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보살 십대원왕을 따라 걷는 아미산 순례
바쁠수록 돌아가라 했던가.
바람이 앞서가도 구름은 제 길을 간다. 급히 달리다 보면, 길이 나를 잃고, 내가 길을 잃는다. 때로는 돌아감이 가장 곧은길, 멈춤이 가장 빠른 길이다. 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돌을 만나면 비켜가고, 바위를 만나면 흘러내린다. 그러면서도 끝내 바다에 닿는다.
나 또한 그러하리라. 숨을 고르고, 마음을 낮추고 느리게 돌아가리라. 세상일은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라싸로 가던 여정이 막힌 것도 어쩌면 하늘의 뜻이었다. 그 길이 닫히자, 오히려 보현보살의 성지 아미산으로 향할 수 있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기약 없는 여행이지만, 둘만 떠나는 배낭여행길에 선 우리는 시간의 부자였다. 아름다운 곳이 있으면 멈추고, 힘든 길을 만나면 돌아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그 자유 속에서, 나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웠다.
새벽 4시, 12시간을 달려 도착한 어메이산 역. 달리던 기차의 바퀴가 멈추자, 안개가 역사를 삼키듯 밀려들었다. 안개는 아미파 무술처럼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그 차가운 새벽안갯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곳은 어쩌면, 나의 내면이 오르려는 산이 아닐까?”
밖은 컴컴한데 삐끼가 달라붙는다. 아미산 입구까지 빵차가 15위안이란다. 버스를 타면 2위안인데, 버스는 5시에 첫차가 출발한다. 기다리기엔 너무 지루하다. 빵차를 타고 아미산 입구 호스텔에 도착을 하니 4시 30분.
잠긴 문을 두들겨 본다. 아주머니가 눈을 비비며 나온다. 마침 방 하나가 비어 있단다. 3인용 도미토리로 들어가니 서양인 한 사람이 자고 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8시다. 호스텔 앞에 있는 식당에서 만둣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한 그릇에 5위안, 할머니가 빚어준 만둣국이 입에 살살 녹는다. 할머니의 미소 짓는 모습이 보현보살의 품처럼 넉넉하다.
해발 3099m의 아미산을 걸어서 등산을 하는 데는 최소한 3일을 잡아야 한다. 결코 쉬운 등반은 아니다. 아미산 일주 순례코스는 다음과 같다.
투어리스트센터(입구)-보국사-15km-만년사-15km-식삼소-5.5km-초전-3.5km-금정사-9km-식삼소-7km-선봉사-6km-홍춘평-6km-청음각-9.5km-복호사-1km-보국사.
이 거리는 무려 77km가 넘는다. 왕복거리 150km를 걷는다는 것은 초인적인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의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아미산은 올라가는 코스보다 내려오면서 보는 경치가 더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아미산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첫날은 버스로 만년사까지 갔다가 보국사로 걸어서 내려오고, 둘째 날은 버스로 뇌동평(2,430m)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금정사에 오르기로 했다.
아미산은 보현보살 성지다. 우리는 보현보살님의 십 대 원왕을 따라 아미산을 오르기로 했다. 나는 오늘, 보살의 성지 아미산 자체를 예경 하기로 했다.
예경제 불원(禮敬諸佛願) ㅡ 모든 부처님께 예경하나이다.
아미산은 오대산, 보타산, 구화산과 함께 중국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다. 보현보살의 거처이자, 무술의 본향이기도 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세는 어머니의 품처럼 넓고 깊었다. 나는 속삭였다.
“어머니의 산이여, 나를 품으소서.”
아미산은 천 년의 향기와 수행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자비의 산이다. 수행자들이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는 순례의 성스러운 산이다. 화엄경에서는 보현보살이 아미산의 정상을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둥과 구름이 자주 모이는 이유는, 보현보살이 중생의 기도를 듣기 위해 자비의 구름을 피우고, 공덕의 비를 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아미산의 구름을 ‘보현운(普賢雲)’이라 부르며, 천둥과 번개는 ‘보살의 법음(法音)’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합장배례하고 어머니의 품 같은 보현보살님께 예경을 드리고, 찬탄한다.
찬탄여래원(讚歎如來願) ㅡ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나이다.
시인 이백은 말했다.
“촉나라엔 신비로운 산이 많지만, 아미산에 비길 산은 없다.”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나는 그 산기슭의 숨결에서 느꼈다.
산은 생명이었다.
그리고 그 생명은 곧 보현보살의 숨이었다.
오전 10시, 보국사에서 버스를 타고 만년사 입구에 이르자, 향냄새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안개에 젖은 숲길을 따라 오르자, 그 깊은 품 안에서 낮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오래된 숨결 같았고, 천 년 동안 이어진 기도의 메아리였다. 만년사. 돌기단 위의 청동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앉아 있었다. 그 눈빛은 자비였고, 손끝은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아내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녀의 고통이 보살의 자비 속에서 녹아들기를 빌었다. 나는 손끝으로 코끼리의 발아래를 어루만졌다. 차갑지만 단단했다. 그 순간, 그 차가움이 내 뜨거운 마음을 식혀주었다. 모든 번뇌가 그 청동의 침묵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아내가 내 옆에서 조용히 합장했다. 그녀의 눈가에는 빛이 비쳤다. 마치 천 년 전의 순례자가 다시 돌아와 보현보살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듯했다.
“이 생의 짐을 내려놓게 하소서.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일어서게 하소서.”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만년사의 종소리는 업장을 깨우는 소리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산을 타고 내려와, 우리의 심장을 두드렸다. 나는 천 년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한 순간의 ‘지금’을 만났다.
절의 뜰에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만년사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고, 열 개의 얼굴을 가진 보현보살이 중생을 굽어보고 있다. 보현보살은 시방세계의 중생을 두루 보살펴 주고 있다. 코끼리의 여섯 엄니는 육바라밀을 뜻한다. 보현보살의 미소는 청동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광수공양원(廣修供養願) ㅡ 넓고 크나큰 공양을 올리나이다.
나는 향을 피우지 않았다. 대신 내 땀과 숨결을 공양으로 바쳤다. 그 순간, 보현보살의 십 대 행원(十大行願)이 내 가슴속에서 되살아났다. 열 가지 서원이 바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임을 깨달았다.
만년사는 아미산 순례의 출발점이자 귀환의 자리다. 그곳에서의 기도는 단지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껴안는 자비의 시작이다.
만년사에서 청음각으로 내려오는 길은, 마치 세상의 소음을 벗겨내기 위한 순례자의 길 같았다. 계단마다 짙은 이끼가 내려앉아 있었고, 그 초록의 침묵은 내 마음의 불안과 뒤엉켜 있던 먼지를 하나씩 털어내고 있었다. 고요한 숲이 내 안의 그림자를 감싸 안았다. 발끝마다 사라지는 어둠의 잔향, 그 위로 스며드는 빛의 냄새. 싱그러운 숲의 숨결이 내게 이르렀다
길 한켠, 안락의자처럼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려온 듯, 나무는 부드럽게 나를 초대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이마로 흘러내린 땀방울이 차갑게 식었다. 산새의 울음소리가 내 숨결과 엮이며 어느새 ‘옴’의 진동으로 변해갔다.
“우리 잠시 명상에 들까?”
“정말, 여긴 명상하기에 딱 좋은 자리네요.”
아내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섞여 사라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서 부처의 숨결이 스며들 듯 숲의 숨이 들어왔다. 나무의 뿌리가 내 다리로 뻗어 내려가고, 그 뿌리 끝에서 흙과 물이 교감하듯, 내 피 속으로 초록빛의 생명이 흘러들었다.
바람은 자비의 손처럼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며 낸 작은 속삭임은 마치 “모든 것은 괜찮다”는 위로였다. 새의 울음소리는 종소리처럼 들렸고, 멀리서 법고를 두드리는 듯한 메아리가 천천히 울렸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일어났다. 미움, 집착, 후회, 슬픔… 그 모든 것이 스크린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어떤 장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숲의 숨결이 그것들을 감싸 안고, 마치 오래된 얼음을 녹이듯 나의 업장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隨喜懺悔願 (수수참회원)— 이제껏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하나이다.
그 순간, 눈가에 따뜻한 물방울이 맺혔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깨달음의 물이었다. 내가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눈을 떴을 때, 숲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바람은 아직 불고 있었고, 산새는 여전히 노래했다. 하지만 내 안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삼나무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나무는 여전히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분명히 들었다.
그 나무의 침묵 속에서 울려오는 한마디 — 네가 바로 산이요, 숲이요, 부처다
“여보 잠든 건 아니지요? 이제 내려가야지요.”
나는 가부좌만 틀면 곧 잠이 들곤 한다. 명상보다 수면에 가깝다. 아내의 성화에 가부좌를 풀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나무가 주는 기운일까? 숲이 주는 기운일까? 보살님의 가피도 있겠지.
계곡을 따라 내려가자, 흑룡강과 백룡강이 합수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물소리는 마치 청정한 마음의 선율 같았다. 물에 발을 담그자, 지난 여행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폭포는 마치 세속의 먼지를 씻어내듯 내 영혼을 정화시켰다.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준비해 온 과일과 빵으로 점심을 먹었다. 계곡은 깊고 푸르다. 폭포수가 세상 모든 찌꺼기를 씻어 내리듯 맑고 우람하다. 계곡엔 아미산의 상징인 원숭이 동상이 있고, 그 옆에는 원숭이 인형을 팔고 있다. 다른 인형은 없고 모두가 원숭이 인형뿐이다. 아내는 원숭이 인형이 귀엽다고 가장 작은 것을 하나 사서 배낭에 매달았다.
청전법륜원(請轉法輪願) ㅡ 부처님의 법을 청하나이다.
나는 그 물소리를 법문처럼 들었다. 물은 말하지 않지만, 모든 진리를 전한다. 그 청아한 음성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흐름 그 자체가 진리였다.
폭포에서 숲길을 따라 내려오니 순양전(純陽殿)에 이른다. 아미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 금정사로 향하는 산허리에 구름 사이로 순양전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다. 도교의 성인 여동빈(呂洞賓)을 모신 도관(道觀)이다.
아미산은 불교의 보현보살 성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 품 안에는 도가의 기운 또한 함께 흐른다. 순양전은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장소다. 붉은 기와지붕과 비췻빛 이끼가 어우러진 전각은 마치 구름 위의 궁전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잇고 있다.
전각 앞에서 바라보면, 흑룡강과 백룡강이 산 아래에서 합류하며 안개를 피워 올린다. 그 물안개는 순양전의 처마를 감싸며 천상의 기운을 품어 올린다. 전각 안에는 여동빈의 청동상 눈빛은 자비로우면서도 단단하다. 인간의 고통을 꿰뚫어 보되, 그 너머의 자유를 보여주는 듯했다.
순양전은 불가와 도가가 만나는 자리다. 도(道)와 불(佛)은 둘이 아니며, 산과 나 또한 둘이 아니다. 산바람이 일었다. 순양전의 풍경이 은은히 울려 퍼졌고, 먼 하늘에서 구름이 흘러내려왔다. 고요함 속에서 만물을 바라보면, 그 묘한 곳에서 마음이 전해진다.
순양전에서의 명상은 불교의 참회와는 또 다른 결이었다. 불교가 ‘비우는 깨달음’이라면, 도교의 순양은 ‘채우는 조화’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두 흐름이 만나 하나의 강이 되듯, 참회와 생명, 비움과 충만이 한 호흡으로 이어짐을 느꼈다.
아내는 전각 기둥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았다. 그 눈빛 속에는 병의 고통을 넘어선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또한 순양이로다 — 음양이 하나 되어 생명을 다시 일으키는 길.”
순양전을 내려오며, 산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그 물소리는 마치 여동빈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같았고, 또한 부처의 자비심이 세상을 어루만지는 소리 같았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불교와 도교, 성과 속, 삶과 죽음 — 그 모두가 결국 한 줄기 빛으로 이어져 있음을.
보국사에 이르니 어찌나 향불을 많이 피었던지 불이 난 것처럼 연기가 자욱하다. 아미산의 첫 관문, 보국사(報國寺)는 순례자의 발걸음이 머무는 마음의 문턱이다. 이곳은 마치 산의 첫 호흡이 시작되는 자리처럼, 고요하면서도 생명의 기운이 가득했다.
사찰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맑은 음성으로 순례자를 맞이했다. 그 소리는 마치 “어서 오라”는 보현보살의 부름 같았다. 보국사 경내는 단정하면서도 숲과 이어져 있었다.
삼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오래된 전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고, 그 아래로 흙냄새와 향 냄새가 뒤섞여 은은한 평화의 향기를 내뿜었다. 절벽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발밑을 감싸며, 마치 산 전체가 명상에 잠긴 듯했다.
나는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계단마다 세월의 이끼가 내려앉아 있었고, 그 위를 밟을 때마다 마음의 먼지가 사라지는 듯했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 목불의 눈빛이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 자비로운 눈빛 앞에서 나는 문득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모든 업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라”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아내는 향을 올리며 조용히 기도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고요하고 아름다워,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의 병든 몸이 이 산의 품에서 잠시나마 평화를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순례는 충분히 복된 것이리라.
나는 합장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보국(報國)이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 존재의 고통을 덜어주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그날 보국사에서 내려오는 길, 바람이 산허리를 휘돌며 나뭇잎을 흔들었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부처의 숨결을 들었다.
“너도 이미 부처의 길 위에 있다.”
그 한마디가 내 안의 산을 흔들었다.
보국사는 그렇게 나의 첫 깨달음의 문이 되어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 무거운 배낭 대신, 가벼운 마음 하나로.
오후 6시.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졸음이 온다. 호스텔의 벽에는 깨알 같은 낙서들이 벽을 꽉 메우고 있다. 잠을 청하는데 어제의 동숙자는 나가고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남자 여행자가 배낭을 메고 방으로 들어온다. 오늘 밤의 또 다른 동숙 자다. 내일은 아마산의 정상인 금정(金頂)을 가야 한다. 그에게 눈인사를 하고 눈을 감았다.
다음날 새벽, 아미산 정상 금정(金頂)을 오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뇌동평(雷洞坪, 2430m)으로 갔다. 이곳은 금정사(金頂)로 오르기 전, 순례자가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는 평탄한 지역이다.
버스에서 내려 돌계단을 따라 올라오자, 길은 어느 순간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이끼 낀 나무들이 안개를 머금고 서 있었고, 그 사이로 천둥이 굴러가는 소리가 산의 허파 속을 지나듯 울려 퍼졌다. 그곳이 바로 뇌동평이었다.
구름은 끓어오르는 듯했고, 바람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숨결로 얼굴을 스쳤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마치 산이 명상에 들었다가 깊은숨을 내쉬는 소리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 벽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아내가 조용히 내 옆에 섰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과 구름, 천둥이 대신 말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가 걷고 있던 길이 외로운 순례길이 아니라, 산이 나를 품은 한 편의 기도임을 깨달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뇌동평의 천둥은 더 이상 밖에서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내 안의 울림이 되어, 심장과 함께 진동하고 있었다. 삶의 두려움, 병의 고통, 끝없는 간병의 나날 속에서 이 울림은 나를 다시 숨 쉬게 했다.
‘雷動’ — 천둥이 움직인다. 아니, 천둥이 아니라 나가 움직였다. 고통이 천둥이 되고, 사랑이 번개가 되어 내 안의 하늘을 밝혀주고 있었다.
청불주세원(請佛住世願) ㅡ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길 바라나이다.
뇌동평에서 케이블카로 오르는 10분, 구름이 발밑을 지나갔다. 금정에 오르니 안개는 모든 경계를 지웠고, 산과 하늘은 하나였다. 운무에 가려 앞이 보이질 않지만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1년 중 불과 수십일만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는 곳이 아닌가?
구름 위의 바람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하늘과 땅의 경계에 서 있었다. 뇌동평을 지나 바위 계단을 오르자, 하늘이 점점 가까워졌다. 구름이 발끝을 감싸며 오르고, 멀리 산허리를 따라 금빛이 번져나갔다. 그곳이 바로 금정이었다.
안개는 숨을 쉬듯 산허리를 감쌌다. 나무들은 침묵 속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그 너머로 붉은 금정사(金頂寺)의 지붕이 하늘빛에 젖어 있었다. 돌계단을 오르며, 나는 그 오래된 법당의 처마 끝에서 세상의 무게가 한 겹씩 벗겨져 나감을 느꼈다. 사람의 소리 대신, 산의 숨결이 내 가슴에 닿았다.
“海拔三〇七九.”
바위에 새겨진 숫자가 구름 사이로 드러났다. 3079미터. 지상과 천상의 경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오랜 고통과 간절한 삶이 하나의 기도로 녹아 있었다.
금정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바람 안에는 무언의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 둘은 ‘金頂’이라 새겨진 비석 옆에 섰다. 그 돌의 차가운 감촉이 마치 부처의 손끝처럼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나는 여기까지 왔어요.”
짧은 대화가 안갯속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 말들은 공기 속에 남아, 천둥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우리를 감쌌다.
잠시 후, 구름이 걷히며 햇살이 비쳤다. 금정사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번쩍였고, 멀리서 불광(佛光)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내 마음의 불광이었다. 우리의 그림자가 둥근 빛의 고리 속에 들어섰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 빛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보현보살이시여,
우리의 사랑이 이 빛처럼
고통을 넘어 자비로 피어나게 하소서.”
금정은 단지 아미산의 꼭대기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아미파 무술의 요람 — 아미산의 수호자들
금정사에서 하산하던 길, 구름이 발밑을 흐르고 있었다.
아미산은 중국의 3대 무학의 본산이다. 소림(少林), 무당(武當), 아미(峨眉). 이 중 아미파는 여성 수도자들과 은둔 고승들이 산속에서 도·불·유가의 원리를 통합하며 발전시킨 유파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송나라 말기 한 여승이 자연의 동작, 특히 원숭이의 몸놀림과 균형감각을 관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기민한 무술 체계를 만들었다. 이로부터 ‘아미권(峨眉拳)’, ‘아미검(峨眉劍)’, ‘원후권(猿猴拳)’ 등이 탄생했다.
안개가 길을 덮을 때마다, 세상은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듯 고요했다. 그때였다. 나무 울타리 위에 한 존재가 앉아 있었다. 회색빛 안갯속, 한 마리의 원숭이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산의 노승(老僧) 같았다. 등을 곧게 세우고, 말없이 저 아래 펼쳐진 계곡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한 생을 통째로 명상하는 수행자와 다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도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등 뒤로는 구름이 밀려오고, 산의 능선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그 침묵 속에는 인간의 언어가 닿을 수 없는 자연의 선(禪)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모습 하나로 모든 것을 말했다.
“산은 말하지 않아도 진리를 품고, 바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길을 인도한다.”
조금 더 내려오자, 이번에는 새끼를 품은 어미 원숭이가 있었다. 그녀는 나무뿌리 아래, 젖은 흙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작은 아기 원숭이가 품속에서 꿈틀거렸고, 어미는 그 이마를 쓰다듬듯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자비 그 자체였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따뜻함이 그 작은 품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건 보현보살의 자비예요. 모든 어머니의 사랑이 저 안에 있네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말이 진리였다. 보현보살의 대원(大願)이 꼭 그 모자의 눈빛 속에 살아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가르침을 구하러 올라온 이 산에서, 이미 진리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하산길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금정의 부처가 법당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었다. 산의 바람에도, 구름에도, 그리고 그 원숭이들의 눈빛 속에도 깨달음의 빛이 머물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합장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원숭이들이여, 그대들은 이 산의 법문을 지키는 진정한 스승이로다.”
안갯속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며, 나는 느꼈다 — 이곳 아미산에서는 모든 생명이 곧 수행자요, 모든 침묵이 곧 경전이었다.
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 ㅡ 중생의 뜻에 따라 함께하나이다.
3099미터 금정 정상, 운해가 끝없이 펼쳐졌다. 태양이 떠오르자, 산과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안개가 흩어지는 찰나, 나는 내 안의 그림자도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보개회향원(普皆迴向願) ㅡ 모든 공덕을 중생에게 돌리나이다.
나는 합장했다.
이 길에서 얻은 모든 평화와 빛을, 아내에게, 세상에, 병든 이들에게, 그리고 아직 길 위에서 방황하는 모든 영혼에게 돌린다.
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흩어졌다.
그 자리에, 한 줄기 황금빛이 머물렀다. 그 빛은 내게 속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생명에게 흘러가는, 보현의 자비였다. 하산길, 산은 여전히 장엄했고, 내 마음은 처음보다 가벼웠다.
보현보살님,
당신은 멀리 계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 위에,
내가 품는 이 사랑 속에,
그리고 오늘도 숨 쉬는 모든 생명 속에
당신이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