판즈화 꽃이 터널처럼 피어 있었다. 꽃잎은 불길 같고, 바람은 향으로 가득했다. 공업의 도시가 아니라, 나는 그것을 “불의 정원”이라 부르고 싶었다.
오후 4시 40분, 판즈화 역에 도착하여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오후 5시 9분에 청두로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그러나 일반석은 매진이고 침대칸밖에 없다고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 기차를 놓치면 판즈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나는 기차요금이 너무 비싸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내를 무시하고 배낭여행자로선 거금을 주고 어메이 산 행 침대표 두 장을 샀다. 9호차 13호, 14 호석. 숨 돌릴 여유도 없이 기차에 올랐다. 열차에 오르니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호사를 누리는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안락한 침대에서 차창에 어린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으로 판즈화의 붉은 꽃이 멀어지자, 나는 왠지 모를 서글픔에 손을 흔들었다. 차창에는 모래 같은 기억들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설산의 냉기, 차마고도의 먼지, 그리고 아내의 따뜻한 손이었다. 기차가 북으로 휘돌 때, 나는 제임스 힐턴의 문장을 떠올렸다.
“인생에는 주머니를 털어버릴 때가 있는 법이다.”
비싼 기차요금으로 속이 쓰리다고 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식당 칸으로 갔다. 까짓것 기왕에 내친걸음이니 좀 더 호사를 누려보자. 식당에 들어서니 많은 중국인들이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꽃도 있었다. 식당칸의 불빛 아래, 우리는 종이컵에 맥주를 따랐다.
“우리, 건배합시다. 살아 있는 오늘을 위해.”
그 한마디가 멀고 험한 길의 끝을 위로했다. 기차는 산을 감아 돌며, 밤과 별의 경계를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다. 새벽 네 시, 역무원의 두드림 소리에 잠이 깼다.
“다음 역, 어메이산!”
어둠 속에서 내려선 플랫폼에는 불교의 성산이, 검푸른 실루엣으로 솟아 있었다. 나는 산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이 길은 라싸로 향하지 못한 길이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 닿은 길이었다.
라싸에 닿지 못한 이 여행은 실패가 아니었다. 길이 막힌 곳에서 마음이 열렸고, 금단의 땅 앞에서 자유를 배웠다. 숨은 여전히 내 안에서 흐른다.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