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발가락 밑에서

― 천년의 미소, 세 강이 만나는 자리에 선 러산대불

by 찰라


세 강이 만나는 자리에 깎아 세운 러산대불


아미산에서 러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에는 봄비가 가늘고 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합장한 채 눈을 감았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오늘 하루도 무사히…”


아내는 여전히 병의 그림자 속에 있었지만, 이번 순례만큼은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의지는 불심처럼 단단했고, 나는 그 곁을 지키는 수행자였다. 러산대불이 있는 능운산으로 향하는 길 — 그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우리 둘의 기도의 길이었다.


DSC06869.JPG


절벽 위 부처의 얼굴이 안갯속에서 서서히 드러났다. 그 순간, 숨이 멎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그 미소, 세 강이 합쳐져 부서지는 물소리가 염불처럼 울려 퍼졌다.


“저 부처님의 시선은 강 건너 고통받는 이들을 향하고 있네요.”


아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러산대불은 능운산의 암벽을 통째로 깎아 새긴 마애불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부처님의 발가락 하나가 내 몸 전체보다 컸다. 그러나 그 크기는 단지 돌의 크기가 아니라, 자비의 깊이였다.



부처님 발가락 밑에서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며 우리는 거대한 발 앞에 섰다. 아내는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도했다.


“부처님, 제 아픈 몸을 탓하지 않게 해 주세요. 대신 이 고통으로 남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주세요.”


그녀의 기도는 바람에 실려 강물 위로 흘러갔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바위의 결이 손끝에 닿았고, 돌 속에서 천년의 숨결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나는 거대한 부처의 발 앞에서 인간은 한 알의 모래에 불과했다.


DSC06876.JPG
DSC06870.JPG


눈을 감자, 내 안의 소음이 멎었다. 아내의 고통, 나의 무력함, 인간의 교만이 모두 흩어졌다. 그 순간, 마음 한가운데에서 ‘용서’라는 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은 말이 없었고, 색도 없었지만, 모든 어둠을 품고 있었다.


“부처님, 이 눈물 한 방울이 세상 모든 고통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소서.”


눈물 한 방울이 돌 위에 떨어졌다. 그 눈물은 강물에 스며 멀리 흘러갔다. 나는 빌었다. 그 눈물이 누군가의 상처를 적셔주길, 또 다른 생명을 위로하길. 그날, 나는 알았다. 작음이 곧 평화요, 무릎 꿇음이 곧 해탈임을. 그 자비의 그림자 속에서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이 남았다.



물 위에서 바라본 자비


우리는 세 강이 합쳐진 자리에서 부처님을 바라보기 위해 작은 나룻배에 올랐다. 세 강이 합쳐지는 물결 위로 대불의 얼굴이 부드럽게 비쳤다. 거대한 대불 앞에 서 있는 중생들이 개미보다 작게 보였다.

아내는 합장한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분은 지금도 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모든 생명을 지켜보고 계시겠지요.”


햇빛 한 줄기가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빛은 부처님의 미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자비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며, 멈추지 않고, 형태 없이, 그러나 언제나 곁에 있는 것임을.


DSC06943.JPG



염불의 파도 속에서


오용사(烏龍寺)에 닿자 종소리가 울렸다. 검은 법복을 입은 신도들이 열을 지어 걷고 있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 염불의 소리가 사원의 처마를 타고 하늘로 흘러 올랐다. 아내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소리가 그녀의 상처를 감싸듯,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이제는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을게요. 이 소리 안에 맡길래요.”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다. 병마에 시달리던 그 손이, 그날따라 부처님의 손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우리는 동방불도공원을 걸었다. 수천 존의 부처님들이 줄지어 서서 각기 다른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는 얼굴, 눈을 감은 얼굴, 상처 입은 얼굴, 그리고 미소 짓는 얼굴. 그 모든 얼굴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DSC06891.JPG
DSC06895.JPG
DSC06911.JPG
DSC06898.JPG
DSC06892.JPG


“고통은 끝이 아니라, 자비의 시작이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당신은 이미 그 자비의 얼굴이 되었어요.”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는 이제부터 부처님의 길을 함께 걷는 거예요.”



부처님의 발아래, 다시 서서

강물은 부드럽게 흘렀다. 우리는 다시 부처님 앞에 서서 마지막 절을 올렸다.


“부처님, 이 생의 인연이 하늘의 뜻이라면, 저희의 고통조차 사랑으로 돌려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바람이 강 위를 스쳤다. 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다. 러산대불은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숨 쉬는 한 사람의 얼굴 속에 살아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다.


“부처님, 오늘도 당신의 발가락 밑에서처럼 작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러산의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부처님의 미소는 그 물결 속에 반사되어

지금도 우리를 비추고 있다.


DSC06880.JPG


월, 수, 금 연재
이전 19화아미산 명상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