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판, 사랑이 다시 태어나는 곳

-— 문성공주와 송첸캄포의 인연을 지나 우리의 길로

by 찰라


황룡사의 높고 푸른 고도를 내려왔을 때, 우리의 폐는 아직 설산의 얇은 공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의 가녀린 손끝에는 바람과 햇살이 남긴 미세한 떨림이 스며 있었고, 그 떨림이 나는 숨처럼 고귀하게 느껴졌다.


쑹판, 그 이름은 도착하기도 전에 바람이 먼저 속삭였다. 하늘의 붉은 노을이 산등성이를 천천히 적시는 그 순간, 나는 이 도시가 오래전부터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느꼈다.



고성 안의 거리는 꽃길이었다. 노란 꽃과 붉은 꽃이 길모퉁이마다 작은 해처럼 피어 있어, 걷는 이들의 얼굴에까지 색을 물들였다. 분홍빛 화분 나무 아래선 노인이 조용히 벤치에 기대앉아 있었고, 저쪽에선 모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고, 이곳에서는 시간마저 발걸음을 늦추는 듯했다.


골목 끝 너머로는 푸른 산맥이 고요히 몸을 눕히고 있었다. 산은 말없이 거리를 지켜보고, 거리는 또 사람들의 하루를 품어 안았다. 나도 모르게 숨이 깊어졌다.


“그래, 이렇게만 살아도 괜찮겠다.”


꽃들이 바람에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길가 벤치에 앉아 있던 여행자들, 손을 맞잡고 걷는 연인들, 혼자서 천천히 거리를 음미하던 이들… 그 모든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내 마음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소란스러운 세상 밖과 달리, 쑹판의 이 골목은 영혼이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조용한 꽃의 사원 같았다.

“괜찮습니다. 여기서는 잠시 내려놓아도 됩니다.”


쑹판의 공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깊어지는 그녀의 숨결을 들었다. 성문 아래를 지날 때, 황혼의 빛을 받은 두 사람의 동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칼을 찬 늠름한 왕의 형상, 여자는 합장한 자세로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안내문을 읽었을 때야 비로소 알았다. 토번국을 일군 왕, 송첸캄포. 그리고 당나라의 문성공주. 쑹판의 한가운데, 한 시대의 전쟁과 권력, 국경의 갈등을 넘어 기구한 인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동상이 서 있었다.



이곳이 한때 격렬한 충돌의 현장이었음을, 그래서 지금은 화합의 상징으로 이 두 사람을 모셨음을 도시는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았다. 차가운 대리석 속에도 수백 년의 바람이 스며 있었고, 승리와 슬픔, 권력과 헌신, 외로움과 사랑이 묵언의 기도처럼 그 안에 얇게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문장이 나의 가슴속에서 떠올랐다.


“억겁의 인연은 억겁을 견디고, 사랑의 인연은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다.”


송첸캄포를 보는 순간, 나는 우리가 라싸에 거의 다 와 있음을 느꼈다. 토번을 통일한 위대한 왕의 돌조각이 이 먼 고원 도시에서 우리 순례를 먼저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고산의 냉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산보다 높고 시간보다 깊은 생의 의지가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어떤 힘에도 휘둘리지 않았다. 이 험한 길을 여기까지 걸어온 것은 서로에게 건너가고자 하는 마음 하나였다. 당신은 나의 나라였고, 나는 당신의 길이었다.

쑹판의 좁은 골목에서 한국어 간판을 버았을 때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나쁜 삼촌.'


거친 이름이었지만, 문을 여는 순간 그 반전은 너무나 따뜻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순례자의 피로를 한 번에 녹여주는, 맑고 맑은 사람.

“두 분이… 함께 오셨군요. 정말 보기 좋습니다.”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기도처럼 들렸다. 고원의 찬바람보다 삼촌의 마음이 더 넓고 따뜻했다. 그는 나쁜 삼촌이 아니라 순례자의 길목에 놓인 ‘좋은 인연’, 하늘이 조용히 준비해 둔 작은 등불이었다. 그는 숙소를 소개해 주고, 인력거를 불러주고, 저녁엔 김치찌개를 만들겠다며 그의 마음을 열어주었다. 아내와 나의 발걸음이 그에게 닿았다는 사실이 하루치 순례의 피로를 한 번에 녹여주었다.



인력거가 꾸르륵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할 때 아내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기도자의 촛불처럼 고요했고 순례자의 호흡처럼 깊었다. 장족 어린이들이 성벽 아래서 공부하는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종이가 스치는 작은 소리마저 이 도시의 고요한 호흡이 되었다.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여기서는 마음이 아프지 않아요.”


나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순례길에서 손을 잡는다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 영혼을 보호하는 약속이었다. 그 순간 인력거는 도시를 이동하는 수레가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의 영혼이 잠시 쉬어가는 작은 법당이 되었다.


나쁜 삼촌이 말했다.

“오늘 밤은 별이 아주 가까울 겁니다. 사람이 누우면 별이 숨 고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랍니다.”

그 말에 쑹판의 밤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우리는 말을 타지 못했지만 말보다 먼저 별이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여보… 우리 라싸까지 꼭 가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그 말은 가볍지만 그 안엔 뜨거운 생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슴속에서는 조용한 울음 같은 것이 차올랐다. 그래, 가자. 당신의 생이 허락하는 동안 내가 당신을 지고라도 가야 할 길이라면 나는 기꺼이 끝까지 걸어가겠다.


인력거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뒤 돌아왔을 때 나쁜 삼촌은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고원의 밤공기 속에서 뜨거운 김치찌개의 향은 그 자체로 기도였다. 아내가 한 숟가락 먹고 살짝 웃었다. 그 미소는 별빛보다 깊고 설산의 새벽보다 따뜻했다.

“두 분… 길 위에서 서로를 잃지 마세요.”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우리가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날 밤, 쑹판의 달빛 아래 문성공주와 송첸감포의 동상은 묵언의 수행자처럼 서 있었다. 역사는 혼인의 기록을 남겼지만 우리는 사랑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아내는 나의 길이었고, 나는 그녀의 쉼이었다. 우리 둘의 인연은 수천 년의 역사 속 부부보다도 더 단단하고, 더 투명한 연결로 그날 쑹판의 밤에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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