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랑무스로 가는 초원에서 색종이를 날리며...
뤄얼가이의 리위안 빈관에서 다음날 새벽 6시에 출발하는 랑무스행 버스표를 끊었다. 원래는 허쭤로 갈 계획이었지만, 그날 저녁 카페에서 만난 독일인 여행자 피터가 행로를 바꾸게 했다.
“랑무스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사원입니다. 집도 길도 시장도, 그 모든 일상이 곧 수행의 터전이지요. 그리고 이곳은 티베트 고원에서 천장(天葬)을 직접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땅입니다."
"피터, 당신은 무엇 때문에 천장을 보려고 합니까?"
"뭐, 뚜렷한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텔레비전에 비치는 천장의식을 보고, 하늘과 땅이 죽음을 품고, 죽음이 다시 생명을 품는 길이 자연의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본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터의 말은 바람처럼 조용히 흘렀지만, 그 한마디는 나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울렸다. 그는 지중해에서 요트 사업으로 부를 이루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삶의 방향이 전혀 다른 지평으로 흐르고 있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는 그 물음 하나를 붙잡은 채 대양의 바람 대신 고원의 바람을 택했다. 부의 무게를 버리고, 도시의 불빛을 뒤로하고, 홀로 티베트의 황량한 길 위에 서 있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릿해졌다.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아내의 병, 삶의 무게, 생과 사의 경계에서 무언가 간절히 붙잡고자 떠난 길—결국, 우리 또한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하나에 온몸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픈 아내와 오랜 세월을 건너오며 나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늘 품고 살아왔다.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프다고 행복할 수 없는가.
건강하면 반드시 행복한가.
나는 긴 세월 이런 질문들을 붙들고 있었지만, 결국 답은 뜻밖에 소박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프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었고, 건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행복은 거창한 미래나 멀리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저 그 순간, 바로 지금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존재하는 그 자리에 있었다.
행복은 파도처럼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찰나의 빛으로 반짝였다 사라지는 순간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삶 그 자체였다. 지금, 이 광막한 티베트 고원 위에서 아픈 아내와 함께 천천히 걸음을 맞추는 이 순간—돌아보니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삶은 결국, 이렇게 이어 붙여지는 작은 파편들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다음날 새벽, 버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하루의 어둠을 밀어내며 조용히 길을 열었다. 해발 3,350미터의 랑무스로 가기 위해, 90킬로미터의 비포장도로를 네 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길. 고원에 깃든 새벽의 차가운 숨결은 버스 창문을 흐리게 만들었고, 나는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어둠의 초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터도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그 눈빛은 깊은 호수처럼 고요했으나, 그 아래에는 짙은 질문의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그 그림자가 내 마음의 그림자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느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길에서 떠나왔지만, 지금 이 순간, 동일한 질문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순례자였다.
그 순간,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땅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점처럼 보이던 무언가가, 이윽고 생명의 행렬로 다가왔다. 오체투지 행렬! 하늘을 향해 합장한 손이 천천히 이마로, 가슴으로, 땅으로 내려가고 온몸이 흙에 닿는 순간 한 생의 무게가 지면에 스며든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또다시 엎드려 절하며 한 걸음. 사람들은 팔꿈치와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판을 덧댄 옷을 걸친 채, 먼 길을 향해 기어가듯 나아가고 있었다.
어떤 이는 눈을 감고, 어떤 이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며, 그러나 모두 같은 호흡으로 땅과 하늘을 오르내렸다. 그들의 몸짓은 이해하기 전에 이미 마음을 적시는 기도였다. 말보다 더 오래 남는 침묵의 고백이었다. 나는 버스창에 이마를 기대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저토록 자신을 바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들은 누군가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비는 것일까. 세속의 죄업을 씻어 내기 위해 떠난 것일까. 아니면 살아 있다는 증거를 하늘에 한 걸음씩 남기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길일까. 그러나 오래 보니, 그들의 여정은 목적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걷는 것 자체가 기도, 엎드리고 일어나는 그 과정 자체가 해탈, 가슴과 땅을 맞대는 그 순간이 곧 깨달음인 듯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왜 이 길을 떠났는가?”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아픈 아내와 함께 ‘나’를 찾고자 떠난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티베트의 끝없는 초원에 서 있는 지금, 나는 ‘나’를 알기는커녕 점점 더 모르는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페르난도 페소아는 '자신을 안다는 것은 곧 길을 잃는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나는 지금 길을 잃고 있었고, 그래서 더 깊이 ‘나’를 향해 가고 있었다. 스님들은 말한다. “모른다”는 것이 바로 수행의 시작이라고. 숭산 스님도 마지막까지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누구인지,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왜 떠났는지조차 모를 때, 비로소 내 안의 문이 열린다는 것. 나는 뤄얼가이의 초원에 한 점으로 존재하여 오직 버스를 타고 랑무스로 갈 뿐이었다.
오체투지를 하며 가는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길을 잃는 순간이 바로 길이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을 알고 있어서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모르기에’ 그 길을 걷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름 속에서 그들은 이미 자신을 품고 오직 절을 할 뿐이었다.
버스는 계속 흔들리고, 초원은 끝이 없었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줄지어 계속 나타났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이 길에서 나를 찾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나를 놓아야 길이 열린다. 모르는 나로, 모르는 길로,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그들의 몸이 땅에 닿을 때마다 나는 나의 무거운 이름을 내려놓았다.
그들의 손이 하늘을 향해 합장할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평온을 가슴에 받아들였다. 고원의 새벽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내 마음에는 작은 불씨 하나가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초원 위의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저분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편하게 가고 있는 걸까.”
맞는 말이었다.
덜컹대는 낡은 버스조차 고마운 탈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 앞자리에 앉아있던 한 티베트 노인이 색종이 한 줌을 손에 쥐고 “옴 마니 반메 훔—” 주문을 외우며 창밖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주문을 외우며 종이를 천천히 흩날렸다.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며 싱긋 웃더니 그 색종이 묶음을 반으로 갈라 내 손에 건넸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통했다.
나는 그 노인이 무엇 때문에 색종이를 하늘에 날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색종이를 날리는 노인이 표정은 아주 편안하게 보였다. 노인이 건네준 자세히 들여다보니 중앙에 부처님 모습이 있고 티베트어로 '옴마니 반메 홈'과 깨알 같은 불경이 새겨져 있었다.
색종이의 절반을 아내에게 쥐어주고 나머지를 손에 들고 아내와 함께 조심스럽게 창밖으로 날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색종이를 하늘에 날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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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종이가 점점 멀어지며 초원에 내려앉는 것을 바라보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오래된 상처가 하나 둘 벗겨지듯, 묵은 걱정도 함께 날아가는 듯했다. 우리에게 색종이를 준 노인은 마니차를 돌리다가 "옴 마니 반메훔"하고 합장했다. 그의 표정엔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는, 순정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티베트인들의 믿음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고, 기도는 ‘말’이 아니라 ‘살아내는 방식’이라는 것. 오체투지를 하는 몸짓, 끊임없이 돌아가는 마니차, 허공에 흩날리는 작은 불경 색종이… 그 모든 행위를 나는 오직 모를 뿐이지만, 그것은 우주를 향한 그들의 빛나는 서원(誓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