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결로 걷는
랑무스 고원의 기도

― 영기가 서린 땅, 랑무스

by 찰라



“숨이 달라지는 곳에서 삶도 다시 시작된다.”


버스가 랑무스 입구에 멈춘 시각은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고원의 바람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 피터의 가벼운 웃음, 스위스 부부의 선선한 기운, 그리고 난치병 아내가 조용히 다잡는 얇은 숨이 뒤섞이면서 우리는 모두 말없이 느꼈다. 이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영기가 서린 땅’을 향한 순례라는 것을.


마을까지는 걸어서 한참을 가야 하는 길, 그때 마침 낡은 빵차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문은 오래된 경전처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얇게 울렸다. 1인당 5위안을 내고 차에 올라타자, 빵차는 마치 순례자들에게 작은 연민을 싣는 듯 천천히, 그러나 단단한 호흡으로 해발 3,350m의 랑무스 마을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랑무스는 마을 전체가 티베트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서쪽에는 험준한 산악지대가 둘러쳐 있고, 동쪽으로는 초원이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벽촌이다. 마을에는 티 없이 순박하고 친절한 티베트인과 후이 이슬람교도들, 그리고 한족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랑무스빈관 앞에 내린 순간 공기가 달랐다. 폐 끝까지 스며드는 냄새는 오래된 불경에서 피어오르는 향내 같았고, 영기가 서린 산의 숨에 오래된 기도가 스며 있는 듯했다.


빈관 지배인은 다행히 영어가 능숙해 안도감을 주었고, 우리는 짬파와 버터차로 간단한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소박한 식사였지만, 고원에서의 한 끼는 그 자체로 공양이었다. 점심을 마친 뒤 피터와 나는 랑무스에서 가장 관심사인 천장(天葬)에 대해 물었다. 지배인은 잠시 눈을 내리고 말했다.


“천장은 동이 틀 무렵, 하늘과 땅이 숨을 고르는 경계에서 시작됩니다. 마침 내일도 장례가 있습니다만… 가족들은 외부인의 관람을 원치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안내가 아닌, 죽음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이 땅의 오랜 예법에 대한 경의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어떤 촬영도 안 됩니다. 설령 찍는다 해도… 세상에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천장은 ‘장면’이 아니라 ‘귀향’이며, 풍경이 아니라 ‘영혼의 마지막 숨’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가족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내일 아침 장례가 끝난 뒤, 죽음이 이미 하늘로 돌아간 뒤 그곳을 조용히 찾기로 마음을 모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마을을 산책하기 시작하자 너와지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붕 위에 무심하게 얹힌 돌들은 고원의 바람을 견디기 위한 것이었지만, 어쩐지 수백 년의 기도가 눌려 있는 듯 보였다. 멀리서 보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사원처럼 보였다. 집과 산, 사람과 동물, 바람과 구름이 서로 경계를 두지 않고 하나의 영기로 이어져 있었다.


사원 앞에서는 한 노인이 3보 1배를 하며, 손을 모아 이마에 대고, 천천히 땅에 엎드렸다. 또 다른 순례자는 절을 한번 할 때마다 주판알을 하나 올려놓았다. 그에게 숫자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영혼이 세는 숨의 개수 같았다. 그들의 기도에는 말이 없었다. 생각도 없었다. 오직 몸짓과 숨뿐이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믿음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나는 한 때 오랫동안 아침마다 108배를 하기도 했으며, 5대 적멸보궁에서 3,000배를 하며 철야정진을 해봤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절은 그 어떤 의식보다 깊었다. 그들의 누더기 옷은 가난했지만, 절하는 몸짓은 금빛보다 더 정결했다. 그 앞에서 나는 절로 숙연해졌다.


마을 중앙을 흐르는 작은 개울에 다가가자, 백룡강의 발원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간쑤성과 쓰촨성의 경계를 가르는 물이었지만, 물은 경계를 알지 못했다. 경계는 언제나 인간이 먼저 그은 선이다. 개울물에 손을 담그자, 차갑고 맑은 물이 손등까지 얼얼하게 했다. 아내가 개울몰로 손을 씻으며 말했다.


“물이 너무 맑고 차가워요!”


나는 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이 물처럼 맑아지게 하소서. 이 물처럼 집착 없이 흘러가게 하소서. 내 업장이 이 물처럼 씻겨 내려가게 하소서. 아내도 두 손을 모았다. 아픈 몸으로도 이 먼 고원을 걸어온 그녀의 숨은 백룡강보다 더 깊고 단단했다.



우리는 개울을 지나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언덕으로 향했다. 고원의 거친 짐승들은 바람처럼 태연했고, 그 눈빛에는 오래된 고원의 침묵이 어려 있었다. 야크 한 마리가 잠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이렇게 묻는 듯했다.


“너희는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가?”


순례길에서 마주한 모든 질문은 결국 한 곳으로 모였다.

그것은 아마 평생 안고 가야 할 내 화두일 것이다.



언덕 아래로 내려오니 한 티베트 남자가 굴뚝 모양의 제단 앞에서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보릿가루인지, 야크 버터인지 모를 향연이 연기로 피어올라 배고픈 영혼들에게 보내는 공양이 되고 있었다. “하늘로 오르는 연기처럼 우리의 마음도 가벼워질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소 피곤해하는 아내를 숙소에 안전히 데려다주고 난 뒤, 나는 조용히 세르티 사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원의 바람 속에 오래 머금은 영기가 사원의 돌기둥을 스치며 나를 맞았다. 나는 한쪽 법당 구석에 앉아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숨을 들이쉬었다.


들숨은 차갑게,
날숨은 따뜻하게,
마치 천상의 기운과 땅의 호흡이
내 몸 한가운데서 만나는 듯했다.


초원의 순례자들이 수천 년 동안 이곳에 흘려놓은 기도의 결이 내 숨과 섞여 들어오자 나는 어느새 깊은 삼매 연못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번뇌와 걱정은 가볍게 벗겨지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짐들이 떨어져 나가며 마지막에는 ‘나’라는 경계마저 희미해졌다.


그때, 어딘가에서 울리는 작은 물음 하나.


“삶은 무엇인가?”


그 질문이 심장 뒤편에서 아주 작은 종소리처럼 울렸다. 나는 속삭이듯 답했다.


“삶은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습니다.”


그 말을 마친 순간, 삼매의 결이 부서지며 나는 마치 깊은 꿈에서 훌쩍 깨어난 듯 현재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예상보다 훨씬 오래 머물렀던 모양이다. ‘아내가 기다리겠구나.’ 그 생각이 들자 내 몸은 다시 따뜻해졌고 나는 조용히 합장한 뒤 세르티 사원을 걸어 나왔다.


저 멀리 숙소 쪽에서 아내의 희미한 숨결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순례자들이 느리게 사원 주변을 걷고 있었다. 순례는 끝없이 나를 벗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래 걸쳐온 마음의 갑옷을 하나씩 벗겨내는 일이었다.



석양을 등지고 숙소로 걸어오면서 마을을 바라보니 나무와 돌로만 이루어진 집들이 오래된 경전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지붕 위를 스치는 고원의 바람이 사르르 울렸고, 그 울림은 마치 경전의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같았다. 돌무더기 마니탑 앞에 섰을 때, 나는 손끝을 조심스레 올렸다. 산의 기운과 하늘의 숨이 손끝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듯했다.


“기도란 떨어져 나간 마음을 다시 한 점으로 모으는 일이다.”


그 순간 나는 작아졌고, 마음은 조금씩 넓어졌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수없이 해체되었고, 그래서 다시 태어났다. 순례는 먼 길이 아니었다. 나로부터 나에게 가는 가장 깊은 길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오늘 하루의 숨이,

그 숨의 개수만큼의 기도가

이미 내 안에서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을.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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