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던져 기도하는 사람들

- 뤄얼가이 초원의 순례자들

by 찰라


진흙탕길에 빠진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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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산 능선을 스치며 세상의 첫 페이지를 넘기듯 부드럽게 흘렀다. 그 시간, 우리는 뤄얼가이(若尔盖)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았다. 거대한 배낭을 멘 젊은 서양인들, 콧수염을 쓸어내리며 미소를 건네던 일흔 살 노인. 그 노인이 우리 곁에 앉아 싱긋 웃던 순간, 새벽 공기의 찬 기운이 금세 누그러졌다. 버스는 어느새 비포장길 깊숙이 들어섰다. 창밖으로는 진흙이 튀어 올랐고, 들판은 마치 대지의 심장이 뛰듯 울렁였다.


뤄얼가이 대초원은 해발 3,000m 너머의 거대한 땅이다. 여름이면 야크와 양 떼가 구름처럼 흩어지고, 유목민의 장막이 별빛 아래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곳. 그런데 그날의 고원은 우리의 용기를 시험하듯 험한 얼굴을 드러냈다. 버스는 진흙에 빠져 멈췄고, 승객들은 말없이 내려 돌을 나르고 바퀴를 받쳤다.


진흙이 얼굴에 튀어도 사람들의 표정에는 묘한 밝음이 있었다. 낯선 이들이었지만, 우리는 이미 ‘같은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포클레인이 도착해 트럭을 구출해 내자 짧은 환호가 들판에 울렸다. 그제야 우리는 다시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온몸으로 기도를 하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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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속도를 내자 초원의 풍경이 한 겹씩 펼쳐졌다. 하늘은 낮게 드리워져 있고, 야크 떼는 무심한 눈발 속을 태초의 존재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눈이 쌓인 길 위로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체투지! 이마와 손바닥, 무릎, 가슴을 땅에 완전히 맡기고 일어서는 동작.


“여보… 저 사람들… 이런 길을 오체투지로 간다고요…?”


아내의 목소리는 경이, 연민, 존경이 한꺼번에 섞인 떨림이었다. 그들의 오체투지는 고통이 아니라 기도였다. 움직임이 아니라 생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더 많은 순례자들이 뒤편의 곰파로 향하고 있었다. 햇빛에 그을린 한 소년이 두 손을 모은 채 아내에게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이 세상 모든 슬픔을 단숨에 녹일 만큼 단순하고 깨끗했다.


아내는 긴 숨을 토하며 말했다.


“저 아이… 저 마음 하나로 라싸까지 가겠지요…”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저들은 몇 달을 걸어 수천 번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존재들이었으니까. 희망 없이 누가 무릎으로 길을 낼 수 있을까. 희망 없이 누가 눈보라 속에서 천 번, 만 번 절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들이 몸을 엎드릴 때마다 대지는 등을 밀어 올려 주었고 그들은 두 손을 모았다. 그 반복 속에서 기도는 움직임을 넘어 삶 전체로 번져 있었다.


초원의 마을 거리는 투박하지만 따뜻했다. 가게 앞에는 구두를 닦는 이들이 줄지어 앉아 여행자들의 신발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의 진흙 묻은 구두도 그들에게 맡겼다. 라싸까지 가는 길, 신발을 소중히 모시는 것은 순례의 예의이기도 했다.


그들의 손놀림은 마치 수행 같았다. 한때 초원의 먼지에 묻힌 신발이 잠시 후 번쩍이는 빛을 되찾았다. 우리는 작은 도인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구두 닦아주는 스승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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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뒤 곰파가 가까워질수록, 고원의 바람은 한층 더 맑은 울림을 품고 있었다. 초원의 흙길 사이로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고, 붉은 담장과 황금빛 지붕이 햇살 속에서 천천히 윤곽을 세웠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땅의 기도는 몸으로 쓴다’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곰파 입구에 다다르자 붉은 흙벽 아래에서 한 노파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 손은 낡은 스틱에, 다른 손은 흰 카타(축원천)에 얹혀 있었다. 그녀의 옷자락은 세월의 먼지를 꿰어 입은 듯 투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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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눈빛은 믿음으로 윤이 났다. 바람이 붓처럼 스치고, 노파의 그림자는 담장 위에서 떨리며 길게 흔들렸다. 그녀는 나지막이 미소 짓고 다시 곰파 쪽으로 천천히 몸을 틀었다. 마치 평생을 향해온 방향을 잃지 않은 사람처럼.


곰파의 거대한 문루 아래로 들어서자 붉은 가사를 두른 승려들이 줄지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어린아이도, 장삼을 입은 여인도, 저마다 하늘빛을 어깨에 이고 있었다.


대문 밖,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 마을의 지붕들. 그 배경으로 붉은 승복은 마치 들판 위에 피어난 작은 꽃잎처럼 산들거렸다. 고원의 맑은 바람이 문루를 통과하며 나와 아내의 볼을 스쳤다. 그 바람의 촉감은—기도의 첫 장을 넘기는 듯 얇고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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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숨결이 모여 있는 곳


곰파 회랑으로 들어서자 어둑한 통로 양쪽으로 금빛 마니차가 수십, 수백 개 이어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기도의 심장들이 한 줄로 줄지어 뛰는 듯했다. 마니차를 돌릴 때마다 금빛 쇠의 낮은 울림이 손끝에 실렸다. 그 소리는 고원 전체가 고요히 응답하는 ‘저음의 기도’였다.


아내는 천천히 마니차를 돌리며 숨까지 아껴가며 걸었다. 고지대의 공기는 묽었고 그 묽음은 우리를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다. 회랑 바닥에는 오체투지를 마친 순례자의 손바닥 자국이 얇은 먼지 위에 남겨져 있었다. 그 흔적은 신발보다, 옷보다, 몸보다 앞서 먼저 기도하고 먼저 살아낸 사람들이 남긴 ‘살아 있는 기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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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파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자 여인들이 검은 전통의상을 입고 하얀 벽을 따라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지팡이에 몸을 싣고, 누군가는 오체투지를 하며 한 뼘씩 길을 냈다. 그들의 움직임은 바람보다 느리고 기도보다 꾸준했다. 아내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 눈빛은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여보… 저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 온몸으로 길을 만들어 가고 있네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 말이 초원의 깨끗한 공기처럼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 뿐이었다.


한참을 걸어 나가다 문틈, 혹은 작은 벽 너머에서 햇살 아래 쉬고 있는 티베트 여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풀밭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작은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목에 걸린 구슬 장신구, 빛에 비쳐 은은하게 반짝이는 흰 치마 자락. 그 모습은 순례자의 길 위에서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운 평화였다.


그들이 웃을 때마다

초원의 공기는 한층 더 투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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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바닥에 엎드려 몸을 앞으로 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등은 굽었고, 옷은 누더기였고, 손은 굳은살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기이하도록 밝은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없이 절을 했고, 누군가는 아이를 옆에 두고 앉아 그 절을 지켜보았다.


순례자들 사이에 앉아 있던 노인들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사는 “이 길에 함께 온 사람이어라” 하는 환대 같았다. 아내는 그 순간 아주 작게, 허공에 합장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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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파에서 내려다본 뤄얼가이 마을은

붉은 지붕,

노란 법당,

푸른 초원,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순례자들의 검은 옷자락. 그 풍경을 바라보던 아내는 이윽고 조용히 말했다.


“여보… 이 길은 정말 우리 둘의 기도였네요!”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날 초원 위에서, 우리는 순례자가 되었다. 아니,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순례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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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순례자


순례자들이 초원을 간다

오체투지로 온몸을 내맡기며

지구를 천천히 들어 올린다


땅과 몸이 한 호흡이 될 때

그 미소는 만다라가 되고

그 침묵은 부처의 숨결이 된다


뤄얼가이 대초원에 오면

모두가 순례자가 된다

오, 초원의 순례자들이여!


-뤄얼가이 대초원에서 찰라 합장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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