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구 민속축제, 라싸로 가는 길 위의 축복
밤새 내리던 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새벽빛은 고지대를 향해 투명한 칼날처럼 번져갔다.
아침 7시, 침낭을 허물처럼 벗고 일어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굿 모닝 찰라.”
“굿 모닝 리사.”
천장도 낮고 방은 차가웠지만 새벽 공기 속에서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마치 축제가 시작되기 직전의 북소리를 느끼는 듯했다.
토끼처럼 재빨리 양치질을 하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바깥으로 나오자 구채구의 하늘은 믿기 어려울 만큼 쾌청했다. 어제 내리던 비와 안개는 모두 사라지고 산의 윤곽은 칼날처럼 선명했다.
아침 식사로 들른 중국식당에서 만두와 국수를 3위안에 푸짐하게 먹고 우리는 천천히 구채구 입구로 걸어갔다. 그 순간, 구채구의 화려한 민속축제가 우리를 맞이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축제였다. 여행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입구 앞 광장은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붉은 두건, 청록의 치마, 금빛 장식, 그리고 눈처럼 새하얀 야크털이 달린 모자들.
“와… 저 색깔 좀 보세요!”
“원더풀! 소우 프리티!”
리사의 파란 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아침 해가 소수민족들의 옷 위에서 펄럭이는 비단처럼 흘러갔다. 처음엔 의아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오늘이 바로 장족의 봄 축제, 고원을 지키는 사람들의 신성한 날이었다.
머리에 동그란 족두리를 쓰고, 얼굴에는 탈을 쓰고, 어깨에는 형형색색의 숄을 두른 장족 청년들이 구채구의 물빛처럼 영롱한 색채로 길을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했고, 장족 북은 낮은 산울림처럼 울렸으며, 퍼레이드는 마치 하늘이 펼친 색채의 강(江)처럼 천천히 계곡을 따라 흘러갔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던 것은 그들의 표정이었다. 순박하고 소박한 미소. 선하고 꾸밈없는 눈빛. 나는 그들을 보며 “물빛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말을 처음 이해했다.
햇빛이 구채구 계곡에 눈부시게 빛났다.
축제의 광장은 이미 뜨거운 숨결로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마치 한 폭의 비단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들의 얼굴엔 설산 아래 민족이 갖는 특유의 환희와 기도가 동시에 빛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라마 스님의 둥첸(長號)이 깊고 낮게 울려 퍼지자, 축제를 가득 메우던 숨결이 일순간 멈추었다. 그 소리는 마치 설산의 뿌리에서 올라온 울림처럼 대지 전체를 진동시키며 퍼졌다. 스님은 그 소리로 신들에게 ‘지금’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기도의 시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둥첸(나팔)의 두 번째 음이 골짜기를 흔들며 지나가자, 사람들은 손에 쥔 오색 종이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세 번째 음—그 길고 낮은 울림이 끝나는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리며 손에 쥐고 있던 오색 종이를 허공으로 높이, 더 높이 날려 보냈다.
이 종이는 오색의 종잇조각이 아니다. 종이마다 짧은 만트라, 기도문, 선대의 가르침, 생명과 자비의 경문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이 오색 종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루풍(རླུང་, Lung 루ང) — 바람이 읽는 기도”로 불린다.
그들은 믿는다. 경문을 실은 오색 종이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갈수록 그만큼 세상 모든 중생에게 자비와 공덕이 고루 흩어진다고. 고통 속에 있는 사람, 병자, 떠돌이, 낯선 이방인, 그리고 지금 여기 서 있는 우리에게까지 그 기도가 닿기를 바란다.
파랑, 노랑, 분홍, 초록, 자줏빛 색종이가 만다라 꽃송이처럼 허공에서 소용돌이칠 때—우리 부부의 가슴도 함께 흔들렸다. 아내는 조용히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아픔이 아니라 마침내 위로받는 영혼의 떨림이었다.
나는 합장한 두 손을 떨리는 마음으로 모으고 천천히 염송 했다.
“옴 마니 반메 훔…”
그 소리는 나의 기도라기보다 하늘로 피어오르는 불경들의 호흡과 하나의 맥박처럼 이어졌다. 한국에서 ‘불경’은 늘 입으로 독송하거나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 티베트에서 만난 불경은 기도를 넘어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생명이었다.
바람이 경문을 읽고, 빛이 그 기도를 멀리까지 실어 나른다고 티베트 사람들은 믿는다. 그 믿음이, 그 기도가, 그 색채가 한순간에 폭발하듯 펼쳐지던 장면—
그 앞에서 우리의 지난한 여정과 걱정, 아내의 고통과 나의 두려움은 잠시 모두 녹아내렸다.
라싸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지만, 그날의 오색 법열은 우리 둘을 위해 준비된 축복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속삭였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이 빛과 자비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닿기를.”
그 순간의 빛과 울림은 지금도 내 마음의 깊은 호수 속에서 부서지지 않는 물결로 남아 있다. 우리는 축제를 보는 여행자가 아니라 기도 속으로 들어간 순례자였다.
퍼레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일즉구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장족들의 옷과 어울리는 구채구의 또 다른 축제였다.
“오, 저 물빛!”
“저건 에메랄드가 아니라… 그냥 하늘이 그대로 내려온 거 같아요.”
수정구의 호수는 빛을 품은 채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축제의 소리가 멀어질수록 자연은 더 깊고 청명하게 우리를 감싸 안았다. 구채구의 봄은 빛의 축제이자 물의 축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